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피아니스트의 뇌와 신체가 어떻게 상호작용하며 기능을 극대화하는지를 다양한 실험과 조사를 토대로 탐구한 책이다.
어떤 피아니스트들은 리스트의 <라 캄파넬라>와 같은 초절기교✽의 대곡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현란하게 연주한다. 어떤 곡은 많으면 1분에 수천 번이나 건반을 두드려야 할 정도로 대단히 많은 음표를 가지고 있는데, 피아니스트는 그 음표를 모두 머릿속에 기억하고 좌우 열 개의 손가락으로 정확하고 빈틈없이 연주하여 듣는 이에게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점에서 피아니스트는 감성이 풍부한 예술가이자 고도의 신체능력을 지닌 운동선수이며 뛰어난 기억력과 빠른 속도로 방대한 정보를 치밀하게 처리할 수 있는 높은 지성을 겸비한 사람이다. 생각해보면 참으로 신비로운 능력을 지닌, 세상에서 보기 드문 존재이다.
나는 이과 출신으로 공학과 의학을 전공했지만 한때 피아니스트를 꿈꾸었을 정도로 어릴 적부터 음악을 좋아해서 피아노를 꾸준히 쳐왔다. 학생시절부터 줄곧 궁금하게 여긴 것이 피아노 연주의 연습법이었다.
연습을 통해 어떤 곡을 칠 수 있게 되면, 뇌와 신체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탈력’이란 어느 때 어떤 근육을 풀어주라는 말일까? 손가락이나 팔, 어깨 등을 어떤 식으로 움직이면 의도한 효과가 음으로 나타날까?
나는 오랫 동안 이런 의문들을 가졌으나 데이터에 근거해서 합리적으로 설명해주는 교본이나 지도법을 만날 수 없었다. 또한 해부학이나 운동학 교재를 펼쳐보아도 피아노를 칠 때 일어나는 몸의 움직임에 관한 설명은 없었다.
나는 이런 다양한 의문을 가지면서도 피아노를 치는 것이 너무나 즐거워서 통증이나 피로를 무시한 채 연습을 계속했다. 그러다 이윽고 몸에 이상을 느끼기 시작했다. 연습을 하면 할수록 피아노를 칠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마음대로 음악을 연주하지 못하는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병원 치료뿐 아니라 정체요법, 다른 여러 가지 치료법을 시도해보았지만 도무지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더 악화되기만 했다.
나는 곧 이런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은 나 혼자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프로 연주자, 음악가를 꿈꾸는 새싹들, 피아노 애호가 등 몸이 따라주지 않아서 마음먹은 대로 연주하지 못해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많이 있었다. 나는 그런 ‘음악가’들을 위해서 음악을 연주할 때 우리 인간의 뇌와 몸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규명하고 싶었다. 그렇게 하면 무리한 근성과 인내를 요구하는 불합리한 연습 때문에 음악가들이 심신을 다치는 일이 줄어들 것 같았다.
연구를 시작해보니 인간의 뇌와 신체는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신비로운 세계였다. 1990년대 이후 뇌 연구를 가능하게 하는 다양한 실험장치와 연구방법이 개발되어 세계적으로 이 분야의 연구가 커다란 발전을 이루고 있다.
‘예술가의 뇌는 도대체 어떻게 이루어져 있을까?’
이것이 오늘날 세계 뇌 연구자들이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주제 가운데 하나이다.
나 역시 인간의 심신이 지닌 상상을 초월하는 능력을 나날이 발견하면서 계속 놀라는 중이다. 뇌란 참으로 경탄해 마지않을 미지의 영역이다. 피아노 연습을 반복할수록 뇌는 변화하며 생각지도 못한 능력을 습득해나간다. 그런데 이 연습 때문에 오히려 문제가 생겨서 음악가 특유의 부상을 입기도 한다.
이제부터 피아니스트의 뇌와 몸의 경이로운 세계에 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펼쳐질 것이다. 음악 애호가들이 심신을 혹사하지 않으면서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음악을 실현하는 데 이 책이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조르주 치프라, 아르카디 볼로도스…….
