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스완슨Peter Swanson
국내에 출간되어 10만 독자들에게 사랑받은 《죽여 마땅한 사람들》로 “메스처럼 예리한 문체로 냉정한 악의 본질을 탐구하는 작가(〈퍼블리셔스 위클리〉)”, “무시무시한 미치광이에게 푹 빠져들게 하는 법을 아는 작가(〈가디언〉)”라는 찬사를 받았고, 뉴잉글랜드소사이어티북어워드The New England Society Book Award, 영국범죄작가협회에서 매년 최고의 스릴러 부문에 수상하는 CWA 이안플레밍스틸대거Ian Fleming Steel Dagger 등을 수상한 바 있다. 그는 데뷔작 《아낌없이 뺏는 사랑》부터 “대담하고 극적인 반전을 갖춘 채 가차 없이 펼쳐지는 이야기(〈보스턴 글로브〉)”라는 찬사를 받았다. 이후 《312호에서는 303호 여자가 보인다》로 NPR 올해의 책을 수상했으며, 《그녀는 증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로 “정점에 오른 스타일리시한 스릴러(〈가디언〉)”라는 평가를 받으며 ‘결코 독자를 실망시키지 않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살려 마땅한 사람들》은 8년 만에 출간된 《죽여 마땅한 사람들》의 후속작으로 〈월스트리트저널〉로부터 “자신의 높은 기준을 다시 한번 뛰어넘었다”라는 평가 등 평단의 찬사를 받고 있다.
나는 릴리가 미소를 짓는 모습을 보고 그녀가 재미있어하는 것 같다고 생각하며 말을 이었다. “당신 차례입니다. 진실을 털어놔 봐요.”
“나한테 반한 것은 큰 실수예요. 나는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나쁜 짓들을 저질렀으니까요.” 본문 중에서
THE KIND WORTH SAVING
Copyright © 2023 by Peter Swanson
All rights reserved.
Korean translation copyright © 2023 by Prunsoop Publishing Co., Ltd.
Korean translation rights arranged with Sobel Weber Associates, Inc.
through EYA Co., Ltd.
이 책의 한국어판 저작권은 EYA Co., Ltd를 통해 Sobel Weber Associates, Inc.와 독점 계약한 도서출판 푸른숲이 소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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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1부살인을 저지를 나이
2부세 번째 인물
3부더러운 일
1장
킴볼
“저 기억하시겠어요?” 그녀가 사무실 안으로 들어오더니 물었다.
“당연하지.” 대답하기는 했지만 사실 그녀가 누구인지 생각나지 않았다. 하지만 낯이 익었다. 그래서 순간 어쩌면 그녀가 내 사촌, 혹은 오래전에 헤어져 깡그리 잊어버린 옛 여자친구일지도 모른다는 끔찍한 생각에 빠져들고 말았다.
그녀가 사무실 안으로 한 걸음 발을 들였다. 그녀는 키가 작았고, 마치 전직 체조선수처럼 어깨가 떡 벌어지고, 두 다리가 강인해 보였다. 동그란 얼굴에, 이목구비, 그러니까 푸른색 눈동자와 앙증맞은 코, 곡선을 그리고 있는 입이 한가운데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었다. 짙은 색 청바지와 갈색 트위드 블레이저 차림, 지금 막 승마를 하고 온 게 아닐까 생각이 드는 복장이었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윤기 나는 검정색 머리카락은 한쪽으로 넘겨두었다. “고등학교 때 상급반 영어 수업을 들었어요.” 그녀가 말을 이었다.
“조앤이구나.” 나는 그 이름을 지금 막 떠올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녀는 상담 예약을 하면서 진작 자기 이름을 밝힌 터라, 나는 당연히 진작부터 이름을 알고 있었다.
“지금은 조앤 웨일런이에요. 선생님 수업을 들을 때만 해도 조앤 그리브였죠.”
“그래, 조앤 그리브. 기억하고말고.”
“그리고 그때는 킴볼 선생님이셨잖아요.” 그녀가 사무실 안으로 들어온 후 처음으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가지런히 배열된 조그만 치아가 드러나자 누구인지 확실히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녀는 학창시절에 진짜 체조선수였다. 주변에서 인기가 많았고, 여기저기 끼를 부리고 다녔으며, 학업 성적도 평균 이상이었다.
과거에도 이 애가 이렇게 나를 킴볼 선생님이라고 부르면 무슨 약점이라도 잡힌 것처럼 막연히 불편한 느낌이 들었는데,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은 다시 만난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다트퍼드-미들햄 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던 시절의 기억은 가능한 한 잊고 싶었다.
“헨리라고 부르지 그러니.”
“헨리라는 이름은 영 어색하네요. 저한테는 아직도 킴볼 선생님 쪽이 익숙해요.”
“교사 일을 그만둔 이후로 킴볼 선생님이라고 불려본 적이 없는 것 같구나. 내가 누구인지 알고 오늘 상담 예약을 잡은 거니?”
“몰랐지만 그래도 짐작은 했던 것 같네요. 이전에 경찰로 일하셨다는 소식은 들었으니까요. 그리고 제가 듣기로는…… 어, 그러니까 그런 일이 일어났으니…… 지금은 사설탐정 일을 하신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잖아요.”
“뭐, 어서 들어와. 만나서 반갑구나, 조앤. 상황이 좀 그렇긴 해도 말이지. 마실 것 좀 줄까? 커피나 차 어때? 아니면 그냥 생수라도?”
“괜찮아요. 아뇨, 사실은 안 괜찮아요. 괜찮으시다면 물 좀 마셔야겠어요.”
내가 18제곱미터짜리 사무실 남쪽 구석에 처박혀 있는 미니 냉장고에서 생수 한 병을 꺼내는 사이 조앤은 서성거리다 내가 벽에 걸어놓은 그림 쪽으로 다가갔다. 영국 케임브리지 근처에 있는 그랜트체스터 목장을 그린 수채화를 인쇄해 액자에 넣은 것이었다. 몇 년 전 여행 중에 산 그림이었다. 딱히 그 작품이 마음에 들었다기보다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실비아 플라스의 시 중 하나가 〈그랜트체스터 목장의 수채화〉여서 그 그림을 구입하는 게 이치에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사무실을 내고 그림을 꺼내 벽에 걸었다. 치과 진료실이나 이혼 전문 변호사 사무실에서 손님들이 자신이 있는 곳이 어디인지 잊어버릴 수도 있도록 마음을 달래주는 미술품을 비치하는 것처럼, 내 사무실에 오는 사람들에게도 마음을 진정시키는 효과를 주고 싶었다.
조앤이 딸깍 소리를 내며 병뚜껑을 따고 자리에 앉는 동안 나는 책상을 빙 둘러 걸음을 옮겼다. 늦은 오후 햇볕이 사무실 안으로 비스듬히 비치고 있어서 블라인드 각도를 조절했다. 조앤은 눈을 가늘게 뜬 채 오랫동안 물을 들이켰다. 자리에 앉기 직전, 12년 전 영어 수업에서 학생들 앞에 서 있던 기억이 짧지만 생생하게 떠올랐다. 긴장한 탓에 겨드랑이가 축축하게 젖었다. 학생들이 지루해하면서도 재단하는 듯한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허공을 떠돌던 분필 가루 냄새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
나는 가죽 회전의자에 앉아 조앤 웨일런에게 무슨 도움이 필요한지 물었다.
“휴…….” 그녀는 시선을 살짝 돌리며 입을 열었다. “너무 뻔해서 재미는 없어요.”
그녀는 내가 자신이 여기 온 이유를 맞춰보기를 바라는 눈치였지만 나는 계속 입을 다물고 있었다.
“남편 때문이에요.” 그녀가 마침내 말을 이었다.
“흠.”
“말씀드렸다시피 아마 자주 들어보신 사연일 텐데, 남편이 바람을 피워요. 거의 그럴 거라고 생각…… 아니, 알고 있어요. 사실 저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아요. 제가 아는 한 그 사람은 뭐든 원하는 대로 행동하니까요. 하지만 그 사람이 그런 짓을 하고 다니는 걸 아는데도 아직 증거를 잡지 못했어요. 그러니 진짜로 알고 있는 건 아니죠.”
“확실히 알게 되면 이혼 소송을 낼 생각이니?”
