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내 나이 일흔에 이르고 있다. 이제는 떠날 준비를 해야겠다. 지난날을 돌이켜 보니 나는 꿈이 많은 소년이었다. 어릴 때 품은 그 꿈을 이룬 것도 있고, 끝내 이루지 못한 것도 있다. 이즈음 내 마지막 꿈은 다음 세대들이 사람대접을 받으며 평화롭고 슬기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그들이 인생이라는 험한 개울을 건너는데 징검다리의 한 돌멩이 역할을 하고 싶다. 나는 그 꿈을 이루고자 이 책에 그 돌멩이와 같은 말을 차곡차곡 담았다.
이 책의 원고를 쓰고자 내 지난 삶을 돌이켜 보니 보잘것없는 삶이라 과연‘글로 남길 가치가 있을까’라는 회의가 들기도 했다. 하지만 관념적인 얘기는 공허하게 들릴 것 같아 가능한 내가 체험한 이야기를 썼다. 그래서 별 것도 아닌 내 지난 삶의 일들이 너무 많이 드러난 듯하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성공한 인생의 이야기만이 값어치가 있는 건 아니고 오히려 예사사람의 인생에 실패한 이야기, 역경을 헤쳐 나온 이야기, 늘그막에도 꿈을 가지고 사는 이야기도 새겨들으면 그 나름대로 인생 공부가 되리라는 신념으로 이 책을 썼다.
현명한 젊은이는 곧 내 세상이 될 내일을 위해 부족한 실력을 기른다. 또 부모세대의 삶에서 교훈을 얻어 시행착오를 거듭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것이 똑똑하고 바른 자식의 태도이다.
“사람이 배우지 않으면 마치 캄캄한 밤길을 가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이 책에 실린 모든 이야기들은 아버지로서 심사숙고하여 고르고 골라 들려준다. 이 책을 쓰면서 가장 괴로웠고, 글이 잘 쓰이지 않았던 점은 나는 실천 못했으면서도 너희에게 당부할 때였다. 혹 읽으면서 눈에 거슬린 부분이 있다면, 너희는 아버지보다 나은 사람이 되라는 한 아버지, 한 훈장의 애정으로 이해해 다오. 너희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다 쓰고 나자 지금 나는 마치 실을 다 뽑은 누에처럼 탈진한 상태다. 하지만 간곡히 한 마디만 거듭 덧붙이겠다.
그대들은 내일을 준비하는 젊은이가 되라. 너희 아버지, 어머니는 어느 날 갑자기 이 세상을 떠난다. 그때를 대비하라. 현명한 목장 주인은 햇볕이 있을 때 건초를 마련한다.
이 책《그 소년은 왜 대통령이 되었을까》는 1997년에 펴낸《아버지는 언제나 너희들 편이다》의 33 꼭지 글 가운데 11꼭지를 빼고 새로 20 꼭지를 보태 모두 42 꼭지로 늘였을 뿐 아니라, 남은 꼭지의 글도 새로 크게 다듬어 세상에 내보낸다.
이 책에 새로 발문을 써주신 김영숙 선생님은 이화여자대학교 사범대학 영어교육과 교수 겸 교육대학원장을 역임하셨다. 1976년 8월, 내가 모교 교단을 떠나 깊은 마음의 상처를 입고 있을 때, 당신은 이대부 중고 교장 선생님으로 학기 도중임에도 흠이 많고 모난 사람을 특별히 불러주셨다. 그날 이후 오늘까지 내 인생의 스승이시다. 이 책을 예쁘게 펴내준 오래출판사 가족과 제자(題字)를 써준 서예가 우송(雨頌) 윤병조 형, 그리고 추천의 글을 써준 제자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책 속의 사진은 대부분 내가 셔터를 누른 것이다.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의 인생길에 나의 말이 도움이 된다면 글쓴이로 가장 큰 보람이겠다.
2012년 여름
원주 치악산 아래‘박도글방’에서 - 머리글
나는 이 글을 너희 남매에게 주는 글의 형식을 빌려 썼지만 모든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삼았다. 너희는 아버지가 있어서 다행이지만, 젊은이 가운데에는 이미 아버지가 돌아가신 친구도 있고, 멀리 계시기에, 또는 이런저런 사정으로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친구도 숱하게 많다. 나는 너희 남매의 아버지이기도 하지만 평생 이 땅의 교육자로 살았다. 나는 너희 못지않게 우리나라의 모든 젊은이도 사랑한다. 그들에게 나의 얘기가 다정한 '아버지의 목소리'로 들려서 세상을 살아가는데 한두 마디라도 깨우치고 배운 바가 있기를 바란다. 아버지가 자식에게 주는 마음의 양식을 어찌 아무것이나 줄 수 있겠느냐. 이 책에 실린 모든 글들은 아버지로서 심사숙고하여 고르고 골라 최선을 다해 마련한 것이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만남의 연속이다. 나는 지난 50여 년을 살아오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냥 스쳐 가는 만남도, 인생 길을 바꿔놓은 깊은 만남도 있었다. 이 책에는 직접 만났거나 문헌을 통해 만난 많은 사람 중에서 나에게 감동을 준 아름다운 사람들의 단면을 그려보았다.
여기에 등장 인물은 유명 무명을 가리지 않고 어쨌든 내가 감동을 받은 사람 중심으로 가렸다. 사람은 불완전하다. 진선 진미한 사람이 없는 줄 알지만 가능한 이 분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찾아서 한 편의 짧은 글로 데생했다. (...)
이런 류의 책들이 많이 쏟아져 나와 널리 읽혀서 아름다운 사람으로 가득 찬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하여 어느 날 아침 신문 1면에 "경찰서 유치장을 청소년 도서실로 개조 - 최근 6개월 째 범죄자가 없어 유치장 텅텅 비어 제주도경에 이어 전남·충북도경에서도, 서울시경에서도 곧 시행 예정임- "이라는 머리 기사가, 또 사회면에는 "30대 그룹 회장들이 잇달아 사후에 전재산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유언 남겨"라는 머리 기사가 실렸으면 좋겠다.
이와 함께 같은 면 한구석에는 "대통령 부인이 평화시장에서 옷을 사 입고, 그 아들이 대학가에서 분식점을 열다."라는 가십이 실렸으면 좋겠다.
(2002년 8월 5일 알라딘에 보내신 작가 코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