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박수웅
- 전남대 의대 졸업,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 인턴, 군의관 복무 후 도미
- 뉴욕 Albert Einstein College of Medicine 마취과 수련의 과정
- 디트로이트 Henry Ford Hospital 마취과 Staff
- 1981년 3월 캘리포니아 Huntington Beach Hospital 마취과 의사로 개업
- JAMA(전 세계 예수 대각성 운동) International Director
- KOSTA(Korean Student Abroad) 강사
- CCC 미주 지역 순회 강사
- 청년 사역의 대가답게 1년에 9개월 이상 전 세계를 돌며 부흥 집회, 가정생활세미나, 내적치유세미나 등을 인도
- 저서: 「영원한 청년 박수웅의 자기경영」(두란노)
E-mail : yeajapark@yahoo.com
추천합니다 1 - 김동호(높은뜻 숭의 교회 목사)
“데이트와성에 대한 신앙적이고도 구체적인 안내서”
태어나서 처음 교회에 출석하는 어린 애기들을 안고 주일마다 기도를 한다. 축복의 기도다. 세상의 때는 고사하고 티도 묻지 않은 새 생명을 위해 축복하는 것이야말로 내가 누리는 또 하나의 특별한 축복이다.
아기들을 위해 축복기도를 할 때 절대 빼놓지 않는 것이 있다. 이 아기가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해 달라는 축복이다.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야말로 행복한 삶을 위해 빼놓을 수 없는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같은 기도를 늘 나 자신을 위해서도 한다. 그리고 나는 그 축복을 지금까지 받으며 살아오고 있다. 박수웅 장로님도 그와 같은 나의 간절한 기도의 응답이다. 그분을 만나게 된 것이 내 생애 축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박수웅 장로님을 처음 만난 것은 10년 전쯤 KOSTA(코스타:유학생수련회) 집회 때였다. 코스타에서는 주로 세 가지 강의를 하시는데, 큐티 강의, 직업의 현장에 대한 강의, 이성교제에 대한 강의가 그것이다. 세 강의 모두 탁월하지만, 그 중에서도 이성교제에 대한 강의가 가장 탁월하다. 다른 분야는 몰라도 이성교제 특히, 성적인 문제에 대한 그분의 강의는 정말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것은 근거 없는 막연한 칭찬이 아니다. 박 장로님에게는 결혼한 두 아들이 있는데 두 아들 며느리가 모두 다 결혼 전 박 장로님에게서 성에 대한 아주 자세한, 그러면서도 매우 신앙적인 특강(?)을 듣고 나서 (박 장로님의 말씀에 의하면 그림까지 보여 주며) 첫날밤을 치렀다. 아들에게는 혹 몰라도 며느리에게 첫날밤의 성을 강의할 수 있는 시아버지는 세상에 박 장로님밖에 없을 것이다. 둘째 며느리에 대한 특강은 첫째 며느리의 강력한 추천 때문이었다고 한다. 하여튼 대단하다. 상상을 초월하리만큼 대단하다. 나는 며느리는 고사하고 아들에게조차 이야기를 못 꺼내는데….
이런 장로님이 드디어 데이트와 성, 결혼에 관한 책을 내셨다. 나는 사랑과 성에 대해 박 장로님보다 더 구체적이고도 신앙적으로 글을 쓰실 수 있는 분은 쉽게 만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데이트와 성, 결혼에 대한 구체적이고 신앙적인 가이드라인이 필요한 청년들과 그 같은 가이드라인을 청년들과 자녀들에게 제시해야 할 모든 부모와 지도자들에게 필독을 권한다. 아니 강권한다.
추천합니다 2 - 이동원(지구촌 교회 담임목사)
“상처받은 젊은 영혼들을 치유하는 책”
바야흐로 우리는 성 혁명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을 실험할 수 있는 열린 기회는 넘쳐나고 성은 현대의 가장 큰 시장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현대인의 외로움은 깊어만 가고 성의 상처는 우리 삶의 기초를 뒤흔들고 있습니다. 참된 사랑을 만나지 못해서, 참된 가정의 비전을 상실해서입니다.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책들이 넘쳐나고 있지만 그 대부분은 피상적인 충고에 그치고 맙니다. 대부분의 책에서 갖고 있는 기본 전제가 우리의 성을 본래 창조하신 하나님의 관점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갈등은 여전히 미완의 숙제로 남겨져 있습니다.