그녀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 어린애 같은 동작을 보고 있으니 다시 한번 분필 냄새가 떠올랐다. “그것도 모르겠어요. 아마 그럴 거예요. 정말 짜증 나는 건 따로 있어요. 그 사람은 그런 짓을 저지르고도, 그러니까 바람을 피우고도 잘 빠져나가고 있다는 거죠. 직접 미행해 보기도 했지만 그 사람이 제 차를 알고 있으니 소용 없었어요. 저는 단지 확실히 알고 싶을 뿐이에요. 구체적인 내용 말이에요. 외도 상대는 누구인가 하는 것. 뭐, 그것도 알고 있다고 생각하긴 하지만요. 둘이서 어디를 다니는지, 얼마나 자주 만나는지, 말씀드렸지만 그런 건 전혀 신경 안 써요. 신경 쓰이는 건 오직 그 사람이 잘 빠져나가고 있다는 사실뿐이에요.” 조앤은 고개를 들고 내 어깨 너머 이 사무실의 유일한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늦은 오후 햇빛이 비치면 유리창에 먼지가 얼마나 내려앉아 있는지 쉽게 보이는 법이다. 나는 언제 시간이 나면 유리창을 닦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공책을 내 쪽으로 끌어당긴 후 펜 뚜껑을 열었다. “남편의 이름과 직업은 뭐지?”
“이름은 리처드 웨일런이고, 부동산 중개업을 해요. 블랙번 공인중개사라는 업체를 경영하고요. 회사 사무실은 다트퍼드와 콩코드 두 군데에 있는데, 그 사람은 주로 다트퍼드 사무실로 출근해요. 팸 오닐이라는 애가 다트퍼드 사무실 매니저인데, 그 애가 그 사람의 잠자리 상대죠.”
“그 여자가 외도 상대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지?”
그녀는 한쪽 주먹을 들고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첫째, 그 애는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 중 유일하게 정말로 예쁘다고 할 만한 사람이거든요. 뭐, 예쁜 데다 어리기까지 하죠. 리처드는 그런 사람한테 사족을 못 쓴다니까요. 둘째, 리처드는 거짓말쟁이지만 거짓말을 썩 잘하지는 못해요. 제가 팸이랑 바람피우는 게 아니냐고 추궁한 적이 있는데, 제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하더라고요.”
“그전에도 외도를 의심해서 그를 추궁한 적이 있었니?”
“그 사람이 과거에도 바람을 피웠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진짜 바람은 말이죠. 그 사람은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되도 않는 부동산 중개업자 협의회에 매년 참석하는데, 거기서 스트리퍼 같은 사람들과 놀아나는 건 확실해요. 하지만 그건 엄밀히 따져서 바람이라고는 할 수 없잖아요. 저는 팸 그 애와 친구 사이라 해도 좋아요. 그런데 바로 그게 문제예요. 그 애가 처음 블랙번 사무실에 취직했을 때, 제가 다니는 북클럽에 그 애를 초대했어요. 꽤 여러 번 참석했죠. 그 애가 정말로 독서를 한다고 생각하는 클럽 회원은 아무도 없었지만요. 저는 그 애에게 참 잘 해줬어요. 심지어 남편의 투자 담당자를 소개시켜줘서, 둘이 석 달 정도 만나기도 했다니까요. 그 애를 데리고 한잔하러 갔던 적도 세 번은 넘을걸요.”
“그 불륜 관계는 언제 시작된 것 같아?”
“석 달 전부터 팸이 제게 문자메시지를 더 이상 보내지 않았는데,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그렇게 뻔히 보이는 짓을 하다니, 꼭 들키고 싶던 것 같잖아요. 이런 경우는 굉장히 많이 보셨을 테죠?”
조앤이 이렇게 말한 것은 두 번째였다. 나는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털어놓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내 단골 의뢰인은 신원 조사를 의뢰하는 임시 인력 사무소와, 매번 고양이를 잃어버렸다고 찾아오는 사무실 아래쪽에 사는 80대 노인, 단둘뿐이었다.
“내 생각에 두 사람은 숨기려고 노력했지만 실패한 것 같은데. 그렇다면 아마도 네 남편이나 팸이란 여자 둘 다 이전에는 외도를 저지른 적이 없다는 뜻이겠지. 비밀을 숨기는 데 능한 사람들은 평소에 충분히 연습해온 법이거든.”
그녀는 얼굴을 찡그리며 내가 방금 한 말을 곱씹어 보았다. “아마 선생님 말씀이 맞을 테지만, 제 남편이 바람을 피운 게 이번이 처음이든 아니든 별로 신경 쓰이지가 않는 것 같네요. 왜 이런 심정이 드는지는 알 수 없지만, 솔직히 말해서 남편보다는 팸 때문에 좀 더 짜증이 나요. 그 애가 무슨 놀이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어요. 저기, 그해 졸업반 학생들이 조기 졸업을 하고도 계속 교사 일을 하셨어요? 그다음 해에는 분명 그만두셨다고 알고 있어요.”
화제가 갑작스럽게 바뀌는 바람에 나는 솔직히 대답하고 말았다. “세상에, 아니. 다시는 내 발로 그 학교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았어. 끔찍한 심정이었지만, 어쨌든 학기가 2주밖에 남지 않았었으니 그것만 마무리한 거지.”
“이후로 교사 일은 전혀 안 하셨어요?”
“고등학교에서는 하지 않았어. 가끔씩 평생교육반에서 성인 대상으로 시를 가르치기는 했지만, 그건 교사 일과는 다르니까.”
“농구선수 이야기.” 그녀는 퀴즈 대회에서 막 우승한 사람처럼 얼굴이 환해졌다.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조앤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내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고 덧붙였기 때문이다. “이제 다 기억났어요. 학기 마지막 달에 선생님이 우리한테 시를 읽어줬잖아요. 우리가 교과서에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할 수 있을 리가 없다고 하면서 말이에요.”
“그랬지.”
“그때 읽어주신 시가 한 아이에 관한 거였는데…….”
“아, 그래. 존 업다이크의 시였어. 제목은 ‘한때는 농구선수’였지. 그 기억은 까맣게…….”
“그러다가 앨리 아이젠코프랑 말다툼을 벌이셨잖아요. 그 애가 선생님이 그 시의 상징적 의미를 죄다 꾸며낸 거라고 하는 바람에 말이죠.”
“말다툼이라고 하기는 좀 그렇구나. 열띤 지적 논쟁에 더 가깝다고 해야지.” 당시 수업 때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날 수업의 목표는 그 시를 한 줄 한 줄 해부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시에 등장하는 주유소와 인근 거리의 지도를 칠판에 그려놓았다. 그리고 존 업다이크가 어떻게 〈한때는 농구선수〉처럼 비교적 단순한 시를 시계처럼 세밀하게 구성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시의 표면적 의미와 심층적 의미 양쪽을 고려해 단어 하나하나 의도적으로 선택할 수 있었는지 보여주려 애를 쓰고 있었다. 수업에 집중하고 있던 학생들은 내가 그 시 속에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고 확신하며 거세게 반발했다. 나는 학생들에게 인류가 달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컴퓨터 코딩 같은 것을 발명할 수 있다고 믿으면서도, 시 한 편에 등장하는 주유소 위치에 대한 묘사가 고등학교 농구 스타의 정체된 삶에 대한 은유라는 점은 좀처럼 믿지 못하는 점이 흥미롭다고 말했다.
앨리 아이젠코프는 내 수업에서 목소리를 높이던 학생들 중 하나였다. 그 애는 내가 마치 하늘은 파랗지 않다고 말했다는 듯이 눈에 띄게 흥분하며 내가 없는 의미를 지어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나는 조앤이 그 수업 시간을 콕 집어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저는 기억력이 좋은 데다, 선생님은 훌륭한 교사셨으니까요. 그해에는 선생님한테 정말 감명받았어요.”
“뭐, 너 말고는 그런 사람 없을걸.”
“아시겠지만, 리처드 말이에요. 바람피우고 다니는 제 남편 놈이요. 그 사람도 DM을 다녔어요.”
아이들이 다트퍼드-미들햄 고등학교를 DM이라 불렀다는 사실을 떠올리는 데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아니, 그건 몰랐는데. 내 수업을 들었었나?”
“아뇨, 선생님 수업은 하나도 안 들었어요. 그 사람이 상급반 영어 수업에 들어갈 수 있을 리가요.”
나는 조앤이 고등학교 동창과 결혼했다는 사실에 놀라고 말았다. 다트퍼드와 미들햄의 중심지는 콩코드나 링컨만큼 번화한 곳은 아닐지라도 공립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학생들 대부분은 4년제 대학교에 진학하기 마련이었다. 그러니 그들 중 상당수는 고등학교 시절 연인과 결혼할 것 같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부터 그를 만나고 있었니?”
