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국민지
연우와 키위
쇠박새
블랙
최고남 회장
엄마
아빠
트롤
컴퍼스 회사 빌딩 위에 둥근 무지개가 떴다. 시민들은 모두 멈춰 서서 무지개를 올려다보았다. 무지개 안에서는 최고남 회장이 찬란한 빛을 뿜어내며 걸어 나왔다. 실제보다 더 생생한 5D 광고였다.
“악마도 한번 떨어지면 영원히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구렁텅이, 무저갱! 컴퍼스가 전설 속 무저갱을 만들어 냈습니다. 지구의 쓰레기를 깨끗이 처리해 줄 4차원 쓰레기장, 무저갱을 소개합니다!”
최고남 회장이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외치자, 뒤쪽에서 홀로그램으로 은빛 순간 이동 장치가 나타났다.
“낡고 쓸모없는 것들은 이제 4차원 쓰레기장, 무저갱으로!”
인기 아이돌이 등장해 최고남 회장과 나란히 소리쳤다.
“마구 쓰고 버려도 쓰레기 걱정 없는 세상! 컴퍼스의 놀라운 최첨단 기술이 여러분의 꿈을 이루어 드립니다.”
최고남 회장이 힘주어 말했다. 이어서 순간 이동 장치 뒤로 4차원 쓰레기장 무저갱의 검은 입구가 악마의 입처럼 벌어졌다. 시민들은 모두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무저갱 속으로 엄청난 쓰레기가 빨려 들어가는 시뮬레이션 장면은 너무 생생해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새로시 시민들은 마음이 들떴다. 바로 내일이 무저갱 개발을 축하하기 위해, 새로시의 낡은 학교를 순간 이동시키겠다고 최고남 회장이 약속한 날이기 때문이다.
새로시에서 학교는 이제 쓰레기나 마찬가지였다. 배워야 할 정보나 지식은 언제든 최첨단 기기로 검색할 수 있고, 해야 할 일도 AI 로봇들이 척척 해 주는 시대다. 그러니 굳이 학교 건물에 모여 공부할 필요가 없다며, 시민 투표로 학교 폐지를 결정했다.
아이들이 다니지 않는 학교는 귀신이 나올 것처럼 으스스하게 변해 갔다. 운동장에는 잡풀이 우거지고 한쪽 구석에 쓸쓸히 선 아름드리 나무들만 크게 자라고 있었다. 시민들은 신기술로 지은 최첨단 건물과 달리 벽돌로 지어 허름해진 학교를 4차원 쓰레기장 무저갱으로 보낸다고 하니, 환영하고 나섰다. “최고남 회장이 새로시의 시장이 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지구의 골칫거리인 쓰레기 문제만 잘 해결한다면, 대통령까지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4차원 쓰레기장이라니 굉장하지 않아?”
“다른 차원에 쓰레기장을 만들다니, 놀라워!”
“우린 쓰레기로부터 자유로워진 거야.”
시민들은 희미하게 사라지는 무지개 홀로그램을 아쉬운 듯 바라보며 기분 좋게 발걸음을 옮겼다.
최고남 회장은 회장실 소파에 앉아 시민들의 반응을 느긋하게 바라보았다. 드론이 곳곳을 날며 촬영한 영상이 모니터로 전송되고 있었다.
“울라!”
“부르셨습니까, 회장님!”
AI 비서 로봇 울라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내일 초등학교를 무저갱으로 보내는 작업은 잘 준비되고 있겠지?”
“네, 회장님! 내일 오전 10시에 새로시의 늘꿈 초등학교를 무저갱으로 보낸다는 광고를 내보내고, 교문 앞에 접근 금지 광선 띠를 설치했습니다. 경찰에서도 협조하겠다고 합니다. 혹시라도 사람이 광선 띠를 넘어가면 큰일이니까요.”
“그렇지! 만약 사고가 생기면 새로시 시장 자리는 물거품이 될 거야. 철저히 준비하도록!”
“네, 잘 알겠습니다!”
울라는 예의 바르게 인사하고 회장실을 나왔다. 비서실에서 모니터로 순간 이동 장치를 점검한 뒤, 축제를 돋보이게 할 선물 이벤트도 꼼꼼하게 챙겼다.
다음 날, 아홉 시부터 시민들이 하나둘 학교 앞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늘꿈 초등학교 교문에 붉은빛 광선으로 띠가 둘러 있었다. ‘위험’이라는 경고문이 여기저기 홀로그램으로 떠 있고, 경찰들이 촘촘히 지키고 있어서 긴장감까지 감돌았다. 준비는 완벽해 보였다.
