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미석
서양 고전 전문 번역가이자 편집자.
어려서부터 호기심이 많아 이야기 속 미지의 세계를 탐닉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책과 가까워졌고, 독후감을 쓰며 글쓰기에 자신감을 얻었다.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에서 문학을 공부하고 졸업 후 종합상사에 입사해 무역, 외환, 홍보, 번역 등 다양한 업무를 경험했다.
정말 좋아하는 일이 무엇일까 찾고 고민하다가 접어 두었던 꿈을 기억해 내고 번역가의 길로 들어섰고, 어린 시절 무척이나 좋아했던 그리스·로마 신화와 북유럽 신화 등을 번역했다. 첫 작품 『아서 왕과 원탁의 기사』를 시작으로 『칼레발라』, 『러시아 민화집』 등 서구의 옛 이야기들을 거쳐 『로빈 후드의 모험』, 『아이반호』, 『벤허』 등 역사 소설로 작업의 지평을 넓혀 갔고 『성전 기사단과 아사신단』, 『호모 쿠아에렌스』, 『루터의 밧모섬』, 『불멸의 서 77』 등 서구 문화를 다룬 다양한 도서를 번역하면서 책 전반에 대한 관심이 커져 『인포그래픽 성경』, 『장서표 100』을 비롯한 책 몇 권을 도맡아 편집하기도 했다.
20년 넘게 다양한 작품을 옮기고 섭렵하며 쌓은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 지식을 더 많은 독자들과 나누고 싶어서 유래 깊은 이야기에서 탄생한 영어 표현 366개를 엮어 이 책을 펴낸다.
© 서미석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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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두기
1. 본문 속 성경 인용문은 개신교와 가톨릭의 여러 판본을 비교·대조하여 입말에 조금 더 가까운 쪽을 택하고,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저자가 풀어 쓰기도 했다.
2. 성경 각 책의 제목과 인명은 가톨릭 성경에 따라 표기했다.
들어가는 말
혹시 ‘head on a plate’와 ‘sow dragon’s teeth’가 무슨 뜻인지 짐작이 가시는지?
‘쟁반에 담긴 머리’와 ‘용의 이빨을 뿌리다’라는 글자 그대로의 의미만으로는 ‘가혹한 처벌’과 ‘화근거리를 만들다’라는 속뜻을 유추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어구를 구성하는 단어들의 원래 뜻과는 한참 동떨어진 채 하나의 관용어로 굳어진 표현들을 이해하려면, 그 유래에 얽힌 이야기와 배경을 알아야 한다. ‘head on a plate’는 성경에 나오는 세례자 요한의 참수 사건과 관련 있는 표현이고, ‘sow dragon’s teeth’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테베의 건설자 카드모스의 일화에서 유래한 말이다.
이 책은 영어 관용어 표현의 유래와 배경을 알아보며 그 안에 담긴 서구의 사고방식과 문화를 엿볼 수 있도록 이끄는 교양서다. 그리스·로마 신화를 비롯하여 서구의 신화·성경·문학·역사와 관련된 책을 오랫동안 번역하고 편집하면서 고유명사나 특정 용어 등이 등장하면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주를 달곤 했는데, 그런 작업이 이어지며 서양의 고사성어와 관련된 표현을 설명하는 책을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양의 관용 표현을 익혀 두면 작품을 읽을 때 이해의 폭이 커질 뿐 아니라 덤으로 교양도 키울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동양 문화권에 속한 우리가 불교에서 유래한 표현이나 중국의 고사성어에 익숙하듯이 서양에는 서양 문화를 이루는 두 축인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에서 유래한 표현이 많다. 특히 중세를 거치며 그리스도교가 생활 전반에 스며들었을 뿐 아니라 지식을 보존하고 전수하는 역할까지 맡게 되면서 성경에서 유래한 표현이 자연스레 어휘에 녹아들었다. 영화나 게임을 비롯한 대중문화에서도 신화와 성경에서 유래한 모티프들이 끊임없이 차용되며 변주되고 있다.
중세 이후에는 셰익스피어나 월터 스콧 같은 대문호의 작품에 등장하여 유명해진 표현도 생겨났다. 작가가 새롭게 만들어 유명해지기도 하고 구전으로 떠돌던 표현이 작품 속에서 알맞게 쓰여 회자되며 널리 퍼지기도 했다. 또한 지식이 상류층의 전유물에서 벗어나는 근대로 오면서 여러 단계를 거쳐 형성된 표현도 있다.
이렇게 신화·성경·문학·역사에서 유래해 습관처럼 쓰여 온 표현들을 매일 하나씩 이야기처럼 읽으며 익힐 수 있도록 366개를 추려 엮고, 실제 말과 글에서 어떻게 쓰이는지 알 수 있는 예문과 함께 다양한 이야기를 실었다. 신화·성경·문학에서 기원해 출전이 명확한 표현은 배경이 된 이야기를 다루거나 생성될 당시의 문장을 소개했고, 역사에서 유래한 표현은 어원이나 형성 과정을 살피며 어떤 식으로 변화하며 쓰이게 되었는지 설명했다.
개인적 차원에서든 사회적 차원에서든 구사하는 어휘가 풍부해질수록 더 깊은 차원의 사고와 소통이 가능해진다. 한 공동체의 문화가 발전하고 타문화와 교류하면서 새로운 어휘가 유입되면 그 사회의 언어는 더욱 풍부해지고 사고도 확장된다. 지금도 어디선가 새로운 표현이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특정 집단에서 쓰이지만 그렇다고 이 말들이 모두 살아남지는 못한다. 많은 사람의 입에 계속하여 오르내릴 만큼 깊은 울림을 주는 표현만이 시간이라는 체로 걸러져 어휘의 저장고에 담기게 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말은 한 민족의 얼과 혼이 담긴 문화와 역사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고, 그렇기에 짧은 관용 표현 하나를 통해서도 그 안에 녹아 있는 다양한 문화와 역사를 배울 수 있다.
이 책을 쓰면서 영어를 이렇게 배웠더라면 좀 더 재미있게 공부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강하게 들었다. 그러니 영어 공부라는 말만 들어도 단어와 숙어를 달달 외우기부터 해야 한다는 부담을 느끼는 분이 있다면 차례와 날짜에 구애받지 말고 손에 집히는 대로 페이지를 넘기며, 이야기 읽듯 재미있게 그들의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고 흥미와 관심을 키워 가길 권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무언가 알게 되면 관심이 가고 거기서부터 더 깊이 알고자 하는 열망이 생기는 법이다. 이 책이 그 소중한 열망을 키우는 작은 마중물이 되길 바란다.
1 ° 1
실제로 입증해 보라
Jimmy bragged so much that he had mastered martial arts in the army that I asked him to compete against me saying, “Here is Rhodes, jump here!”
지미가 군대에서 무술을 익혔다고 자랑하기에 내가 “어디 제대로 입증해 보시지!”라고 말하며 겨뤄 보자고 했다.
라틴어 ‘hic Rhodus, hic salta’여기가 로도스다, 여기서 뛰어라에서 유래한 이 말은 『이솝 우화』의 허풍쟁이 이야기에 나온 표현이다. 로도스는 그리스 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이오니아 남방에 있는 섬으로, 이곳의 제우스 신전에서 올림피아 제전이 열렸다. 당시 제전에서는 경주, 투창, 투원반, 멀리뛰기, 레슬링 다섯 종목을 겨루었다.
