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작가. 2006년 <시동라사>로 데뷔하여 변두리의 소외된 사람들과 근현대사의 사건들을 통해 상실에 대한 트라우마, 남은 이의 부채 의식 등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깊은 슬픔에 대해 질문을 던져왔다.
희곡집으로 《썬샤인의 전사들》 《목란언니》 《연변엄마》 《바닐라》 등이 있다.
자주 가는 북악산 등산로에서 덩치 큰 흰 개를 만났다.
아직 눈이 맑고 털이 고왔다.
버려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유기견으로 보였다.
한참 동안 따라오던 개는 가라며 인상을 쓰던 나를
오랫동안 지켜보고 있었다.
산을 내려오는 길에 저택 정원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높은 벽 너머로 뛰노는 꼬마들의 머리가 살짝살짝 보였다.
어머, 집 안에 트램펄린이 있는 거야?
좁은 문틈 사이로 다가가 엿보려는 순간
사납게 짖는 소리에 깜짝 놀라 물러섰다.
나를 쫓아오던 버려진 개와 나를 경계하던 저택의 개.
그날 서로 다른 둘을 만난 경험이 『바닐라』를 쓰게 만들었다.
성북동 산기슭의 멋있는 저택과 그 아래 다세대 주택 사이의
가깝고도 먼 거리를 걸을 때면 버려진 개의 눈동자가 떠오른다.
나를 따라오던 그 선한 얼굴이 눈에 밟힌다.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