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혜 원
대학에서 국어국문학과 심리학을 전공했다. 어릴 때부터 글 쓰고 그림 그리는 일을 제일 좋아했다. 자유와 충동과 여행을 사랑하는 예술가로 살고 싶었다. 학교를 다니면서 틈틈이 글 쓰는 일로, 누군가의 글을 지도하는 일로 돈을 벌면서 경제적 자립을 일찍 이뤘다.
대학 졸업 후엔 자연스럽게 방송 작가가 되었고 방송국으로 출퇴근했다. 밤낮없이 일했지만 자신이 제일 잘할 수 있고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번다는 일은 꽤 짜릿한 일이었다.
MBC 〈생생정보통〉, 〈의학다큐 닥터스〉, SBS 〈다큐 스페셜〉 등 교양 프로그램 만드는 팀에서 일했다. 그 후 EBS에서 수능 생방송 등의 프로그램을 함께 만들었다.
결혼 후에도 그녀는 글 쓰는 일을 멈출 수 없었다. 밤이 되고 자신만의 시간이 생기게 되면 네이버 블로그, 브런치 등에 글을 쓰고 연재했다.
이 책은 전업주부로 산 지 10년째 되던 어느 날, 알 수 없이 헛헛한 마음이 들던 어느 날, 브런치에 쓰기 시작했던 글을 바탕으로 완성해나간 그녀의 첫 번째 책이다. 엄마로, 아내로 살아온 지난 시간들을 재료로 삼아 어쩌면 자신과 같은 마음일지도 모를 그녀들에게 손을 내밀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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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나는 누구인가?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별일 없이 오늘을 사는 평범한 아줌마다.
결혼 10년 차, 직업은 전업주부, 가족은 평범한 남편과 두 명의 아이.
맛있는 음식 잘 사 먹고 운동도 하고 취미생활도 하고 주말엔 가족끼리 캠핑도 다닌다. 살림하고 아이들 키우면서 재미있게 살고 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나에게는 인스타그램 속 몇 장의 사진으로는 담을 수 없는 우울과 분노가 있다.
“아유, 여자는 사모님처럼 남편 그늘 아래에서 예쁘게 꾸미면서 사는 게 최고예요.”
나를 사모님이라고 부르던 인테리어 디자이너는 내게 견적서를 내어주며 그렇게 말했다. 그 스쳐가는 말에 나는 왜 얼굴이 뜨거워지는 수치심을 느꼈는지 모르겠다. 나는 ‘남편의 그늘 아래’가 아니라 내 가사노동 아래에서, ‘예쁘게’가 아니라 열심히 오늘을 살고 있는데 말이다.
나처럼 사는 게 최고라던 그녀의 SNS를 찾아보았다. 주말에도 밤에도 일한다는 디자이너의 일상은 피곤한 것 같기도 하고 즐거운 것 같기도 했다. 나는 불 꺼진 밤 잠든 아이 옆에 누워 좋아요도 누르지 않고 그 화려한 사진들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지금 나는 부러운가? 우울한가? 무슨 감정인지 정확히 짚어낼 수 없었다. 행복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불행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또 어떤 이는 말했다.
“네가 왜 힘이 들어. 남편이 바람을 피우니, 때리기를 하니, 애들이 아프거나 네 속을 썩이니, 돈 걱정에 쫓기기를 하니…. 너 그거 솔직히 배부른 소리같이 들려, 남들이 들으면 욕해.”
그럴까. 남편이 바람을 피우지도, 때리지도, 애들이 유난히 속을 썩이지도, 돈 걱정에 쫓겨 다니지도 않는 나는 우울하면 안 되는 걸까. 이게 남들에게 욕먹을 생각일까. 내가 인테리어 디자이너의 SNS를 한참 동안 들여다본 것처럼 누군가는 나를 정말로 부러워할지도 모르고 심지어 질투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구의 삶이든 한 꺼풀만 벗겨보면 다들 보이는 것 이상으로 이상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지금 내가 느끼는 불편한 느낌을 그냥 모른 척 흘려보내고 싶기도 하다.
다들 그렇게 산다.