어느 날 한 허풍쟁이 청년이 외국 각지를 여행하고 고향에 돌아와 친지들에게 둘러싸여 그동안의 견문과 경험담을 과장해 가며 신나게 늘어놓았다. 마침 로도스에 갔을 때의 이야기가 나오자, 자신은 로도스에서 그 누구보다 멀리뛰기를 잘했다고 자랑하며 자기 말이 믿기지 않는다면 그곳 사람들에게 물어보라고 했다. 그러자 한 사람이 나서더니 “그 말이 정말이라면 증인 따위는 필요 없다, 여기가 로도스라고 생각하고 직접 뛰어 보라”고 요구했다. 큰소리치던 허풍쟁이 청년은 아무 말도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이후 이 우화에서 유래한 이 표현은 ‘말로만 큰소리치지 말고 실제 행동으로 입증해 보라’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1 ° 2
좋은 와인은 간판이 필요 없다, 내용이 좋으면 선전이 필요 없다
The product I’ve invented is so excellent that it needs no ad campaign, just as good wine needs no bush.
좋은 와인은 간판이 필요 없듯이 내가 발명한 제품은 너무 훌륭해 별다른 광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
‘좋은 것은 굳이 광고하지 않아도 입소문으로 알려지게 된다’는 의미의 이 속담은 셰익스피어가 『뜻대로 하세요』 4막 5장에서 다음과 같이 쓴 뒤로 유명해졌다. “If it be true that good wine needs no bush, ‘tis true that a good play needs no epilogue; yet to good wine they do use good bushes, and good plays prove the better by the help of good epilogues.”좋은 포도주에 간판이 필요 없는 것이 사실이라면, 좋은 연극에 에필로그가 필요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좋은 포도주에 좋은 간판을 쓰듯 좋은 연극은 좋은 에필로그의 도움으로 훨씬 더 훌륭해진다. 이 표현의 기원은 영국의 선술집들이 담쟁이덩굴bush이나 나뭇가지를 간판처럼 걸어 놓았던 풍습에서 찾아볼 수 있다. 로마 시대부터 담쟁이덩굴은 술의 신 바쿠스에게 바쳐진 식물로 신성시되었고, 아무 곳에서나 잘 자라는 강인한 식물이기 때문에 술을 팔고 있다는 표시로 문 위에 걸어 놓았다고 한다. 지금도 글로스터와 워릭 등지에서는 축제 때에 간판 대신 담쟁이나 꽃이나 나뭇가지 다발을 걸어 술을 판다는 사실을 알리는 풍습이 남아 있다. 그래서 ‘good wine needs no bush’는 ‘술이 좋으면 굳이 간판을 걸어 놓지 않아도 사람들이 알음알음 찾아온다’는 의미가 되었다.
1 ° 3
(계획 따위를) 중간에 바꾸다, (지지 대상을) 바꾸다
We were about to close on the house, and my husband suddenly wanted to swap horses in midstream and look at another property!
우리는 거의 그 집으로 결정할 참이었는데, 남편이 갑자기 마음을 바꾸어 다른 부동산을 보고 싶어 했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강을 건너는 도중에 말을 바꾼다’는 이 표현은 미국의 16대 대통령 링컨이 여러 번 사용했다. 특히 1864년, 이듬해에 있을 재선에서 대통령 후보 지명을 수락하면서 링컨은 “제가 유능해서라기보다 동료 공화당 의원들이 ‘전쟁 중에 후보를 교체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결론지었기 때문입니다”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이때 빗대어 쓴 표현이 “It is not best to swap horses while crossing the river”강을 건너는 중에 말을 바꾸는 것은 최선이 아니다였다.
이 표현은 1840년에 발표되어 인기를 얻은 우스꽝스러운 이야기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측된다. 한 남자가 암말과 망아지를 데리고 강을 건너다 그만 물에 빠지고 말았다. 경황이 없던 남자는 급류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망아지의 꼬리를 잡고 물속에서 끌려갔지만, 강 건너편에 닿기도 전에 망아지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구경꾼들이 망아지 대신 암말의 꼬리를 붙잡으라고 충고했다. 그러자 남자는 “지금은 말을 바꿀 때가 아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1 ° 4
우유부단한 인물, 미적지근한 사람
I feel stuffy when I see Paul. He always hesitates as buridan’s ass in the face of important matters.
폴을 보면 답답한 마음이 든다. 그는 언제나 중요한 문제 앞에서 우유부단하게 망설인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뷔리당의 당나귀’라는 뜻의 이 말은 14세기 프랑스의 철학자 장 뷔리당이 도덕 결정론을 풍자하며 사례로 가정한 역설에서 유래했다. 어느 날 길을 가다 지쳐 쓰러지기 일보 직전인 당나귀가 건초 더미와 물동이가 있는 곳에 이르렀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당나귀는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어느 것을 먼저 먹어야 할지 선택하지 못하고 망설이기만 하다가 결국 배고픔과 갈증으로 죽고 만 것이다. 이로부터 ‘망설이며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사람이나 상황’을 ‘뷔리당의 당나귀’라고 부르게 되었다. 장 뷔리당 이전에도 비슷한 개념에 대해 논의한 철학자들이 있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는 『천체에 관하여』에서 지구가 둥글고 사방에서 가해지는 힘이 같기 때문에 움직이지 않는다는 소피스트의 견해를 조롱하며 이와 유사한 비유를 사용했다. “……a man, being just as hungry as thirsty, and placed in between food and drink, must necessarily remain where he is and starve to death.”음식과 술 사이에 끼어 똑같이 갈증과 허기에 시달리는 사람은 그 자리에서 굶어 죽을 것이 분명하다.
1 ° 5
서먹서먹한 분위기를 깨다, 실마리를 찾다
The teacher made the students laugh by making a joke to break the ice on the first day of class.
선생님은 학기 첫날 어색한 분위기를 깨려고 농담으로 학생들을 웃겼다.
고대에는 무역으로 성장한 도시들이 모두 강 기슭에 건설되었으므로 추운 겨울이 되면 바깥 세계로 나가는 관문이 얼어 버려 곤란을 겪었다. 그래서 귀중한 화물을 실은 큰 배가 드나드는 길을 내도록 얼음을 깨는 작은 배가 개발되었다. 1579년 토머스 노스가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을 번역하면서 ‘break the ice’얼음을 깨다라는 말을 은유적 의미로 처음 사용했다. “To be the first to break the Ice of the Enterprize.”최초로 그 모험의 길을 트는 선구자가 되다. 이후 강화된 선체와 강력한 엔진을 장착한 전문가용 쇄빙선이 극지방 탐험에 이용되면서 이 표현은 ‘새로운 길을 개척하거나 낯선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만든다’는 현재의 의미로 쓰이기 시작했다. 마크 트웨인은 1883년 『미시시피강의 생활』에서 사람들이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 나가는 상황에 ‘ice-breaker’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They closed up the inundation with a few words─having used it, evidently, as a mere ice-breaker and acquaintanceship-breeder─then they dropped into business.”그들은 몇 마디 말로 홍수에 대한 이야기를 끝냈다─그 화제는 어색한 분위기를 깨고 친밀감을 높이려고 사용한 게 틀림없다─그러고는 사업 이야기로 넘어갔다.
