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은 진화한다'는 단호한 발언에서 이 문장의 실제 주어는 '서정'이 아닌, 시쓰기의 주체인 '시인'이다. 시를 읽고 논하는 독자와 평론가 역시 그 일부이다. 이 평론집에 실린 글들은 이 시대의 서정시들이 진화하는 현장에 부지런히 동참하고자 한 흔적들이다.
대상이 된 시인들의 독특하고 다채로운 서정을, 아직 평론가의 정체성을 온전히 소유하지 못한 나는 둔탁한 감식안으로나마 공감하고 공명하고자 했다. 본의아니게, 더러는 변형하고 왜곡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 가운데서 나는 나름대로 한 가지 신념을 관철하고자 했다.
미학, 시의 자율성, 실험정신, 새로움 등의 문학(주의)적인 항목들에도 일정한 방향성은 필요하며, 그 방향성은 동시대의 현실 및 삶의 문제와 어떤 식으로든 '밀착'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아주 오래된 믿음이지만, 근래 우리 문학에서는 자주 망각되거나 폄하되는 덕목이다. 그 몰락의 증상과 배후들이 나의 정의감(?)과 비판의식을 독려했음을, 나는 그에 충실히 융합함으로써 평론가의 책무를 대신하고자 했음을 고백해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