지금 이 우울도 다 지나갈 것이다. 첫째 출산의 고통을 까맣게 잊고 또 둘째를 낳았던 나처럼 인간은 생존을 위해 망각하도록 태어났다. 지금의 이 감정도 지나고 나면 그래도 그때가 좋았던 걸로 잊히고 말 것이다.
어차피 인간은 우주의 먼지 같은 존재인데 일희일비해서 무엇 하나? 다 소용도 없고 의미도 없다. 그냥 주어진 것에 만족하면서 사는 거지. 그럼에도 나는 시절의 일희일비를 기록했다. 망각하기 위해서 적었고 잊을 것을 알기 때문에 남겨두었다. 지금은 괴로워도 시간이 지나면 “다 그런 거야, 사람은 아래를 보고 사는 게 행복한 거야, 다 지나가는 일이야”같이 좀 별로인 말을 꽤나 진심으로 말하는 사람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 모든 괴로움이 아무것도 아니기를 바라며 증발시킬 뻔한 마음을 굳이 내어놓는다. 이유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대답할 말이 있다.
이 글이 부디 가닿기를 바라는 한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가족과 가정의 안온한 생활을 유지하는 아내이자 엄마이고 주부인 사람. 집 안에서 그 많은 일을 하면서도 정작 자기 자리는 어디인지 모르는 사람. 알려는 마음조차 욕심인 것 같아 미안하고 부끄러워서 모른 척하려 애써온 사람. 그 사람 편을 들기로 했다. 자기 인생인데 욕심을 좀 부리면 어떠냐고, 아니 그게 어떻게 욕심일 수 있냐고, 너무 당연한 일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래서 밤마다 깨어 있었다. 그리고 글을 썼다.
당신 편을 들어주는 마음으로, 나의 이야기를 시작해보려고 한다.
10년, 전업주부가 된 지 딱 10년 차다. 10년이면 약 8만 7천 6백 시간. 심리학책에선 한 가지 일을 1만 시간 동안 하면 전문가가 되고 성공한다고 했다. 정말 그런가? 하긴, 어디 가서 주부라고 말하기에 부끄럽지 않게 집안일 하는 손이 빨라지긴 했다. 그렇지만 나에게 대입해보자면 10년이란, 성공하기 좋은 기간이 아니라 지치고 나가떨어지기 딱 좋은 기간이 아닌가 싶다.
큰아이가 열 살이 되던 해이자 결혼 10년 차에 들어서던 해인 2021년, 나에게는 주부생활 10년 치의 권태기가 한꺼번에 찾아왔다. 전업주부로 사는 내 인생이 한없이 초라해 보이고, 헛살았다와 의미 없다로 요약되는 마음의 병이 들었다. 그리고 그 핵심에 남편과의 불화가 있었다. 당시에는 마치 내 삶의 문제들이 다 남편 탓인 듯 사사건건 모든 게 싸움의 불씨가 되었다. 부부끼리는 대화가 중요하다는데 대화를 하면 할수록 벽을 보고 선 것처럼 가슴이 답답했다.
현실에서도 꿈에서도 나는 자주 울었다. 몇 번이나 “나 이렇게 못 살겠다”는 내 잠꼬대에 놀라 깨어나곤 했다. 이건 아닌데, 그럼 대체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머릿속도 시야도 안개 속처럼 흐릿했다. 이런 상태를 뭐라고 하지? 화병? 우울증? 코로나 블루? 권태기?
남편은 마치 갑자기 지뢰를 밟은 사람처럼 놀랐다. 어디서 소통 못한다는 소리는 못 들어봤다는데 동거인으로부터 ‘우리는 지난 10년간 전혀 소통이 되지 않았다’는 통보를 받았으니 놀랄 만도 했다. 그는 내가 잘 지내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자기처럼 행복한 줄 알았다고 했다. 우리는 꽤 잉꼬부부였고 10년 동안 큰 싸움을 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올해 들어서는 밤새 말다툼을 하고 며칠이나 냉랭하게 지내곤 했다. 언젠가부터 나는 거의 매일 화가 나 있었는데, 화를 차근차근 모아서 빵 터뜨리곤 했다.
