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가 세상에 펼쳐놓는 모든 성과에는 결코 누군가의 삶도 드러나지 않는다. 창백한 논문 위에 빼곡히 적힌 글씨와 수식, 그리고 그래프만이 그동안 인류를 얼마나 위대한 곳으로 인도하려고 애썼는지 증명한다. 하지만 정말 그뿐일까? 여전히 피와 땀을 한 바가지씩 흘리며 밤을 지새우는 삶은 계속되며, 남겨진 모든 것은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한 과학자의 인생이다. 여기엔 연구 성과 대신 감정의 생채기가 있고, 경이로운 발견 대신 한 인간의 가능성이 있다. 한 번도 물러선 적 없이 자신이 옳다고 믿는 길을 걸었던 단단한 연구자의 끝없는 생각을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만나보자. 아마 지금까지 읽어본 과학 대중서와는 확실히 새로울 것이다.
_ 궤도(과학 커뮤니케이터)
《과학이 필요한 시간》, 《궤도의 과학 허세》의 저자
모든 것은 과학이다! 그런데 왜 여태까지 과학자가 쓴 에세이를 보지 못했을까? 우리 모두가 ‘나의 인생’을 연구하는 대학원생이라고 말하는 저자는, 때로는 과학자의 섬세함으로, 때로는 인간의 충만한 감성으로, 자신의 인생 연구 결과를 멋지게 발표한다. 연구실에서 씨앗의 발아 과정만 기록해 오던 연구원은 어떻게 자신의 인생을 기록했을까? 한 사람이 발아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참 재미있다.
_ 1분 과학(과학 커뮤니케이터)
《1분 과학》의 저자
과학자들이 대중 강연을 시작할 때 흔히 하는 말이 있다. “여러분의 일상이 모두 과학입니다.” 위성으로부터 정보를 받아 정확한 시간에 깨워주는 스마트폰 알람부터, 통근길 지하철 개찰구의 RFID 태그, 전자레인지의 원리, 그리고 스마트폰 하나로 모든 가전을 컨트롤하는 IoT 기술까지, 아침에 일어나서 잠자리에 드는 우리의 모든 순간에 과학이 있다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들을 때마다 너무 기술에만 집중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우리의 삶이 모두 과학이다. 아침을 깨우는 동창의 직사광선, 한겨울 출근길에 차가워진 손을 데우는 뜨거운 커피의 전도열, 투명하게 익어가며 삼투압 현상으로 짭조름하니 맛이 드는 무조림도 다 과학이다. 돌이켜 보면 나에게 과학은 늘 이런 것들이었다. 방학의 절반은 경남 합천 두메산골에서, 나머지 절반은 울진 후포의 바닷가에서 온갖 것들을 보고, 듣고, 먹고, 만지고, 냄새 맡으며 놀았고, 도시의 집으로 돌아오면 내가 직접 느꼈던 것들의 이론을 풀어놓은 책을 열심히 읽었다. 지식도 학업도 아니었다. 내 과학의 시작은 변하는 것들에 대한 호기심과 세상에 대한 감수성이었다.
과학 커뮤니케이터는 보통 대중들에게 과학을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는 사람으로 정의된다. 여기서도 과학은 ‘지식’으로 제한된다. 나도 과학 커뮤니케이터 일을 하면서 초반 몇 년은 지식을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는 데에 목적을 뒀다. 하지만 익숙해질수록 뭔가가 묘하게 불편했다. 그건 ‘나의 과학 커뮤니케이션’이 아니었다. 내가 좋아했던 과학은 공부하고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나는 나의 과학 커뮤니케이션을 다시 정의했다. 그 목적은 사람들과의 소통이며, 과학은 전달의 대상이 아닌 소통의 매개체가 된다.
2018년 겨울, 대전의 어느 카페에서 동료 과학 커뮤니케이터 영조와 정완이를 만나 내가 하고자 하는 과학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신나서 떠들다 보니 4시간이 지나 있었고, 과학으로 사람들에게 위로와 응원을 전하는 “괜찮아, 과학이야”는 그때 나왔다.
