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익
서울대학교와 예일대학교 대학원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서울 대학교 건축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홍익대학교 건축도시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TRU건축사사무소를 설립하여 교육과 실무를 병행하고 있다. 건축설계를 통해 발 견한 생각을 도시로 확장하기 위해 ‘매력도시 연구소’를 설립 하여 연구와 집필을 하고 있다. 1인 거주자를 위한 커뮤니티 주택 ‘맹그로브 숭인’으로 2021년 한국건축문화대상 대통 령상을 받았다.
표지•본문 일러스트 조성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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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의 시대,
함께의 집
2년 전 여름, 사무실로 설계를 의뢰하는 이메일이 왔다. 의뢰인은 1인 가구를 위한 공유주택을 계획하고 있으며 프로젝트의 이름은 ‘맹그로브’라고 했다.
‘맹그로브 프로젝트’는 1인 가구를 위한 대안 주거를 만드는 시도입니다. 우리가 이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목적은 가격에 비해 질이 낮은 1인 주거에 대안을 제시하려는 것도 있지만, 그들이 함께 모여 사는 경험을 통해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하는 계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가설이 있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1인 거주자를 위한 공유주택을 지으려고 하는데, 살다보면 좀 더 괜찮은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는 집으로 설계해보자는 것이었다. 이런 거창한 요청에 앞서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정중하고 군더더기 없는 문장이었다. 건축설계를 의뢰하는 건축주들의 언어는 대부분 들떠 있다. 새로운 건물이 품어줬으면 하는 바람을 상자에 물건을 채워 넣듯 빽빽하게 적어 보내기 마련이다(설계는 그 상자를 차곡차곡 정리하는 일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맹그로브 측에서 보낸 이메일은 신중한 목소리로 건축가에게 하고자 하는 일의 최종 목적지만을 간결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단정히 정돈된 이메일 내용 중에서 건축가인 내 마음을 끈 것은 다음의 구절이었다.
우리는 미래의 삶을 계획할 때, 그리고 나와는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 서투른 점이 많습니다. 어떤 방법이 있는지 혼란스럽고 어렵기만 합니다. 비슷한 고민과 욕구를 가진 사람들이 동아리를 만드는 것처럼, 비슷한 생애 주기에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살면서 공통의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다면 어떨까요?
근사한 제안이었다. 어찌 보면 놀랄 만큼 이상적인 생각이었지만, 생각해볼수록 마음이 움직이는 제안이었다.
지금까지 8인용 소파가 들어가도록 거실을 넓게 만들어 달라는 요청은 무수히 받아왔지만, 거실에서 이웃과 나누는 대화를 통해 우리 사회의 행복 지수와 포용력이 높아지기를 원한다고 의뢰하는 건축주는 처음이었다. 게다가 1인 가구를 위한 공유주택인 코리빙하우스co-living house는 몇 해 전부터 내가 염두에 두던 건축적, 사회적 문제의식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었다. 1인 가구의 비율이 급속도로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집은 과거의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1인 가구의 입맛에 맞는 주거 공간은 충분히 제공되지 않고 있었다.
그동안 집은 두 가지 대전제를 가지고 지어졌다. 가족과 직장이 그 두 축이다. 우리 사회의 평균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아침에 직장으로 출근하고 열심히 일하다가 퇴근해서 집으로 돌아온다. 아늑한 집에서 가족과 함께 따뜻한 밥과 된장찌개를 나눠 먹고 잔다. 이미 직장에서 들볶일 대로 들볶인 사람이라면 집에서만큼은 가족 외의 타인과 얽히고 싶지 않을 것이다. 옆집에 사는 이웃과 뭔가를 같이한다는 생각도 하기 힘들다. 이때 집이란 나와 내 가족을 위한 성채이며, 보편적인 삶의 행복이란 효율적인 직장 공간과 아늑한 가족 공간 사이의 왕복운동이다. 하나의 가족을 사회의 최소 단위로 보고, 주변으로부터 안전하게 격리해주는 아파트가 우리의 주거로 최선의 해답인 이유였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이런 흐뭇한 가족 드라마를 시큰둥해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이들은 출근도 안 하고 집에서 노트북으로 업무를 보지 않나, 스테이크를 1인분만 구워서 햇빛이 잘 드는 창가에 두고 사진을 찍더니 멀리 있는 친구에게 보여주는 일에 몰두하지 않나, 갑자기 제주도로 떠나서 한 달 씩이나 집을 비우질 않나, 보편적인 집의 입장에서 보면 어리둥절할 행동을 해댔다. 이들에게 집이란 살고 일하고 노는 공간이 결합된 전용 복합시설인 셈이다.
