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본래 김나지움(독일 인문계 고등학교) 최고 학년의 종교 수업을 위한 책으로 기획되었으나 정작 고등학교가 아니라 대학생과 교수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었고, 그 덕분에 빠르게 여러 쇄를 거듭해서 발행했다. 그의 신학적 고민이 전통과 무관하지 않은 것은 이 책의 제목이 종교개혁자 칼뱅의 <기독교 강요>를 그대로 본딴 것에서 알 수 있다.
리츨은 교회를 사랑한 신학자다. 그의 신앙은 교회와 떼려야 뗄 수 없다. 그는 개신교회, 특히 루터의 전통에 서 있으며 동시에 슐라이어마허를 뛰어넘기 위해 노력한 신학자다. 종교개혁 이후 구 개신교 시대(16-17세기, 개신교 정통주의)와 신 개신교 시대(18-19세기 이후)가 펼쳐졌는데, 슐라이어마허가 개신교 신학의 새 시대를 열었 다면, 리츨은 개신교 신학의 새 학파를 만들어 낸 주역이다.
- 옮긴이
문학 용어 중에, ‘낯설게 하기’라는 것이 있다. 내가 이 동화를 읽으며 처음 느낀 것은 바로 그것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이집트 탈출은 성경 이야기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 중 하나로, 여러 번 재구성이 시도되었다. 그러나 첫 유월절에 처음으로 희생될 어린 양의 관점으로 이 이야기를 접하는 것은 흔치 않았다. 다양하게 들려지는 이 이야기 속 주인공은 언제나 모세 혹은 여호와였기 때문이다.
이 동화의 원고를 받아서 처음 읽었을 때, 나는 나도 모르게 주인공 양에게 어느 순간 빠져들었고, 동화의 절정에서는 그의 친구인 비느하스처럼 슬픔을 느꼈고, 그리고 이내 이어지는 이야기를 통해 따뜻한 희망 안에서 그제야 안도감을 내쉴 수 있었다. 그만큼 작가의 상상력과 특정한 신학적 시각은 흥미로웠고, 글솜씨에 감탄했다.
한편, 바로 그 탁월한 저자의 글솜씨로 인해 이것을 정확하게 영어로 옮긴다는 것이 쉽지가 않았다. 그래서 어느 한 한국계 미국인과 함께 머릴 맞대며 적절한 표현을 찾아내려 노력했다(그럼에도 부족한 부분이 있을 수 있으며, 그것은 전적으로 역자인 나의 탓이다).
국내 기독교 출판 시장에는 이런 부류의 동화가 많지 않다. 대다수가 성경의 이야기를 그대로 쉽게 옮긴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런 다소 지루한 분위기에 이 동화가 누구도 예상치 못한 새로운 즐거움을 가져다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