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강제명
강제명 선생님은 1991년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행정고시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정치학과 행정학을 가르쳐 왔습니다. 선생님의 강의는 논리적인 사고 훈련을 이끌어 내기로 유명하지요. 현재 ‘공무원단기학교’ 행정학 전임강사와 ‘베리타스’ 정치학 전임강사를 맡고 있습니다. 그동안 쓴 책으로는 『정치학(피데스 출판)』 『행정학(도서출판 해인)』 『행정정보체계론(도서출판 해인)』 등이 있습니다.
그림 이창우
이창우 선생님은 부산대학교 미술학과를 졸업하고, <소년동아>에서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대교, 웅진, 서울경제신문 등을 통해 만화와 일러스트를 선보였습니다. 선생님의 재치 있고 상상력 가득한 그림은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린 책으로는 『아큐정전』 『말괄량이 길들이기』 『우리 역사를 움직인 맞수들』 등이 있고, 현재 <과학동아> <독서평설> 등에 만화를 연재하고 있답니다.
디자인 | 남철우
힙합 청소년 정치학
전자책 발행일 2021년 11월 30일
지은이 강제명
그린이 이창우
펴낸이 최금옥
편 집 김지선 최명지
디자인 남철우
펴낸곳 이론과실천
등록 제10-1291호
(07207) 서울시 영등포구 양평로21가길 19 512호(우림라이온스밸리B동)
전화 02-714-9800 │ 팩스 02-702-6655
ISBN 978-89-313-4132-4 (45340)
• 이 도서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2019년 우수출판콘텐츠 제작 지원’ 사업 선정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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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값 9,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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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글을 통해서 여러분과 만나게 될 저는 두 딸의 아빠랍니다. 큰딸은 고등학생이고 이름은 ‘산아’이고요, 작은딸은 중학생이고 이름은 ‘채원’이에요.
이 책은 큰딸인 산아와 함께 정치 이야기를 나누다 시작되었어요. 우리나라 시민들은 대부분 정치를 싫어하잖아요? 음, 산아의 표현을 빌리자면 “정치, 극혐이야!”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런데 몇 년 전 촛불시위가 벌어지고 이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결정 과정에서, 어느 날 산아가 물어봤어요. 대체 정치가 무엇이냐고. ‘거리의 정치’ 혹은 ‘광장민주주의’라는 말을 어디서 들었나 봐요.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가는 것도 정치 행위 중 하나잖아요? 자신이 혐오했던 정치와는 뭔가 다르게 다가왔나 봅니다.
그래서 정치란 무엇이고, 민주주의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어요. 그 와중에 2022년도 대입 제도에 대해 공론조사를 통해서 일반 시민의 의견을 수렴하고, 이를 제도 개선에 반영한다는 이야기가 뉴스에 나왔지요.
산아는 “우리나라는 민주주의를 시행하는데, 왜 당사자인 학생들의 의견은 듣지도 않냐?”고 물었어요. 아빠인 저는 녀석의 질문이 대견하게 느껴졌어요. 정치학을 전공하고, 정치학을 강의하는 사람으로서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거든요.
다른 청소년들도 산아처럼 궁금한 이야기가 많을 것 같아요. 그래서 보다 많은 친구와 책을 통해 만나고, 정치를 주제로 툭 터놓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어요.
아 참, 글을 쓸 때 유행어나 비속어를 쓰면 안 되는데, 이 책을 쓸 때는 무심코 튀어나오곤 했어요. 편하게 다가가고 싶은 마음 때문이니 양해해 주길 바랍니다.
이 책에는 때로 무겁고 어려운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어요. 정치학은 권력에 대한 비판을 핵심으로 하기 때문이지요. 그래도 여러분이 지닌 정치적 상상력을 최대한 동원해서 읽어 본다면, 때로는 재미있고 때로는 신랄하고 때로는 통쾌하게 다가갈 거예요.
민주주의 사회에 살아가는 청소년 시민이자 대한민국을 새롭게 만들어 갈 여러분이 꿈꾸는 사회는 과연 무엇인가요? 이 책이 그런 생각을 할 때 도움이 된다면 정말 좋겠어요.