내 삶에는 부침이 많았다. 어려서부터 겪을 필요가 없는 일, 겪지 않는 것이 좋은 일, 겪어서는 안 되는 일을 두루두루 겪으며 여기까지 왔다. 지금도 시한폭탄을 두어 개 안고 있다. 잔인하고 고된 삶에 신을 원망한 적도 있지만, 그 심보가 희한한 양반은 문을 닫을 때마다 꼭 창문 하나는 열어두셨다. 그리고 나에게 창문을 타 넘을 수 있는 체력과 지력도 주셨다. 삶의 고비마다 창문으로 도망을 치면서 나는 많은 것들을 배우고 깨달았다. 덕분에 나는 어려운 일로 나를 찾는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게 되었고, 그건 나에게 그 어떤 일보다 큰 보람이었다.
어떤 과학 커뮤니케이터가 되고 싶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나는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등을 쓸어주며 함께 울어주는 과학 커뮤니케이터가 되고 싶다. 거기에 왜 굳이 과학이 들어가야 하냐고 물을 수 있는데, 사실 딱히 그래야 될 필요는 없다. 그저 나는 타인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과학이었고, 십수 년을 과학자로 훈련받은 과거가 있기 때문에, 이미 자신의 일로 충분히 고민하고 있는 사람 앞에 “이런 것도 있다더라”며 하나 더 풀어놓을 수 있는 게 과학일 뿐이다.
누군가는 여전히 내가 하는 것이 제대로 된 과학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며, 개똥철학에 과학을 갖다 붙여 대중을 기만하는 행동이라고 한다. 그 의견도 존중한다. 하지만 동의하지는 않는다. 과학 커뮤니케이션은 연구가 아니다. 과학 커뮤니케이션에서 ‘과학’에 방점을 찍을 수도 있고, ‘커뮤니케이션’에 방점을 찍을 수도 있다. 나는 후자다. 이 책 또한 그렇게 쓰려고 최대한 노력했다. 나는 처음부터 이 책이 과학 코너가 아닌 일반 에세이 코너에 놓이기를 바랐다.
과학에도 인생에도 정답은 없기에 “이렇게 하라”거나 “이렇게 해야 된다”는 말은 최대한 빼려고 애썼다. (없지는 않다.) 과학 실험은 각종 변인을 완벽하게 통제해서 이루어지기에 서로 다른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그 결과가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하지만 인생의 변인은 짐작도 하지 못할 정도로 다양하며 통제되지도 않는다. 그래서 나의 경험과 그 결론을 타인의 인생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다만 나는, 두려움과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여기에 고백한 나의 이야기가 이 책을 읽는 사람이 자신이 가진 질문의 답을 찾는 데에 쓸 만한 힌트 정도로 사용되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일러두기
원문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사투리, 비속어 등 몇몇 표기는 수정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참 쉬운 손가락질들〉에서 ‘문둥병’의 정식 명칭은 ‘한센병’으로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으나 당시 시대상을 드러내기 위해 일부 구간에서 해당 표현을 그대로 사용했음을 밝힙니다.
가장 불편하고 받고 싶지 않은 선물이 있다. 바로 화분이다. 2년 전, 집들이 선물로 들어온 손바닥만 한 화분이 내가 직접 받은 마지막 화분 선물인데, 그때까지는 살아있는 생명을 정성으로 기르고 내 집의 일원으로 함께할 수 있는 몸과 마음의 에너지가 충만했다. 이 화분은 우리 집에 거의 나와 비슷한 시기에 입주를 해서 2년간 온갖 우여곡절을 다 겪었다. 일단, 선물을 준 친구가 식물의 이름을 적어 놓은 푯말을 잃어버린 까닭에 아직도 무슨 식물인지 모른다. 덕분에 볕을 좋아하는지, 음지를 좋아하는지, 물을 많이 주어야 하는지, 적게 주어야 하는지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매일 들여다보면서 화분이 온몸으로 보이는 삶의 신호를 살뜰히 체크하고 그에 따라 물을 주거나, 볕을 쬐게 해 주거나 했다.