마취과 의사이자 수퍼 상담가인 박수웅 장로님은, 우리 삶의 최전선에서 상처받은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나는 코스타에서 그가 젊은 영혼들의 상처를 붙들고 밤을 지새우는 모습을 자주 보았습니다. 또 그와 상담을 끝내고 일어서는 젊은 영혼들의 얼굴에 번지는 희망을 목격했습니다. 그는 단순한 상담 이론가가 아니라 상담 실천가입니다. 동시에 젊은이들에게 비전을 던지는 비저너리 스피커입니다. 그의 가슴속에 감추어진 사랑의 이야기는 모두 성경과 삶의 현장에서 확인, 검증된 것들입니다. 그래서 그의 이야기에는 치유의 힘이 있습니다.
여기 실로 오랜만에 데이트에서 결혼까지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을 망라한 실천적 교과서가 탄생했습니다. 동시에 성의 음지에서 상처받은 영혼들을 치유하는 치유서요, 미래를 설계하는 청년들을 따뜻한 미소와 유머로 돕는 성경적 가정의학서가 탄생했습니다. 나는 성을 고민하는 젊은 영혼들에게, 결혼을 앞둔 젊은이들에게, 신혼여행을 떠나는 신혼부부들의 짐 가방 속에, 사랑하는 사람에게조차 열지 못하는 사랑의 기억으로 고통 받는 친구들의 손에 이 한 권의 책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추천합니다 3 - 손경구(임마누엘 휄로십 교회 담임목사)
“여러분, 사랑하세요”
박수웅 장로님은 향기로운 분입니다. 그분에게서는 예수님의 향기가 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셨기 때문입니다. 가끔 하나님은 이 세상에 아주 탁월한 분을 내십니다. 그는 평생을 의사로, 가정사역 전문가로, 성교육을 통해 하나님을 섬겨 오신 분으로 성(性)과 성(聖)의 성경적 원리에 통달하셨습니다. 결국 박 장로님의 전문적인 의학 지식과 경험이 말씀과 성령의 충만함으로 만나서 「우리…사랑할까요?」라는 작품이 탄생한 것입니다.
이 책은 성(聖)스러운 성(性)에 대한 하나님의 선명한 기준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이성을 바르고 가치 있게 즐길 수 있는 성경적인 원리를 보여 줍니다. 간결하고 단아한 글의 이면에는 의학적 전문지식이라는 든든한 기초가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신앙적인 이성교제와 성, 결혼에 대한 탁월한 지침서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책이 이성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모든 여우와 늑대들의 필독서가 되기를 바랍니다. 핑크 빛 환상이 깨지고 이상기류가 흐르기 시작한 부부나 그리스도 안에서 아름다운 가정 이루기를 소망하는 가족 그리고 신앙 안에서 자녀들의 바른 이성교제와 성교육에 대한 지침서를 찾는 부모에게도 추천하고 싶습니다.
시인 롱펠로우는 “바다에는 진주가 있고 하늘에는 별이 있다. 그리고 내 마음, 내 마음에는 사랑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사랑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에 사랑이라는 가장 아름다운 선물을 주셨습니다. 청년여러분, 이 책을 통해 부디 참된 사랑의 가치를 찾으시기 바랍니다.
추천합니다 4 - 전병욱(삼일교회 담임목사)
“그는 전달의 천재다!!”
칼 바르트는 “한손에는 성경을 들고, 한손에는 신문을 들라”고 했다. 즉 성경의 지평과 현실이라는 지평은 연결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나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하고 싶다. “언어를 붙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롬10:17) 그런데도 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많은 젊은이들에게 믿음이 생기지 않는가? 왜 잘 변화되지 않는 것인가? 나는 오랜 기간 그 점이 정말 궁금했다. 청년의 가슴이 장년의 가슴보다 더 강퍅하단 말인가? 아니면 젊은이들에게만 마귀가 더 강력하게 역사하기 때문인가? 모두 다 아니었다. 이유는 “들리지가 않기 때문”이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는데, 그 언어 자체를 듣지 못하기 때문이다.