2019년 10월
강제명
산아야! 정치라는 단어는 자주 듣는 말이야. 많은 사람이 귀를 닫고 눈을 가려서 그렇지, 날마다 뉴스에서 신문에서 정치 이야기를 듣고 볼 수밖에 없잖아.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개 정치를 싫어한다고 말해. 촛불시위 이후에 사람들이 생각하는 정치의 이미지가 많이 바뀌긴 했지만, 정치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자주 목격할 수 있는 싸움과 다툼이 먼저 생각나서일 거야. 하지만 정치는 정당이나 국회의사당 내에서 이루어지는 ‘진흙탕 싸움’이나 ‘이권 다툼’ 같은 게 전부는 아니야.
그러면 현실의 정치 말고, ‘정치’의 원래 의미는 무엇일까?
어원으로 보면, 정치politics라는 단어는 폴리스polis에서 나온 말이야. 폴리스는 고대 그리스에서 도시라는 뜻으로 쓰였어. 그 당시 도시는 국가이기도 했지. 사전적 의미로 본다면, 정치는 도시(국가)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되는 거야.
서양 사람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빌려서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고 여겨 왔어. 단순히 말해서, 사람 사는 세상이라면 그것이 산아의 학교생활이든, 아빠의 회사 생활이든, 모두 정치와 연관될 수밖에 없다는 거지.
사람들의 일상생활이 정치와 다 연관된다고? 대체 왜 그럴까?
일단 사람은 혼자 살 수는 없어. 먹고사는 데 필요한 것들을 혼자서 모두 마련할 수 없잖아? 혼자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는 역할을 분담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기도 하고 말이야.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의 생각과 원하는 게 다 달라서 갈등과 싸움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데 있어. 사람들은 생김새만 다른 게 아니야. 장래 희망이 다르고, 좋아하는 영화나 노래, 혹은 좋아하는 아이돌도 다르지. 하는 일에 따라 이해관계도 다 다르단다.
현대 사회는 다양한 종교와 가치관이 공존하고, 직업도 다양해졌어. 공동체적 연대감 같은 게 사라진 현대 사회의 이런 면을 일컬어 다원 사회라 부른단다. 다원 사회에서는 그만큼 갈등도 커지겠지? 이런 상상을 해볼까?
조선 시대 말, 사람들이 살기 너무 힘들던 시대를 떠올려 봐. 당시에는 탐관오리나 양반의 폭정을 피해 꽤 많은 사람이 고향을 버리고 산으로 숨어들었어. 화전민들 이야기 들어봤지? 숲을 태워서 밭을 만들어 농사지으며 살던 사람들 말이야.
그런 시대에 길동이가 살았어. 길동이는 고향에서 너무 살기 힘들어 지리산 골짜기로 도망쳤어. 그곳에서 힘들게 땅을 일구고 농사를 짓기 시작했지. 몇 년 후에 철수도 산속에 들어와 길동이가 농사짓는 땅 위쪽을 개간해서 농사를 짓기 시작했지.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어. 가뭄이 극심한 어느 해에, 철수가 계곡물을 가두고 자기 논밭에만 물을 대기 시작한 거야. 이것 때문에 길동이와 철수 사이에 싸움이 시작되었어. 요즘으로 친다면, 아파트 윗집과 아랫집 사이에 소음 문제로 싸우는 것과 비슷하지. 어쨌든 둘은 물을 대는 문제를 원님에게 해결해 달라고 했지.
1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갑돌이가 나타났어. 땅문서를 보여 주면서 자기 땅이니까, 두 사람 모두 자기 땅에서 나가라는 거야. 길동이와 철수는 억울했어. 10여 년 동안 황무지를 일구어 옥토로 만들어 놓으니까 땅 주인이 나타나서 꺼지라는 거지. 그래서 길동이와 철수는 원님을 다시 찾아가기로 했어. 억울한 사정을 해결해 달라고 말이야.
이때 원님(국가 혹은 정부)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바로 사람들 사이에 생길 수밖에 없는 갈등을 풀어 주는 거지. 이렇듯 갈등을 조정하는 일을 영어로는 ‘가번govern’이라고 표현한단다.