“리처드요? 그렇다고 할 수는 없어요. 물론 알고 지내는 사이이긴 했죠. 진짜 뛰어난 축구선수였으니까요. 하지만 어쩌다 어울리는 정도였어요. 실제로는 보스턴에서 사귀기 시작했죠.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거기서 1년 정도 살았어요. 그 사람도 보스턴대학에 다니면서 근처 올스턴에서 바텐더 일을 하고 있었고요.”
“지금 둘은 어디 살지?”
“안타깝지만 다트퍼드에서 살아요. 사실은 리치의 부모님이 사시던 집이에요. 같이 사는 건 아니고요. 두 분은 그 집을 우리한테 팔고 지금은 플로리다에서 살고 계세요. 거절하기에는 너무 좋은 제안이었죠. 선생님께서 리치의 뒷조사를 하실 생각이라면 저희 집 주소를 포함해서 이것저것 다 알려드려야겠죠?” 조앤은 어깨를 살짝 뒤로 당기며 고개를 들었다. 내 기억에 있는 몸짓이었다.
“정말 내가 이 일을 해줬으면 하니? 남편이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면…….”
“반드시 해주시면 좋겠어요. 그 사람은 제가 증거를 확보하기 전까지는 그저 부인하고 넘어갈 거라고요.”
그리하여 우리는 수임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받아야 하는 것보다는 살짝 낮은 금액을 제시했다. 조앤은 과거 내 학생이었거니와 나한테 시간이 부족한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러자 그녀는 리처드의 부동산 사무실에 대한 세세한 정보를 알려주고, 그들의 불륜 행위가 오직 근무 시간 동안에만 이루어진다고 확신하는 이유를 말해주었다. “바람을 피우기 가장 쉬운 직종이잖아요.”
“빈 집이 많을 테니.”
“맞아요. 빈 집은 사방에 널려 있고, 그 집들을 드나들 핑계도 넘쳐나거든요. 얼마 전에는 직원 둘이 서로 잠을 자는 게 발각돼서 직원들이 빈 집에 못 가게 했다나 봐요. 그 사람이 말한 거예요.”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은 뒤, 나는 조앤에게 계약 절차에 대해 알려주었다. 계약서를 작성해서 이메일로 보내 서명을 받고 착수금을 수령하면 비로소 조사가 시작되는 것이었다.
“팸을 눈여겨보세요. 그 애가 그 사람이 바람피우는 상대예요. 다 알고 있다니까요.”
조앤이 사무실을 나서고, 나는 옥스퍼드 스트리트가 보이는 창가에 서서 그녀가 혼다 아큐라에 내려앉은 은행잎을 털어낸 다음 차에 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바깥 풍경은 근사했다. 1년 중 바로 이때가 나뭇잎의 절반 정도는 아직 나무에 매달려 있고, 나머지 절반은 바람을 타고 주변을 날아다니는 시기였다. 나는 책상 앞으로 돌아가 워드를 켜고 새로 맡은 사건에 대한 문서 작성을 시작했다. 조앤을 다시 보게 되니 기분이 이상했다. 성인이 되었지만 그녀는 어딘지 모르게 한결같은 모습이었다. 조앤을 마지막으로 알고 지내던 때로 생각이 자꾸 쏠렸지만, 그 생각은 차치하고 조앤이 남편에 대해 해준 이야기에 애써 집중했다. 아내 쪽을 미행한 적은 한 번 있었지만, 남편 쪽은 처음이었다. 대략 1년쯤 전에 맡았던 사건이었다. 아내는 불륜을 저지르고 있던 게 아니라 불법 도박을 벌이고 있던 것으로 드러났다. 차를 몰아 뉴햄프셔에 있는 포커 도박장에 드나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왜인지 조앤의 남편이 아마도 조앤이 생각하는 바로 그 짓을 저지르고 있을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섣부른 추정은 하지 말자고 스스로 되뇌었다. 조사를 처음 시작하는 것은 책을 펼치거나 영화관에 앉는 것과 같았다. 아무런 예상도 하지 않고 시작하는 것이 최선인 법이었다.
사무실 문을 걸어 잠그고 건물을 나서니 놀랍게도 밖에는 이미 땅거미가 내려앉아 있었다. 나는 낙엽이 깔린 길을 따라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돈이 들어오는 일을 맡아 기분이 들떴지만, 여러 해가 흘러 다시 조앤을 보니 다소 불길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10월 중순이었다. 세 집 걸러 한 집 꼴로 할로윈 장식이 되어 있었다. 호박, 가짜 거미줄, 플라스틱 묘석 같은 것들. 내가 매번 지나는 한 집에는 거대한 가짜 거미들 천지였다. 어떤 여자가 두 아이를 데리고 그 장관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 어린아이는 유모차에 타 있었고, 좀 더 나이 먹은 여자아이는 정말로 겁먹은 듯 거미 하나를 가리키며 엄마에게 저 거미를 없애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난 못 해.” 아이 엄마가 말했다. “그러려면 거인이 와야 할걸?”
“그러면 거인을 부르면 되잖아요.” 여자아이가 말했다.
지나치며 아이 엄마와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내게 미소를 지었다. “나도 못 해.” 내가 말했다. “내가 키는 커도 거인만큼은 아니거든.”
“그러면 어서 도망쳐요.” 아이의 말투는 굉장히 심각했다. 나는 계속 걸음을 옮겼다. 불길한 생각이 계속 떠올랐지만 독학으로 익힌 방식을 따라 무시해버렸다.
2장
조앤
조앤은 윈드워드 리조트에 리처드가 와 있다는 것을 깨닫기도 전에 그의 사촌형 두에인을 만났다. 그날은 무덥고 벌레가 들끓는 8월의 한 토요일로, 부모님, 언니와 함께 보내는 2주간의 휴가가 시작되어 메인주의 해변을 끼고 있는 호텔에서 묵던 첫날 밤이었다. 조앤의 나이는 열다섯 살이었다.
두에인은 케너윅 해변을 산책하고 있던 조앤 곁으로 쭈뼛거리며 다가왔다. 조앤은 기를 쓰고 가족들로부터 떨어지려는 중이었다. 두에인은 몸이 다부진 10대로, 아마도 고등학교 졸업반이었을 테다.
“안녕, 윈드워드 리조트에서 본 적 있어.” 두에인이 말을 걸었다. “여기 막 온 거야?”
조앤도 그를 본 적이 있었다. 식당 밖 로비에 놓인 소파에 다리를 떡 벌린 채 앉아 있었다. 삐딱한 자세와 낮은 이마선 때문에 다소 난폭한 사람처럼 보였다.
“응, 오늘 도착했어.” 조앤은 대답하며 계속 걸음을 옮겼다.
“그거 안타깝네. 여기 겁나 구리거든. 노인네들 밖에 없다니까.”
“그 정도는 아닌데.” 조앤은 기본적으로는 그의 말에 동의했지만 이렇게 대꾸했다. “여기 해변은 예쁘잖아.”
“그래, 해변 바위가 멋있지. 그냥 호텔이 그렇다는 거야. 그러니까 밤이 되면 아무것도 할 게 없거든. 야, 좀 천천히 가. 뭔 걸음이 그렇게 빨라.”
조앤은 걸음을 멈추고 그를 돌아보았다.
“나는 두에인이야.”
“나는 조앤.”
“저기, 아까 말했지만, 여기는 밤에 할 게 아무것도 없어. 그래서 10시쯤 우리 같은 애들끼리 해변에 내려와서 모닥불이나 피우고 놀까 하거든. 그 말을 하고 싶어서 부른 거야. 너도 오면 좋을 것 같은데 어때? 안 와도 되고.”
“누가 오는데?”
“데릭이라고 꽤 괜찮은 애가 있어. 여기서는 다 먹은 그릇이나 치우는데, 저기 시그릴 레스토랑에서는 웨이터 일도 하거든. 나랑 몇 번 어울려서 맥주를 마셨어. 대마도 좀 하고. 솔직히 말해서 여기는 별 볼 일 없는 애들밖에 없어. 내 사촌동생도 하나 같이 왔는데, 걔는 좀 덜 떨어진 놈이고. 그냥 너는 꽤 괜찮아 보이고 파티도 좋아할 것 같아서 말을 걸어본 거야.”
“음, 생각 좀 해보고. 너랑 데릭이라는 애 둘뿐이야?”
“아, 아니.” 두에인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 해변 아래쪽 펜션에서 지내는 여자애들이 몇 명 있는데, 걔들도 올 거야.”
“음, 생각 좀 해보고.” 조앤은 같은 말을 반복했다.
“좋아. 말한 대로 10시쯤 되면 모닥불을 피울 거야.”