설교를 잘하는 분들의 설교를 들어보았다. 탁월한 내용이 있기 때문만은 아닌 듯했다. 사실 설교는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것인데, 새로울 것이 뭐 있겠는가!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변화되는 설교는 분명 있다. 그것이 가진 특징은 한마디로 “들리는 설교”라는 점이다. 요컨대 차이점은 “복음의 내용”이 아닌 “복음의 전달”에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잘 전달”하는 것은 “좋은 내용”만큼이나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박수웅 장로님은 “좋은 내용을 지닌 좋은 전달자”다. 젊은이들이 그렇게도 목말라하는 이성교제에 대한 부분을 얼을 빼놓을 정도로 재미있게, 깊이 있게, 폭넓게 소개하고 설명하는 전달의 천재다. 가장 좋은 전달의 도구는 ‘사랑’이라고 했던가! 박수웅 장로님은 젊은이들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 젊은이라고 자처한다. 바로 여기서 그만의 전달력이 나오지 않을까? 실제로 그와 젊은이들은 가슴과 가슴으로 통하고 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가슴이 식어가는 것을 느낀다. 불덩이로 시작했다가 숯덩이로 끝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마저 든다. 박수웅 장로님의 이 책을 읽고 나도 다시 젊음의 가슴으로 불태워지기를 소망한다. 40대의 가슴에 불이 붙는다면, 20대의 가슴은 ‘폭발’을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
나는 아직 청년입니다. 그래서 더욱 청년들 속에서 사는 것이 좋고 감사합니다. 청년들의 고민과 즐거움을 듣고 있으면 그 얘기가 곧 내 얘기인 것만 같습니다. 그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결코 세대 차이를 느껴본 적이 없습니다. 장로의 입장에서 얘기하기보다는 형이나 친구 된 입장에서 얘기할 때가 많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청년들과 지내는 시간이 다른 이들과 지내는 시간보다 훨씬 많습니다. 1년에 9개월 이상 전 세계를 다니며 청년 집회를 인도하면서 수도 없이 많은 청년들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어쩔 때는 1주일 사이에 아메리카에서 아시아로,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건너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나의 여정 때문에 피곤하다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나 스스로가 즐겁기 때문입니다. 감사하기 때문입니다. 이때를 위해, 전 세계에 흩어진 우리 청년들과의 만남을 위해 하나님께서 나를 준비시키시고 이끌어 오셨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한국에 도착해도 바로 그 다음날부터 집회를 엽니다. 그러면 주위에서 걱정합니다.
“장로님, 아직 시차 적응도 안 되셨을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그러면 나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럼요. 몸도 청년인 걸요.”
하나님께서 나에게 건강을 주신 이유도 청년들과 자주, 많이 만나게 하시기 위함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청년들과의 만남을 집회만으로 그칠 수 없었습니다. 집회 중간 중간에 있는 쉬는 시간도 숙소에 돌아와 혼자 보내기가 너무 아까웠습니다. 그때는 청년들과 개인 상담을 가졌습니다. 혼자 숙소에 찾아와 비밀 상담을 요청하는 청년,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와 상담하는 수십 명의 청년들…. 그때마다 동행했던 아내는 함께 상담을 하다가 한쪽 구석에서 웅크려 자기도 하지만, 나는 밤새는 줄 모르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그들의 이야기들이 쏟아질 때에 성령께서 얼마나 세밀하게 터치하시는지…. 어느덧 가슴속에 웅크려 있던 어두운 영들이 떠나고 성령 안에서 새롭게 태어난 청년들의 얼굴빛은 동틀 무렵 떠오르는 햇살처럼 화사해집니다.
청년들에게 상담을 해 주면서 청년들의 가슴속에 가장 많은 열정과 고민과 방황의 요소를 던져 주는 것이 바로 ‘이성교제’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성’ 문제는 청년의 때에 풀어야 할 가장 큰 숙제이자 갈망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발견하면서 나는 하나님께서 인도해 오신 삶의 순간들을 돌아보았습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캠퍼스에서 우연찮게 시작했던 성 상담, 의사로서 가진 생리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한 복음적이고 성경적인 성에 대해 청년들과 나누기 시작했던 일, 결혼 직전의 아들, 며느리를 불러다 놓고 성 강좌를 열었던 일, 데이트하던 젊은 시절, 아름다운 데이트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던 일…. 그 모든 일이 청년들을 더욱 효과적으로 섬기기 위한 하나님의 의도적인 인도하심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순간 청년 시절의 데이트와 성, 사랑의 상처와 극복, 아름다운 결혼에 대한 실제적인 이야기들을 책으로 엮어 더 많은 청년들과 나누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습니다.