싸움의 주제는 보통 감정적인 케어에 대한 요구였다. 이는 우리가 다투는 거의 유일한 주제였다. 어쩌면 우리는 이것만을 가지고 평생 싸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10년이나 같이 살아놓고 이제 와서 어떻게 이런 걸로 싸울 수 있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글쎄, 나도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우리는 감정과 케어, 이 둘에 대한 생각과 태도가 너무나 달라 평행선이 좁혀지지 않았다.
많은 남녀가 그렇겠지만 우리 부부 역시 감정과 케어의 적정선이 달랐다. 예컨대 손가락을 다쳤다면 남편은 “괜찮아?” “병원 갈까?” 정도면 감정을 받기에도 주기에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그 정도면 서운했다. 내게 달려와서 등을 쓸어주고 다친 곳을 살펴주고 심지어 아픈 손가락을 대신해줄 것처럼 살갑게 굴었으면 했다. 내가 그에게 그렇게 하듯이. 하지만 그런 바람은 단 한 번도 이루어진 적이 없다.
남편은 남이나 아내에게나 늘 ‘공평’한 사람이고 나는 부부끼리의 ‘특별대우’를 바란다. 내가 바라는 폭이 더 넓어서인지 서운한 건 늘 나, 서운함을 빌미로 싸움을 거는 것도 나이다. 나 좀 봐줘, 나한테 다정한 말 좀 해줘, 나 좀 돌봐줘…. 밖에서 본다면 나는 달라고 조르고 남편은 주지 않으려 버티는 형상일 것이다. 나 혼자 짝사랑하다 보쌈해서 결혼한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인색하게 구는지, 치사하기가 이를 데 없다. 처음에는 조금 얄미웠는데 시간이 쌓이면서 감정이 점차 원망으로 불어났다.
안다, 사람이 사는 데 심각하고 중요한 일이 얼마나 많은데 그까짓 감정 케어 좀 안 받으면 어때서? 하지만, 그까짓 감정 케어 좀 해주면 안 되나? 이러는 내가 응석받이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믿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연애시절엔 나도 질척거리는 걸 질색하는 사람이었다! 그랬던 내가 남편과의 관계에서 언젠가부터 더 많이 바라는 사람이 되어갔다. 내가 원하는 만큼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어서 아주 안달이 났다. 처음에는 그저 남편에게 어리광을 부린 것이었는데 남편이 절대 받아주지 않자 점점 더 어린애처럼 조르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감정을 두고 다툴 때마다 우리는 서로의 다른 점을 직시했다. 애초에 나는 유난히 감정적이고 그는 유난히 이성적임을 모르지 않았다. 그게 서로에게 매력이었는데 이제는 매력이 아니라 부담이 되는 것 같았다.
줄다리기가 계속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양보하면 나 자신을 통째로 부정당하는 거란 착각이 들었다. 어느새 나는 사랑과 관심을 얻어내기 위한 투사가 되었다. 아니면 떼인 돈 받으러 온 빚쟁이거나. 남편은 무엇을 위해 나와 그렇게 싸웠을까? 그렇게… 감정 케어 문제는 나의 일생일대의 문제가 되었고, 여자로서 또 아내로서의 자존심을 건 문제가 되고 말았다.
결혼하기 전에 남자친구(현 남편)의 친구들을 만났다. 누군가 ‘그가 어디가 좋으냐’고 물었을 때 나는 이렇게 말했다.
“빈말 안 해서 좋아요. 오빠가 하는 말은 다 진짜거든요.”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더랬다.
“맞아.○○가 빈말은 진-짜 못하지….”
그때 나는 남편의 그런 점이 정말 좋았다.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는 사람들을 아주 싫어했으니까. 10년 후에 내가 빈말에 얼마나 굶주리게 될지 모르고서….