조앤은 나갈 생각이 없었지만 밤에는 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두에인의 말은 사실이었다. 식당에서 생선구이와 가리비를 곁들인 감자가 나오는 구역질나는 저녁식사를 마치자, 부모님은 로비에 앉아 어떤 노인의 피아노 연주를 듣기 시작했고, 언니 리지는 책을 읽으러 객실로 올라갔다. 10시가 되자 부모님도 객실로 올라가 잠자리에 들었다. 조앤은 여전히 로비에 앉아 잡지나 대충 넘기고 있었다. 그러다 해변에 내려가 그냥 인사 정도만 하고 오자고 마음을 먹었다. 어쩌면 두에인은 겉보기만큼 덩치만 큰 얼간이는 아닐지도 모르니까.
그녀는 리조트 밖으로 나가 경사진 잔디밭을 지나 마이크맥 로드를 건너 해변에 도착했다. 낮에는 무더웠지만 이제는 꽤 선선했기 때문에 조앤은 가져온 옷 중 가장 두꺼운 스웨트셔츠를 입고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해변은 어둡고 고요했다. 조앤은 대략 200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깜빡거리는 모닥불 불빛을 보고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발이 부드러운 모래에 푹푹 빠졌다. 모닥불 가까이 다가가니 남자애 둘밖에 보이지 않았고, 산들바람을 타고 대마 냄새도 풍겼다. 그녀가 몸을 돌리려는 찰나, 두에인이 조앤을 발견하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녀를 향해 달려왔다.
“와, 씨발.” 그는 지나치게 큰 소리로 말했다. “왔구나.” 그는 모닥불 쪽으로 고개를 돌려 웃음을 터뜨리면서 친구를 향해 소리쳤다. “내가 올 거라고 했잖아.”
조앤은 딱 5분만 같이 어울려 주겠다고 결심했다. 그 이상은 어림없었다. 연기를 내며 타오르는 모닥불은 표류목 몇 개를 포개놓은 것이 고작이어서, 그 불빛으로는 데릭이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알아보기 어려웠다. 데릭은 해변에 떠밀려온 통나무 위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는데, 야구모자를 쓴 사람 모양의 어두운 형체로 보일 뿐이었다. 두에인은 조앤에게 조그만 플라스틱 아이스박스 위에 앉으라고 권한 다음 뚜껑을 딴 미지근한 캔맥주를 건네주었다. 조앤은 감사 인사를 건넨 다음 맥주를 한 모금 들이마셨다. 두에인은 라이터를 켜서 유리 파이프에 담긴 대마에 불을 붙이더니 조앤에게 권했다. “아니, 괜찮아.” 조앤이 말했다.
“평소에 안 피워?”
“말도 안 돼. 나는 체조선수라고.”
이 말을 꺼내는 순간 두 남자애들이 박장대소했다. 그러자 조앤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곳을 뜨려다가 무엇 때문인지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 걸음을 옮기는 대신 이렇게 물었다. “뭐가 그렇게 재밌어?”
“재미는 없어. 하지만 섹시해 보이는데.” 이 말을 한 사람은 데릭이었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모자 챙이 만든 그늘 아래 감춰져 있었다. 목소리는 탁하고 발음이 불분명했다.
두에인은 데릭의 정강이를 세게 걷어차더니 이렇게 얼버무렸다. “아니, 너 착한 애라고. 알았어, 너희 체조부는 실력이 괜찮아?”
조앤은 맥주를 한 캔 비우며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 대표로 주니어 대회에 나간 이야기를 잠시 늘어놓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녀는 두에인이 고개를 돌려 친구 데릭을 빤히 바라보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러자 데릭은 자리에서 일어나 오줌을 싸러 간다는 둥의 말을 중얼거리다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이제 모닥불은 거의 꺼져버렸고, 남은 표류목 한 개에서만 오렌지색 불빛이 조그맣게 일렁이고 있을 뿐이었다. “추워 보이네.” 두에인이 입을 열더니 아이스박스 위에 앉아 있는 조앤의 곁으로 미끄러지듯 다가와 그녀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정말 괜찮아.” 조앤이 이렇게 말하자, 두에인은 마치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농담이라도 들은 것처럼 웃음을 터뜨렸다. 조앤은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었지만 여전히 신경이 거슬렸다. 두에인이 그녀를 가까이 당겨 자신의 입으로 입술을 짓눌렀다. 조앤은 잠시 두에인의 행위에 동조하듯 가만히 있었다. 무엇보다 그렇게 하는 편이 그나마 손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윽고 두에인이 그녀의 손을 잡아 자신의 반바지 속으로 집어넣어 사타구니 쪽에 가져다 대자, “야.” 하고 말하며 몸을 비틀어 그에게서 빠져나와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이스박스 뚜껑이 열리며 두에인이 모래 위로 넘어졌다.
조앤은 그가 웃음을 터뜨릴 거라고 생각했지만, 대신 그는 이렇게 말했다. “씨발, 뭐야.” 그는 자리에서 튀어오르듯 일어나 반바지와 다리에 달라붙은 모래를 털어냈다.
“나 갈래.” 조앤은 이렇게 말하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저 멀리 길 건너편에 희미한 불빛이 몇 개 보였는데, 몸이 떨리자 시야에 맺힌 불빛이 흐릿하게 번졌다.
두에인이 그녀를 따라잡아 팔을 낚아챘다. “아니, 조금만 더 있다 가. 사람 놀리지 말고.”
이제 조앤의 심장은 거세게 뛰고 있었다. 그러자 자기 자신과 꽤 분리된 기분이 들었다. 대회에 나가 정해진 준비 동작을 하기 전에 때때로 겪었던 바로 그 느낌이었다. 그녀의 내면에서 어떤 목소리가 속삭였다. 그냥 조금만 더 어울려 주라고. 어쩌면 손으로 해줘야 할 수도 있는데, 그러고 나면 보내줄 거라고. 하지만 그 대신 조앤은 이렇게 말했다. “손 놓으라고.”
“이건 어때?” 두에인이 조앤의 팔을 꽉 틀어쥐자 그의 손가락이 살을 파고들었다. 조앤이 비명을 지르자 그는 팔을 놓아주었다. 조앤은 몸을 돌려 달리기 시작했다. 부드러운 모래 탓에 다리가 무겁게만 느껴졌다. 두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길가에 다다르고 나서도 뒤를 잠깐 돌아보는 것이 고작이었다. 두에인은 따라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호텔까지 남은 길을 계속해서 달려가 언니와 함께 사용하는 객실로 곧장 올라갔다.
“안녕, 조앤.” 바다에서 끊임없이 불어오는 산들바람 탓에 그 목소리는 거의 알아들을 수 없었다.
조앤은 커다란 핑크색 비치 타월 위에 엎드려 있다가, 말을 건 사람이 두에인이라고 생각해서 신경질적으로 몸을 홱 돌렸다. 하지만 피부가 새하얗고 멀쑥하게 생긴 소년이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 흐릿하게 보였다. “나 리처드야. 같은 학교. 해리스 선생님의 사회 수업을 같이 들었잖아.”
“아, 안녕, 리처드.” 조앤은 그가 누구인지 알아보고 자세를 바꿔 드러누웠다. 두 사람은 모두 미들햄에서 자라 초등학교, 중학교 내내 같은 학교를 다녔다. 그가 같은 수업을 들었다는 식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었다. 그렇지만 조앤은 그 세월 동안 리처드와 서로 말을 섞어본 적이 한 번도 없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다가 메인주에서 이렇게 만나게 되다니, 이상한 기분이었다.
리처드는 거북한 듯 몸을 살짝 돌렸다. 검정색 티셔츠와 유행에 한참 뒤떨어진 기장이 짧은 낡은 트렁크 수영복 차림이었다. 높이 떠오른 태양이 한 줄기 구름에 가리자, 조앤은 그의 모습을 좀 더 잘 바라볼 수 있었다. 리처드의 시선은 조앤의 머리 위 한 뼘 정도 떨어진 곳에서 맴돌고 있는 것 같았다. “여기서 뭐 해?” 조앤이 물었다.
“이모네 식구들, 이모와 이모부, 사촌형이 해마다 여름이면 여기서 한 달간 휴가를 보내거든. 올해는 나도 따라왔어.”
“한 달 내내?”
“온 지 보름이나 됐으니 이제 보름 남은 거지. 어쨌든 맞아. 너는 웬일이야?”
“어제 부모님과 언니랑 함께 왔어. 우리는 보름 정도 있을 거야. 윈드워드 리조트에서 지내.”