배우자 선택과 만남에 대한 문제는 주님을 만나는 일 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문제이기에 청년이라면 누구나 고민하고 기도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청년들에게는 이 문제에 대해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가슴속의 비밀들이 있을 것입니다. 나는 아침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이 책을 읽는 동안 어느덧 그 아픔의 그늘 속에서 벗어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께서 각자의 생에 허락하실 멋진 데이트와 아름다운 성, 행복 가득한 가정을 기대하며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책이 이성교제에 대한 이론서가 아닌, 청년들과 함께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사랑방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청년 한 사람 한 사람과 마주앉아 밤이 새도록 이야기를 주고받는 심정으로 써 내려갔습니다.
이 책이 잘 나올 수 있도록 이번에도 변함없이 수고해 주신 두란노 편집진 여러분들과 코스타에서 동역하는 이동원 목사님, 김동호 목사님, 전병욱 목사님, 만날 때마다 영적인 풍성함을 더해 주시는 손경구 목사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무엇보다 해외 집회 때마다 동행해 주고, 인생의 모든 여정을 아름답게 빛내 준 아내에게 감사와 사랑한다는 말을 전합니다.
-박수웅
데이트… 만남, 그 설렘이란
나는 여자가 좋다(?)
나는 집회를 다닐 때마다 강단에 서서 이런 말을 합니다.
“여러분, 나는 특별히 여자를 좋아합니다. 나는 여자가 참 좋아요.”
그러면 회중이 청년일 경우는 “와~” 하고 좋아하고, 장년일 경우는 멀뚱멀뚱 쳐다봅니다. ‘아니, 어떻게 강단에서 저런 말을 할까?’ 하는 눈빛입니다. 이런 다양한 반응 앞에 나는 웃으며 말합니다.
“내가 여자를 좋아하는 것도 은혭니다. 남자를 좋아했어 봐요. 어떻게 될 뻔 했어요?”
나의 이 한마디에 모두들 웃음을 터트립니다. 비록 우스갯소리지만, 우리가 이성을 좋아하는 것이, 이성에게 관심이 가는 자연스런 현상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모르고 사는 것 같아 던진 말입니다.
이성교제의 부정적인 측면이 부각되면서 교회 안에서는 자신이 건강한 남자, 건강한 여자라는 사실을 숨기며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여자를 좋아하는 남자에게는 ‘플레이보이’라 손가락질하고,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에게는 ‘요부 같다’고 수군거립니다. 그런 형제나 자매가 가진 건강한 모습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이성교제의 아름다운 방향을 지도해 줄 생각은 하지 않고 조신하지 못하다는 측면만을 내세워 손가락질하기에 바쁩니다.
심지어 교회 공동체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곳이라며, 교회 내 교제를 허용하지 않는 교회도 아직 많습니다. 파릇파릇한 젊은이들은 그런 분위기에 적응하느라 교회만 오면 점잖은 중년이 되어 버립니다. 이성교제에 어느 정도 열려 있다는 가정에서조차 한 교회 안에서는 절대 교제 상대를 찾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결혼이 확정되지 않은 이상, 모든 데이트는 헤어질 빌미가 있는 까닭에 서로 사귀고 좋아하고 헤어지는 모든 과정이 공동체에 덕이 안 될 뿐더러, 결국 자신에게도 해로 작용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어른들이 아름다운 이성교제의 방향을 제대로 제시해 주지 못한 데서 오는 결과입니다. 크리스천들의 이성교제를 때에 맞게 지도하고 기도해 주는 것이야말로 부모의 책임인데 일단 무조건 윽박지르고 봅니다.
“얌전히 있다가 좋은 사람 만나 시집이나 가라.”