게다가 이런 사람들이 급속도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1인 가구가 빠르게 늘어나고, 친구 두세 사람이 의기투합해서 함께 살기도 한다. 문제는 가족 중심으로 지어진 집, 그리고 출퇴근을 전제로 만들어진 도시가 하루아침에 이들의 삶에 맞춰 변신할 수 없다는 데 있다. 개성 넘치는 혼자만의 삶을 담아낼 집이 턱없이 부족한 데다, 있더라도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싼 것도 문제였다.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 것이 ‘공유 주거’다. 콘셉트는 단순하다. 원하는 집을 혼자 가질 수 없다면 함께 가지면 되지 않을까? 내 마음에 드는 동네, 나의 개성을 받아내는 공간에 살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높은 비용을 여러 사람이 나눠 낸다면 원하는 집에 살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공유 공간에 살면 사생활을 침해받을 거라는 걱정 때문에 망설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런 문제들을 건축적으로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던 차였다.
주거 문제를 단순히 집값을 잡고 공급을 늘리는 문제라고 믿는 사람들 앞에, 개인의 자아가 성장하고 타인과의 관계를 맺는 방법을 배우는 집을 내놓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집이 목적이 아니라 삶이 목적인 집을 짓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나의 맹그로브 설계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열대 식물인 맹그로브는 얕은 바다에 숲을 이루고 자란다. 얽히고설킨 뿌리의 생김새 때문에 물고기, 문어, 소라가 들어와서 살기 좋다. 바다 속에 아파트를 지어두고 다양한 종에게 입주의 기회를 열어준 셈이다. 뿌리 틈 사이에 각자의 거처를 마련한 생명체들은 차단되지 않은 채 서로를 바라볼 수 있다.
맹그로브는 어울려 살면서도 혼자인 것처럼 살고 싶은 1인 가구 주거에 딱 맞는 이름이다. 이곳에는 각자의 사생활이 지켜지는 개인 공간과 함께 음식을 만들 수 있는 공동 주방이 필요하다. 개인 공간과 공동 공간을 쉽게 오갈 수 있는 구조로 설계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마주침과 성장이 일어나야 한다. 이걸 어떻게 설계로 구현하면 좋을까?
짧지만 잦은 스침
“잘된 집은 말이야, 우리가 설명할 때 했던 말을 고객이 기억했다가 자신의 집에 찾아온 손님들에게 그대로 전달하게 되지. 우리 건축가들의 말이 어느 틈엔가 거기 사는 사람들의 말이 되어 있는 거야. 그렇게 되면 성공인 거지.”
마쓰이에 마사시,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비채, 2016
소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의 작중 인물인 건축가 무라이 슌스케 선생이 한 말이다.
건축가의 일이란 자신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공간에 가구를 배치하고 사람을 살게 하며, 실제로 사용할 사람들의 심리에 감정을 이입하는 일이다. 이 감정이입이 얼마나 실제와 공명하는지가 건축가의 능력이다. 아직 지어지지도 않은 가상의 주방에 가족을 넣어서 아침 식사를 하도록 하고, 친구들을 모아 저녁 파티를 벌인다. 그리고 그 상황에 들어맞는 공간을 상상한다.
‘다이닝 테이블 부분의 천장을 조금 낮추면 분위기가 좀 더 아늑해질 거야.’
‘주방을 식당과 마주 보게 하면 대화가 많아지겠지.’
건축가는 경험치에서 나오는 가정과 상상 속에서 공간을 만든다. 그리고 이런 가정들은 신뢰할 만한 증거인 도면이나 투시도와 함께 건축주에게 전달된다.
맹그로브를 설계할 때, 나는 1인 가구의 마음에 감정이입하여, 이들이 이웃과 어떤 만남을 원하는지 시뮬레이션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사용했다. 이를 위해 우리가 처음으로 한 일은 이 집에 들어올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알아내는 일이었다. 대체로 20~30대인 1인 가구들은 의衣와 식食의 소비, 취미와 휴식에 대한 자신만의 뚜렷한 견해가 있고 이를 실천하며 살고 싶어 했다. 잠재적 거주자들을 건축주로 생각하며 자신의 집에서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없애고 싶어 하는지 들어봤다. 이들과 함께 2층 침대가 들어 있는 6인실에서 자보고 공용 화장실을 사용해보면서 그들의 행동을 관찰했다.
이들의 요구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 비용은 저렴하되 공간은 편안해야 한다.
- 방이 클 필요는 없지만 답답하면 곤란하다.
- 내 입맛에 맞게 꾸미고 살고 싶지만, 기본 편의 시설은 미리 갖춰져 있어야 한다.
- 너무 근사한 동네일 필요는 없지만 걸어서 5분 거리에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카페가 있어야 한다.
모순되는 항목만 합쳐둔 듯한 이들의 요구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사항은 다음과 같았다.
완벽하게 사생활이 보호되었으면 하지만, 그렇다고 혼자 고립되기는 싫다.
혼자 사는 것이 좋아서 독립했지만 외로운 것은 싫고, 그렇다고 사람들과 과도하게 얽히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었다. 이 문제에 대해 우리가 낸 해결책은 함께 사는 사람들과 만남의 횟수를 늘리되, 그 시간을 짧게 하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었다. ‘짧지만 잦은 스침’을 만들어서 타인과 만나는 기쁨을 늘리고 심리적 부담을 줄여주는 것을 설계의 핵심으로 삼았다. 그리고 이 짧은 만남 속에 교류의 스파크가 일어나도록 복도의 폭을 늘리고 거실에서 서로를 바라볼 수 있는 창을 곳곳에 설치했다. 주방은 요리를 하며 서로 눈인사를 할 수 있도록 공간을 구성했다.