지난여름 장맛비가 내리던 날, 빗물을 마시게 해 주고자 베란다 화분 걸이에 녀석을 내어놓았다. 다음 날 비가 개었는데, 나는 화분을 들이는 것을 깜빡했다. 이틀이 지나서 창문을 열었는데, 맙소사, 식물이 새카맣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억장이 무너졌다. 화분이 뜨끈뜨끈했고, 37도에 육박하는 한여름 날씨에 직사광선을 그대로 맞은 식물은 이파리가 새카맣게 타버린 채로 죽어가고 있었다. 혼비백산해서 바로 욕실로 들고 들어가서 찬물을 줬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자 잎들이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곧 식물이 죽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확실하게 말라 죽지 않은 식물을 쓰레기통에 넣고 싶지 않아서 명을 다하고 바싹 마르기 전까지는 화분을 책상 위에 두고 보고 또 봤다. 아직 살아있는 식물을 쓰레기통(정확히는 유전자 변형 생물을 분리수거하는 통)에 처박는 일은 대학원에 있으면서 진저리가 나게 했다. 그래서 다시는 숨이 붙어 있는 식물을 쓰레기통에 처박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자 까맣게 탄 잎이 떨어진 자리에 새로운 잎의 순이 돋아났다. 2~3밀리미터밖에 되지 않는 그 쪼그마한 연두색은 바로 옆의 까만색과 무척이나 대비가 되며 ‘다시 살아남’을 너무도 분명하게 표시하고 있었다. 너무 고마웠다. 잎을 잡고 우리 다시 잘 살아보자고 악수했다. 그 뒤로 이 식물은 꽃대도 아닌 요상한 잎대를 올리며, 자라나는 아이가 부모에게 온갖 재롱으로 기쁨을 주듯, 내게 소소한 즐거움을 주었다. 한여름의 직사광선을 그대로 맞고 반쪽이 아예 날아가 버린 덕분에 새순이 돋은 뒤에도 머리가 찌그러진 듯한 요상한 생김새를 하고 있는데, 그마저도 나한테는 세상 이쁜 내 새끼였다.
몹시 지친 어느 날이었다. 화분이 부리는 재롱을 보기는커녕, 뜨문뜨문 물을 주는 정도로 녀석과의 관계를 유지하던 차였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실망하는 일이 생기며 정신적인 피로가 극에 달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일들이 몰리면서 평일 밤늦게까지, 주말에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쉴 새 없이 일을 하게 된 때가 있었다. 내 한 몸 건사하기도 버거웠다. 집은 정말 잠만 자는 곳이었다. 그런데 나는 회사 일 외에도 벌여놓은 외부 활동이 많아서 집에서조차 편하게 쉴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시간은 없고, 몸은 피곤하고, 예전처럼 새벽 3시나 4시까지 버티며 일을 해낼 수 있는 체력도 아니었고 정말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그 불똥이 애먼 곳에 튀었다. 내가 몇 주를 까먹는 사이에 살짝 시들해진 화분을 보자, ‘녀석을 이제는 보내줘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녀석을 죽이기로 마음먹었다. 내 한 몸 건사하기도 버거운데, 책임져야 하는 생명이라니. 사실은 물만 주면 되는 것인데, 그때는 ‘목숨’을 하나 더 책임진다는 사실이 너무 짐스러웠다. 정신이 지쳐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한 것이다. 그렇게 나는 화분을 일부러 말렸다. 너무도 예뻐했던 잎대 끝의 얇고 넓은 잎이 가장 먼저 바싹 말라버렸다. 죽어가는 과정을 보면서도 방치했다. 녀석이 알아서 말라 죽으면 종량제 봉투에 넣어서 버릴 참이었다. 이 집에 내가 책임져야 하는 그 어떠한 산 것도 있어서는 안 됐다.