1 ° 6
어려운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다, 쾌도난마
The new CEO cut the Gordian knot that was strangling the company.
신임 CEO는 회사를 괴롭히던 난제를 단번에 해결했다.
‘대담한 방법을 써야만 풀 수 있는 어려운 문제나 작업’을 의미하는 이 표현은 고대 그리스의 전설에서 유래했다. 소아시아의 프리기아인들은 “이륜마차를 타고 오는 사람이 왕이 되리라”는 신탁을 받았는데, 마침 가난한 시골 농부 고르디우스가 짐마차를 타고 광장에 나타났다. 그러자 사람들은 고르디우스를 왕으로 추대했고, 즉위를 기념하는 의미에서 고르디우스는 타고 왔던 마차를 신전에 끈으로 매듭을 지어 단단히 묶어 놓았다. 이것이 바로 ‘고르디우스의 매듭’the Gordian knot이다. 매듭이 워낙 복잡했으므로 그 매듭을 푸는 사람이 아시아 온 땅을 지배하게 되리라는 전설이 퍼져 나갔고, 많은 사람이 풀어 보려고 도전했으나 성공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러다 마침 아시아 원정길에 오른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프리기아를 지나다 그 이야기를 듣고 매듭 풀기에 도전했지만 제대로 되지 않았다. 한참을 궁리한 끝에 알렉산드로스는 차고 있던 칼을 뽑아 매듭을 끊어 버렸다. 이 일화에서 유래한 ‘고르디우스의 매듭’은 ‘기존의 구태의연한 방식이 아닌 혁신적인 방식으로 접근해야 풀 수 있는 복잡한 문제’를 의미하고, ‘cut the Gordian knot’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다는 ‘난제를 단번에 해결하다’라는 뜻으로 쓰인다.
1 ° 7
눈에 띄지 않는 위험, 불의의 습격, 숨은 적
We used to be friends, but who knew he’d turn out to be such a snake in the grass?
우리는 한때 친구였는데, 그가 그렇게 믿을 수 없는 놈인 줄 누가 알았겠어?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풀숲에 숨어 있는 뱀’이라는 뜻의 이 표현의 개념은 고대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전원시』에서 유래했다. “Qui legitis flores et humi nascentia fraga,/ frigidus, o pueri, fugite hinc, latet anguis in herba.”정원 근처에서 꽃과 딸기를 따는 너희 소년들아, 여기서 도망치거라, 풀숲에 섬뜩한 뱀이 숨어 있으니. 뱀이 유혹이나 교활함의 표징이 된 것은 일찍이 구약성경의 『창세기』에 나오는데, 뱀은 아담과 하와를 꼬드겨 선악과를 따 먹고 에덴동산에서 추방되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snake’라는 단어의 기원은 ‘기어가다’라는 의미의 인도-유럽어근 ‘(s)nēg-o’에서 유래했다. ‘기어가다’라는 뜻의 옛 고지대 독일어 ‘snahhan’, 고대 노르웨이어 ‘snakr’, 고대 영어 ‘snaca’가 모두 여기서 파생된 말로, 중세 무렵에는 ‘snaca’가 ‘뱀’이라는 뜻으로도 쓰이게 되었다. 뱀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는 아마도 풀숲에 숨어 있다 은밀하게 다가가 먹이를 덮치는 습성 때문에 생겨났을 것이다. 오랫동안 문자적 의미와 비유적 의미로 모두 쓰인 ‘snake in the grass’는 오늘날 ‘겉으로는 친한 척하지만 믿을 수 없고 기만적인 사람’을 일컫는 말이 되었다.
1 ° 8
바벨탑
Mass production based on genetic manipulation can be termed as a modern version of the Babel tower.
유전자 조작에 기반한 대량 생산은 현대판 바벨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이 쌓아 올린 욕망과 교만’의 은유적 표현으로 흔히 쓰이는 이 말은 구약성경에서 유래했다. 『창세기』 11장에 바벨탑 건설에 얽힌 이야기가 나온다. 대홍수 이후에 세상에는 언어가 하나뿐이어서 모든 사람이 같은 말을 썼다. 동쪽에서 퍼져 나가던 사람들은 신아르 지방의 한 벌판에 자리를 잡고, “성읍을 세우고 꼭대기가 하늘까지 닿는 탑을 세워 이름을 날리자. 그렇게 해서 우리가 온 땅으로 흩어지지 않게 하자”고 했다. 그들이 세운 성읍과 탑을 본 하느님은 서로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뒤섞어 놓고는 그들을 그곳에서 온 땅으로 흩어 버렸다. 그래서 도시가 완성되지 못한 채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그곳을 ‘바벨’이라 부르게 되었다. 『창세기』 구절에서 보듯이 사람들의 말이 뒤섞여 혼란스럽게 되었다는 사실을 근거로 ‘bālal’뒤섞다, 혼란스럽게 하다이라는 동사에서 ‘혼란’을 의미하는 ‘Babel’이 유래했다.
1 ° 9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고 있니?
You’ve been awfully quiet tonight, honey—a penny for your thoughts?
당신 오늘 밤은 너무 조용하네요.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고 있죠?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네 생각을 사로잡고 있는 1페니’라는 뜻의 이 표현은 페니라는 화폐와 관련이 있다. 페니는 영국에서 통용되던 은화로 757년경에 처음 만들어졌다. 14세기 에드워드 3세 시대에는 1실링의 1/12의 가치였는데, 구매력 측면에서 보자면 오늘날 2달러에서 4달러쯤 되지만 가장 중요하게 유통되던 동전이라서 매우 귀하게 여겨졌다. 이처럼 페니는 영국에서 긴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표현도 오래전에 생겨났을 것이다. 하지만 기록으로 처음 등장한 것은 1535년 무렵 발표된 토머스 모어의 『네 가지 마지막 사안들』이었다. “In such wise yt not wtoute som note & reproch of suche vagaraunte mind, other folk sodainly say to them: a peny for your thought.”사람들은 누군가가 정신을 딴 데 팔고 있는 것처럼 보여 대화에 집중하기를 바랄 때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느냐’고 묻는다. 1546년 극작가 존 헤이우드가 편찬한 『속담 및 경구집』에도 수록될 만큼 유명해진 이 표현은 자주 쓰이다 보니 ‘a penny for them’이라는 축약형도 등장했고, 심지어 ‘penny’라는 한 단어로까지 줄여 쓰기도 했다.
1 ° 10
건배!
I’m drunk, but the night is still young. Bottoms up!
취했어. 하지만 아직 초저녁이잖아. 건배!