요즘 세상에 얌전히 있다가 좋은 사람 만나 시집갈 수 있습니까? 벌써 다 놓치고 맙니다. 신실한 형제들 혹은 자매들은 일찌감치 자기 짝 만나서 결혼합니다. 얌전히 있다 보면 어느덧 서른이고, 마흔입니다. 우리 청년들은 이제 적극적으로 배우고 수용해야 합니다. 어떻게 이성에게 접근해야 하는지, 한 공동체에서 만나 사귀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데이트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우자상은 어떻게 정립하는 것인지, 가정을 이루는 것이 무엇인지, 남자로 살아가는 것이, 한 여자로 살아가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 인생의 가장 큰 축복 가운데 하나는 배우자를 만나는 축복입니다. 배우자를 만나 어떤 가정을 이루느냐에 따라 인생이 아름다워지기도, 추해지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적극적으로 가정을 설계해야 하고, 그 설계의 첫 작업인 이성과의 만남을 매우 가치 있게 보아야 합니다. 교회 어른들 역시 이를 위한 세밀한 기도와 지도를 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청년 여러분, 이성과의 만남이야말로 축복된 인생으로 가는 통로임을 잊지 마십시오.
이성을 잘 사귀는 사람?
일 년에도 수십 차례 세계 각처로 집회를 다니는 나는 청년들과 별의별 상담을 다 해 봤습니다. 대부분은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은 내용들인데, 이성교제를 하면서 겪는 그 복잡 미묘한 일들이 많은 청년들을 축복 혹은 실족으로 이끌고 있음을 알게 되는 시간입니다. 그때마다 나는 그들과 함께 울고 기도하면서 성령께서 지도하시는 미세한 음성을 듣습니다.
한번은 이런 상담을 한 적이 있습니다.
“장로님, 저는요 좋아하는 여자도 있었고, 사귀고 싶은 여자도 있었는데 도대체가 연결이 되질 않습니다. 제가 매력이 없는 건지, 아님 아직도 때가 안 된 건지, 뭐가 있어야 가정을 설계하든지 말든지 할 텐데, 저는 정식으로 데이트란 걸 별로 못 해 봤습니다. 어떻게 여자에게 접근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고요.”
어떤 자매는 이런 말도 남겼습니다.
“남자들이 제게 다가오질 않아요. 그렇다고 제가 먼저 다가갈 수도 없고. 어떤 친구는 자기를 좋아하는 남자가 너무 많아서 탈이라는데, 저는 너무 없어서 탈이에요.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까요?”
또 한 청년은 이렇게 상담해 왔습니다.
“이상해요. 저는 데이트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본 적이 없어요. 몇 번 만나다 보면 꼭 문제가 생겨 싸워요. 그래서 난 여자랑 잘 안 맞나 보다, 이런 생각이 들고요. 평생 혼자 살아야 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해요.”
청년들의 이런 고민을 들을 때마다 나는 대략 두 가지로 답을 찾아봅니다.
원하는 이성과 데이트를 시도하고 싶지만 잘 되지 않는 경우의 첫째 원인은 ‘자기 자신’입니다. 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자신의 매력을 어필할 줄 모르는 것입니다. 매력 없는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각각의 독특한 매력이 우리 모두에게 흘러 넘칩니다. 장미꽃의 화려함만이 매력이 아닙니다. 들국화의 소박함을 좋아하는 사람은 장미보다 백합보다 들국화를 더 사랑합니다. 소나무의 청정함만이 돋보이는 자연이 아닙니다. 가을에 가장 화려하게 물들었다가 색이 지는 단풍나무만을 지독하게 좋아하는 사람도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 사람은 정원에 꼭 단풍나무만을 심습니다. 키 작은 나무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키 큰 대나무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필요하기 때문에, 각각의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에 이 세상에 존재합니다.
우리 모두에게도 이런 각양각색의 매력이 있습니다. 문제는 각자에게 있는 그 아름다운 모습을 자신 있게 표출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상처 때문에 그렇습니다. 수많은 상처로 인해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숨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상처로 인해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사람인지를 알지 못하고, 자신감도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데이트, 성, 결혼, 인생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상처를 바라보고 그 상처를 어떻게 극복하여 사람들 앞에 나설 것인가부터 말하려 합니다.
