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베이는 처음 본 저에게 자신이 어떻게 자랐고 어떻게 그림을 그리게 되었는지를 솔직하게 얘기해 주었습니다. 이베이의 말은 부모님의 통역 없이는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가끔 또랑또랑하게 들리는 몇 마디만으로도 이베이의 심정이 어땠을지 충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쓸쓸하게 홀로 방에 남았을 때의 외로움과 적적함, 통제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느꼈을 좌절과 절망, 그리고 주변의 오해와 편견 앞에서 느꼈을 무력감이 눈앞에 생생히 그려졌지요.
병 때문에 이베이의 인생에 드리워진 먹구름은 그림을 그리면서 말끔히 걷힌 모양입니다. 그림 이야기를 꺼내자 이베이의 얼굴이 갑자기 환해지며 마치 수풀 속을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딱따구리가 된 것 같았습니다. 머리에 붓을 매달아 그림을 그리는 일은 무척 고되긴 하지만, 병에 꽁꽁 묶인 이베이가 몸에서 탈출하여 자유로이 날아다닐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입니다. 그림은 이베이에게 새 생명을 부여했고, 아름다운 인생을 펼쳐 주었습니다.
이베이의 이야기를 쓰면서 특수 돌봄이 필요한 아동을 오랫동안 연구해 온 장이춘 교수와 많은 의견을 나누었고 함께 글을 수정했습니다. 이 책에 이베이의 마음과 이베이가 그림을 그려 온 여정이 빠짐없이 담겼기를 바라며, 더 나아가 이베이의 이야기를 통해 몸과 마음의 고통을 겪고 있는 어린이들이 그 고통에 용감히 맞설 힘을 얻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