18세기와 19세기 영국에는 ‘킹스(퀸스) 실링’이라는 1실링짜리 주화가 있었는데 주로 신병 모집에 사용되었다. 일반 사병의 하루 일당에 해당하는 이 동전을 받으면 입대 신청으로 간주되었다. 당시 영국 해군은 입대 인원을 늘리기 위해 늘 고심하고 있었다. 결국 신병 모집자들은 술집을 찾아 부정한 방법을 쓰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마시는 맥주잔에 몰래 킹스 실링을 떨어뜨린 것이다. 술 취한 남자들은 술잔을 비울 때까지도 실링이 들어 있는 것을 보지 못하거나 동전의 금속성 맛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러나 이미 실링을 받은 것으로 간주되었으므로 술에 취한 채 끌려가서 다음 날 먼바다로 나가는 배 위에서 영문도 모른 채 깨어나곤 했다. 한편 신병 모집자의 술수를 알아차린 술집 주인들은 바닥이 보이는 투명한 술잔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손님들에게 술을 마실 때 실링이 들어 있지 않은지 술잔을 들어 바닥을 확인하라고 상기시켰다. 여기서 ‘바닥을 위로 들라’는 뜻의 ‘bottoms up’이 ‘건배’를 의미하게 된 것이다. 킹스 실링을 사용하는 관습은 1879년에 폐지되었지만, ‘take the King(Queen)’s shilling’킹스 실링을 가져가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입대하다’라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1 ° 11
그럴 만한 이유, 말 못 할 사정
I know you don’t understand my motivation for this decision, but after the dust settles you’ll see that there is a method in my madness.
내가 이렇게 결정한 동기를 이해 못 하겠지만, 사태가 진정되고 나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될 거야.
영어 단어 ‘method’에는 ‘방법’이라는 뜻과 함께 ‘조리, 체계, 질서’라는 뜻이 있다. 즉 글자 그대로라면 ‘어떤 미친 행동이나 무모한 짓의 질서 또는 체계’로 읽히는 이 표현은 셰익스피어가 만들어 낸 말로 1602년작 『햄릿』 2막 2장에 처음 등장했다.
덴마크의 왕이었던 햄릿의 아버지가 잠을 자다 급사하자 왕비인 어머니와 결혼한 숙부가 왕위에 오른다. 유령이 되어 궁에 출몰하던 선왕은 어느 날 햄릿을 만나 자신이 숙부의 모략으로 살해되었다는 사실을 알려 주며 원수를 갚아 달라고 부탁한다. 믿었던 어머니에 대한 배신감과 숙부를 향한 끓어오르는 분노로 안절부절못하던 햄릿은 복수를 결심하고, 적의 경계심을 풀기 위해 일부러 미친 척 행동한다. 왕의 고문인 폴로니우스 경이 햄릿과 대화를 하던 중 그가 미친 원인이 자신의 딸 오필리어 때문이라고 짐작하는 독백에 이 표현이 등장한다. “Though this be madness, yet there is method in it.”이러는 것이 미친 짓이긴 하지만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햄릿의 이런 행동에서 유래한 ‘a method in one’s madness’는 이후 ‘말 못 할 어떤 사정’이나 ‘그럴 만한 이유’를 의미하게 되었다.
1 ° 12
제 무덤을 파다, 자승자박하다, 자기 꾀에 넘어가다
He tried to avoid the difficult situation with weasel words, but he is hoist with his own petard.
그는 교묘한 말로 곤란한 상황을 빠져나가려고 했지만 제 무덤을 파고 말았다.
‘petard’는 오래전 전쟁에서 사용된 장치다. 성문이나 벽의 틈을 폭파시켜 날려 버리는 데 쓰던 공성용 기구로, 금속이나 나무 상자 속에 화약을 가득 채워 폭탄처럼 터트리는 장치였다. 그러므로 ‘hoist with(by) one’s own petard’자기 화약고를 들어 올리다는 ‘자기가 쳐 놓은 덫에 걸린다’는 뜻이다. 이 표현도 셰익스피어가 만들어 『햄릿』(3막 4장)에 처음 사용했다. 햄릿의 숙부는 햄릿을 살해할 목적으로 두 친구를 딸려 햄릿을 영국으로 보내며 영국 국왕에게 햄릿을 죽이라고 쓴 편지를 전달하게 한다. 그러나 햄릿은 중간에 편지를 가로채 내용을 바꾸어 함께 온 친구들에게 앙갚음하고, 그 일을 어머니 거트루드에게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They bear the mandate; they must sweep my way/ And marshal me to knavery. Let it work,/ For ’tis the sport to have the enginer/ Hoist with his own petard; and ’t shall go hard/ But I will delve one yard below their mines/ And blow them at the moon.”그들은 명령을 받고 내게 못된 짓을 하려고 하죠. 그러라지요. 그들이 제 스스로 무덤을 파게 만들 거니까요. 게다가 나는 그들의 무덤을 더 깊이 파서 그들을 달까지 날려 보낼 거예요.
1 ° 13
꼬치꼬치 캐지 말라, 너무 많이 알려고 들면 다친다
I think you offended her by asking such personal questions—curiosity killed the cat, after all.
네가 너무 개인적인 것을 물어봐서 그녀의 기분이 상한 것 같아. 결국 꼬치꼬치 캐묻는 거니까.
영어 문화권에는 ‘a cat has nine lives’고양이 목숨은 아홉 개라는 말이 있다. ‘고양이는 웬만해서는 죽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렇게 목숨줄이 질긴 고양이도 호기심 때문에 죽을 수 있다니 이 속담에는 ‘괜한 호기심을 부리면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경고가 담겨 있다. 이 표현은 영국 작가 벤 존슨이 1598년에 쓴 희곡 『각인각색』에 ‘care killed a cat’근심이 고양이를 죽였다이라는 형태로 처음 등장한다. 중세에는 ‘care’가 ‘걱정’ 또는 ‘슬픔’이라는 의미로 쓰였다. 셰익스피어 역시 1599년에 발표한 희곡 『헛소동』에서 이 표현을 썼다. “What, courage man! what though care killed a cat, thou hast mettle enough in thee to kill care.”대단한 용기로군! 걱정이 고양이를 죽인다지만 그대는 걱정을 죽일 만큼 충분한 기개가 있군. ‘care’가 언제부터 ‘curiosity’호기심로 바뀌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1868년 아일랜드의 한 신문에 “They say curiosity killed a cat once”고양이는 호기심 때문에 죽었다는 말이 있다라는 문장이 등장한 적이 있다. 1909년 오 헨리의 작품에도 언급된 것으로 보아 이 무렵에는 이미 널리 퍼져 있었던 듯하다.
1 ° 14
꿀 먹은 벙어리가 되다, 잠자코 있다
What’s the matter, girl, cat got your tongue?
무슨 일이니, 얘야. 왜 꿀 먹은 벙어리가 됐어?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고양이가 혀를 가져갔다’라는 뜻으로, 주로 아이들이 잘못을 저지르고 아무 말도 못 할 때 어른들이 추궁하듯 쓰는 말이다. 이 표현은 세 가지 기원설이 있지만 모두 확실한 증거는 없다. 가장 오래된 기원은 수천 년 전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관습법이 존재했던 중동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물건을 훔친 도둑에게는 오른손을 자르는 처벌을, 거짓말을 하거나 신성모독을 한 사람에게는 혀를 잘라 왕이 키우는 고양이에게 먹이로 던져 주는 처벌을 내렸다는 데서 비롯되었다는 설이다. 두 번째로, 마녀와 마법사의 존재를 믿던 중세 시대에서 유래했다고 보는 설도 있다. 그때 사람들은 마녀와 마녀가 기르는 검은 고양이와 마주치면 다른 사람에게 발설하지 못하도록 혀를 빼앗겨 벙어리가 된다고 믿었다. 마지막으로 1800년대 영국 해군에서 유래했다고 보는 설도 있다. 당시에는 선원들이 잘못을 저지르면 ‘cat-of-nine-tails’꼬리 아홉 달린 고양이라는 도구로 체벌했다고 한다. 끝에 날카로운 쇠나 뼛조각이 달린 이 아홉 가닥짜리 채찍으로 맞으면 정신을 잃을 정도였으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음은 물론이요, 몸에 고양이 발톱에 할퀸 것 같은 상처가 남았다고 한다.
