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결핍'이라는 코드를 통해 문학 작품에 다가가려 한 작은 노력의 결실이다. 존재론적 의미를 지니든, 사회.역사적 의미를 지니든 문학은 본질적으로 ‘결핍’을 채워 넣으려는 욕망의 발현이다. 이 결핍의 흔적을 포착하는 작업은, 현실과 이상, 재현과 창조, 정착과 유목, 사실과 허구 등 이질적인 공간을 가로지르는 긴장의 무늬를 감상하는 즐거움, 즉 '현실 속에서 현실 너머를 꿈꾸는' 문학의 운명과 만나는 떨림을 동반한다. 이 떨림이야말로 진부한 현실을 견디는 동력이 아닐까.
'작가의 치열한 부정 정신'은 늘 평론가로서의 자의식을 환기한다. 문학은 '지금 여기'의 일상을 통해 '현실 너머'를 꿈꾼다. 여기에 나의 글쓰기를 포개는 일은, 문학과 함께 근대적 이상을 견디는 작업이기에 고통스럽지만 그만큼 즐겁기도 하다. 보다 나은 삶에 대한 희망이 일상 너머로 오솔길을 내기 때문이리라.
나에게 글스기는 근대적 일상에 깊숙이 침윤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거부하고자 하는 모순된 욕망의 다른 이름이다. '현실 속에서 현실 너머를 꿈꾸는 문학의 운명'을 체현하는 수단인 셈이다.
문학적 삶이 무엇인지 되새겨본다. 문학과 함께하고자 한 초심과 얼마나 멀리 덜어져 있는가 다시 한 번 곱씹어본다. 시간이 지날수록 문학과 일상 사이에서 균형감각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하지만 이러한 현실에 칭얼대고 보채기보다는, 점점 흐릿해지는 문학의 '아우라'를 좇아 더욱 치열하게 글을 쓰고 싶다. 글쓰기는 문학과의 대화인 동시에 자신과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이문구의 소설이 서구 중심의 기획에 대한 저항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는 전제 아래, 그의 소설에 나타난 근대성과 탈식민성을 고찰하였다. 필자에게 탈식민성이라는 화두는, 서구에서 내재적으로 형성된 근대성.탈근대성의 일방적 수용에 대한 회의와 더불어, 전통적 양식에 대한 향수가 착잡하게 얽히는 과정에서 탄생하였다. 탈식민성은 '근대가 매개된 전통', '전통이 매개된 근대'를 동시에 바라보려는 문제의식이 낳은 방법론적 틀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이문구의 소설에 접목시켜보려는 의도가 이 책을 낳은 원동력이다. 이는 근대 세계에 대한 근원적 문제의식을 함축하는 시대정신으로서의 ‘근대성’과 이러한 근대성이 전통 서사 양식과 맺고 있는 관계를 밝혀보려는 기획의 일환이다.
문학과 함께한 지난 시절의 애틋한 추억을 되새김질하며,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마련해 준 '사이버문학광장(문장)' '글틴'에 '우리 문학 속 명문장'이라는 이름으로 연재한 글들을 묶어 세상에 내놓는다. 여기에는 지나온 삶의 실루엣, 즉 문학소년 시절의 낭만적 감수성은 물론, 대학 시절의 열정이나 근대적 일상인으로서의 자의식 등이 직·간접적으로 투영되어 있다. 이 글을 연재한 3년여의 기간 동안 문학 속 장면들이 '지금 여기'의 그늘진 속살을 들쑤시기도 했다. 다소 아프기도 했지만 일상에 안주하고 있는 내면을 채찍질하는 소중한 죽비 소리이기도 했다. ('책머리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