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년 만에 만난 로스는 수염이 하얘졌다.
“머리도 자세히 보면 반백이야” 하고 말했을 때, 일 년 내내 눈이라고는 오지 않던 도시에 쏟아진 폭설은 저녁부터 내린 비에 조금씩 녹고 있었다.
일요일 저녁이었다. 시내에는 크리스마스 불빛이 쏟아졌다. 나는 마치 거기서 계속 살았던 것처럼 길을 묻지 않았다. 그는 이제 더이상 선생이 아니었고, 한국인 애인과 헤어진 지 칠 개월이 막 지났고, 그가 여자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구 년째 한 집에서 살기를 고집하고 있는 수전과 부엌을 나눠 쓰고 있었고, 여전히 외롭지 않으려고 일부러 바빴다. 바쁘려고 그는 드라마를 쓰기 시작했다. 복사와 사랑에 빠진 게이 청년의 이야기다.
“사십 년 만에 성당에 갔어.”
그는 신부에게 당한 적이 있다. 보이스카우트 캠프에서.
“하지만 이제 내 꿈은 사제가 되는 거지.”
“이상해! 하지만 어울려!”
그가 허위허위 베네딕트 수녀회의 수도원을 찾아가 문을 두드렸을 때 뉴욕 출신의 깐깐한 수녀는 그를 맞아들이고는 아래위를 훑어보았다.
“수녀님, 술을 마시는 것은 죄악입니까”
“죄악이지, 암!”
“담배를 태우는 것은요”
“그것도 죄악이지, 암!”
“문신은요?”
“문신한 자들은 지옥 불에 훨훨 타지, 암!”
“……전, ……전, 죽어야겠군요.”
“알면 됐어!”
우리는 웃었다.
그의 쓸쓸하고 푸른 눈 깊숙이 평안이 고여 있었다. 빗줄기가 거세어지고 있었다.
“걱정 마. 내가 우산을 가지고 왔거든.”
하지만 가방 속에는 시집만 들어 있었다. 나는 우산 대신 시집을 그에게 주었다. 『Enough to Say It’s Far』.
“괜찮아. 좀 늙긴 했지만, 너처럼 하루에 한 갑씩 담배를 태우진 않으니까.”
우리는 또 웃었다.
그는 애리조나에서 미성년자 포르노를 보다가 밴쿠버로 도망와 경찰에 잡힌, 텍사스 출신의 차이니즈 재패니즈 소년의 친구 이야기를 해주었다.
“장당 십 년이래. 그는 육십 년 후에 출감한다.”
우리는 자꾸만 웃었다.
비가 내리는데도, 숙소로 돌아오는 길은 여전히 눈이 쌓인 채여서 우리는 우회로를 찾아야만 했다.
“기억해줘. 내가 널 사랑한다는 거.”
그는 조금 울고 있었나. 사람들은 섬에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고, 나는 방 안에서 그의 말들을 찬찬히 되새기고 있었다. 신부가 되기로 결심한 중년의 게이를 위해 나는 몇 년 만에 기도를 했다. 이 상처 받은 어린 짐승들을 보살펴주소서.
그가 집으로 가는 길에 울지 않게 하소서.
아니, 그저 울음을 참지 않게 하소서.
2011년 7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