이런 피아니스트들의 현란한 손가락 기교는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수많은 청중을 매료시킨다. 이들은 좌우 열 개의 손가락을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며 오른손과 왼손이 완전히 다른 생물체인 양 능숙하게 구사하여 장대한 난곡을 거뜬히 연주해낸다. 이 정교한 연주기술은 ‘초절기교’라고 불리며 200여 년 전부터 전 세계인들에게 경탄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이 기교의 비밀은 베일에 싸인 채 많은 사람들의 궁금증과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들은 그런 재능을 타고났기에 피아니스트가 되었을까? 아니면 어릴 적부터 날마다 누적된 연습 끝에 보통 사람은 할 수 없는 초절기교를 습득하게 된 것일까?
초절기교는 뇌에서 탄생한다
피아니스트는 최고 수준의 연주자가 되기까지 서너 살 무렵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해서 스무 살까지 모두 1만 시간이 넘는 방대한 연습량을 쌓는다고 한다.1)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자마자 초절기교라고 부를 만한 솜씨로 연주해내는 유아는 아마 한 명도 없을 것이다. 따라서 피아니스트의 초절기교는 타고난 재능이라기보다 성인이 될 때까지 꾸준한 연습을 통해서 길러진 것이라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그 방대한 연습의 결과, 피아니스트의 몸과 그 몸을 움직이는 뇌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이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으며, 세계적인 명연주자나 지도자들조차 잘 이해하지 못하는 영역이다.
피아니스트가 손가락을 그토록 빨리 움직일 수 있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피아니스트는 손가락 근력이 보통 사람보다 훨씬 뛰어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연구자도 있다. 피아노 교사나 학생은 흔히 ‘손가락을 좀 더 단련해야 한다’고 말하며 피아니스트의 손가락은 강해 보인다고 한다. 하지만 피아니스트의 손가락 근력이 일반인에 비해서 유별나게 강하냐면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 피아니스트와 음악가가 아닌 사람을 대상으로 손가락 끝으로 물건을 집는 힘과 손의 악력을 측정해보니 손가락 근력에는 뚜렷한 차이가 없었다.2) 또한 손가락을 빨리 움직이는 피아니스트일수록 손가락 근력이 강하냐면 이것 역시 그렇지 않다는 실험 결과가 나와 있다.
근력의 차이가 아니라면 피아니스트의 ‘초절기교’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사실 피아니스트와 그렇지 않은 사람의 결정적인 차이는 ‘뇌’에 있다. 이는 1995년 무렵부터 서서히 밝혀졌다. 1980~1990년대 이후 뇌의 크기와 기능을 조사하는 장치 및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피아니스트를 대상으로 한 실험·연구도 활발하게 이루어진 까닭에 초절기교를 가능하게 하는 뇌의 구조가 조금씩 해명되기 시작한 것이다.
피아니스트는 에너지 절약의 달인
우선 손가락을 빨리 움직이면 뇌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에 관해서부터 이야기해보자.
머리에서 정수리보다 조금 앞쪽, 손가락 근육에게 ‘움직이라’는 지령을 보내는 신경세포가 많이 모여 있는 뇌 부위를 운동피질이라고 한다(그림 1). 이곳의 신경세포가 활동하면 척추 속에 있는 척수를 통해서 손가락 근육으로 전기 신호가 전달되어 근육이 수축하고 손가락이 움직이게 된다.
‘기능적 MRI’와 PET✽라는 뇌 화상 진단장치를 사용하면 뇌의 어느 부분이 얼마나 활발하게 움직이는지 파악할 수 있다. 이 장치를 이용해서 손가락을 움직이고 있는 동안에 뇌는 어떤 움직임을 보이는지 조사한 연구자가 있다. 그 조사 결과 손가락 움직임이 복잡해질수록 혹은 손가락이 재빠르게 움직일수록 더욱 많은 신경세포가 활동하는 것으로 나타났다.3), 4) 즉 재빠르고 복잡하게 손가락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뇌의 수많은 신경세포가 일치단결해서 힘을 합쳐야 한다(그림 2).
