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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해외음악가 > 작곡가

이름:리하르트 바그너 (Richard Wagner) (Wagner, Wilhelm Richard)

본명:Wilhelm Richard Wagner

성별:남성

국적:유럽 > 중유럽 > 독일

출생:1813년, 라이프치히 (쌍둥이자리)

사망:1883년

최근작
2025년 1월 <[수입] R.슈트라우스: 4개의 마지막 노래 / 바그너 아리아 (Half Speed Master Series L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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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하르트 바그너 (Richard Wagner)(Wagner, Wilhelm Richard)

음악과 연극을 결합한 ‘음악극’을 창시한 라이프치히 출신의 작곡가. 극작가이자 배우인 양아버지 덕분에 일찍부터 연극에 관심을 가졌다. 7세에 피아노를, 15세에 음악 이론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18세인 1831년 라이프치히 대학에 들어가 음악과 철학을 공부했다. 이후 여러 도시에서 합창단 지휘자, 오페라단 음악감독 등을 맡았으나, 큰 빚을 지고 외국으로 도피한다. 1836년에 배우 빌헬미네 플라너와 결혼했다. 1839년부터 3년 동안 파리에 머물며 생계를 위해 음악 관련 글을 쓰고 다른 작곡가의 오페라를 편곡하며 오페라 〈리엔치〉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을 완성한다.

1842년 드레스덴으로 이주, 이듬해에 작센 궁정극장의 카펠마이스터로 임명된다. 자신의 작품들을 직접 지휘하여 초연하고, 1846년 당시 이해하기 힘든 작품으로 여겨지던 베토벤 교향곡 9번을 지휘하여 대성공을 거둔다. 1849년 드레스덴 혁명 가담 혐의로 지명 수배를 받아 취리히로 피신, 12년간 망명 생활을 한다. 경제적 궁핍 속에서도 4부작 〈니벨룽의 반지〉 구상을 시작하고 정치와 예술에 관한 글을 왕성하게 집필한다. 1854년 그의 음악 이론에 깊은 영향을 끼친 쇼펜하우어의 저작을 처음 접한다. 1861년 추방 조치 해제로 프로이센 비브리히에 정착할 무렵, 그를 열렬히 숭배하던 바이에른 왕 루트비히 2세가 1864년 뮌헨으로 불러들여 신작 공연을 돕는다. 하지만 적대자들의 배척으로 이듬해에 스위스 트리프셴으로 이주한다. 이 무렵 지휘자 한스 폰 뷜로의 아내 코지마(프란츠 리스트의 딸)와 사랑에 빠져 여러 해 동안 혼외 관계가 이어지다 1870년에 결혼한다. 이후 〈니벨룽의 반지〉 작곡에 온 힘을 쏟고 이 작품이 공연될 새 극장의 터전으로 바이로이트를 택하여 1872년 그리로 이주한다. 1876년 8월, 바그너 음악극 전용 극장인 ‘바이로이트 축제극장’이 문을 열고 개막작으로 〈니벨룽의 반지〉를 공연한다. 1882년 두 번째 작품 〈파르지팔〉이 무대에 오르지만 공연 진행 중 건강이 악화된다. 축제가 끝난 후 요양 차 떠난 베네치아에서 1883년 2월 13일 7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다.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탄호이저〉 〈로엔그린〉 〈트리스탄과 이졸데〉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니벨룽의 반지〉 〈파르지팔〉 등 극음악 작품 외에도 《예술과 혁명》 《미래의 예술 작품》 《오페라의 사명에 대하여》 《독일 예술과 독일 정치》 등 여러 저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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