남편은 누가 봐도 꼿꼿하고 올곧은 에프엠(FM)이다. 살아 있는 도덕책이고, 희대의 매너남이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이성적으로 행동하며 그러므로 또는 그러기 위해서 틀린 말은 절대 하지 않고 선을 넘는 말도, 말실수도 하지 않는다. 아아! 왜 사람은 자신에게 없는 것을 원하고 또 탐하는 것일까. 나는 그에게서 신뢰와 안정감을 채웠고 늘 그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기 때문에 그의 곁에 있고 싶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사는 동안 나는 그의 몫까지 더 열렬하게 감정적으로 굴었다. 그리하여 틀린 말과 선을 넘는 말, 실수로 튀어나오는 말에 파묻혀서 살았다. 감정을 발산하는 나, 감정을 억누르는 그, 더 괴로운 건 어느 쪽일까? 막상막하일까?
우리는 감정 케어 문제를 두고 싸웠다고 적었는데,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다. 시작은 언제나 늘, 말 한마디였다. 내가 바라는 말과 남편이 하는, 할 수 있는 말의 간극이 너무나 크다는 것을 점점 깨달아가고 있었다.
그날은 아이들의 잘 시간이 훌쩍 지나서 평소보다 바쁜 저녁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큰아이를 씻겨 내보내고 둘째 씻길 준비를 하면서 큰아이 머리를 좀 말려달라고 그에게 부탁했다. 그랬더니 남편은 “나 화장실 갈 거야”라고 말하고 화장실로 쏙 들어가버렸다.
“아… 진짜. 무슨 화장실을 꼭 할 일 있을 때마다 가냐?”라는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나중에 들으니 나의 미간은 잔뜩 구겨져 있고 말에는 감정이 실려 있었다고 한다. 그럴 만도 했다. 나는 남편과는 다르게 말 한마디에도 과거와 미래를 실을 수 있는 능력이 있으니까. 내 한마디 말에는 너는 과거에도 그랬고 미래에도 그럴 것이라는 서운함과 암담함이 스며들어 있었다. 현재만을 사는 남편이 그 행간을 어찌 읽으리오?
내가 바라는 것은 단 한 가지였다. 과거에는 잘못했고 미래에는 잘하리라는 말. 나도 알고 너도 알고 하늘도 아는 5천만의 빈말…. 그 말을 예상하고 또 바랐다. 하지만 남편이란 존재는 쉽게 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도 머리로 생각이라는 것을 하고, 자기만의 삶을 꾸려나가는 방식이라는 게 있는 거겠지….
“그렇다고 그렇게 짜증을 내는 건 잘못이다. 과민성 대장증후군이 죄는 아니지 않냐!”
물론 태초부터 인간의 장기는 죄가 없다. 장기를 품은 인간이 잘못이지. 그리고 중요한 건 화장실을 가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머리를 말려주느냐 마느냐 아닌가…. 못하는 상황이라면 미안하다고 말해야 하는 거고.
“(의아) 왜 사과를 하냐? 1도 미안하지 않다. 생리현상은 미안한 일이 아니다.”
미안해해야지. 애초에 육아에 책임이 없다고 생각하니까 내게 안 미안한 거다. 내가 회사 동료이고 그가 생리현상으로 회의에 참석하지 못한 상황이라도 이렇게 당당했을까?
“당연하다. 동료라면 화내지 않고 이해해준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은 누구에게나 올 수 있으니 서로 이해해야 한다.”
이 지점에서 이미 나에겐 감정의 쓰나미가 덮쳐온다. 애초에 이렇게 말을 주고받을 여유도 없었다. 애들 씻기고 재우기도 바쁜데 어른은 둘이지만 애들 챙기는 건 언제나 나, 한 명이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독박육아가 힘들고 서운하고 화가 난다고 한마디 한 걸 가지고, 남편은 기어이 이 상황을 생리현상을 핍박하는 한 인간과 그것을 지키려는 한 인간의 구도로 우습게 만들고 만다. 그래서 더 화가 난다.
이 상황에서 무엇이 나를 위로할 수 있을까? 이런 나를 이해받고 싶은 건 욕심일까.
아… 그냥 미안하다는 말만 듣고 끝내고 싶다.
지금 화가 나서 얼굴이 빨개진 건 나뿐이다. 그 사실을 깨닫고 깊은 수치심을 느낀다. 이제 됐으니 그냥 미안하다고 말 좀 해달라고, 그럼 나는 더 잔소리하지 않을 거고, 하던 일을 마저 할 거라고, 체념에 가까운 부탁을 그에게 했다. 그러자 그가 태연하게 잽을 날렸다.