✽ 어떤 뇌 부위의 신경세포가 활발하게 움직이면 그 부위의 뇌혈류가 증가한다고 한다. ‘기능적 MRI’와 ‘PET’는 이 국소적인 뇌혈류의 변화를 간접적으로 파악하는 장치로, 특정한 뇌 부위의 신경세포가 얼마나 활발하게 활동하는지 알아낼 수 있다. 한편, 단순히 ‘MRI’란 뇌의 크기와 형태를 조사하는 화상 진단장치를 가리킨다.
그렇다면 손가락을 복잡하게 움직이고 있을 때(예컨대 어려운 선율을 연주할 때) 뇌의 움직임은 프로 피아니스트와 ‘전문적인 음악 훈련을 받은 적이 없는 사람’, 즉 음악가가 아닌 사람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취리히대학의 양케 교수 일행은 손가락을 복잡하게 움직이고 있을 때 운동피질의 신경세포가 얼마나 많이 활동하는지 조사했다.5)그 결과 손가락을 동일한 속도로 똑같이 움직일 때 활동하는 신경세포 수는 음악가가 아닌 사람보다 피아니스트 쪽이 적다는 것을 알아냈다. 직관적으로는 피아니스트의 뇌가 활발하게 움직일 것 같지만 결과는 그 반대였다. 이는 어떤 의미일까?
이 실험으로 알게 된 점은 ‘피아니스트의 뇌는 활발히 움직이지 않아도 복잡한 손가락 움직임이 가능하도록 잘 다듬어져 있다’는 것이다. 피아니스트의 뇌는 일반 사람이 어려워하는 움직임에 대해서도 그다지 많은 신경세포를 일하게 하지 않고도 처리할 수 있는, ‘에너지 절약’이 가능한 뇌가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음악가가 아닌 사람은 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빠르고 복잡하게 손가락을 움직이는 동안에도 피아니스트의 뇌에는 여력이 있다. 그 여력 때문에 피아니스트는 빠르고 복잡하게 손가락을 움직여서 화려한 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 것이다(그림 3).
손의 움직임을 담당하는 뇌 부위가 운동피질만 있는 것은 아니다. 손가락을 복잡하게 움직일 때에는 고차운동영역(운동피질 근방에 있는 보조운동피질과 전운동피질)도 함께 활동한다(그림 4). 그런데 피아니스트는 이 부위들도 일반인보다 덜 사용하고 있었다(동일한 속도로 어떤 복잡한 움직임을 하고 있을 때).5)
또한 다른 연구에서도 음악가가 아닌 사람은 손가락 움직임이 복잡해질수록 고차운동영역의 신경세포를 더 많이 사용해야 하지만, 피아니스트는 이 부위를 그다지 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6)
즉 피아니스트의 뇌에게 복잡한 선율을 연주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몸의 움직임을 담당하는 여러 부위의 ‘에너지를 적게 쓰면서’ 연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피아노를 위해서 진화한 뇌
더욱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있다.
피아니스트의 뇌는 에너지 절약만 가능한 게 아니라 피아노 연주에 필요한, 복잡한 손가락 움직임을 수월하게 하는 신경세포의 기능을 특수하게 변화시켰다는 것이다.7)
라이프치히대학의 클라센 교수 일행은 손가락을 움직이는 신경세포에 두개골 위에서 간접적으로 전기 자극을 가해서 이 신경세포의 기능이 피아니스트와 음악가가 아닌 사람이 어떻게 다른지 조사했다.
‘뇌에 전기 자극을 가한다’고 하면 깜짝 놀라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뇌를 전기적으로 자극하는 기법을 TMS(경두개자기자극법)라고 하는데 뇌과학 분야에서는 뇌의 어느 부위가 언제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지 알아내기 위해서, 혹은 뇌 기능 회복을 촉진하기 위해서 비교적 많이 활용하고 있다.
TMS의 구조를 간단히 설명해보자. 몸의 움직임을 맡고 있는 뇌 부위의 신경세포를 자극하면 그 자극이 척수를 거쳐서 근육으로 전달되고, 근육이 수축해서 손가락이 움직이게 된다. 따라서 TMS로 신경세포를 자극했을 때 손가락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조사하면 그 신경세포가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지 알 수 있다(그림 5).
