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조차도 허용하지 않는, 모든 희망이 사라진 고통의 현장─그것이 바로 지옥이다. 지옥 같은 고문이 이 땅에서도 일상화된 시대가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집에서, 직장에서, 길거리에서 납치되고 연행되어 가족과 친구조차 소재를 알 수 없는 어느 지하실에서 홀로 생사를 넘나드는 고통을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더러는 그 고통으로 그곳에서 시신이 되어 나오기도 했고, 더러는 나온 뒤에도 고문의 후유증으로 남은 생을 폐인으로 살기도 했다.
그것이 우리가 살아온 박정희의 '경제개발 5개년계획' 시대, 전두환의 '정의로운 사회' 시대, 노태우의 '보통사람들' 시대였다. 아니 그 이후 '문민정부' 또는 '국민의 정부' 때에도 그치지 않았다. 우리의 무관심 속에서 여전히 그곳은 절대 고립의 상태였고, 세상의 절망이 닻을 내린 곳이었다. 허울 좋은 캐치프레이즈가 외쳐질 때도 고문장에서 끝없는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때에도 우리는 종로 네거리를 걷고, 식당에서 밥을 먹고, 전철을 타고, 그리고 멀쩡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마치 그런 일이 없는 것처럼, 아니 그런 사람이 없는 것처럼 우리는 그렇게 살아왔다. 아니 지금도 우리는 잊고 산다.
독일사회에서는 직업적인 운동가만 시민운동에 참여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평범한 시민이 다양한 시민단체를 만들어 이끌어 가고 있다. 특히 새로운 대안에너지와 환경분야에서 시민의 활약은 차라리 눈부시다고 해야 옳다. 환경뿐만 아니라 평화, 여성, 인권, 제3세계 등의 영역에서 많은 사람들은 미래 세대를 위하여 크고 작은 꿈들을 그리고 있다.
지난 3년 동안 지역 순례를 하면서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지역사회 공동체를 복원하고 활성화하려는 집요하고도 다양하며 눈물겨울 만치 노력하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대한민국을 살리는 희망의 제작자들이며 우리 시대의 진정한 영웅들이고, 이 사회를 올바르게 이끌어갈 리더들입니다. 절망과 불가능 속에서 희망이라는 정화수를 길어낸 두레박 같은 존재들입니다. 바로 이들이 증명한 사례들로 우리는 지역과 농촌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가능성의 땅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프롤로그' 중에서)
저는 이번 대선에 출마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권교체와 ‘나라다운’ 나라, ‘새로운’ 대한민국에 대한 꿈과 열망마저 접을 수는 없습니다. 그동안 제가 시민들을 만나고 소통하면서 정리한 저의 생각을 시민들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저는 집단지성의 힘을 믿습니다. 그동안 제가 준비했던 정책구상들을 이렇게 공유함으로써 더 많은 시민들과 만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또 다른 출발이 되어 시민의 구상, 시민의 정책으로 발전하고, 새로운 대한민국의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저의 생각과 구상은 결국 시민들의 것이고, 시민들이 저의 생각과 구상을 완성시켜 줄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치열하게 생각하고, 협력하고, 행동할 때 비로소 시민명예혁명은 완수될 것입니다.
아름다운 뺄셈을 기다리며
어린이 여러분은 수학을 좋아하나요? 수학의 기본은 사칙연산입니다. 덧셈, 뺄셈 ,곱셈,나눗셈 이 네 가지가 그 주인공이죠. 나는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가치를 설명할 때 나눔은 나누기로, 상상력은 곱하기로, 공동체는 더하기로 표현하곤 합니다.
나눔이 자신의 몫을 나누는 나누기와 닮았고, 어떤 일에 상상력이 덧붙여지면 몇 곱으로 재밌어지기 때문입니다. 또 공동체는 한 사람의 마음에 또 한사람의 마음이 더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많을수록, 빠를수록, 높을수록 좋을 거라는 생각에 우리의 삶은 복잡하고, 위험하고 어지러워졌어요. 필요 없는 것은 쏙 빼내야 해요. 우리에게 꼭 필요 한 것이 무엇인지 무엇인가 결정해야 하는 때가 온다면 뺄셈을 기억해야 합니다. 뺄셈은 몸을 가볍게 하고, 마음 근육을 단단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뺄셈이 희망이에요. 나는 오늘도 아름다운 뺄셈을 기다립니다.
죽음조차도 허용하지 않는, 모든 희망이 사라진 고통의 현장─그것이 바로 지옥이다. 지옥 같은 고문이 이 땅에서도 일상화된 시대가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집에서, 직장에서, 길거리에서 납치되고 연행되어 가족과 친구조차 소재를 알 수 없는 어느 지하실에서 홀로 생사를 넘나드는 고통을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더러는 그 고통으로 그곳에서 시신이 되어 나오기도 했고, 더러는 나온 뒤에도 고문의 후유증으로 남은 생을 폐인으로 살기도 했다.