“아, 그렇구나. 나도 그래.” 그는 마치 리조트까지의 거리를 가늠하려는 듯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지만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앤은 두에인과 마주치는 게 싫어서, 결국에는 어쩔 수 없이 그와 마주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해변 아래쪽으로 최대한 멀리 나와 있던 참이었다.
“거기 좀 짜증나지 않아?” 조앤이 말했다.
“그래?” 리처드가 조앤을 내려다본 것은 아마 이번이 처음 같았다. 조앤은 그의 시선이 자신의 턱 언저리에 내려앉아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비키니 차림에 시선이 쏠린 것은 아니었다. 비록 그러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는 게 아닐까 의심스럽기는 했어도 말이다. 리처드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이름보다는 별명인 딕, 혹은 조롱삼아 고자 딕으로 더 많이 불리던 아이였으니, 어쩌면 여자애와 말해보는 게 이번이 처음일 수도 있었다.
“냄새가 고약해. 그리고 음식도 거지같고. 딱 하나 좋은 건 해변과 가까운 것 정도야.”
“수영장도 있잖아.”
“거기 가봤어?”
“한 번 가봤는데 어린애들이 바글대더라. 걔들은 물속에서 오줌 쌀 것 같던데.”
조앤은 웃음을 터뜨렸다가 아이들 한 무리가 해변으로 내려오는 모습을 본 것 같아 고개를 돌렸다. 아니, 애가 아니라 대학생 정도 되어 보였다. 그중에 두에인은 없었다. 여자들 중 한 명이 담배를 피우고 있어, 조앤은 허공을 떠다니는 담배 연기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이만 가봐야 할 것 같아.” 그녀는 리처드에게 말했다. 리처드는 넓은 모래사장과 길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풀밭 부근에서 서로 꽥꽥대는 갈매기 두 마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그래.” 리처드는 이렇게 대답하더니 해변을 따라 내려갔다. 조앤은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몸을 뒤집어 배를 깔고 엎드려 타월 모서리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모래 알갱이 몇 개가 달라붙어 있었다. 두 눈을 감아도 그 모래 알갱이의 존재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서 결국 손이 닿을 만큼 몸을 움직여 타월에 붙은 모래를 쓸어냈다.
그날 저녁, 조앤은 햇볕에 그을리고 허기가 진 채 리조트의 커다란 식당에 앉아서는 두에인이 나타나지는 않을까 예의 주시했다. 그날 저녁의 뷔페 메뉴는 고기가 들어간 것과 들어가지 않은 것 두 종류의 라자냐, 샐러드, 마늘빵이었다. 그리고 어색한 동급생, 리처드를 발견했다. 그는 키 크고 여윈 곱슬머리 여자와 반바지에 흰 양말을 무릎까지 올려 신은 뚱뚱하고 좀 더 나이 먹은 남자와 함께 식당 저편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리처드가 뭐라고 했더라? 이모와 이모부, 사촌형과 함께 여기 왔다고 했다. 조앤은 잠시 혹시 그 사촌형이 두에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마치 그 생각이 마술을 부려 현실이 된 것처럼 갑자기 두에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어슬렁거리며 테이블 사이를 지나 리처드와 다른 두 어른이 앉아 있는 자리에 합석했다. 조앤은 멀리서 두에인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나빠졌다. 저 비쩍 마른 너드 리처드가 뇌까지 근육인 두에인과 사촌형제라니, 이게 말이 되나?
“대체 일광욕을 얼마나 오래 한 거니, 얘?” 조앤의 엄마가 두 번째인가 세 번째로 말했다.
조앤은 손가락으로 팔뚝을 눌러보았다. 빨갛게 익은 피부가 일순간 하얗게 변했다가 이내 빨갛게 되돌아갔다. “이 정도는 기본이야. 여기서 보름이나 있어야 한다면 최소한 죽여주게 태우기라도 해야지.”
“그러면 몸에 안 좋아.” 언니 리지가 말했다. 리지는 조앤과 정확히 네 살 차이었는데, 바드대학 1학년을 막 마치고 나더니 갑자기 페미니스트에 채식주의자가 되어 이제는 선탠 같은 일에도 잔소리를 하는 것이었다.
“언니는 작년 여름에 플로리다에 갔었잖아. 아주 새까맣게 타서 돌아와서 알아보지도 못하겠던데.” 조앤도 자신의 목소리가 너무 크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조용히 하라고 주의를 주었는데도 여전히 짜증이 풀리지 않았다.
“그래서 어쩌면 암이 재발할지도 몰라. 조앤, 내가 저지른 잘못을 보고 좀 배우려는 노력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면 좀 더 나은 사람이 될 텐데 말이야.”
리지는 이제 미소를 지으며 동생의 비위를 맞추려 했다. 조앤은 얼굴을 찡그렸다. “아빠 생각은 어때? 아빠는 의사잖아.”
아버지는 커피를 마시고 있다가 눈을 빠르게 깜빡거리며 다시 대화에 끼어들었다. “의사가 아니라 치과의사란다, 조앤. 뭐 말이니?”
“올여름에는 죽여주게 태울 생각이거든.”
“그렇게 하렴.”
“부탁 하나만 하자, 조앤.” 어머니가 끼어들었다. “오늘 밤에는 알로에 젤을 듬뿍 바르고, 내일은 자외선 차단 지수가 30 이상인 선크림을 꼭 발라야 한다, 알겠지? 피부가 너무 빨간 것 같아.”
“괜찮아.” 거짓말이었다. 샤워를 한 다음부터 피부가 온통 비명을 지르고 있던 것이다. 실제로는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을 알지만 몸에서 타는 듯한 냄새가 나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여기 도서관이 있다는 거 알고 있었어?” 리지가 물었다. 누가 봐도 화제를 바꾸려고 던지는 질문이었다. 조앤은 그 점에 대해서는 고맙게 생각했다.
“그런 게 있니?” 어머니가 말했다.
부모님과 언니가 휴가 기간 동안 읽기로 계획한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조앤은 마늘빵의 딱딱한 껍질 부분을 접시 밖으로 밀어버렸다.
조앤은 두에인과 리처드, 두 사람이 함께 앉아 있는 자리에서 여전히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그는 두에인이 자신과 우연히 맞닥뜨리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지, 본인이 저지른 행위를 조앤이 다른 사람에게 말했는지 신경 쓰고 있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식당 저쪽에 앉아 있는 모습만 보면 그는 전혀 안절부절못해 하는 것 같지 않았다. 의자에 구부정하게 앉은 채 계속해서 손목시계만 들여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5분 후,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식당 밖으로 나갔다. 조앤은 계속해서 그가 앉아 있던 테이블을 바라보았다. 리처드가 자리에서 일어나 디저트를 가지러 음식이 놓인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조앤은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그처럼 음식이 놓인 곳으로 향했다.
“그건 뭐야?” 조앤은 목소리가 들릴 만큼 리처드에게 가까이 다가가 말을 걸었다.
“라이스 푸딩. 이게 싫으면 초콜릿 케이크도 있던데.”
“같이 앉아 있던 사람이 네 사촌형이야?”
“조금 전까지 같이 있었는데. 지금은 이모와 이모부만 계시고.”
“네 사촌형은 어떤 사람이야?”
“누구? 두에인 말이야?”
“그래.”
“어쩌면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최악의 인간쓰레기일지도 몰라.”
“정말?” 조앤은 굳이 번거롭게 흥분을 숨기려 하지도 않고 반색했다. 그 대답이야말로 그녀가 듣고 싶던 말이었다. “뭐가 그렇게 최악인데?”
“거의 모든 부분이. 그런 걸 왜 물어? 그 인간이랑 만나고 싶은 거야? 아님 뭐야?”
“이미 만난 적 있어. 어제 말이야.”
“정말?”
“그래. 어젯밤에 해변에서 모닥불 피우고 파티를 한다며 초대하더라. 나는 돌았는지 거기 갔었고.”
“혹시 너한테 덤벼든 거야?” 리처드는 꼭 그녀가 이미 디저트를 먹었는지 물어보는 것처럼 물었다.
“맙소사.” 조앤은 반사적으로 목소리를 높였다가 속삭이며 말을 이었다. “그런 짓을 하려고 했는데 내가 도망쳤어.”
“그래, 그 인간이 평소 여자애들에 대해 말하는 투로 봐서 아마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 보아하니 운이 좋았나 보네.”
그때 턱수염을 기른 덩치 큰 남자가 음식 접시를 사이에 두고 둘의 맞은편에 나타났다. 그 남자는 가장 큰 케이크 조각을 고르려 디저트 접시 끄트머리를 잡고 하나하나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이만 내 자리로 가야겠어.” 리처드가 말했다.