이 TMS를 피아니스트와 음악가가 아닌 사람에게 각각 실시한 결과, 손가락을 움직이는 신경세포를 자극했을 때 음악가가 아닌 사람은 물건을 집을 때처럼 손을 움직였다. 그러나 피아니스트는 피아노를 칠 때와 더 가까운, 복잡한 손가락 움직임을 보였다. 즉 피아니스트의 손가락을 움직이는 신경세포는 오랜 기간 누적된 연습을 통해서 복잡한 손가락 움직임을 수월하게 할 수 있도록 특수하게 변한 것이다. 피아니스트의 뇌는 피아노를 치기에 특화된 기능을 갖도록 잘 다듬어져 있는 셈이다.
커지는 뇌, 작아지는 뇌
피아니스트의 뇌는 에너지를 적게 소비하는 능력이 있고 피아노 연주에 특화된 기능을 갖도록 잘 다듬어져 있다. 그렇다면 피아니스트의 뇌의 형태는 음악가가 아닌 사람과 비교해서 어떤 차이가 있을까?
우리의 뇌는 일반적으로 ‘쓰면 쓸수록 늘어나고 쓰지 않으면 줄어드는’ 성질을 지니고 있다. 예컨대 다리가 부러져서 한 달 동안 깁스를 두르고 있다가 풀면 당장은 잘 걸을 수 없다. 그것은 한동안 다리를 쓰지 않아서 근육량이 줄어든 까닭도 있지만, 근육을 움직이기 위한 신경세포도 감소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릴 적부터 오랜 기간에 걸쳐서 매일 수 시간씩 손가락을 움직이고 있는 피아니스트는 당연히 피아노를 치지 않은 사람보다 손가락을 움직이기 위한 신경세포 수가 훨씬 많을 것이다.
피아니스트의 뇌 운동피질(손가락을 움직이는 신경세포가 모여 있는 부위)의 부피를 MRI로 측정한 연구를 보자.8), 9) 측정 결과 동작이 어려운 왼손 손가락의 움직임을 맡는 뇌 부위의 부피는 피아니스트가 음악가가 아닌 사람보다 큰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나이가 어릴수록 이 뇌 부위의 부피가 컸다.
피아니스트와 피아노 초보자를 대상으로 운동의 학습, 힘, 타이밍 조절에 관련된 뇌 부위(소뇌)의 부피를 비교한 또 다른 연구가 있다. 이를 보면, 피아니스트는 소뇌의 부피가 5퍼센트 정도 클 뿐 아니라 하루 연습시간이 긴 피아니스트일수록 소뇌의 부피가 큰 것으로 밝혀졌다.10) 5퍼센트라고 하면 적다고 느껴질지 모르지만 소뇌에는 일반적으로 약 1,000억 개의 신경세포가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피아니스트는 음악가가 아닌 사람보다 단순히 계산해서 소뇌의 신경세포가 50억 개 정도 많은 셈이다.
뇌의 신경세포가 많으면 어떤 이점이 있을까?
우리가 손가락을 빨리 움직이거나 복잡하기 움직이려면 많은 신경세포를 일하게 해야 한다는 점을 떠올려보자. 그것은 결국 손가락을 움직이는 신경세포 수가 많은 피아니스트가 한층 더 복잡하고 민첩하게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다는 뜻이다(그림 6).
피아니스트와 음악가가 아닌 사람을 대상으로 각각 최대한 빠르게 손가락을 움직이게 하고, 그때의 뇌 활동을 ‘기능적 MRI’로 계측한 연구에 따르면 피아니스트에게서 더 많은 손가락 신경세포가 활동하고 있었다.11) 게다가 손가락을 움직이는 최고 속도도 피아니스트 쪽이 훨씬 빨랐다. 피아니스트가 보통 사람과 달리 손가락을 재빠르게 구사할 수 있는 이유는 아주 많은 신경세포가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피아니스트는 몸의 움직임을 담당하는 뇌 부위(운동피질과 소뇌)가 일반인보다 발달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뿐만 아니라 피아니스트는 대뇌기저핵의 ‘피각(被殼)’이라는, 뇌 깊은 곳에 있는 부위도 크기가 변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그림 7). 이 뇌 부위는 거꾸로 작아진다.