“…진심이 아닌데 괜찮겠어?”
그는 나에게 교훈을 주려고 한다. 부탁할 때나 감정을 보듬어달라고 할 때는 예의를 지켜야 한다고. 그렇게 공격적으로 짜증만 내서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아이들한테도 우리가 그렇게 가르치고 있지 않느냐고.
“내가 예의를 지켜 말하면?? 똥 안 싸고 머리 말려줄 거야? 아니잖아!! 어차피 안 되는 상황인 거 알면서도 그냥 나는 투정을 부리는 거야. 넌 그냥 미안해라고 말하면 된다고!! 답정너야!!”
라고 소리치는 나에게 그는 침착하게 말했다.
“그럴 수가 없다니까?”
이것이 너무나 전형적인 우리 대화의 패턴이다. 그의 말은 객관적으로나 논리적으로나 틀린 점이 없다. 생리현상이니까 이해해해야지. 좋게 말해야지. 알지, 알아. 아마도 이렇게?
“여보, 당신은 내가 당신의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화장실을 가네요. 호호, 다음에는 아이들 씻기는 것 꼭 도와주세요.^^”
이렇게 애교 있게? 돌려서? 내가 왜 이해받으려고 사정사정해야 해? 감정 거지야? 그래봤자 사과는 안 할 거면서. 그래서 차라리 입을 닫게 되었다.
이것이 내가 그에게 느끼는 10년 묵은 감정 케어의 문제이다. 눈치챘겠지만 사실은 감정 케어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 존재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왜 나는 이렇게 감정을 느끼는가. 왜 이렇게 화가 나는가. 어떻게 그는 이런 나를 봐도 평온할 수 있는가. 분통은 터지는데 말문이 막힌다. 그뿐이 아니다. 감정은 왜 늘 이성보다 열등하게 느껴지는가. 아… 내가 또 미숙했네. 본전도 못 찾았네. 나는 진짜 왜 이렇게 감정 조절을 못할까… 밀려오는 자책의 쓰리 콤보.
맹세하건대 나는 그저 “어 미안, 혼자서 다 하느라 힘들지? 얼른 나올게”라는 말을 듣고 싶었을 뿐이다. 이렇게 울고불고하며 감정의 밑장을 보이고 싶었던 게 아니라. 하지만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다. 이제 나는 더 듣고 싶지 않은데 그는 계속 말을 한다. 교훈을 주려는 말, 중요한 순간이 지나간 이후의 말, 그는 설명이라고 하고 나는 변명이라고 하는 말들이 이어진다. 사건을 복기하고 사실 관계를 가리자고 하는 그의 말들이 도대체 나에게 무슨 쓸모가 있을까? 어차피 반복될 것을. 가끔 우리에겐 빈말이 더 쓸모 있을 것이란 나의 생각이, 너무 과장된 걸까?
이제 나는 오열한다. 그냥 좀 (닥치고) 힘들겠다 공감하고, 미안하다 사과하라고 울부짖는다. 바라는 게 이렇게나 명확하고 간단한데, 이렇게 쉬운 행복을 왜 주지 않으려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고 목메어 운다. 남편은 그런 나를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행복은 외부에서 채워지는 게 아니야. 남의 인정과 사랑이 없다고 해서 불행해져서는 안 돼. 이건 다 자존감 문제야. 자기는 일단 낮은 자존감을 회복해야 해.”
나는 이쯤에서 뚜껑이 뽕 열리고 용암이 흘러내린다. 눈과 코로 뜨거운 용암을 철철 흘린다. 역시 당신과는 대화가 안 된다, 나 정말 속이 터질 것 같다고 외치면 그가 마지막으로 말한다.
“자기는 무슨 스님 좋다며, 책도 보고 강연도 보던데 거기에 나오는 말 아니야? 자기계발서랑 심리서도 많이 보잖아. 거기서 하는 말은 그렇게 귀담아들으면서 내가 하는 말은 왜 그렇게 질색해?”