“그래. 어쩌면 내일 해변에서 만날지도 모르겠네.”
“아, 그래.” 리처드는 조앤의 말에 귀를 별로 기울이지 않는 듯이 대답하고는 라이스 푸딩이 담긴 그릇을 들고 자신의 테이블로 돌아갔다.
그날 밤, 조앤은 침대에 누웠지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마치 자그마한 핀들이 온몸을 찔러 피부에 구멍을 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몸이 지나치게 뜨겁기도 했다. 리지는 저녁 내내 헤드폰을 쓴 채 제이디 스미스가 쓴 “하얀 이빨”이라는 제목의 책을 읽고 있었다. 조앤은 볼 만한 프로그램을 찾느라 텔레비전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이 텔레비전은 채널이 고작 열두 개뿐이었다. 게다가 그중 셋은 야구 중계 중이었다. 그래서 결국 줄리아 로버츠가 남편에게서 도망치는 영화를 볼 수밖에 없었다. 영화가 끝나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 즈음에는 잠이 완전히 달아난 상태였다. 리지는 어느새 잠들어 있었다.
조앤은 전날 밤에 있었던 두에인과의 위험천만했던 일에 대해, 그리고 리처드에 대해 곱씹어 보았다. 비록 두 사람은 같은 소도시에서 함께 자랐지만, 그녀가 리처드에 대해 생각했던 적은 아마 단 한 번도 없을 터였다. 바클레이 선생님의 과학 수업을 들었던 중학교 때 이후로는 말이다. 당시 바클레이 선생님은 리처드에게 데오도란트를 건네주며 이거라도 좀 쓰라고 했었다. 그렇게까지 놀랄 일은 아니었다. 당시 리처드는 기본적으로 매일같이 똑같은 셔츠를 입고 등교해서 지독한 악취를 풍겼기 때문이다. 조앤은 점심을 먹으러 달려가 같은 테이블에 앉은 모든 아이들에게 자신이 본 광경을 전부 말해버렸다. 그래서 그 이후 얼마 동안 모두들 그를 아빠 스킨 리처드라고 불렀다. 그래도 아마 고자 딕보다는 한층 나아진 별명이었을 것이다.
미들햄 출신 아이들은 중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모두 다트퍼드-미들햄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그 후로 조앤은 리처드를 거의 보지 못했다. 리처드는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치며 몰라보게 성장했다. 맞지도 않는 옷을 걸치고 집에서 깎은 머리를 하고 다니던 깡마른 꼬마아이 시절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누가 봐도 가까이하기 싫은 괴짜였다. 그러니 이제 와서 리처드가 실제 친구처럼 느껴지는 것은 신기한 일이었다. 두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단지 같은 마을에서 자라서 같은 학교를 다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공통의 적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조앤은 내일도 리처드를 찾아낼 수 있길 바랐다. 두에인에 대한 정보를 좀 더 캐내고 싶었다.
3장
킴볼
조앤 그리브 웨일런과 재회하던 날 밤, 나는 인터넷에 접속해 그녀의 남편이 운영하는 회사의 방대한 홈페이지를 살펴보았다. 블랙번 공인중개사의 홈페이지는 그곳에서 일하는 중개인, 대리인, 기타 사무실 직원들의 사진과 간단한 경력을 제공하고 있었다. 리처드 웨일런의 프로필 사진은 어느 햇살이 밝게 비치는 날에 커다란 정원 같은 곳을 배경으로 찍은 것이었다. 그는 회색 머리카락을 짧게 깎았고, 마치 선상 생활을 오래 한 사람처럼 피부가 좋지 않았지만, 얼굴은 멋들어지게 생긴 편이었다. 그의 사진과 함께 적혀 있는 소개 문구에 따르면, 취미는 패들보딩과 민물고기 낚시, 로드 자전거 타기였다. 아내가 있다는 언급은 찾을 수 없었다.
조앤이 자신의 남편과 불륜 관계라고 확신하는 여자, 팸 오닐은 자신의 취미를 승마와 보디서핑이라고 밝히고 있었다. 긴 금발에 치아가 굉장히 새하얗게 빛났다. 비록 사진 보정을 한 것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나이는 20대 중반 정도로 보였다. 그렇다면 리처드 웨일런이나 조앤보다 대략 열 살은 어린 나이였다.
나는 두 사람이 함께 있는 장면을 상상해 보았다. 특별히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내 추측상 조앤이 두 사람이 바람이 피우고 있다고 생각했다면 그들이 실제로 바람을 피우고 있다고 짐작해도 무방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그런 말도 있으니까. 나는 이 사건에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최선일까 고심하며 계획을 짜내려 했다. 하지만 그 대신 조앤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날 일찍 나를 찾아왔던 조앤이 아닌, 내가 초임 교사였던 15년 전 가르쳤던 학생 조앤에 대한 생각이었다.
다트퍼드-미들햄 고등학교에 재직하던 시절, 제임스 퍼솔이 총을 가지고 내 교실에 들어오기 훨씬 전부터, 사실 나는 구체적으로 말하기 어려운 공포에 휩싸여 있었다. 그 공포는 크리스마스 연휴 중간, 내가 다가오는 봄 학기 수업 준비에 매여 고전하던 와중에 시작되었다. 가을 학기 때 나는 교생 신분이었다. 내 지도교사는 래리 오도넬이라는 잔뼈가 굵은 교사였는데, 오후 5시부터 문을 여는 〈불런Bullrun〉이라는 술집에서 수업 계획을 검토하기 좋아했다. 래리에게는 좋은 점이 있었다. 내 수업에 참관해서 내가 가르치는 모습을 지켜본 다음 내가 저지른 온갖 실수를 가지고 닦달하는 짓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래리에게는 나쁜 점도 있었다. 내가 수업을 진행하는 사이 그는 비품 창고에 틀어박혀 낮잠을 자곤 했다.
내게 가장 힘든 수업은 2학년 두 학급을 대상으로 하는 미국 문학 수업이었다. 커리큘럼은 월트 휘트먼, 마크 트웨인, 에밀리 디킨슨, 어니스트 헤밍웨이, 스콧 피츠제럴드가 포함되는 꽤 틀에 박힌 내용이었다. 아이들은 심드렁하게 수업에 임했다. 내게는 엄격한 교사의 자질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나는 두 수업 모두에서 단지 몇 초만이라도 학생들에게 등을 돌려 눈을 떼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애를 쓰며 대부분의 시간을 허비했다. 내 세 번째 수업은 상급반 영어 수업으로, 바로 조앤 그리브가 듣고 있던 수업이었다. 학생들은 기본적으로 공손했다. 책을 읽고 이야기하기를 즐기는 것 같아 보이는 학생들도 두어 명 있었다. 하지만 학생들 대부분은 그저 대학에 지원할 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서 신청한 것이었다. 그래서 품행은 단정했지만 수업 시간에는 멍하게 굴기 일쑤였다.
12월 초가 되자, 나는 학기가 어서 끝나기를 고대하며 날짜를 세는 판이었다. 과연 적성에 맞는 직업을 선택했는지 의문을 품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가 되어 이날 마지막 수업이 끝낸 직후 칠판을 지우며 머릿속으로 방금 끝난 수업 내용을 복기하고 있었다. 그때 래리 오도넬과 영어 교과 부장 모린 블록이 나를 보러 교실에 들어와 문을 닫았다. 두 사람은 내게 베테랑 교사 폴 저스티스가 며칠 동안 출근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물었다. 나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별다른 신경을 쓰고 있지는 않았다.
“다시는 출근하지 않을 거예요.” 모린이 말했다. “그리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정말 큰 위기는 모면한 것 같아요. 문제를 제기한 여학생이 경찰에게 신고는 하지 않을 거라고 했으니까요.”
“세상에.”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친절하게도 래리가 다음 학기에 폴이 담당한 1학년 수업을 맡아주기로 했어요. 그렇지만 고학년 상급반 수업이 남아 있죠. 거기에 더해 폴이 맡고 있던 작문 수업도요. 당신이 우리를 도와줄 수 있으면 좋겠는데요.”
“세상에.” 나는 재차 이렇게 대답했다.