MRI로 피각의 크기를 조사한 연구에 따르면 이 부위가 큰 사람일수록 연주할 때 손가락 놀림이 부정확하고 흐트러졌다.12) ‘흐트러진다’는 것은 ‘정확한 리듬으로 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꾸어 말하면 보다 정확하게 연주할 수 있는 피아니스트일수록 피각이 작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원래 왼손잡이였던 사람이 어릴 적에 오른손잡이로 교정하는 훈련을 받은 경우, 주로 쓰는 손이 아니었던 오른손을 더욱 능숙하게 쓸 수 있게 된 사람일수록 피각이 작다는 실험 결과가 있다.13) 또한 오랜 기간 훈련해온 발레 무용수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피각이 작다는 사실도 알려져 있다.14)
그렇다면 뇌의 이 부위는 정교한 동작을 하기 위해서는 ‘크지 않아야 좋은’ 듯하다. 이는 음악가에게 특유한 뇌신경 질환을 연구하는 분야에서도 다루는 주제이니 나중에 다시 살펴보겠다.
뇌와 관련된 또 다른 중요한 쟁점을 살펴보자. ‘피아노 연습을 시작한 시기에 따라서 뇌의 발달 정도가 달라지는가’ 하는 점이다.
‘피아노를 잘 치려면 어릴 때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는 ‘성인이 된 이후에는 배우기 시작해도 소용없다’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가? 음악계에서는 이와 같은 조기교육의 필요성이 마치 신화와도 같이 회자되곤 한다. 그 진위 여부는 나중에 다시 다루기로 하고, 유년기의 연습이 피아니스트의 뇌 발달에 깊이 관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몇몇 연구를 살펴보자.
하버드대학의 연구진은 어린이에게 피아노를 배우게 하면 뇌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파헤쳤다. 6세 어린이 31명을 대상으로 손가락을 움직이는 신경세포가 모여 있는 뇌 부위의 크기를 MRI로 측정하고 나서 손가락을 얼마나 빨리 움직일 수 있는지 측정하는 간단한 테스트를 실시했다.15) 그리고 이 어린이들을 두 집단으로 나눈 뒤 한 집단만 약 1년(15개월) 동안 매주 30분씩 피아노 개인교습을 받게 했다. 그 후 다시 두 집단의 뇌 크기를 측정하고 손가락을 움직이는 속도를 측정하는 테스트도 실시했다.
교습을 받기 전에 측정한 두 집단 아이들의 뇌 크기는 차이가 없었다. 그런데 피아노 교습을 받은 아이들은 손가락을 움직이는 뇌 부위의 부피가 커졌고 손가락을 움직이는 속도도 처음보다 빨라졌다(그림 8).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해당 뇌 부위의 부피, 즉 신경세포 수가 증가한 어린이일수록 손가락을 더욱 빨리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손가락을 민첩하게 움직이기 위한 뇌 발달에 어린 시절의 연습이 유효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볼 수 있다.
또 하나, 피아노 연습시간과 뇌 발달의 관계를 조사한 재미있는 연구가 있다.16)
이제까지 서술한 내용은 모두 뇌에서 비교적 표면에 모여 있는 신경세포(회백질)에 관한 것이다. 이 회백질 아래쪽에 ‘백질’이라는, 뇌의 신경세포끼리 정보를 주고받는 데 필요한 수백만 개의 흰 섬유로 가득 찬 부분이 있다(그림 9). 이 섬유는 수초(미엘린수초 혹은 미엘린)로 둘러싸여 있고 20세 정도까지 조금씩 발달한다. 현재까지의 연구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 수초의 발달 정도가 운동능력과 인지 기능에 영향을 미친다. 예컨대 음향기기의 케이블을 고품질로 바꾸면 음질이 좋아지듯이 뇌 속의 섬유를 싸고 있는 수초가 발달하면 운동 기능이 향상하는 것이다.17), 18)
11세가 분기점?