상처로 얼룩진 영혼
사람은 수많은 상처를 안고 살아갑니다. 상처는 잘만 극복하면 성장과 성숙에 좋은 약이 되지만, 영혼 속에 그대로 품고 있으면 자신을 파괴하는 독소가 됩니다. 그 독은 결국 자신을 망치고 타인도 망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즉 하나님께서 만드신 아름다운 형상을 파괴하고 가면을 쓴 자아의 모습으로 나타나 인간관계마저 파괴합니다.
그렇다면 자아와 인간관계의 파괴를 가져오는 심각한 상처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1. 어머니 왜 나를 버리셨나요?
거절감을 안고 살아가는 영혼은 늘 괴롭습니다. 이 거절감은 본래 우리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갖는 감정이기도 합니다. 인간이 어떻게 태어납니까? 죄인으로 태어납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이 하나님께 죄를 짓고 에덴에서 추방당했기 때문입니다. 아담이 하나님 아버지께 거절당했기 때문입니다. 그 아담의 씨로 태어난 우리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이런 거절감을 안고 태어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버림받았던 상흔을 안고 태어나는 것입니다.
또한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 모태로부터의 분리를 경험합니다. 가차 없이 탯줄을 잘림으로 어머니에게서 분리되는 일을 겪어야 합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빨리 젖을 줘 아이의 상처를 어루만져 줘야 합니다. 그러면 아이는 잠시 상처를 받았지만 어머니의 젖을 통해 회복의 역사를 경험합니다. 안정된 심령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은 어떻습니까? 거의 모든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아기수용소 같은 신생아실에 안치되는 세상입니다. 아기들은 “어머니, 왜 나를 버리셨나요?”라는 절규와 함께 간호사가 주는 분유병만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거기다가 동생이 태어나면 또 한 번의 거절감을 느껴야 합니다. 동생이 남자일 경우 첫째 여아가 받는 거절감은 더욱 심합니다.
이런 거절감은 시간이 흐르면서 우울증으로 변합니다. 한국 여성들에게 우울증이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뿌리 깊은 남아선호사상 때문에 여성들이 영아기부터 심한 거절감을 겪고, 그로 인해 우울증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오빠나 남동생을 편애하는 가정에서 자란 여성일수록 이런 우울증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울질의 경향을 지닌 모세가 이 경우에 속한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우울질이 곧 우울증과 연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모세는 어려서부터 심한 거절감을 겪은 사람이라는 점에서 거절감의 상처를 지닌 대표적인 사람으로 볼 수 있습니다.
거절감을 극복하지 못한 경우, 대부분의 인간관계는 나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성교제의 경우는 더욱 그렇습니다. 누군가와 자신 있게 만나지 못합니다. 거절당할 것에 대한 두려움, 깊은 우울증 등으로 자칫 자폐적인 사람이 되기 쉽습니다. 밝음, 명랑함, 따뜻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 되기 쉽습니다.
2. 누구든 건드리기만 해 봐!
분노감은 권위로부터 부적절한 대우를 반복적으로 받았을 때 발생합니다. 자신은 크게 잘못한 일이 없는데 아버지에게 계속 야단을 맞은 일과 같은 억울한 일을 겪을 때 나타나는 감정입니다. 학창 시절, 최선을 다해 노력했지만 1등을 하지 못했을 때 부모의 비난을 받는다면 바로 이 분노의 감정에 휩싸입니다. 또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말처럼, 결손가정에서 자라며 부모의 화풀이 대상이 될 때 분노감이 누적됩니다.
분노감에 휩싸인 영혼은 언제나 불안합니다. 조금만 건드려도 터질 듯합니다. 때문에 아무도 이런 사람을 가까이하려 하지 않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가인이나 요나 같은 사람입니다. 잘못하면 분노를 폭발적으로 표출하기 때문에 굉장한 위험성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조그만 일에도 쉽게 상처를 받고 예민하게 반응합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상처를 인정하지 않는 모습 때문에 자만심이 높은 사람처럼 보입니다. 괴변이나 언어폭력도 심한 편입니다. 그런데 이 감정에서 비롯된 우월 의식이야말로 인간관계를 파괴합니다. 이성 간에는 이런 모습이 간혹 매력적으로 보일 때도 있지만 곧 신뢰가 깨짐으로써 사귐 자체를 어렵게 만듭니다. 늘 분노할 준비가 되어 있는 까닭에 결혼한 후에도 툭하면 부부싸움을 합니다. 반드시 주님 안에서 해결 받아야 하는 감정입니다.