그날도 집에 늦게 들어왔다. 화분 자리에 녀석이 없었다. 화들짝 놀라서 찾고 있으니 먼저 퇴근한 남편이 “네가 화분을 까먹은 거 같길래 내가 물 줬어.”라고 했다. 맥이 탁 풀렸다. 꼭 저렇게 한 번씩 안 하던 짓을 한다. 욕실 세면대에서 녀석은 아주 오랜만에 물을 먹고 있었다. “나 걔 죽여서 버리려고 했는데….”라고 하니 남편은 “아, 그래? 몰랐어.”라고 했다. 그렇게 또다시 화분은 며칠 동안 욕실 세면대 위에 원래 거기가 제자리인 양 방치되어 있었다. 한여름의 화염 속에서도 살아남은 화분의 생명력은 어마어마했다. 일부러 말려 죽이려 해도 죽지 않고, 다시 살아났다. 몰골은 더욱 처참해졌지만, 여전히 녀석은 살아있었다.
이제 화분은 다시 원래의 제자리인 창가의 테이블 위에 놓여 있다. 흙이 마르면 물을 준다. 나는 다시 녀석과 끝까지 한번 살아보기로 마음먹었다. 앞으로는 내가 아무리 힘들고 버거워도 저 친구를 벗 삼아 힘을 얻으며 견뎌보기로 했다. 이렇게까지 학대하고 모질게 굴었는데도 기어이 파란 잎을, 새순을 끊임없이 보여주다니. 여름이 오면 분갈이도 해 줄 참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이 친구와의 인연은 이제 끝까지 가져가려 한다.
2년간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나는 그전까지는 ‘좋은 선물’이라고 생각했던 화분 선물에 대해서 전혀 다른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화분, 즉 살아있는 식물을 선물하는 것은 어쩌면 굉장히 기이한 일이다. 살아있는 생명을 주고받는다니. 손이 가지 않아도 혼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받는 쪽에서 평생을 공들여야 그 생명이 유지가 된다. 한철을 사는 식물이 아닌 이상, 그야말로 죽는 날까지 반려로 들여야 한다. 세상에 이토록 무겁게 책임을 지우는 선물이 또 있을까. 이것은 참으로 기이하다.
화분(이라고 쓰지만 살아있는 식물을 의미한다)을 선물로 주고받을 수 있는 건, 애당초에 이것을 살아있는 또 하나의 소중한 생명으로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생명을 관리하고 책임지는 그 무게를 통감한다면, 주는 쪽도, 받는 쪽도, 그리 가볍게 대할 수는 없다. ‘플랜테리어’라는 인테리어 트렌드가 있다. 식물로 집이나 공간을 꾸미는 것이다. 이것은 식물을 인테리어 소품으로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뻐서 산다. 그리고 두어서 예쁜 곳에 둔다. 이 식물이 직사광선을 피해야 하는지, 빛을 많이 필요로 하는지, 응달에 두어야 하는지, 환기는 어떤지보다 공간의 무드와 잘 어울리는지가 더 중요하다. 그렇게 불편함을 감내하던 식물이 잎을 떨구고 ‘망가지면’ 버린다. 그리고 그 자리에 새로운 화분을 들인다.
식물은 장식용 소품이 아니다. 식물은 이동하지 않을 뿐이지, 매일 역동적으로 움직이며, 살기 위해 주변 환경을 기민하게 인식하고 반응하는 생물이다.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나, 들을 수 있는 소리 등의 자극을 만들어내지 못할 뿐, 환경적 자극에 대해서 분명히 반응을 나타낸다. 고양이의 밥을 굶기고, 강아지를 산책시켜주지 않는 것은 반려동물에 대한 학대임을 모두가 잘 알고 있지만, 반려 식물을 생육에 적합한 환경에 두지 않고, 환기를 잘 시켜주지 않거나, 물을 주지 않고 말리는 것 또한 생명에 대한 학대라고는 잘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이것이 기이하고, 또 불편하다.
