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1년 인천에서 태어났습니다. 1972년 인천교육대학교를 졸업하고, 경기도 안성군에서 초등학교 교사, 서울시 목동청소년수련관・과천문인협회 등에서 글짓기 강사를 지냈습니다. 198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동화 <강마을 동이> 당선으로 등단하여, 동화집 ≪강마을 동이≫ ≪우리 반 피노키오≫ ≪도토리가 발밑에 떨어졌어요≫ ≪바위 거인≫ ≪겁쟁이 한울이≫ ≪초롱이의 뽀뽀≫ 등 많은 책을 냈습니다.
나는 아주 오래전 신춘 문예에 당선된 동화 작가입니다만, 지금은 거의 동화를 안 쓰고 ‘들꽃피는집’에서 꽃을 기르며 사는 할머니입니다.
대자연이 변화하는 것을 볼 때마다 함께 감동하고 싶어서 도시에 사는 내 손자・손녀들을 기다리지만, 쉽지 않다는 걸 깨닫습니다.
어느새 쑥쑥 자라, 자신의 꿈을 향해 열중하느라 시골에 자주 올 수 없기 때문이지요.
나도 원래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이웃 사람들 말대로, 시골의 ‘시’ 자도 모르고 농사의 ‘농’ 자도 모르는 사람이지요. 고양이도 싫고 소도 무서워하면서, 여행과 카페만 좋아했습니다.
어느 겨울날, 도심을 벗어나 한 카페에 갔습니다.
마당에 있는 캠프파이어장에 둘러앉아 활활 타는 장작불을 보며 대추차를 마시고 고구마를 구워 먹으면서, 나도 시골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판운리 모란마을에다 집을 장만했지요.
아파트에 살며 생활의 편리함을 맘껏 누리다가 주말에만 ‘들꽃피는집’에서 지냈는데, 요즘은 거꾸로 되었습니다.
시골이 좋다 보니 볼일 있을 때만 도시에 갑니다.
그런 내게 어쩌다 병이 생겨 병원에서 지내야 했습니다.
지금도 3개월에 한 번씩 의사 선생님을 만나, 입원실로 끌려갈지 ‘들꽃피는집’으로 갈지 결정해야 하는 삶을 살고 있지요.
얼마 전, 감사하게도 또 3개월 휴가를 받았습니다.
이 소중한 날들을 어떻게 보낼까 궁리하다가, 그동안 이루지 못한 소망들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버킷 리스트 같은 거라 할까요?
그중 첫째가 아이들에게 모란마을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입니다.
나는 겪었지만 아이들은 미처 체험하지 못했을 이야기를, 이제는 내 손자・손녀뿐 아니라 되도록 많은 어린이들과 공감하고 싶은 까닭입니다.
그래서 난 아주 오랜만에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을 열었습니다.
사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미나는 모란마을에 없습니다.
아이들이 없고 뭐든지 다 있다 한들 무슨 소용 있나요?
주인공이 없는 마을은 그야말로 앙꼬팥소 없는 찐빵이요, 오아시스 없는 사막과 다름없겠지요.
그래서 나는 미나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미나 역할을 한 사람은 내 남편이고 놀러 온 언니였으며 이웃집 사는 아줌마이기도 합니다.
내가 쓴 이야기를 읽고 수많은 진짜 미나가 이사 오면, 굳이 들피 할머니가 친구 되어 줄 필요는 없겠지요. 누가 뭐래도 또래 친구가 더 좋을 테니 말입니다.
나는 소망을 이뤘고, ‘들꽃피는집’에서 즐겁고 건강하게 사는 이야기만 계속 들려주면 될 것입니다.
―북인도 여행 중에 만나 내게 힘을 준 그녀를 기억하며
2024년 새봄에 김영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