1 ° 15
소문, 한담, 험담, 세상 이야기
Gossip can be fun to listen to but it is hard to ignore.
소문은 듣기에는 재미있을 수 있지만 무시하기도 어렵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치를 잘하려면 위정자는 민심에 귀를 기울여야 했다. 지금처럼 대중의 의견을 청취할 미디어가 없던 시절에는 중요한 사안에 대한 여론을 파악하기 위해 신하들을 각 지역의 선술집과 주점 등으로 내보냈다고 한다. 그리고 사람들 틈에 섞여 술을 마시며 술꾼들이 나누는 대화와 정치적 의견을 듣고 오게 하였다. ‘sip’은 한 번에 쭉 들이키는 것이 아니라 ‘홀짝홀짝 조금씩 마신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go sip’은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술잔을 앞에 놓고 홀짝이며 여론을 청취하러 간다’는 말이었다. 그러다 두 단어가 합쳐져 ‘지역 여론’을 지칭하게 되었고, 오늘날 ‘gossip’의 형태로 굳어졌다.
1 ° 16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지, 기어이
I am determined to finish the task this week by hook or by crook.
이번 주 안으로 어떻게 해서든 그 일을 마칠 작정이다.
지금은 ‘hook’과 ‘crook’이 낚시 바늘이나 갈고리를 의미하지만, 원래 ‘hook’은 나뭇가지를 베는 데 쓰는 낫 비슷한 도구였고 ‘crook’은 양치기의 지팡이로, 끝이 갈고리처럼 굽어 무언가를 긁어모으는 도구로 쓰였다. 중세 시대 영국에는 혹독한 겨울이 되면 땔감이 부족한 농부들에게 왕실이 소유한 숲을 개방하여 말라 죽은 나무를 벌목할 수 있게 하는 풍습이 있었다. 당시로서는 최선의 장비였던 낫과 갈고리를 챙겨 들고 숲으로 간 농부들은 해 떨어지기 전까지 최대한 많은 땔감을 구하려고 낫으로 죽은 나무를 베고 갈고리로 잔가지를 긁어모았다. 여기에서 ‘by hook or by crook’낫을 쓰든 갈고리를 쓰든이라는 표현이 생겨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이 말이 처음으로 언급된 작품은 1390년 존 가워의 교훈시 『연인의 고백』이다. “What with hepe(hook) and what with croke(crook) they, by false Witness and Perjury, make her maister ofte winne.”그들은 종종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가짜 증인과 위증으로 그녀의 주인이 이기게 만든다. 오늘날에는 ‘합법이든 불법이든 상관없이 필요한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1 ° 17
자랑거리
It’ll be a real feather in her cap if her son wins the best actor award.
아들이 최고 배우상을 받는다면 그녀에게 대단한 자랑거리가 될 것이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모자에 꽂은 깃털’이라는 뜻의 이 표현은 ‘자랑스럽게 생각할 만한 성공이나 업적’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 말의 유래는 캐나다 알버타의 뫼니타리스 부족과 미국 노스다코타와 사우스다코타의 원주민 전통문화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이들은 적의 목을 벨 때마다 머리 장식에 깃털을 추가하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스코틀랜드와 웨일스의 고지대에는 딱따구리를 가장 먼저 잡은 사냥꾼이 깃털을 뽑아 모자에 꽂는 풍습이 아직도 남아 있다. 1599년에 영국 작가 리처드 핸서드가 쓴 『헝가리에 대한 묘사』를 보면 헝가리인들은 적인 투르크인을 죽일 때마다 모자에 깃털을 추가해서 깃털의 수가 많을수록 용감하고 애국심이 강한 사람으로 여겼다고 한다. 이 표현은 1734년 포틀랜드 공작부인이 콜링우드 양에게 보내는 편지에 등장하면서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My Lord (……) esteems it a feather in his hat, that……”공작께서는 그 일을 자랑스럽게 여긴답니다…….
1 ° 18
팔방미인, 재주는 많으나 뛰어난 한 가지가 없다
Those who seek for diversity too much run the risk of being a jack of all trades and master of none.
너무 다양성을 추구하다 보면 재주는 많으나 특별히 뛰어난 점이 없는 사람이 될 위험이 있다.
부정적 의미를 내포한 이 관용어의 유래는 14세기로 거슬러 올라가 존 가워의 교훈시 『연인의 고백』에서 찾을 수 있다. 중세에는 ‘Jack’이 최하층민, 무례한 사람, 악한을 일컫는 말이었다. ‘lumberjack’나무꾼, ‘steeplejack’뾰족탑 수리공 같은 다양한 허드레 직업에 붙거나 선원을 가리켜 ‘Jack’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러다가 1612년에 작가 제프리 민슐이 수감 경험을 바탕으로 쓴 『수필, 구치소 사람들과 죄수들』에서 ‘jack of all trades’잭은 뭐든지 잘한다라는 말을 쓰면서 관용어로 굳어졌다. 그리고 1677년경 런던의 차터하우스 스쿨 교장 마틴 클리퍼드가 존 드라이든의 시에 대한 주석집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면서 ‘master of none’결정적인 것이 없다이라는 의미가 추가되었다. “Your writings are like a Jack of all Trades Shop, they have Variety, but nothing of value.”당신 작품들은 팔방미인처럼 다양하지만 쓸 만한 것이 없습니다. 지금처럼 온전한 형태의 표현이 처음 등장한 기록은 1741년 의사 겸 약제사 찰스 루카스의 『파르마코마스틱스: 약제사의 업무와 활용과 오용 설명』이었다.
1 ° 19
진퇴양난, 사면초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To judge from your comments, the UK economy is caught between Scylla and Charybdis—hyperinflation or deflation.
당신의 논평으로 판단하건대, 영국 경제는 초인플레이션이거나 디플레이션이라는 진퇴양난에 처해 있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스킬라와 카리브디스 사이’라는 뜻의 이 표현은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 나오는 이야기에서 유래했다. 트로이 전쟁에서 그리스 연합군으로 싸운 오디세우스는 트로이를 함락시킨 후 귀향길에 오르지만 바다에서 온갖 역경을 겪느라 쉽사리 집에 돌아갈 수 없었다. 스킬라와 카리브디스는 항해 중에 반드시 지나게 되는 길목에 도사린 괴물이다. 스킬라는 이빨 세 겹이 달린 입과 머리 여섯 개, 다리 열두 개를 가진 괴물로 낭떠러지의 한쪽 꼭대기에 살고, 반대편 물속에는 전설적인 소용돌이로 하루에 세 번 바닷물을 들이마셨다가 토해 내며 지나가는 배를 모조리 난파시키는 카리브디스가 있었다. 뱃사람들은 그 사이를 지날 수밖에 없었으므로 스킬라 아니면 카리브디스에게 매번 공격당했다. 오디세우스도 마녀 키르케가 가르쳐 준 대로 스킬라 쪽으로 붙어 지나다가 결국 부하 여섯 명을 잃고 만다. 스킬라와 카리브디스는 뱃사람에게 가장 큰 위험을 안겨 주는 거대한 암초와 소용돌이를 의인화한 것인데, ‘둘 다 비슷할 정도로 위험하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비슷한 표현으로 ‘on the horns of a dilemma’진퇴양난에 빠진가 있다.