그저 예쁘다고 화분을 사서 선물하는 분위기에 약간의 고민이 더해지면 좋지 않을까. 반려동물을 입양할 때 단순히 외형만 보고 입양을 결정하지 않는 것처럼 식물을 집에 들일 때에도 만족스러운 수형뿐만 아니라 끝까지 이 식물을 책임질 수 있는지를 신중하게 고민하기를 바란다. 종량제 봉투에 넣고 있는 건 마른 식물의 잎과 줄기가 아니라, 얼마 전까지 집에서 함께 숨 쉬던 반려 식물의 시체다. 다들 식물이 미워서 일부러 죽이는 건 아닐 거다. 나는 반려 식물이라는 말이 참 좋다. 앞서 나에게 화분을 선물로 준 사람들에게 표시했던 감사는 진심이다. 좋은 마음으로 내 삶에 들인 반려 식물과 보다 건강한 관계를 맺기를 바란다.
2016년 페임랩 대회에 처음 출전했을 때, 나는 스발바르 종자 저장고와 종자 휴면에 대해 발표를 했다. 당시에는 종자 휴면에 관여하는 호르몬과 호르몬 수송체를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는 데에 온 신경이 쏠려 있었다. 정작 나는 재미가 없었다. 종자 저장고와 종자 휴면은 나를 과학 커뮤니케이터로 만들어준 소재였지만 나는 그 뒤로 그것을 다시 꺼내지 않았다. 그러다가 ‘자기 연구 주제’로 강연하는 것이 진짜라는 소리를 어디서 듣고서는 괜히 혼자 찔려서 졸업과 동시에 봉인해 둔 외장하드를 다시 꺼냈다. 강연 자료를 만들기 위해서 실험 데이터와 논문, 랩 미팅, 워크 세미나 자료 파일들을 하나하나 다시 꺼내 봤다. 그제야 그것들이 제법 재미가 있었다. ‘그때는 이런 생각을 왜 못했을까?’, ‘그때는 이걸 왜 몰랐을까?’ 하며 파일들을 죄다 열어보기 시작했다.
씨앗의 할 일은 응당 싹을 틔우는 것이다. 하지만 내게 있어서 씨앗에는 그보다 더 중요한 과업이 있었다. 싹을 틔우기 전까지 일단 살아남는 것이다. 씨앗의 상태로 있을 때 식물은 여러 물리적인 위험 요소로부터 안전하다. 한 번 싹을 틔우면 식물은 일생을 그 자리에 붙박이로 살며 모든 위험들을 정면으로 맞아야 한다. 식물이 가장 약할 때는 갓 싹을 틔웠을 때다. 그래서 싹을 틔우는 타이밍이 아주 중요하다.
가을에 열매를 맺는 식물을 생각해 보자. 새가 열매를 먹고 씨앗은 다시 땅으로 배설한다. 여기서 무턱대고 싹을 틔우면, 작고 여린 떡잎은 커다란 나무도 견디기 어려워 잎을 모조리 떨구고 버텨야 하는 혹독한 겨울과 맞닥뜨린다. 죽을 수밖에 없다. 이런 참사를 막기 위해 씨앗은 아무 때고 싹을 틔우지 않고, 동물이 겨울잠을 자듯, 잠자코 기다린다. 이것이 종자 휴면이다. 이 주제로 강연을 할 때 나는 간단히 ‘씨앗의 겨울잠’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겨울이 지나 봄이 와서 날은 따뜻해지고, 얼음이 녹고 흙이 촉촉해지면 씨앗은 비로소 싹을 틔운다.