그렇다면 피아노 연습은 이 수초의 발달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이 점에 착안한 연구자가 있다. 그는 ‘어린 시절의 연습 경험이 많은 피아니스트는 수초가 일반인보다 발달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을 갖고, 프로 피아니스트와 음악가가 아닌 사람의 뇌를 대상으로 유년기의 연습시간과 섬유를 둘러싸고 있는 수초의 발달 정도의 연관성을 조사했다.16) 그 결과 손가락을 독립적으로 움직이거나 양 손을 자유롭게 움직일 때 사용되는 섬유의 수초는 11세까지 연습한 시간에 비례해서 발달되어 있었다. 하지만 12세 이후의 연습시간과 수초의 발달 정도는 그다지 관계가 없었다(그림 10).
이는 11세까지는 연습하면 할수록 수초가 발달하지만 12세 이후에는 연습을 많이 해도 반드시 수초가 발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수초가 발달하면 많은 정보를 더욱 빠르게 뇌 속에서 전달할 수 있게 되므로 복잡한 움직임을 구사하는 데 유리하다. 인터넷 회선을 ADSL에서 광섬유로 바꾸는 것과 같은 이치다. 따라서 이 연구 결과는 피아노 연주에 필요한 운동능력을 얻기 위해서는 유년기의 연습이 무척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확고한 증거이다.
또한 나이에 상관없이 연습시간이 많은 사람일수록 수초가 굵게 나타나는 뇌 부위도 발견되었다. 다만 좀 더 파헤쳐보니 ‘연습시간이 똑같으면 11세 이전에 피아노를 시작하는 것이 12세 이후에 시작하는 것보다 수초를 더 발달시킨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시 말해서 똑같은 연습량이라면 성인이 된 이후에 피아노를 시작하는 것보다 유년기에 하는 편이 뇌를 발달시키는 데에는 훨씬 효율적인 셈이다.
조기교육이 피아니스트의 뇌 발달에 미치는 영향은 수초뿐 아니라 신경세포와 관련해서도 밝혀지고 있다. 이를테면 ‘피아노를 시작한 나이가 어릴수록 왼손 손가락의 움직임을 담당하는 뇌 부위가 크다’는 것이다.8), 19)
성인이 된 이후에 시작해도 문제 없다
피아노 연습은 역시 일찍 시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듯하다. 하지만 ‘일찍 시작하지 않으면 피아노를 잘 칠 수 없다’는 것도 성급한 단정이다. 물론 유년기에 올바른 연습법으로 피아노를 시작하면 손가락을 빨리 움직이거나 왼손을 노련하게 움직이는 데 다소 유리하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도 뇌의 신경세포는 증가한다.20), 21) 그러므로 피아노를 시작하는 시점이 아무리 늦더라도 연습시간만 충분히 확보하면 언제 시작하든지 능숙해질 기회는 있다.
그리고 당연히 ‘손가락을 빨리 움직일 수 있으니 뛰어난 피아니스트’라고 말할 수는 없다. 손가락을 움직이는 속도는 수많은 표현수단 중 하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유년 시절에 아무리 연습을 많이 했더라도 치는 방법이 올바르지 않으면 능숙해지기는커녕 서툴러질 뿐만 아니라 손이나 팔에 고장을 일으키게 되기도 한다(이에 관해서는 5장에서 자세히 다룬다). 여기서 소개한 내용은 ‘어린 시절의 노력은 그에 따르는 보상을 받는다’는 말을 뒷받침하는 과학적인 증거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재능인가 노력인가
피아니스트가 화려하게 손가락을 놀릴 수 있는 것은 뇌의 크기와 기능이 보통 사람과 다르기 때문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차이는 유년 시절부터 오랫동안 누적해온 연습을 통해서 뇌가 조금씩 변화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피아니스트는 분명 특별한 뇌를 타고났다’고 여기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유전적인 요소에 관해서는 아직 명확한 답이 나오지 않았지만 반드시 ‘유전자가 음악가가 되고 안 되고를 결정짓는 것’은 아님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이는 바이올리니스트를 대상으로 한 연구이다.22)
바이올리니스트는 오른손으로 활을 움직이고 왼손으로 현을 누르는데, 왼손의 손가락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