두 사람은 내게 그 제안을 생각해 보도록 하룻밤 말미를 주었다. 당시 내 여자친구였던 다그마어는 거절하기에는 너무 좋은 기회라고 나를 설득했다. “연말에 정규직 자리가 들어왔잖아. 거기는 좋은 학교이기도 하고.” 우리는 웨스턴 매사추세츠의 같은 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밟으면서 만났다. 다그마어는 허드슨에 있는 한 공립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다. 나는 불현듯 우리 둘이 함께 센트럴 매사추세츠에서 농가를 수리하고 투덜거리며 시험지를 채점하면서 인생을 보내는 그림이 떠올랐다. 그게 어떨지 마음에 결정을 내리기는 어려웠다.
나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다그마어는 남은 해를 가족과 함께 보내기 위해 중서부로 돌아갔다. 남은 시간 동안 상급반 수업을 어떻게 진행할지 계획을 짜느라 케임브리지에 있는 꼬질꼬질한 다세대주택에 틀어박혀 지냈다. 내게는 수업 계획에 대한 재량권이 있었다. 먼저 시 문학으로만 구성된 단원을 하나, 그리고 학생들이 아마 존 치버의 단편을 좋아할 거라는 생각에 20세기 중반 교외 중산층을 다루는 문학에 대한 단원을 하나 구상했으며,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심연》과 리처드 예이츠의 작품 몇 편을 다뤄볼까 고심했다. 당시 나는 독서량이 상당했고 시를 써보려 노력하고 있었지만, 내 앞에 펼쳐질 남은 인생이 어떤 모습일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내 인생은 별다른 굴곡 없이 고요하게 흘러갈 것이리라. 일단 그런 생각이 머리에 떠오르자 마치 찬물 속에서 헤엄을 치는 것처럼 오한이 들었다. 그 기분을 도저히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1월에 수업이 재개되었지만 그 기분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매일 아침 나는 언제 시동이 꺼져버릴지도 모르는 오펠 오메가에서 내려 축축하고 얼어붙은 새벽 공기를 뚫고 교실을 향해 걸음을 옮기면서, 눈앞에 닥친 이날 하루에 대한 일종의 실존적 공포에 사로잡혔다. 일단 하루가 시작되고 나면 다 괜찮았다. 심지어 즐거운 순간들도 있었다. 존 치버의 〈헤엄치는 사람〉은 초현실적으로 빠져버리는 결말 탓에 학생들 대다수의 분노를 샀지만 어쨌든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이 수업을 듣는 부유한 집안의 고등학교 졸업반 학생들은 매사를 문자 그대로 이해하는 아이들이었다. 그리고 고등학생 때까지 지내온 소도시에서 한 발 뻗어 일류 대학에 진학하고 대학원까지 마친 다음 보스턴, 뉴욕, 워싱턴 D.C. 같은 곳에서 괜찮은 직장에 신입으로 입사하는 이들이었다. 아이들은 교외 지역 중산층의 권태는 이해했지만, 이를 직접 겪고 싶어 하지는 않았다.
나는 제임스 퍼솔에 대한 좀 더 자세한 기억이 떠오르기를 바랐지만, 주된 기억은 그가 교실 맨 뒤에 앉아 있던 조용한 외톨이라는 사실 정도였다. 그는 과제도 성실히 제출했다. 토론 시간에도 의견을 제시했지만, 그저 내가 지목할 때만 입을 열 뿐이었다. 그는 피부가 굉장히 새하얬고 얼굴이 여드름 범벅이었으며 새까만 머리카락은 전혀 감지 않는 듯 보였다. 교실은 쌀쌀했다. 내 기억에 따르면 그가 외투를 벗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회색이었는지 검정색이었는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품이 넉넉한 겨울용 파카였다. 총격 사건이 일어나기 전만 해도 나는 그가 품이 큰 겨울 코트 속에 숨기고 있던 러시아제 기관단총을 꺼내는 모습을 상상했다. 머릿속으로 그에게 ‘잠재적 총기난사범’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던 것도 기억났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정말로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반면 조앤 그리브는 확실히 기억이 났다. 그녀는 교실 맨 앞자리에 앉았고, 매 수업시간마다 적어도 한 번은 발언을 했다. 쪽지 시험과 에세이 시험 채점이 끝나고 나면 내게 와서 점수가 A-였으면 A로, B+였으면 A-로 올릴 수 있는지 물어보곤 했다. 그해 체조부는 뛰어난 성적을 거두어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기 때문에 나는 조앤이 체조선수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여러 번 타이츠 차림으로 수업에 참석했다. 보통은 그 위에 후드티를 걸쳤고, 책상 위에는 항상 커다란 물병을 놓아두었다. 내가 조앤에 대해 확실히 기억하는 것은 그녀가 관찰자였다는 점이다. 강의를 할 때나 토론 수업을 진행할 때면 조앤은 두 눈을 단단히 내게 고정해두었다. 교실 맨 앞자리에 앉아 내게서 눈을 떼지 않는 유일한 학생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분명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은 아니었다. 내 수업을 듣는 학생들 대부분은 허공이나 상처가 패이고 낙서가 가득한 책상 위를 멍하니 응시하기 마련이었다. 그녀는 필기를 하지 않을 때면 나를 지켜보곤 했다. 그렇다고 교육학의 해묵은 문구 ‘단 한 명의 아이라도 변화시킬 수만 있다면……’처럼 내가 무슨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대신 마치 벌거벗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부활절 연휴 직전, 조앤이 얽힌 이상한 사건이 하나 있었다. 나는 예고 없이 본 쪽지 시험 답안지를 채점해서 돌려주었다. 수업이 끝나자 조앤이 내게 다가왔다. 놀라울 것도 없었다. 나는 내 책상 앞 의자에 앉아 있었고 조앤은 서 있었는데도, 조앤의 키는 앉아 있는 내 키보다 조금 더 큰 정도였다. 그리고 내가 학생들에게 나눠준 앤 섹스턴의 시를 전부 다 읽어야 한다고 확실히 말해주지 않았다면서, 이 쪽지 시험은 전혀 공정하지 않다고 항의했다.
조앤이 그런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도 교실에는 밖으로 나가지 않고 소지품을 챙기고 있는 학생이 한 명 더 있었다. 매디슨 브라운, 그 아이 역시 체조선수였으며 조앤의 친한 친구이기도 했다. 내가 보기에 그 아이는 조앤이 따지는 동안 기다려주려고 일부러 시간을 끄는 것 같았다. 하지만 매디슨은 거대한 배낭의 지퍼를 올리자마자 가방을 한쪽 어깨에 둘러메고 문으로 향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기 직전에 고개를 돌리더니 이렇게 말했다. “조심하시는 게 좋을 거예요, 킴볼 선생님. 조앤 말로는 자기가 선생님한테 홀딱 반했대요.”
나는 그 순간의 당혹감이 진정되기를 바라고 매디슨의 말을 무시하며 두 눈을 굴렸지만, 조앤을 바라보니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처음에는 당혹감 때문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방금 닫힌 문을 바라보는 조앤의 눈을 보니 당시 내가 보고 있던 것은 아무래도 분노에 더 가까웠던 것 같다. 그렇지만 ‘절대 문이 닫힌 교실 안에서 학생과 단둘이 있지 말라’라는 모린 블록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받침대를 괴어놓았다. 내가 자리로 돌아오자 조앤의 얼굴빛은 평소대로 돌아와 있었다.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킴볼 선생님. 매디슨은 쌍년이거든요. 욕해서 죄송해요.”
“둘이 친한 줄 알았는데.”
“누가요? 저랑 매디슨이요? 뭐, 같은 체조부이긴 하지만, 아주 친한 사이는 아니에요. 그리고 아까 걔가 한 말은…… 그러니까 교사치고는 괜찮게 생겼다는 뜻이었어요. 하지만 선생님은 제 취향이 아니에요.”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걱정하지 마.” 나는 극히 부담스러운 이번 대화가 어서 끝나기를 바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번 시험이 좀 부당하긴 했으니까 이렇게 하면 어떨까? 오늘밤에 섹스턴의 시 〈내 인생의 방〉의 숨겨진 의미에 대해 몇 문장 적어서 제출하면 쪽지 시험 성적을 올려주도록 하마.”
“감사해요. 정말 감사해요.” 조앤은 신발을 신은 채 살짝 뛰어오르더니 교실을 나섰다.