아! 그러고 보니, ‘정부govern-ment’의 의미는 ‘지배한다rule’는 뜻이 아니라 ‘조정하는governing 행위’인 걸까? 이런 게 정치의 본래 의미가 아닐까?
동양에서는 정치政治를 어떤 의미로 사용했을까?
정치를 이야기할 때 서양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자주 인용한다면, 동양에서는 공자나 한비자의 이야기를 많이 인용한단다.
한자로 풀이해 보면, 정치(政治)에서 ‘정(政)’은 ‘바를 정(正)’과 ‘등글월 문/칠 복(攵=攴)’이 합쳐진 단어야. ‘정(正)’은 ‘바르다’는 뜻이고, ‘문/복(攵)’은 ‘회초리로 치다’ 혹은 ‘일을 하다’는 뜻이지. 해석하자면, 바른 일을 하는 것 혹은 바른 일을 위해 회초리로 치며 다스리는 일이 정치인 거야.
‘치(治)’는 ‘물(氵= 水, 수)’과 ‘건축물(台, 태)’이 합쳐진 글자야. 중국 사람들에게 황허강의 범람은 항상 골칫덩어리였고, 강의 범람을 다스리는 것이 왕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었어. 동양에서는 정치를 ‘정사(政事)’ 혹은 ‘국사(國事)’라고 불렀는데, 국가의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는 일(다스리는 것)이라는 뜻으로 쓰였지.
고대 중국에서 정(政)은 ‘정벌하다’는 뜻으로도 쓰였단다. ‘바르다(正)’는 뜻보다는 ‘치다(攴)’는 뜻이 강조된 거지. 음, 그러니까 지방의 민란이나 제후들의 반란, 주변 오랑캐를 정벌하는 일도 정치로 본 거야.
반면, 공자는 『논어』에서 “정자, 정야(政者, 正也)”라고 말했어. ‘정치란 바르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거야. ‘정(政)’을 힘으로 다스리는 일로 보지 않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 국가와 사회의 큰 문제를 해결하고 옳은 결과를 가져오기 위한 행동으로 본 거야.
사람들은 저마다 생각하는 거나 원하는 게 다 달라서 갈등과 싸움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했지? 이 갈등은 한정된 자원 때문에 커질 수밖에 없어.
아빠가 산아와 채원이가 모두 좋아하는 조각 케이크를 딱 하나만 사 왔다고 해볼까? 산아와 채원이는 서로 더 많이 차지하려고 다투겠지. 마찬가지로 어떤 사회가 가진 자원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 한정된 자원을 누가 차지할지를 두고 다툼이 생길 수밖에 없어.
이런 맥락에서 데이비드 이스턴David Easton은 정치를 ‘희소한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라고 정의했어. 또 해롤드 라스웰Harold Lasswell은 정치의 본질을 ‘누가 무엇을 얻는가?who gets what?’라고 규정하기도 했지.
*가치value란? 가치란 ‘좋아하는 것이나 싫어하는 것(good or bad, 선호)’, ‘옳다고 여기는 것이나 잘못되었다고 여기는 것(right or wrong)’과 같은 감정이나 신념과 관련이 있단다.
우리는 흔히 이런 말을 하지.
“내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 물건은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을까?”
첫 번째 표현에서 ‘가치’란 사람들이 ‘바람직하다고 의미를 부여한 것’을 뜻해. 두 번째 표현에서 ‘가치’는 ‘돈으로 계산하면 얼마 정도일까?’의 뜻도 있고, ‘중요도’의 뜻도 있어.
‘이익이 되는 것’, ‘좋아하는 것’,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옳다고 생각하는 것’ 모두 가치라는 말에 담긴 뜻이야.
물론, 이해관계가 충돌될 때만 정치라는 녀석이 ‘짜잔’ 하고 나타나는 것은 아니야. ‘양심적 병역 거부를 인정할지’, ‘낙태를 법적으로 허용할지’처럼 서로 다른 가치관 때문에 발생하는 갈등을 조정할 때도 정치가 우리 생활 속으로 들어오게 되지.
우리 사회에서도 갈등은 끊이지 않아. 예를 들어볼까?