3. 사랑받을 수만 있다면…
흔히 말하는 ‘애정결핍증’으로, 어려서 부모한테 사랑 받지 못한 자녀나 고아, 결손가정의 자녀에게 많이 나타나는 증상입니다. 이런 사람은 언제나 외톨이로 자랐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사랑을 흡족히 받은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성경에서는 야곱의 경우입니다. 야곱의 아버지는 에서만 사랑했습니다. 물론 야곱은 어머니의 사랑을 받았지만 남자로서 아버지의 사랑도 필요로 했습니다. 어려서 받는 아버지나 어머니의 사랑은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랑을 골고루 받은 사람의 정서는 안정감 있게 자라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편애는 보이지 않게 자식을 죽이는 독약과도 같습니다. 야곱은 술수를 써서라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사람으로 성장합니다. 아버지의 사랑과 축복을 얻어내기 위해 팥죽으로 형의 장자권을 사고, 손에 양가죽을 붙이는 속임수도 감행합니다. 이뿐입니까? 자신이 사랑하는 라헬을 얻기 위해 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을 하루처럼 보내기도 합니다. 야곱은 굉장한 집착을 지닌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애정결핍증을 지닌 사람은 자신에게 사랑을 주는 사람에게 모든 것을 다 주려고 합니다. 모든 것을 다 가진 부잣집 딸이 조직폭력배에게 빠져 집을 나가 버리는 경우도 이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설사 조직폭력배라 할지라도 만족스러울 만큼의 사랑을 주는 사람을 포기하는 법이 없습니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사랑을 그 사람에게서 받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버리고서라도 그 사랑을 지키려 합니다. 사랑을 주는 그 남자에게 몸도 마음도 다 바칩니다.
이단에 잘 빠지는 사람 중에도 애정결핍증을 지닌 사람이 많습니다. 언젠가 모 교수님께서 하신 간증으로 이런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분은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한 탓에 늘 마음 한구석에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단 집단을 한 번 접하고, 그들의 선의와 친절에 그만 마음을 다 뺏겨 버렸다고 합니다. 애정결핍증은 이렇게 심각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각종 중독증에 잘 걸리는 사람들도 대부분 애정결핍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허전한 마음을 마약, 섹스, 노름, 술로 채우려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은 이성교제를 할 때도 스토커와 같은 수준의 집착을 보이거나 쉽사리 위험한 사랑에 빠져 듭니다. 이성교제가 잘 될 때는 모든 것에 지나치게 긍정적이었다가 이성교제가 안 될 때는 지나치게 비관적입니다. 이성에 대한 집착이 보통 사람보다 더 강합니다. 상대방을 구속하려 하거나 너무도 헌신적이어서 부담감을 안겨 줍니다. 결혼 후에는 의부증, 의처증을 보일 확률도 높습니다.
4.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까?
두려움의 감정에 휩싸인 사람들은 어려서 부모의 싸우는 모습을 많이 보고 자랐을 확률이 큽니다. 늘 싸움만을 보고 자란 아이는 내면에 두려운 마음이 가득합니다. 두려움이 그 자신을 지배하다 보니 모든 인간관계가 좋을 리 없습니다. 두려움은 분노감보다도 한 단계 더한 상처라 볼 수 있습니다. 분노를 느낄 힘도 없는 것이 두려움의 감정이기 때문입니다. 그저 무섭고 두려워서 문제를 헤쳐 나갈 엄두도 못 냅니다. 이런 사람은 문제를 만나면 멈추거나 도망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가 생겼다는 것은 곧 세상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매사에 지나치게 눈치를 살피고 자신을 나타낼 줄 모릅니다.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까?’ 이것이 두려움의 감정에 휩싸인 사람이 지닌 삶의 명제입니다. 일단은 살아남아야만 분노도 느낄 수 있기에, 이 모습이야말로 스스로의 존귀함을 잃어버린 자아입니다.
이런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데이트에서도 무조건 상대방에게 맞추려고만 합니다. 상대방의 기분과 감정 상태, 분위기, 상황에 무조건 맞추려고 하다 보니 정작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합니다. 혹 관계가 깨어질까, 상대방의 기분이 상할까를 염려하면서 인간관계를 이어 갑니다. 모든 인간관계가 짐으로 느껴집니다.