전 세계에서 몰려온 기자들이 취재에 열을 올렸다. 드론이 공중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시민들은 들뜬 마음으로 학교 운동장에 설치한 순간 이동 장치를 지켜봤다.
“엄마, 저 느티나무도 사라지는 거야?”
연우가 사람들 틈에서 불안한 듯 물었다. 품에는 집고양이 키위가 안겨 있었다. 오늘따라 키위는 계속 야옹거리며 마치 자기도 데려가라는 듯 연우를 졸졸 쫓아다녔다. 평소와 다른 키위를 혼자 둘 수 없어 연우가 안고 온 것이다.
학교 운동장에는 500년이 넘은 느티나무가 있다. 그 느티나무의 첫 번째 줄기가 갈라지는 곳에 아빠가 만든 초록 새집이 있다. 쇠박새가 날아와 초록 새집에 알을 낳았을 때, 아빠와 연우는 새를 놀라게 하지 않으려고 멀리서 망원경으로 오래오래 느티나무를 살펴봤다.
“학교 건물과 운동장에 있는 모든 것이 순간 이동된다고 하던데, 정확히는 모르겠구나.”
엄마는 사람들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는지 까치발로 기웃거리면서 무심하게 말했다.
“느티나무에 새집이 있어. 어쩌면 지금쯤 아기 쇠박새가 자라서 다시 날아왔을지도 몰라.”
연우가 걱정스럽게 말했지만 엄마는 귀기울여 듣는 것 같지 않았다. 그때, 하늘에서 소리가 났다.
“새로시 시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드디어 기다리던 순간이 왔습니다! 바로 오늘, 오래되어 낡고 쓸모없는 학교를 4차원 쓰레기장 무저갱으로 보냅니다. 순간 이동 과정은 대단히 위험하오니 안전 규칙을 꼭 지켜 주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컴퍼스의 비행 로봇들이 하늘을 오색구름으로 수놓았다. 구름 사이로 컴퍼스의 로고가 반짝거렸다. 그 뒤를 이어 ‘세계 최고 기업 컴퍼스’라는 문구와 함께 최고남 회장의 모습이 홀로그램으로 나타났다. 사람들은 모두 손뼉을 쳤다. 엄마도 열렬하게 손뼉을 쳤다.
운동장 한가운데에 우주 발사대처럼 순간 이동 장치가 세워졌다. 순간 이동 장치와 학교가 광선 띠로 복잡하게 연결된 모습은 화려하고 웅장했다. 순간 이동의 모든 과정을 중앙 제어 장치가 원격으로 관리한다는 설명에 사람들이 더욱 감탄했다.
“자, 여러분! 새로시의 밝은 미래를 위하여 다 같이 카운트다운합시다!”
우렁찬 소리가 하늘에서 퍼지자, 다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10! 9! 8! 7! 6! 5! 4!
숫자를 하나씩 부를 때마다 순간 이동 장치 바로 위쪽 하늘에 작고 검은 회오리가 피어올랐다. 순간 이동 장치에서 나온 입자 광선이 4차원 무저갱의 문을 연다는 설명이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3! 2! 1!
1까지 세자 작은 회오리들이 거대한 하나의 회오리로 합쳐지면서 광고에서 보았던 무저갱의 입구가 시커멓게 벌어졌다. 운동장에 설치된 은빛 순간 이동 장치는 점점 빛에 휘감겼다.
야옹!
갑자기 연우의 품에 있던 키위가 땅으로 폴짝 뛰어내렸다. 정말 순간적으로 벌어진 일이어서 손쓸 틈이 없었다.
“키위 돌아와!”
연우가 정신없이 소리치며 키위를 쫓아 달리는 그 순간, 모두가 한목소리로 외쳤다.
제로!
순간 이동 장치가 작동되면서 순식간에 학교 건물이 흔적 없이 사라졌다. 다음으로 운동장에 있던 놀이 기구들과 여기저기 선 작은 동상들과 500년이나 된 느티나무도 사라졌다. 학교가 있던 곳은 흙먼지까지 모두 사라진 텅 빈 공터가 되었다. 그 위로 컴퍼스 로고가 박힌 이벤트 선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우르르 공터로 뛰어들어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엄마는 보라색 선물 상자를 잡았다. 홀로그램 포장지가 반짝거리며 사라지고, 그 안에서 작은 강아지 로봇이 나와 엄마 손바닥 위에서 꼬리 치며 멍멍 짖었다.
“어머, 연우야! 네가 갖고 싶어 하던 AI 강아지야! 정말 귀엽다! 그치?”
엄마는 영문도 모르는 채 기뻐하며 옆을 돌아봤다. 하지만 연우는 보이지 않았다. 엄마는 눈을 끔벅거렸다. 연우와 키위가 학교와 함께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