1 ° 20
벌컥 화를 내다, 자제심을 잃다, 흥분하다
She is likely to fly off the handle for some unknown reason.
그녀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벌컥 화를 잘 낸다.
이 미국식 표현은 도끼를 대부분 수작업으로 만들어 쓰던 서부 개척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개척자들은 나무를 직접 깎아 만든 도끼 자루에 동쪽 연안의 공업 지역에서 배에 실려 온 도끼날을 부착해서 사용했다. 전문가가 아니라 사용자가 직접 조립하다 보니 도끼날이 자루에 꼭 맞게 끼워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고, 쓰다 보면 자루handle에서 날이 떨어져 나가fly off 낭패를 보거나 도끼를 사용하는 장본인이나 주변에 있던 사람들에게 상해를 입히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 빗대어 ‘자제심과 냉정을 잃고 갑작스럽게 분노를 표출하면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 이 표현은 1825년에 발표된 존 닐의 소설 『조너선 형제 또는 뉴잉글랜드 사람들』에 ‘off the handle’손잡이에서 빠지다의 형태로 처음 등장했다. 그리고 1843~1844년 토머스 핼리버턴의 연작 『잉글랜드 주재 대사관원 샘 슬릭』에 나오는 한 이야기에서 지금의 형태인 ‘fly off the handle’로 쓰이기 시작했다. “He flies right off the handle for nothing.”그는 아무것도 아닌 일에 벌컥 화를 낸다.
1 ° 21
금단의 열매, 불의의 쾌락
While I was on a diet, delicious chocolate cakes were forbidden fruits for me.
다이어트를 하는 동안 맛있는 초콜릿 케이크는 내게 금단의 열매였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금지된 열매’, 즉 ‘금기시되는 무엇’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이 관용어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에서 유래했다. 『창세기』 2장을 보면 하느님이 아담을 에덴동산에 데려다 두고 그곳을 일구고 돌보게 한다. 그리고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어도 되지만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으면 죽을 것이니 그것만은 따 먹지 말라고 이른다. 하지만 뱀의 꼬임에 넘어간 하와의 권유에 따라 둘은 선악과를 따 먹고 그 벌로 에덴동산에서 쫓겨난다. 서양 문화권에서는 전통적으로 이 금단의 열매를 주로 사과라고 생각해 왔다. 그래서 열매를 삼키던 아담의 목구멍에 선악과의 조각이 박혀 버렸고 대대로 유전되었다고 믿었다. 이런 의미에서 남성의 목 정면에 튀어 나온 후골을 ‘adam’s apple’아담의 사과이라고 부른다.
1 ° 22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
As the saying goes, ‘the grass is always greener on the other side of the fence’, Mary always supposes others to have the perfect life.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는 속담처럼, 매리는 항상 남들이 자기보다 더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울타리 건너편 풀이 더 푸르러 보인다’는 뜻의 이 표현은 영어권에서 매우 널리 쓰이는 속담이다. ‘지금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항상 갖지 못한 것을 추구하는 인간의 탐욕’을 의미하는 이 말의 기원은 에라스무스가 쓴 라틴어 격언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1545년 영국의 그리스어 학자 리처드 태버너가 라틴어 원문을 다음과 같이 영어로 옮겼다. “The corne in an other mans ground semeth euer more fertyll and plentifull then doth oure owne.”다른 사람 땅의 곡식이 우리 땅의 것보다 훨씬 더 비옥하고 풍성해 보인다. 16~17세기에 점차 알려진 이 초기 버전은 영국 주류 문화에서 인기를 얻지는 못했지만 지금 쓰이는 속담의 기원이 되었다. 1959년에는 영국의 배우 겸 극작가 휴 윌리엄스가 마거릿 윌리엄스와 함께 집필한 2막극 『남의 풀이 늘 푸르다』의 제목으로도 쓰였다. 19세기에는 ‘Distant pastures always look greener’멀리 있는 풀밭이 더 푸르러 보이는 법, ‘Cows prefer the grass on the other side of the fence’소들은 울타리 너머에 있는 풀을 더 좋아한다처럼 형태는 다르지만 같은 의미로 쓰이는 표현들이 생겨났다.
1 ° 23
낙원, 이상향
Everything was perfect. She felt as if she were in Elysium.
모든 것이 완벽했다. 그녀는 마치 낙원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엘리시움’Elysium은 그리스의 종교 및 철학 부문에서 전해 내려오던 일종의 사후 세계를 지칭하던 말이다. 처음에는 저승인 하데스의 영역과는 분리되어, 신과 혈연이 있는 자나 영웅만이 갈 수 있는 곳이었다. 나중에는 개념이 좀 더 확장되어 의인이나 영웅, 신의 선택을 받은 이도 갈 수 있으며, 죽은 후에도 생전의 행복하고 복된 삶을 누릴 수 있는 곳이 되었다. 호메로스는 『오디세이아』에서 엘리시움을 천국과 같은 곳으로 묘사한다. “그곳은 사람들이 살기에 매우 안락하다. 눈이나 폭풍우, 심지어 비도 내리지 않고 바다에서는 늘 시원한 서풍이 불어온다.” 그러면서 엘리시움이 땅 끝 오케아노스 강가에 있다고 했다. 그리스의 시인 헤시오도스는 『노동과 나날』에서 엘리시움이 지구 끝 서쪽 바다에 있는 극락의 섬이라며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그들은 깊이 소용돌이치는 바다를 따라 늘어선 축복받은 섬에서 불행과는 담을 쌓은 채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불사의 신은 아니고 크로노스의 지배를 받지만 1년에 세 번이나 꿀처럼 달콤한 결실을 맺는 풍요로운 땅에서 살아가는 행복한 영웅들이다.” 여기에서 유래한 ‘엘리시움’은 이후 ‘낙원’이나 ‘이상향’을 의미하게 되었다.
1 ° 24
한계를 두다, 분명한 선을 긋다, 마지노선을 정하다
The government is trying to draw a line in the sand regarding public sector pay rises.
정부는 공공부문 임금 인상에 마지노선을 정하려 애쓰고 있다.
이 멋진 표현은 고대 로마의 역사가 리비우스가 기록한 일화에서 유래했다. 기원전 168년 셀레우코스 제국의 안티오코스 4세가 이집트를 손에 넣으려고 멤피스를 함락하고 알렉산드리아를 향해 파죽지세로 진격하자 로마 원로원은 포필리우스를 특사로 파견했다. 안티오코스는 그를 반가이 맞으며 손을 내밀었지만 포필리우스는 원로원의 칙령이 쓰인 석판에 손을 얹은 채 그것부터 읽으라고 요청했다. 알렉산드리아 공격을 중단하고 이집트에서 당장 철수하지 않으면 전쟁을 선포하겠다는 로마 원로원의 요구에 안티오코스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신하들과 상의하겠다고 둘러댄다. 그러나 왕이 시간을 벌려고 꾸물거린다는 것을 간파한 포필리우스는 지팡이로 땅바닥에 왕을 둘러싼 원을 그리더니 ‘확실히 답하기 전에는 원 밖으로 나오지 말라’고 했다. 그의 단호한 태도에 놀라 잠시 망설이던 안티오코스는 마침내 원로원의 요구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한다. 그제야 포필리우스는 우방이라는 표시로 손을 내밀었고, 안티오코스는 지정된 날 이집트에서 철수했다. 포필리우스가 안티오코스를 압박하기 위해 원을 그렸던 데서 유래한 ‘draw a line in the sand’모래에 선을 긋다라는 표현은 이후 ‘한계를 정하다, 마지노선을 정하다’라는 의미로 쓰이게 되었다.
