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에 힘이 있을까? 한 자리에서 길게는 수백 년을 앉아 있었으니 세상의 도쯤은 깨치고도 남을 세월이다. 붙박인 채 수백 년을 살았다면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힘도 갖게 되지 않았을까? 나무는 사람들에게 행복했던 순간들을 기억나게 해주고 상처는 위로해주었을 것이다. 나는 그런 나무들 속에서 여러 계절을 살았다.
가끔 나무들이 말한다. 세상은 보기보다 넓다고, 인간의 눈으로 보는 세계는 좁쌀보다 작다고, 내게 의지하면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러니 지금의 소멸은 소멸이 아니라 다른 세상의 시작이라고. 그렇게 바람에 실린 나무의 말을 듣다 보면 여럿에게 미안했다. 위로의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한 아버지와 동생 그리고 모든 억울한 영혼들에게 미안하다. 세상은 연의 사슬로 이루어져 있고 우연의 연속이기도 하니 어느 날 어느 장소에서 어떤 순간 그들 모두 만나게 되기를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