5. 지 까짓 게 뭔데!
“네 형 좀 봐라. 얼마나 똑똑하고 야무지니?”
“네 동생 좀 봐라. 저렇게만 해 봐라. 내가 잔소리하겠니?”
“너는 왜 그렇게 눈이 단추 구멍만 하냐?”
“너는 참 옷 입는 감각도 없다. 어디서 이런 못난이가 태어났을까?”
어려서부터 여러 종류의 비교를 당하며 자란 아이들은 열등감에 시달립니다. 많은 한국인들이 열등감을 지닌 채 살아가는 것과 한국의 사교육 바람이 어느 나라보다 거센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식에게만은 비싼 명품 옷을 입히고, 피아노, 영어 등을 가르치고, 일류대학에 진학시키려는 것들이 따지고 보면 부모의 열등감에서 비롯된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언제나 현실에 있는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상상 속에서 이상형의 자아를 만들어 놓은 채 거기에 못 미치는 자신의 모습 때문에 고통스러워합니다. 늘 자신은 부족하고 바보스럽다고 생각합니다.
사울 왕이 이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키도 크고 얼굴도 준수했습니다. 많은 이들의 사랑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의 인생을 바꿔 놓는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다윗의 출현입니다. 다윗의 출현으로 사울의 생애는 망가지기 시작합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돌아올 때에 백성들은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다”는 말로 다윗의 공로를 치하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사울은 심한 열등감에 다윗을 죽이려는 음모를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다윗 때문에 뭉개진 자신의 자존심이 다윗만 없어지면 회복되리라 생각했습니다. 만약 이때 사울에게 열등감이 없었다면 역사는 어떻게 흘러갔을까요?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다”는 백성들의 아우성에 사울이 왕다운 배포를 보여 주며 다윗을 세워 주고 높여 주었다면 사울의 자존심이 더 망가졌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백성들은 그런 사울을 더 존경했을 테고, 다윗 또한 목숨을 바치는 충성을 드렸을 것입니다.
열등감은 사람을 공격적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상대방을 높여 주고 칭찬해 주는 아량을 보일 줄 모릅니다. 남을 깎아 내림으로써 자신이 높아지려는 우월감을 나타냅니다.
“쟤는 저것밖에 못 해. 나 같으면 저렇게 안 산다.”
열등감에 사로잡힌 사람은 마치 시계추 같아서 열등감 쪽으로 갔다가 우월감 쪽으로 가는 삶의 반복을 나타냅니다. 때로는 비열하고 비참한 심정에 젖었다가 때로는 우월감에 젖어 지냅니다. 사울도 다윗에 대한 자신의 열등감을 “다윗, 지 까짓 게 뭔데!”라는 우월감으로 표출시켰습니다. 이런 마음 상태는 자신을 매우 힘들게 할 뿐만 아니라 감정의 굴곡이 심하기 때문에 타인에게도 편안한 상대가 되어 주지 못합니다.
이런 우월감과 열등감의 반복적인 순환은 이성과의 만남도 축복이 아닌 저주로 이끕니다. 이성이 하는 행동이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열등감이라는 틀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오해를 하거나 사기에 바쁩니다.
6. 하나님도 이것만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죄책감은 자아가 강한 사람들이 많이 갖고 있는 상처입니다. 자아가 강하다 보니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로 받아들일 줄 모릅니다. 모든 것을 자기 식으로 판단합니다. ‘이것만은 하나님께서도 용서하시지 않을 것이다. 말이 은혜지, 이런 일까지도 은혜로 용서해 주실 리가 없어’라고 스스로 판단, 그 판단만을 굳건하게 믿습니다. ‘나 같은 사람은 차라리 교회에 안 나가는 게 오히려 양심적인 일이야. 이렇게 살면서 어떻게 예배당에 가서 버젓이 앉아 있을 수가 있어’ 심지어 이렇게까지 결론을 내립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탄의 참소에 넘어가는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용서를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늘 죄책감에 시달리는 것입니다.
굉장히 양심적인 태도 같지만 사실은 이것이야말로 가장 교만한 태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용서하시는데, 내가 나를 용서하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