나는 종교가 없지만 이 순간만큼은 간절히 기도한다. 신이시여, 저 입에 음소거 버튼을 눌러주소서. 엉엉 우는 나를 보는 남편의 표정이 복잡하다. 한심해하는 것도 같고 걱정을 하는 것도 같다. 하지만 그는 결코 내가 바라는 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미안해, 내가 무조건 미안해, 울지마”라며 날 달래주기를 바라는 건 나의 상상일 뿐이다. 그는 다만 내가 진정하고 다시 말을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린다. 이런 시베리아 사막을 건조기에 돌린 남자 같으니라고.
남편과의 말다툼은 마치 체급 차이가 많이 나는 상대와의 권투 스파링 같다. 늘 패배가 예정된 싸움, 나만 바닥이 다 보이는 싸움. 하지만 다른 대안을 몰라서 멈출 수도 없는 싸움.
요즘은 어디에서나 자존감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스스로를 사랑하라. 인정하라. 자존감을 높여라. 자존감은 만병통치약인지, 심리적인 어려움을 이야기하다 보면 기승전 자존감으로 귀결된다. 모든 문제의 핵심이 자존감, 모든 궁극적인 해결책도 자존감. 자존감을 키우라는 요구가 범람한다.
전업주부로 살면서 보통은 행복했지만 미루어둔 숙제처럼 수시로 불안이 찾아왔다. 이 선택이 맞았을까? 뭔가 놓치고 있는 게 아닐까? 내 인생은 이대로 괜찮은 걸까? 그때마다 나는 만족을 모르는 나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일상이 평온한데 괜찮지 않을 게 뭐 있어? 내가 현재를 즐기지 못하고 있는 거겠지. 그러면서 생각했다. ‘나 자존감이 낮은가 봐….’
내가 감정적인 케어를 요구할 때 남편 역시 그렇게 단언했다. 자존감이 높으면 그런 건 필요하지 않다고, 외부로부터 욕구를 채우려 하지 말고 내부에서 자존감을 높이는 연습을 하라고. 아아, 그놈의 자존감, 지겹기도 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요즘 자존감이라는 말이 굉장히 의심스럽다. 자존감을 이루는 세 가지 요소인 자기효능감, 자기조절감, 자기안정감, 다 알겠다. 난 그런 감정들에서 그럭저럭 괜찮은 거 같은데 왜 이렇게 밑바닥에 있는 기분이 들지? 자존감이 낮으면 자존감을 높이라는데 그게 과연 노력으로 되는 일인지, 자존감이란 게 정말 개인이 조절할 수 있는 내면의 문제가 맞는지 의문스러웠다.
정의에 따르면 자아존중감이란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소중한 존재이고 어떤 성과를 이루어낼 만한 유능한 사람이라고 믿는 마음’이다. 이때 중요한 건 정체성이다. 자아존중감이 있으면 정체성을 제대로 확립할 수 있고, 정체성이 제대로 확립되어 있으면 자아존중감을 가질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믿는 마음’이라는 게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다. 그 점이 중요하다. 거울을 보면서 나는 존귀해, 나는 중요한 사람이야, 나는 나를 사랑해!를 백날 되새겨서 생겨나는 건 아마 ‘자존감’이 아니라 ‘망상’ 아닐까. 자아존중감은 오직 실제 재능과 능력, 성취에서만 근거할 수 있다. 부당한 칭찬이 아니라 관계 속의 타인에게서 받는 ‘응당한 존경’에 근거하여 세워지는 것이다. 이쯤에서 나는 나의 정체성에 의문을 품게 된다. 나에게 없는 건 자존감인가 정체성인가. 나는 나를 무엇으로 생각하는가. 응당한 존경이란 무엇이고 그것이 나한테 있긴 한가.
사실 나 같은 전업주부에게 자존감 장착은 쉬운 문제가 아니다. 동료도 경쟁도 평가도 없는 가정이라는 환경에서 주부들이 스스로 자존감을 높이기란 쉽지 않다. 무엇이 잣대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연봉? 성과급? 고과? 휴가? 이 중 아무것도 없는데. 사람은 오직 관계 속에서만 해석되고 설명된다. 그런데 집사람이 된 나의 사회적 관계망은 가족으로 쪼그라들었고 그 가족들은 주부인 나의 존재를 공기나 수돗물처럼 여기는 듯 보인다. 어쩌면 그것이 전업주부들이 겪는 낮은 자존감 문제의 핵심이 아닌지 모르겠다.