1 ° 25
재는 재로, 먼지는 먼지로
The priest stood over the casket and said, “Ashes to ashes, dust to dust,” as he concluded the service.
신부는 관 위로 “재는 재로, 먼지는 먼지로” 하고 말하며 예배를 마쳤다.
이 구절은 영국의 장례식에서 유래한 표현이다. 성공회의 『일반 기도서』 1662년 판본을 보면 매장식의 방법과 예식문이 적혀 있는데, 옆에 선 사람이 시신 위로 흙을 뿌리는 동안 사제가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We therefore commit his body to the ground; earth to earth, ashes to ashes, dust to dust.”우리는 그의 육신을 땅에 맡깁니다. 흙은 흙으로, 재는 재로, 먼지는 먼지로 돌아갑니다.
장례식에서 쓰이는 이 문구의 더 오랜 기원은 성경에서 찾을 수 있다. 구약성경 『창세기』 3장 19절을 보면 하느님은 선악과를 따 먹은 아담을 에덴동산에서 추방하며 다음과 같이 이른다. “By the sweat of your brow you will eat your food until you return to the ground, since from it you were taken; for dust you are and to dust you will return.”너는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양식을 먹을 수 있으리라.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
1 ° 26
영문을 알 수 없는, 두서없는, 다짜고짜
I’ve looked over it several times, but there’s neither rhyme nor reason to the report they sent this morning.
그들이 오늘 아침에 보낸 보고서를 몇 번이나 살펴보았지만, 뭔 말인지 종잡을 수가 없다.
한 작가 지망생이 자신이 쓴 원고를 헨리 8세의 수상이자 『유토피아』를 쓴 명망 있는 저자 토머스 모어에게 가져가 의견을 구했다고 한다. 모어는 원고를 살펴보고 그에게 글을 운문으로 바꾸어 보라고 했다. 시키는 대로 자신의 글을 운문으로 바꾸어 다시 보여 주자 모어는 이렇게 말했다. “Ay, ay, that will do. ’Tis rhyme now, but before it was neither rhyme nor reason.”아, 그나마 좀 낫군. 이제 운은 맞네, 전에는 운율도 앞뒤 맥락도 안 맞았는데.
한편 이 전설을 믿지 않고 다른 주장을 펴는 이들은 운율이 엉망인 어느 시에서 이 표현이 유래했다고 본다. 운율이 맞지 않는 시는 기껏 좋아 봐야 산만할 뿐이고 최악의 경우에는 의미도 통하지 않기 때문에, 프랑스 연설가들은 그러한 형편없는 시를 문자 그대로 ‘neither rhyme nor reason’, 즉 ‘운율도 안 맞고 조리도 없다’고 표현했다. 과거 수백 년 동안 영국의 교양 있는 연설가들은 프랑스어도 유창하게 구사했으므로 이 프랑스어 표현이 영어로 번역되어 도입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1 ° 27
행운을 빌어, 잘해 봐, 화이팅
“Break a leg!” shouted the stage director to his actors before the beginning of the play.
“행운을 빌어!” 연극이 시작되기 전, 무대감독이 배우들에게 소리쳤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다리를 부러뜨려라’라는 이 표현이 중요한 일을 앞둔 사람에게 행운을 빌어 주는 말이라면 좀 의아할 것이다. 연극 개막일 전야에 자주 쓰인 이 표현은 공연을 앞둔 배우에게 행운을 빌어 주면 외려 망치게 된다는 미신에서 비롯되었다. 우리도 좋은 일일수록 마가 끼기 쉽다고 여겨 귀한 자식일수록 ‘개똥이’라고 불렀던 사실을 떠올려 보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이 밖에도 여러 기원설이 있다. 고대 그리스 관중은 환호할 때 박수를 치기보다는 발을 굴렀는데, 때로는 너무 심하게 구르다가 발이 부러지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또한 로마제국에서 검투사들은 한쪽이 죽을 때까지 싸워야 했는데, 관중이 “quasso cruris”다리를 부러뜨려라 하고 외치면 다리만 부러뜨리되 죽이지는 말라, 즉 ‘검투사를 둘 다 살려 주자’는 제안이었다. 셰익스피어가 활동하던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에는 이 표현이 말 그대로 ‘무릎을 굽혀 절하는 것’을 의미했다. 공연이 성공하면 배우가 무대에서 ‘무릎을 굽히고’ 박수갈채를 받기 때문에 이 말은 사실상 행운을 비는 소원이 되었다. 이런 의미가 확장되어 지금은 ‘잘해 봐’ 하며 격려하는 말로도 쓰인다.
1 ° 28
에둘러 말하다, 요점을 회피하다
Don’t beat around the bush—just tell me the truth.
빙빙 돌리지 말고 사실만 말해 줘.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덤불 주위를 두들기다’라는 이 표현은 중세 시대에 새를 사냥하던 방식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당시 사냥꾼은 사람들을 시켜 새들이 숨어 있던 덤불을 막대기로 두들겨 새가 튀어나오게 했는데, 이러한 새 사냥 방식에서 두 가지 표현이 생겨났다. 하나는 ‘본론으로 들어가지 않고 빙빙 돌려 말하다’라는 의미인 ‘beat around the bush’, 또 하나는 이와 반대인 ‘cut to the chase바로 추격을 시작하다로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다’라는 뜻이다. ‘beat around the bush’는 1440년 작자 미상의 중세 로맨스 『게네리데스, 7연 4행 로맨스』에 처음 등장했다. “Butt as it hath be sayde full long agoo, Some bete the bussh and some the byrdes take.”그러나 옛말에도 있듯이, 누군가는 덤불을 두들기고, 누군가는 새를 잡는다. 그 후 1572년에 나온 영국 시인 조지 개스코인의 『작품집』에도 인용되어 있다. “He bet about the bush, whyles other caught the birds.”그가 덤불을 두들기는 동안 다른 사람은 새를 잡았다. 영국에서는 ‘beat about the bush’라는 표현을 썼지만 미국에서는 ‘beat around the bush’라고 써 왔고, 오늘날에는 미국식 표현이 일반적인 형태로 자리 잡았다.
1 ° 29
사실대로 말하다, 직언하다, 솔직히 말하다
Why don’t you call a spade a spade? He’s a rude, uncaring, selfish man!