‘쓰레기소각장이나 공중화장장 입지 결정 문제’를 둘러싼 지역 간의 갈등은 물론이고, ‘최저임금을 인상할지 말지’를 둘러싸고 계급·계층 간의 갈등이 정치적 쟁점이 되기도 하지. ‘미투me-too 운동’이나 미세먼지와 관련된 환경 규제를 둘러싼 갈등도 있고, 대북정책이나 한일관계 같은 사안도 정치적 쟁점이 되고 있어.
다만, 친구 사이의 사소한 싸움과 같은 사적인 문제까지 정치가 다루어야 할 쟁점이 되는 건 아니야. 갈등이 ‘개인적인 문제’를 넘어서 ‘사회적·공적인 문제’ 혹은 ‘공동의 관심사’로 전환되면 정치적 쟁점이 되는 거지.
예를 들어볼까? 2018년과 2019년에 걸쳐 소위 ‘한유총(한국유치원총연합회)’ 사태가 벌어졌지. 그 당시 사립유치원 운영 과정에서 많은 문제점과 비리가 발견되었어. 국가가 주는 지원금을 유치원 원장이 유치원 운영과 교육 분야에 사용하지 않고 사적 용도로 사용한 거야. 이렇게 부당한 사용을 제재하기 위해, 정부는 학교에서 사용하는 회계시스템을 유치원에서도 사용하도록 제도를 고치려고 했지. 그랬더니 한유총은 사립유치원은 사유재산이기 때문에 ‘정치적 결정의 대상이 아니고 국가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라고 주장했어. 한마디로 자신들이 알아서 할 사적인 문제이지 공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거야. 반면 많은 학부모는 유치원 문제는 ‘공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지.
이런 식으로 어떤 갈등이 정치적 쟁점이 되면 여러 과정을 통해 정치적인 결정(공적인 결정)을 내리게 돼. 그런데 정치적으로 내려진 결정은 모든 시민에게 크든 작든 영향을 미친단다. 이 말은 누구에게는 이익을, 다른 누구에게는 손해를 준다는 뜻이야.
환경오염 문제에 대한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 이 부분을 자세히 살펴볼까?
길 동 환경오염은 현재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문제야.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규제해야 해. 그래서 우리나라는 2010년을 전후로 많은 시내버스를 액화천연가스CNG 차량으로 교체해 왔어. 서울시만 하더라도 유해가스를 많이 뿜어내는 경유버스를 천연가스 차량으로 교체할 경우 2천여 만 원을 보조해 주었지. 최근에는 노후 경유차를 폐차하거나 전기차를 구입하면 보조금을 주기도 했어.
철 수 환경 문제에 대해 정부가 적극 나서는 일은 필요해. 그런데 우리나라 정부 정책에는 문제가 있어.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사람에게 환경오염유발 부담금이나 벌금을 부과해야지, 왜 시민들이 낸 세금으로 비싼 차량을 구입하라고 보조금을 지급하는지 이해가 안 돼. 쉽게 말하면 공해를 일으킨 원인 제공자, 즉 버스 회사가 비용을 부담해야지 피해자인 시민이 그 비용을 부담하는 건 공정하지 않아.
길 동 환경 문제도 중요하지만, 경제도 중요하잖아? 정부의 규제가 강화되면 기업 활동에 비용이 커질 수 있어. 특히 노후 경유차에 부담금을 높게 부과하는 경우 소상인에게 지나친 부담이 되잖아.
철 수 이 문제는 전기요금 부과 문제와도 비슷해. 최근 여름철이면 뉴스에서 다루는 ‘전기세 폭탄 문제’ 있지? 전기요금 정책에 문제가 있는 거야. 우리나라는 경제 활성화를 위해 산업 및 상업용 전기 사용료를 낮게 책정하고 가정용 전기 사용료를 높게 책정해 왔어. 어떻게 보면 각 가정에서 기업 대신 전기요금을 내주는 셈이지. 사용한 만큼, 비용을 유발한 자가 그 비용을 부담하는 게 원칙에 맞지 않아?