그것이 우리가 살아온 박정희의 '경제개발 5개년계획' 시대, 전두환의 '정의로운 사회' 시대, 노태우의 '보통사람들' 시대였다. 아니 그 이후 '문민정부' 또는 '국민의 정부' 때에도 그치지 않았다. 우리의 무관심 속에서 여전히 그곳은 절대 고립의 상태였고, 세상의 절망이 닻을 내린 곳이었다. 허울 좋은 캐치프레이즈가 외쳐질 때도 고문장에서 끝없는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때에도 우리는 종로 네거리를 걷고, 식당에서 밥을 먹고, 전철을 타고, 그리고 멀쩡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마치 그런 일이 없는 것처럼, 아니 그런 사람이 없는 것처럼 우리는 그렇게 살아왔다. 아니 지금도 우리는 잊고 산다.
죽음조차도 허용하지 않는, 모든 희망이 사라진 고통의 현장─그것이 바로 지옥이다. 지옥 같은 고문이 이 땅에서도 일상화된 시대가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집에서, 직장에서, 길거리에서 납치되고 연행되어 가족과 친구조차 소재를 알 수 없는 어느 지하실에서 홀로 생사를 넘나드는 고통을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더러는 그 고통으로 그곳에서 시신이 되어 나오기도 했고, 더러는 나온 뒤에도 고문의 후유증으로 남은 생을 폐인으로 살기도 했다.
그것이 우리가 살아온 박정희의 '경제개발 5개년계획' 시대, 전두환의 '정의로운 사회' 시대, 노태우의 '보통사람들' 시대였다. 아니 그 이후 '문민정부' 또는 '국민의 정부' 때에도 그치지 않았다. 우리의 무관심 속에서 여전히 그곳은 절대 고립의 상태였고, 세상의 절망이 닻을 내린 곳이었다. 허울 좋은 캐치프레이즈가 외쳐질 때도 고문장에서 끝없는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때에도 우리는 종로 네거리를 걷고, 식당에서 밥을 먹고, 전철을 타고, 그리고 멀쩡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마치 그런 일이 없는 것처럼, 아니 그런 사람이 없는 것처럼 우리는 그렇게 살아왔다. 아니 지금도 우리는 잊고 산다.
죽음조차도 허용하지 않는, 모든 희망이 사라진 고통의 현장─그것이 바로 지옥이다. 지옥 같은 고문이 이 땅에서도 일상화된 시대가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집에서, 직장에서, 길거리에서 납치되고 연행되어 가족과 친구조차 소재를 알 수 없는 어느 지하실에서 홀로 생사를 넘나드는 고통을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더러는 그 고통으로 그곳에서 시신이 되어 나오기도 했고, 더러는 나온 뒤에도 고문의 후유증으로 남은 생을 폐인으로 살기도 했다.
그것이 우리가 살아온 박정희의 '경제개발 5개년계획' 시대, 전두환의 '정의로운 사회' 시대, 노태우의 '보통사람들' 시대였다. 아니 그 이후 '문민정부' 또는 '국민의 정부' 때에도 그치지 않았다. 우리의 무관심 속에서 여전히 그곳은 절대 고립의 상태였고, 세상의 절망이 닻을 내린 곳이었다. 허울 좋은 캐치프레이즈가 외쳐질 때도 고문장에서 끝없는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때에도 우리는 종로 네거리를 걷고, 식당에서 밥을 먹고, 전철을 타고, 그리고 멀쩡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마치 그런 일이 없는 것처럼, 아니 그런 사람이 없는 것처럼 우리는 그렇게 살아왔다. 아니 지금도 우리는 잊고 산다.
죽음조차도 허용하지 않는, 모든 희망이 사라진 고통의 현장─그것이 바로 지옥이다. 지옥 같은 고문이 이 땅에서도 일상화된 시대가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집에서, 직장에서, 길거리에서 납치되고 연행되어 가족과 친구조차 소재를 알 수 없는 어느 지하실에서 홀로 생사를 넘나드는 고통을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더러는 그 고통으로 그곳에서 시신이 되어 나오기도 했고, 더러는 나온 뒤에도 고문의 후유증으로 남은 생을 폐인으로 살기도 했다.
그것이 우리가 살아온 박정희의 '경제개발 5개년계획' 시대, 전두환의 '정의로운 사회' 시대, 노태우의 '보통사람들' 시대였다. 아니 그 이후 '문민정부' 또는 '국민의 정부' 때에도 그치지 않았다. 우리의 무관심 속에서 여전히 그곳은 절대 고립의 상태였고, 세상의 절망이 닻을 내린 곳이었다. 허울 좋은 캐치프레이즈가 외쳐질 때도 고문장에서 끝없는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때에도 우리는 종로 네거리를 걷고, 식당에서 밥을 먹고, 전철을 타고, 그리고 멀쩡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마치 그런 일이 없는 것처럼, 아니 그런 사람이 없는 것처럼 우리는 그렇게 살아왔다. 아니 지금도 우리는 잊고 산다.
운동하는 사람으로서 미국은 많은 장점이 있으면서도 훨씬 더 어려운 곳임에 틀림이 없었다. 역설적으로 그 사람들의 절망과 고민이 오히려 우리에게 위안과 희망을 주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작은 변화를 위해 평생을 바쳐 고생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름다웠고, 그들에게 강렬한 동지애와 우정을 느꼈다. 공익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 때문에 이 세상은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