솔직히 말하는 게 어때? 그는 무례하고 무정하고 이기적인 남자라고!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삽을 삽이라고 부르다’라는 이 표현은 앞서 나온 ‘beat around the bush’와 반대로 ‘에둘러 말하지 않고 문제의 본질을 직설적으로 말하다’라는 뜻이다. 이 말은 플루타르코스의 『스파르타의 격언』에서 유래했는데 원래의 표현은 ‘call a fig a fig, and a blade a blade’무화과를 무화과라고 부르고, 보습을 보습이라고 부르다였다. 에라스무스는 이 작품을 라틴어로 번역한 『격언집』에서 그리스어 ‘spáthē’보습를 ‘ligo’곡괭이로 옮겼는데, 이는 오역이 아니라 극적인 효과를 노린 의도적 선택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그리고 1542년 에라스무스의 작품을 영어로 번역한 니컬러스 유돌이 그 단어를 다시 ‘spade’삽로 바꾸어 소개했다.
그렇게 정립된 표현을 오스카 와일드가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과 『진지함의 중요성』에서 거듭 사용했고, 디킨스, 에머슨, 서머싯 몸, 조너선 스위프트 등 여러 작가도 썼다. 에라스무스의 고국인 네덜란드식 표현 외에도 ‘빵을 빵이라 부르고 포도주를 포도주라 부르다’라는 스페인식 표현과 ‘고양이를 고양이라 부르다’라는 프랑스식 표현이 종종 쓰인다.
1 ° 30
불시에 일격을 당하다
We have to stand on guard all night, otherwise, we might be caught with our pants down.
밤새 보초를 서지 않으면 불시에 일격을 당할 수도 있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바지를 내린 채 잡히다’라는 이 표현은 ‘카라칼라’라는 별칭으로 알려진 로마제국의 폭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세베루스 안토니누스와 관련이 있다. 파르티아를 침공하기 위해 카레로 진격하던 중, 이질로 고생하던 그는 용변을 보려고 풀숲으로 들어갔다. 그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호위병들이 등을 돌리고 있는 사이, 호위병 가운데 하나가 갑자기 달려들어 순식간에 그를 칼로 찔러 살해했다. 살해 동기는 원한이었는데, 며칠 전 황제가 자신의 형제를 처형했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자신을 백인대장으로 승진시켜 주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혹은 차기 황제가 된 집정관 마크리누스의 사주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어쨌든 카라칼라로서는 말 그대로 ‘바지를 내리고’ 볼일을 보다가 일격을 당했으니 이 표현에 딱 들어맞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공동 황제였던 동생을 살해하고 아내를 비롯하여 자신을 지지했던 사람들 2만 명을 학살한 그는 암살되기 며칠 전부터 칼을 든 아버지와 동생에게 쫓기는 악몽에 시달렸다고 하니, 악행을 저지른 사람은 결국 편안한 최후를 맞이할 수 없는 모양이다.
1 ° 31
최후의 결정타,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한계
The relationship of that couple had been in trouble for a while and the husband’s behaviour that night was just the last straw.
그 부부의 관계는 한동안 문제가 있었는데, 남편의 그날 밤 행동이 마지막 결정타였다.
이 표현은 “it is the last straw that breaks the camel’s back”낙타의 등을 부러뜨리는 마지막 지푸라기이라는 속담의 줄임말이다. 이 속담은 아랍의 오래된 이야기에서 유래했다. 옛날에 낙타를 부려 짚을 나르던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낙타를 최대한 활용하려고 실을 수 있는 만큼 많은 짚을 싣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하며 지푸라기 하나를 낙타의 등에 올려놓는 순간, 낙타는 쓰러지고 말았다. 마지막 지푸라기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등이 부러진 것이다. 영어권에서는 1654년에서 1684년까지 토머스 홉스와 신학자 존 브램홀이 벌인 신학 논쟁에서 이 개념이 처음 등장했다. “……as the last Feather may be said to break a Horses Back, when there were so many laid on before as there want but that one to do it.”마지막 깃털 하나가 말의 등을 부러뜨린다고 하듯이 이미 너무 많이 실려 있으면 단 하나만으로도 부러뜨리기에 충분하다. 1830년대까지 낙타 대신 말, 당나귀, 원숭이 등을 넣은 다양한 아류 표현이 봇물을 이루었다. 찰스 디킨스는 1846년부터 1848년까지 연재한 『돔비 부자』에서 ‘최후의 일격’이라는 은유적 의미로 이 표현을 썼다. “As the last straw breaks the laden camel’s back……”낙타의 등을 부러뜨리는 최후의 일격처럼……
2 ° 1
쥐구멍에도 볕 들 날 있다, 고진감래
When I’m going through a hard time, I try to remind myself that every cloud has a silver lining.
힘든 시기를 겪을 때면,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사실을 기억하려고 노력한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모든 구름에는 은빛 자락이 있다’는 뜻으로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의미인 이 속담은 영국의 고전 시인 존 밀턴이 1634년에 발표한 가면극 『코무스』에 나오는 다음 시구에서 유래했다. “Was I deceived or did a sable cloud/ Turn forth her silver lining on the night?/ I did not err; there does a sable cloud/ Turn forth her silver lining on the night,/ And casts a gleam over this tufted grove.”내가 헛것을 본 것인가 아니면 한밤의 짙은 어둠 속으로 은빛 자락이 내비친 것인가? 한밤에 먹구름은 은빛 자락을 펼쳐 이 무성한 덤불 위로 빛을 드리운다. 이후 ‘구름’과 ‘은빛 자락’은 ‘밀턴의 구름’으로 자주 언급되며 문학에 등장했다. 그리고 낙관주의와 긍정의 분위기가 팽배한 1800년대 빅토리아 시대에 지금과 같이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말라’는 격려의 의미가 담긴 속담 ‘every cloud has a silver lining’이 생겨났다. 비슷한 표현으로는 ‘every dog has his day’쥐구멍에도 볕 들 날 있다가 있다.
2 ° 2
더 이상 풋내기가 아닌, 젊지 않은, 한물간
That actress is no spring chicken, but she does a pretty good job of playing a twenty-year-old girl.
저 여배우는 한물갔지만 스무 살 역할을 꽤 잘 해내고 있다.
옛날에 몇몇 식당에서는 닭이 가장 맛있을 때 잡았다는 것을 보증하기 위해 메뉴판에 고기가 부드러운 영계, 그중에서도 봄에 도축한 것임을 설명해 놓았다. 그래서 봄에 태어난 어린 닭은 겨울을 지낸 닭보다 잘 팔렸다. 뉴잉글랜드 농부들은 봄철에 태어난 병아리가 더 비싸다는 사실을 알고는 오래된 병아리도 갓 태어난 병아리라고 속여서 팔려고 했다. 이렇게 사기를 치는 농부에게 사람들이 “No spring chicken”햇병아리가 아니잖아 하고 받아치면서 이 표현이 생겨났다. 그러다가 1711년 영국의 일간지 『스펙테이터』에 처음 등장했을 때는 ‘더 이상 젊지 않다’는 뜻으로만 쓰였다. “You ought to consider you are now past a chicken; this Humour, which was well enough in a Girl, is insufferable in one of your Motherly Character.”너는 이제 젊지 않다는 걸 생각해야지. 소녀 시절에는 충분히 통했던 이 유머는 너의 어머니 같은 성격을 가진 사람에게는 거슬리는 말이다. 시간이 더 지나 20세기 초부터는 미국에서 주로 나이 든 여성에게 ‘한물갔다’고 조롱하는 은유적 의미로 쓰이기 시작했다.
2 ° 3
잘못을 인정하다, (굴욕, 비난 등을) 감수하다
The mayor is perfectly willing to eat humble pie if his new plan advances the reform of c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