정체성과 자존감은 동전의 앞뒷면이라고 하는데, 생각해보면 전업주부라는 정체성 또한 너무나 모호하다. 나는 대체 누구일까? 집사람, 엄마, 요구를 들어주는 사람, 편리를 도와주는 사람, 종일 자신의 삶을 살아내고 편히 쉬러 돌아오는 가족들을 기다리는 사람. 그게 나의 정체성이라고 사람들은 쉽게 말할지 모른다. 왜냐하면 나는 전업주부이고 그것 외의 다른 직업은 없으니까. 그러나 나는 그게 다가 아니라고 외치고 싶었다. 들어줄 사람은 없지만.
나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이 집 어디에서든 ‘여보’나 ‘엄마’ 하고 부르면 들리는 자리에 항상 내가 있고 그게 바로 나라는 사람이다. 가족들은 모두 그런 식으로 나를 정의하는데, 정작 나는 내가 이 세상 어느 위치에 있는지 도저히 찾을 수가 없다. 그게 내가 겪고 있는 자존감이자 정체성의 문제인 것 같다. 그놈의 자존감이란 내게 수천만 원짜리 귀걸이만큼이나 사치스러운 것이다. 동시에 미치도록 갖고 싶은 것이기도 하고.
자존감을 생각하면서 나는 지리멸렬하게 이어진 남편과의 싸움을 떠올렸다. 또 감정을 빌미로 인정을 받아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나를 생각했다. 나의 구멍 난 자존감이 뭐 남편이 인정한다고 채워지는 일도 아니건만 그 인정을 받겠다고 그렇게나 애를 쓰는 나를 생각하면 쓴웃음이 났다. 전업주부의 일상에 대해서 말하자면 늘 지루했다. 물론 매일 할 일이 넘쳐나고 바쁜 동시에도 그랬다. 그게 나의 문제인지, 이 역할의 문제인지는 모르겠으나 집안일이 손에 익은 후로는 매일이 도전할 만한 과제라기보다 그저 일상의 반복과 반복일 뿐이었다.
전업주부로 사는 10년 동안 이전의 나를 이루던 모든 특징들은 서랍 속에서 색이 바래고 희미해졌다. 예전과 비슷한 형태로나마 남은 건 여자로서의 정체성뿐이었다. 내가 여기에 아직 있다는 것을 아는 유일한 사람이 남편이었다. 그가 나를 어른으로, 여자로 인정해줄 때엔 기분이 하늘로 솟았고, 마땅히 대우하지 않으면 분개했다. 생각 끝에 나는 ‘내 감정 좀 받아달라’는 요구가 사실 ‘내 자존감을 높여줘’라는 애원이라는 씁쓸한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안타까운 점은 그 이유를 남편은 모르고 나만 안다는 사실이다. 알려줄까?
“내가 만나는 어른이 당신밖에 없고 일상에 자극도 발전도 없다 보니까 당신의 사소한 모든 말과 행동에 예민해지고 그게 또 상처가 되고 그래.” 말해봐? 됐다, 내가 자존감이 없지, 자존심이 없게?
아, 어쩌다 나는 한 사람에게 의존하고 집착하는 여자가 되었나. 겨우 남편의 말 한마디에 울고 웃을 만큼 물렁해진 내가 너무 하찮았다. 구차해도 너무 구차하고 구차한 만큼 아팠다. 내가 인정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인, 남편한테서 듣는 자존감이 낮다는 평가는, 그게 사실이라서 더욱 아팠다.
종종 직업란에 뭔가를 적어야 할 때가 있다. 거기에 보통 ‘주부’라고 쓰는데 그때마다 기분이 묘해진다. 조금 움츠러드는 것도 같다. 주부가 직업이 될 수 있을까?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나는 주부는 직업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전‘업’주부라는 단어가 이미 주부는 직업임을 암시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일이 과연 직업이 될 수 있는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찜찜한 마음 탓인지, 그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