나는 학위 기간 동안 종자 휴면 상태를 유지하는 호르몬의 이동 경로와 수송 메커니즘에 대한 연구를 했다. 식물은 저마다 다른 종자 휴면 기간을 가진다. 어떤 식물은 씨를 맺은 뒤 한두 달 만에 휴면에서 벗어나 싹을 틔울 수 있는 상태가 되지만, 또 다른 식물은 훨씬 더 긴 휴면 기간을 가진다. 영화 〈마션〉을 보면서 저래도 되나 싶었던 부분이 그거다. 주인공 와트니 박사는 화성에 홀로 남겨졌다. 다음 탐사선이 올 때까지 식량으로 가져간 감자를 심고 길러서 먹으며 몇 년이고 살아남아야 한다. 왜 하필 그의 식량은 감자인가. 영화에서는 수확하고, 바로 심고, 또 싹이 나지만, 실제로 감자는 휴면 기간이 유난히 긴 식물 중 하나다. 미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먹는 감자는 ‘러셋버뱅크’라는 종인데 만약에 와트니 박사가 가져간 것이 러셋버뱅크 감자라면 그는 최소 140일 이상의 휴면 기간까지 생존을 위한 계산에 넣어야 한다.
사람이 절박해지면 판단력이 흐려지고 눈이 먼다. 대학원생 시절의 내가 딱 그랬다. 포항을 벗어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때는 모든 것이 다 논문을 내기 위한 데이터로만 보였다. 매일 수백 개의 씨앗을 들여다보고, 심고, 까고, 발아율을 관찰하면서 그저 실험의 결과가 우리가 세운 가설과 일치하는지만 확인했다. 몇 퍼센트의 씨앗이 발아를 했는지, 야생종과 돌연변이종의 발아 억제율의 차이가 얼마나 나는지, 결과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지 따위가 관심사의 전부였다. 졸업하고도 수년이 지난 뒤, 연구를 완전히 그만둬서 논문을 내야 한다는 압박이 사라진 상태에서 본 데이터들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다. 거기에는 숫자와 그래프로 만들어질 실험 재료가 아니라, 묵묵하게 하지만 치열하게 싹을 틔울 때를 기다리는 씨앗이 있었다.
졸업을 하고, 논문에 대한 절박함은 사라졌지만 더 큰 절박함이 내 눈을 멀게 하고 있었다. 성공에 대한 욕심으로 인해 나는 굉장히 조급했다. 어느덧 불혹인데, 이룬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열심히 산 것 같은데, 나를 증명할 만한 것이 어디에도 없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일의 목표와 성공의 기준을 잘못 잡고 있었다. 박사 학위를 받은 후 내 인생의 다음 목표는 과학 커뮤니케이터로서의 성공이었다. 페임랩을 통해 만난 동료들은 소위 한국 사회의 상위 1퍼센트들이었다. 쭉 나열하면 대한민국의 그 어떤 부모도 꼬시지 못할 리가 없는 화려한 이력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뛰어난 재능에 성실함까지 모두 갖추고 있었다. 그들의 걸출한 성과를 자주 접하며 나는 나에게 집중하기보다 타인의 성공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또다시 눈이 멀었다. 삶의 목표나 성공의 기준이 타인이 되면서 나는 불행의 늪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갔다. 남들은 화려하게 피어나는 커다란 꽃봉오리들 같았고, 나는 비척대다가 말라비틀어진 잡초 같았다.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면서 엉망이 되어 가던 나는 크게 앓고 난 뒤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목숨이 경각에 달려야 철이 드나 보다. 타인의 성취에 관심이 사라졌고, 삶의 기준이 내가 되었다. 욕심과 조바심이 사라지니 이전에는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루아침에 스타가 된 어떤 연예인이 불과 몇 달 만에 구설에 올라 사람들의 눈 밖에 나는 걸 보면서 운이니, 유명세니, 성공이니에 앞서 중요한 것은 내 그릇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맞이하는 성공은 더 큰 독이 될 수도 있다. 때 이른 발아는 식물을 죽인다. 종자 휴면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이삭 발아’라는 현상이 일어난다. 옥수수 농사를 짓는 농부가 있다고 생각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