미세먼지가 최근 한국 사회에서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지? 그 원인의 하나로 지목된 노후 경유차를 폐차하는 경우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하는 정책을 몇 년 전부터 시행해 왔어. 그런데 오염물질을 유발하는 차를 운행한 사람이 비용을 부담하지 않고, 시민이 낸 세금으로 오염물질을 유발하는 사람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는 일은 ‘피해를 받은 사람의 비용으로 피해를 준 사람에게 보상하는 것’이잖아.
이렇듯 우리 사회의 정책 중에서 5천만 명 모두에게 이익을 주거나 모두가 똑같이 비용을 부담하는 그런 정책은 없단다. 그래서 정치를 ‘희소한 가치를 권위적으로 배분하는 것’ 또는 ‘누가 무엇을 얻느냐?’의 문제라고 정의하는 것 같아.
아무튼 어떤 공적인 결정이 내려졌다고 치자. 그러면 이 결정으로 인해 이익을 얻는 사람뿐 아니라 손해를 보는 사람도 생길 거야. 그런데 손해를 보는 사람은 이 결정을 받아들일까? 이 결정을 수용한다면 왜 그럴까? 시민이 뽑은 대표자가 결정했기 때문에? 아니면 법정에서 판사가 ‘땅땅땅~’ 하고 판결했기 때문에?
‘권력’과 ‘권위’라는 개념을 통해 그 해답을 찾아보자.
우리나라의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천명하고 있어. 한마디로 우리나라는 민주주의를 지향한다고 선언한 거지.
그러면 민주주의는 무엇일까? 민주주의Democracy(民主主義)란 말 그대로 국가의 최고 권력인 주권이 국민demos, people에게 있는 정치체제를 뜻해.
여기서는 우리나라 헌법에도 나와 있는 중요한 말인 ‘권력’의 의미를 살펴볼 거야. 그래야 나중에 살펴볼 민주주의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거든.
먼저, 지금까지 이야기한 내용을 정리해 볼까? 정치란 다원 사회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가치 배분을 둘러싼 갈등을 공적인 결정을 통해 조정하고 통합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어. 다원화된 현대 사회에서 갈등은 불가피하다고 했지? 정부의 결정(정책)은 누군가에게는 이익이 되지만 누군가에게는 손해가 될 수밖에 없다고도 했고. 그런데 손해를 보는 개인 혹은 집단은 과연 이 결정을 받아들이려고 할까?
막스 베버Max Weber라는 아저씨가 있었어. 이 아저씨는 ‘인간은 평등한 존재’라고 믿는 근대 사회에서 왜 사람들이 따로 통치자를 두고, 그 지배를 받아들이는지 무척 궁금했나 봐. 이 아저씨는 ‘권력의 정당성’에 주목했어. 권력이 정당하다면 공적인 결정을 수용할 수 있다는 거야. 그런데 권력의 정당성, 그게 뭘까?
권력power의 뜻을 이해하기 위해 이런 상상을 해볼까?
같은 학교를 다니는 길동이와 철수가 있는데, 두 친구는 서로 다른 동네에 살고 있어.
학교 수업이 끝난 어느 날, 길동이가 혼자 가기 싫었나 봐. 철수에게 같이 가자고 하는 거야. 철수는 한참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싫다고 했어. 그랬더니 길동이가 주먹을 들어 보이며, “한 대 맞을래? 아니면 그냥 같이 갈래?” 하는 거야. 철수는 할 수 없이 따라갔어.
이처럼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서 자신의 의도를 관철시킬 수 있는 능력’을 권력이라고 해. 길동이와 철수가 갈등 상황에 있는데, 길동이의 의지(의사)가 관철된다면, 길동이가 권력을 행사했다고 표현하는 거지. 자세히 살펴보면 권력에는 세 가지 요소가 들어 있어. 갈등, 강제력force 행사의 위협, 그리고 상대방이 그 요구에 따르는 것이야.
여기에서 깜짝 퀴즈~. 직장 내 상사의 성폭행은 권력 때문일까? 아닐까? 피해자가 순순히 응하지 않고, 직장 상사가 폭력을 사용한 경우라면, 이건 야만force이지, 권력power은 아니야.
다른 예를 들어볼까?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있어.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맞짱(?) 뜨면 분명 아버지가 이길 것 같은데, 아버지가 할아버지 말씀을 잘 따르는 거야. 할아버지 말씀을 따르는 일은 권력 때문일까?