2주 후, 매디슨 브라운이 바로 그 교실 바닥에 쓰러진 채 피를 흘리고 있을 때 제임스 퍼솔은 한 손에 총을 든 채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1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그 광경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꼼짝할 수가 없었다. 이윽고 제임스는 총을 들어 올려 자신의 가슴, 그러니까 품이 넉넉한 겨울용 파카에 총구를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그 사건의 처음부터 끝까지, 그러니까 제임스가 파카 깊숙이 숨겨놓은 총을 꺼낸 순간부터 그가 매디슨의 옆 바닥에 쓰러지는 순간에 이르기까지 걸린 시간은 총 2분 남짓. 어쩌면 그보다 더 짧은 시간이었을 수도 있었다. 그 2분 동안 시간은 구역질이 날 정도로 정속을 준수하며 흘러갔다. 총이 등장하고 나서도 나와 수업을 듣던 학생들 모두가 그 총의 존재를 알게 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렸다. 그때 나는 학생들에게 앞으로 있을 대중 연설 과제에서 각자 모의 졸업생 대표 연설을 해야 한다고 알려주고 있었다. 똑같은 연설을 스물네 번이나 듣는 일에는 관심이 없으니 창의적으로 연설문을 작성하라는 말을 하던 차였다. 그때 제임스가 “전부 바닥에 엎드려!”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나도 무슨 농담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전통에서 지극히 벗어난 방식으로 졸업 연설을 시연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가 한 손에 총을 든 채 앉아 있던 책상 의자 위로 올라가자 학생들 절반 정도가 쓰러지듯 책상 아래로 몸을 숨겼다. 그리고 미시 로버트슨이라는 여학생은 큰 소리로 흐느끼기 시작했다. 내가 그 이름을 기억하는 이유는 그녀가 현재 지역 방송국에서 기상 예보 아나운서로 일하고 있어서다.
“전부 엎드리라는 말 못 들었어?” 그가 한층 커다란 소리로 말하자 남은 학생들 모두 바닥에 주저앉았다.
나는 수업 중 보통 그렇듯이 내 책상 앞에 몸을 기대고 서 있었다. 두 손을 앞으로 내밀며 “제임스, 얘기 좀 하자.” 같은 말을 했던 기억이 났다.
내가 이렇게 말하자 제임스는 교실 저편에 있는 나를 바라보았다. 그는 새까맣고 기름진 숱이 무성한 머리카락 아래로 눈을 커다랗게 뜨고 있었다. 나는 다시 말을 건네려 입을 열었다가 금방 다물어버렸다. 만약 내가 다시 한번 상황을 진정시키려는 시도를 한다면 그가 나를 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결정하자, 바닥에 주저앉은 다른 학생들처럼 조용히 있기로 결정하자, 내 몸의 화학적 성질이 바뀌어버렸다. 그 상황을 설명할 더 나은 설명이 떠오르지 않는다. 뼈가 있던 자리는 텅 비어 버렸고, 장기들은 액체화되었다. 마치 내 심장을 꺼내 제임스 퍼솔에게 바친 것처럼 가슴이 뻥 뚫려버렸다.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어 버렸다.
그는 책상에서 내려와 총을 빙글빙글 돌리면서 몸을 숙이고 있던 학생들 사이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어느 것을 고를까요, 알아 맞혀봅시다.” 불안하게 떨리고 비현실적으로 들리는 목소리였다. 심지어 먼지투성이 동굴 속에 몸을 숙이고 있는 나한테도 그의 말이 진심으로 들리지 않았다. 비록 사전에 다른 학생들을 위협하겠다고 결심했을지라도 사실은 그저 이 모든 것을 끝내고 싶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는 교실 앞으로 걸어와 내가 있는 곳에서 고작 1, 2미터 떨어진 곳까지 다가왔다가 몸을 돌려 작은 보폭으로 몇 걸음 움직였다. 그리고 커다란 배낭을 끌어안은 채 공처럼 몸을 웅크리고 있는 매디슨 브라운을 내려다보며 걸음을 멈췄다. 그가 총을 들어 매디슨을 겨냥하며 떨리는 오른손을 왼손으로 받치자 나는 그가 총을 쏘려 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지금껏 숨어 있던 책상을 박차고 나가 그의 가슴을 끌어안고 팔을 위로 젖힌 다음 몸을 흔들어 총을 떨구고 그를 리놀륨이 깔린 딱딱한 바닥에 쓰러뜨리는 내 모습을 그려보았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행동하는 대신 그가 매디슨 브라운에게 총알을 두 방 박아넣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심지어 매디슨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마치 제임스가 총을 쏘기 전에 이미 죽어버린 것만 같았다.
나는 계속해서 제임스 퍼솔을 바라보았다. 그는 꼭 총을 파카 안에 다시 넣는 듯한 동작을 취하다가 방아쇠를 당겼다. 제임스는 매디슨의 옆 바닥에 쓰러졌다.
나는 그날 이후 천 번도 넘게 기억을 되짚어보았다. 그리고 더 이상 세부적인 기억을 확신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뭐라도 더 시도하려 했다면 상황은 더 악화될 수도 있었다. 이를 충분히 자각하고 있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내가 그 상황에서 실패하고 말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 사실을 떨쳐버릴 수는 없었다. 그래, 더 악화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당시 상황은 이미 충분히 심각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사생활 속 위기에 빠진 조앤 웨일런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인물로 나를 지목해서 찾아왔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나는 항상 그 교실에 있던 학생들이 나를 한낱 평범한 교사로, 더 나아가 그날을 그들 인생 최악의 순간으로 만들어버린 어른으로 기억할 것이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조앤은 나를 다르게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그 이유가 궁금했다.
4장
조앤
월요일 저녁 메뉴는 이름 모를 닭고기에 햄과 치즈를 곁들인 음식이었다. 조앤은 저녁식사를 마치고 혹시 리처드를 찾을 수 있을까 싶어 리조트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동시에 그의 사촌형 두에인을 피했다. 식당에서 저 멀리 있는 테이블에 둘이 함께 앉아 있는 모습을 보았지만 의식적으로 둘 중 누구와도 절대 눈이 마주치지 않도록 행동했다.
두에인이 해변에서 조앤을 덮치려 했던 지난 토요일 밤 이후, 조앤은 두에인에게 복수하고 싶다는 생각에 계속 사로잡혀 있었다. 저녁식사 내내 부모님과 언니가 이튿날 경치 좋은 곳에서 드라이브할 계획을 짜고 있는 사이, 그녀는 두에인이 자신을 붙들었을 때 팔 안쪽에 남긴 욱신거리는 멍 자국을 의식하며 어떻게 복수를 할지 머리를 짜내고 있었다. 만약 그가 다시 한번 말을 걸기만 한다면 꼭 원숭이처럼 생겨서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난다고 해줄 작정이었다. 조앤은 온 힘을 다해 그의 사타구니를 걷어차는 상상을 했고, 심지어 그보다 더 심한 짓, 예컨대 버터나이프로 그의 한쪽 눈을 도려내는 행위 같은 상상에까지 나래를 펼쳤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한편으로 기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역겹기도 했다. 감정이 이상하게 뒤섞여버렸다. 조앤에게는 언제나 적이 생길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조앤은 두에인의 너드 사촌동생 리처드를 찾아 리조트 입구에 갔다가 바 안까지 들어가 보았다. 그 바는 미성년자도 입장이 허용되어 탄산음료를 마실 수 있는 곳이었다. 큰 식당 옆에는 오락실이 있었다. 길다랗게 뻗은 좁은 방 안에는 테이블 축구 게임대, 핀볼 머신 두 대, 오래된 비디오 게임기 두 대가 놓여 있었다. 그곳에는 아빠와 함께 온 어린 남자애 둘을 제외하면 아무도 없었다. 아이 한 명은 의자 위에 올라서서 전원이 켜져 있지도 않은 핀볼 머신을 세게 후려치고 있었다.
조앤은 다시 로비로 돌아가 빈 의자가 있는지 살펴보았다. 하지만 어떤 나이 든 포크 가수가 로비 구석에 자리를 잡고 마르가리타 칵테일에 대한 노래를 부르고 있어서 로비는 관객들로 꽉 차 있었다. 그녀는 작은 선물 가게가 있는 곳으로 가서 문고판 책들이 진열된 가판을 빙글빙글 돌려보다 문득 리조트 안 어딘가에 도서관이 있다고 했던 언니의 말을 떠올려냈다. 조앤은 만약 리처드가 리조트 안에 있다면 아마도 그곳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보다 나이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 프런트 직원에게 가서 도서관이 어디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 여자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가 대답했다. “아, 무료 도서실 말씀이시군요. 3층까지 올라가셔야 해요.”
“지금 열려 있나요?”
“아, 그럼요. 제가 알기로는 항상 열려 있어요.”
조앤은 계단을 타고 리조트 3층으로 올라갔다. 그곳에서는 곰팡이 냄새가 심하게 풍겼고 먼지도 눈에 띄게 내려앉아 있었다. 조앤은 안쪽에 조명이 켜져 있는 도서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