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2년 경상남도 울산 바닷가 마을에 태어나 평화로운 유년기를 보내고 열두 살 때 서울로 올라와 동덕여고를 다녔다. 여고 시절 사업가이면서 대동주의자인 아버지 이종만의 밥상머리 가르침을 통해서 대동정신과 민족정신이 함양되었다.
일본여자대학 사범과를 졸업하고 해방 전에 모교에서 육아 과목을 가르쳤고 결혼을 했다. 6.25 동란 시 인민군 점령하의 서울에서 학생들 앞에서 반동분자로 공개비판을 받기도 하고, 서울 수복 후에는 공산주의자로 몰려 사형을 구형받고 형무소 생활을 하기도 하고, 서울에서 고향까지의 피난 과정에서 전쟁의 참상을 목격하면서 민족 분단의 비극과 이념의 갈등을 체험했다.
종전 후 동경제대 출신인 남편의 사업을 도우며 사회활동을 했고, 4.19, 5.16을 거치면서 네 자녀의 보다 자유롭고 넓은 세계에서의 발전적 미래를 위하여 이민을 결심, 1964년에 브라질로 이민을 떠났다. 4년간 브라질에서 재봉사로 일하며 밑바닥 인생을 체험했고, 1968년에 캐나다로 재 이민하여 38년간 생활하다가 2006년 84세의 나이로 영구 귀국하여 제주도에 정착했다.
1949년 자진 월북하여 북한에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의장, 광업부 고문 등을 지낸 아버지의 생존 소식을 듣고 캐나다 시민권자로서 1975년 평양을 방문, 극적인 부녀상봉을 하였고, 1979년 아버지의 사망으로 묘소 참배 차 다시 평양을 방문하였다. 1995년, 애국열사릉에 이장된 아버지 묘소를 다시 찾는 목적으로 평양에서의 해방 50주년 기념행사에 캐나다 방문단 일원으로 참가하였다. 2007년에는 하버드대 교육철학 박사 출신인 둘째 딸을 대동하고 4차 북한방문을 하였다.
이남순의 염원은 오직 남북의 평화통일이며, 30년 넘게 매일 아침저녁으로 이를 위한 기도에 정성을 다하고 있다. 캐나다에서 한때 통일을 위한 정치적 활동에 참여한 적도 있었으나, 남북한 동포의 마음의 통일이 보다 근본적인 통일에의 길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자신이 보다 평화로운 존재가 되어 이에 기여하고자 영적 수행의 길을 걸어왔다.
이남순은 1980년에 캐나다 한인회에서 ‘장한 어머니상’을 받았다. 캐나다 나발 대학 인류학 박사인 큰 딸은 캐나다 연방정부 공무원으로 있고, 하버드대학 교육철학 박사인 작은 딸은 미국에서 감성치유 및 함께 창조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고, 장남은 하버드대학 사회학 박사로서 호주의 대학교수로 있고, 막내아들은 로즈 장학금으로 옥스퍼드 대학원을 나오고 현재 제주도에서 세계적인 영성 공동체 에미써리의 리더로 활동하고 있다.
구십을 바라보는 이남순의 오늘의 꿈은 제주도에 ‘평화와 치유의 공원’과 ‘국제 영성교육센터’가 만들어져 제주도가 남북의 평화통일, 세계평화의 못자리 역할을 하는데 기여하는 것이다. 이남순은 이것이 대동 평화세계를 꿈꾸었던 아버지 이종만의 유지를 받드는 일이고 하늘이 자신에게 부여한 사명이라고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