만약 할아버지의 재산을 많이 상속받으려고 아버지가 할아버지의 뜻대로 행동한다면 할아버지가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지. 하지만 아버지는 할아버지 말씀을 따르는 일이 당연(정당)하다고 생각해서 할아버지의 뜻대로 행동하는 거라면 그것은 권력 때문이 아니야. 강제력에서 나오는 게 권력이라고 했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관계처럼 정당성에서 나오는 힘은 ‘권위authority’라고 부른단다.
막스 베버 아저씨가 권력의 정당성에 주목했다고 했지? 베버 아저씨가 스스로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이 여기에서 나왔네. 인간은 평등하다는 믿음이 보편화된 현대 사회에서는 ‘정치권력이 정당하다고 믿을 때에만 사람들이 공적인 결정을 수용할 수 있다.’는 거야.
앞에서 정치를 ‘희소한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라고 정의했잖아? 사회의 희소한 자원은 정당한 권력에 의해 정당하게 배분되어야 하며, 무엇이 옳은지에 대한 결정 또한 정당한 권력에 의해 정당한 과정을 통해 내려져야 한다는 뜻이야.
만약에 대다수 시민이 권력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마도 권력에 대항하는 시위가 심해지고 사회가 혼란스러워질 거야. 역사를 살펴보아도 통일 신라든 고려든 조선이든 말기로 갈수록 반란이나 민란이 많아졌잖아?
사실 사회 갈등이 해결되지 못해 증폭되고 극심한 반발로 사회가 불안정해지는 현상은 정치권력의 정당성과 직결된 경우가 많아. 사회의 안정을 위해서도 정치권력의 정당성은 아주 중요하지.
그렇다면 한국의 평범한 시민들이 2016년 겨울에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간 이유는 무엇일까? 박근혜 정부의 권위(정당성)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겠지.
전통적 권위, 합법적 권위, 카리스마적 권위
막스 베버는 ‘현대인이 왜 지배를 수용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고 했지? 이 아저씨는 지배의 정당성에서 그 해답을 찾았어. 어떤 결정이 정당하다면, 혹은 통치자와 피통치자가 있지만 통치자의 지배가 정당하다면 수용할 수 있다는 거야.
베버는 권위를 정당성의 원천이 무엇인지에 따라 전통적 권위와 합리적·합법적 권위, 그리고 카리스마적 권위로 구분했어.
먼저, 전통적 권위에 대해 알아볼까?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반포하려는데 신하들이 반대했잖아. 한글을 공식 발표하고 널리 사용하려는 세종대왕과 이에 반대하는 신하들 사이에 있을 법한 가상의 대화를 상상해 볼까?
세종대왕: 내가 왕이야.
신하들: 그래서요?
세종대왕: 왕의 말이 곧 법이야.
신하들: 왜요?
세종대왕: 그게 전통이야.
쉽게 말하면, 전통이란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뜻이야. ‘전통’에 따라 왕의 혈통을 이어받았고, ‘전통’에 따라 ‘왕명이 곧 법’이니까 찍소리하지 말라는 거지.
그러면 현대 사회에서는? 권위가 전통에서 나오지는 않아. 베버는 ‘합리성’ 혹은 ‘합법성’에서 권위가 나온다고 보았어. 베버 아저씨가 말한 합리성의 개념은 머리가 아프니깐, 여기에서는 합법성의 의미만 이야기할게.
요즘 세상에 누군가가 나타나서 자신은 고종 황제의 핏줄이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권력은 자신에게 있다고 주장한다면 다들 코웃음 치겠지? 또 대통령이나 장관이 자기 기분에 따라 포고령을 내리고 시민들에게 이를 따라야 한다고 이야기한다면 엄청난 비판을 받을 거야. 국회의원이 대표자라는 지위를 앞세워 누군가에게 ‘갑질’을 한다면 미쳤다고 손가락질을 받겠지?
시민의 권리를 제한하고 의무를 부과할 수 있는 강제력은 오로지 정당한 절차로 만들어진 법을 통해서만 인정되거든. 이렇게 정당한 절차와 대다수의 시민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