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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싶다"고 말하던 릴라는 완전히 자취를 감춰버렸다. 마치 세상에 존재한 적도 없었다는 듯이. 레누는 60여 년 전 두 사람의 우정이 시작된 순간을 회상한다. 1950년대 나폴리의 가난한 동네, 여성에게 끔찍이도 보수적이었던 그곳에서 두 사람은 서로를 발견했다.
아무 옷이나 걸쳐도 모두의 찬탄 어린 시선을 받고, 별 노력 없이 누구나 원하는 삶을 사는 릴라가 얄밉기도 했다. 릴라의 행운을 빌었지만 질투가 나서 견딜 수 없기도 했다. 서로가 갖지 못한 것들에 대한 열등감으로 치열하게 싸우고 마음에 생채기를 내기도 했지만, 삶이 주는 시련에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면 가장 먼저 서로를 찾아 모든 것을 털어놓고 마음을 보듬었다. 그렇게 단단해진 우정에 대하여, 중년이 된 레누는 고백한다. "너와의 우정은 곧 나의 삶이었다"고. 지난 60년간의 일들을 기억이 닿는 한 모두 기록해서 릴라의 흔적이 사라지지 않도록 붙잡아 두겠다고.
'얼굴 없는 작가' 엘레나 페란테. 나폴리가 고향이고 1992년 등단했다는 것과 필명 외에는 어떤 정보도 알려져 있지 않다. "작가에 관한 모든 것은 소설 안에 있다"며 자신을 철저히 감춰온 페란테는 자전 소설로 알려진 <나폴리 4부작>에서 삶의 가장 내밀한 영역을 열어젖혀 거침없이 써내려간다. 누군가의 삶에 이렇게까지 몰입했던 적이 있었던가. 그 열렬하게 빛나는 생의 기록에 매혹되어 밤새 책장을 넘기며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