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출간 제안을 받고 바로 눈 내리는 곳으로 떠났다
눈 속에 파묻혀 있었고 돌아올 날이 지나도록 눈 속에 남았다
그때 와락 스치듯 떠오른 것이 이 시집의 제목이었다
그와 동시에 눈냄새를 맡았는데 맡는 중이었음에도 눈의 냄새가 사무치게, 그리웠다
시는 그런 것
사랑은 그런 것
춤을 춰야겠다는 목적을 갖고 춤을 추는 사람과
자신도 모르게 춤을 추고 있는 사람,
굳이 밝히자면 내 이 모든 병(病)은 후자에 속한다
2024년 4월
이병률
스친 자리가 그립다. 두고 온 자리가 그립다. 거대한 시간을 견디는 자가 할 일은 그리움이 전부. 저 건너가 그립다.
아침 저녁으로 한강 하류를 지나면서 다리 놓는 모습을 본다. 수록된 시 '저녁 풍경 너머 풍경'의 밑그림이 되기도 한, 한강 하류에서 다리 공사를 하는 모습은 매일매일 기다려지는 풍경이 되었다. 덕분에 내 마음의 터진 둑이 나아졌다. 다리의 기둥들이 놓이면서 그럴 수 없을 것 같던 풍경과 풍경들도 만나게 되었다.
저 다리를 넘어 김포로 갈 수도 있으며 저 다리를 넘어 일산으로 돌아올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새 지도를 만드니 꽉 막힌 내 자리가 괜찮아진다.
다리를 놓아 서로 그리워하는 것들의 맥을 잇는 일이 시 쓰는 일과 다르지 않다는 걸 안다. 건널 수 없는 대상을 이제 건널 수 없다고 생각하지 않아도 되니 그것만으로도 가뿐하며 고맙다. 어차피 날 수는 없는 일.
두 번째 시집이다. 첫 시집과 두 번째 시집 사이, 그래도 따뜻한 시절을 지났다. 설명할 수 없는 날들을 보냈다. 그 시간 동안 몇사람에게 마음을 돌렸고 몇사람하곤 가까워졌다. 원하는 그림의 틀이 뒤틀리기도 했다.
하지만 더 많은 시간만큼이나 사람을 얻으려 하지 말며 사람을 이기려고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나는 그 시간들을 감히 세월이라 부르겠다.
하고 싶은 일은 많은데…… 라며 아직 하지 못한 일들을 돌아봅니다. 시를 쓰고 여행을 하고 방황을 일삼고 살고 있지만 방송 일을 오래 했으며, 출판 일을 한 지도 어느덧 10년이 되었습니다. 섬을 좋아합니다. 이건 확실합니다. 고기보다는 물고기를 많이, 먹으려고 합니다. 이것도 확실합니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게 만든 건, 매일매일 일어나는 기적이라고 믿습니다. 이것이 나의 종교입니다. 이 책은 그냥 망연히 떠든 것이어서 좀 심하게 멍청하다 싶은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이병률입니다. 글은 가면을 가지기 쉽지만, 실제의 나는 나에 관한 한 많이 말해버리거나, 다 말해버리는 사람이니까요. 어떤 ‘폭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두근거리는 일, 벅찬 일들은 모두 안으려고 합니다. 껴안지 않으면 그것은 놓쳐버리는 일일 테니까요. 윤동희 대표의 물음은 즐거웠습니다. 살아온 일과 살아갈 일들이 뭉쳐지고 버무려지는 바람에 조금 힘들었으며 그 바람에 어떻게 살아갈 거라는 것도 알게 되어 또 울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