2년간의 노력 끝에 집은 무사히 완공되었고, 1인 가구들이 입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공동체의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한 나의 프로젝트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진짜 중요한 후반전은 지금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주거 실험을 시작하다
짧지만 잦은 스침이 정말 우리가 의도한 대로 일어날까? 우리가 계획한 대로 이웃이 만나고 교류를 할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목표, 건축주의 의뢰처럼 이 집에 살면서 개인이 성장하고, 공동의 문제가 해결될까? 맹그로브의 사용자들은 우리가 설계할 때 설명했던 말로 자신들의 삶을 설명하고 있을까?
어찌 보면 이런 의문은 무언가를 완성하고 나면 당연히 생기는 것이다. 자동차도 출시를 하고 나면 승차감과 안전도 테스트를 하고, 토스터 하나를 팔아도 빵을 구워본 고객에게 평가를 들어보는데, 건물처럼 복잡하고 거대한 물체에서 사는 사람들의 평가를 들어보지 않는 쪽이 오히려 이상하지 않은가.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역사 속 위대한 건축가들조차 자기 마음에 드는 멋진 공간을 그리는 것에만 신경을 쓴 나머지, 거주자를 무시했다고 비난받아왔다. 비용을 댄다는 이유로 자신의 취향을 거주자들의 경험보다 우선시하는 건축주들 또한 이런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들에게 사람들이 던지는 질문은 이것이다.
‘당신의 생각이 맞는지, 살아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아?’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건축가와 건축주가 해야 할 진짜 중요한 일은 집을 짓고 나서 시작된다. 그 안에 살고 있는 거주자들을 찾아가서 의견을 들어보라는 것이다. 집의 장단점을 몸으로 경험하고 있지만 조용히 침묵을 지키고 있는 다수의 사람들 말이다. (전문 용어로는 이를 ‘거주 후 평가 post occupancy evaluation’라 부른다.)
맹그로브도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세운 가설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설계를 하며 상상한 모습이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지 눈으로 보고 확인하는 일이었다.
나는 우리 사무실에서 설계를 담당했던 디자이너 현수에게 그 임무를 맡기기로 했다. 거주자들과 비슷한 또래인 그를 완성된 집에 들어가 살아보게 하면서 거주자의 행동과 감정을 기록하게 했고, 이를 설계 팀원과 함께 정기적으로 공유하며 분석했다. 파견 보낸 특파원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흥미진진했다. 우리는 거주자들이 우리의 의도대로 주방에서 서로에게 요리를 가르쳐주는 모습에 환호했고, 의도와는 달리 일어난 갈등에 당황하기도 했다. 사람들의 행동이 공간에 더해지자 설계 단계에서 했던 가정이 사실로 확인되기도 했고, 실패로 드러난 부분도 있었다. 그 과정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더 좋은 해결책이 발견되기도 했다. 그 결과를 분석하고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건축을 넘어 개인과 사회적 삶에 대한 깨달음이 하나둘 쌓여갔다. 이 책은 그 깨달음의 결과물이자 그동안 건축가들이 쉽게 보여주지 않았던 완공 후의 모습, 설계 이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잘 설계된 집에
산다는 것
혼자 있고 싶지만 외롭기는 싫고, 좋은 이웃과 어울려 살고 싶지만 적당한 거리를 지키고 싶은 것은 인간이라면 갖고 있는 우리 모두의 보편적인 욕구이다. 근원을 파고들면 그 핵심에는 정체성의 욕구와 공동체의 욕구가 자리 잡고 있다.
정체성이란 다른 사람과는 다른 나만의 본질적 특성을 말한다. 익명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특히 필요한 것은 진짜 내가 누구인지 생각할 여유이다. 내게 의미 있는 일이 무엇이고,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가족, 회사, 동창회 같은 집단의 영역에서 벗어나 나를 찾는 고독의 시간이 필요하다.
또 한편으로, 우리는 외로움을 물리치고 성장의 계기를 마련해주는 공동체에 소속되어 살고 싶은 욕구가 있다. 고독의 시간이 과도할 경우 부작용으로 따라오는 소외감은 복도에서 잠시 마주친 이웃과 나누는 한두 마디 대화로 물리칠 수 있다. 열정적 독서가인 친구와 한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를 하고 나면 우리의 지적 욕구가 다시 불타오르곤 한다. 소속감과 성장의 욕구를 일상에서 해소하기 위해서는 가까운 곳에 이웃을 위한 공간을 마련해둬야 한다.
정체성과 공동체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것은 비단 1인 가구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점점 다양해지는 형태의 모든 가구들을 위해 집이 해결해줘야 할 보편적인 과제가 되었다. 만약 당신이 잘 설계된 집에 산다면, 당신은 자신의 개성을 발휘하면서도 이웃에게 웃으며 식사를 함께하자고 권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렇게 정다운 대화를 나누다가도 시간이 되면 쿨하게 일어나 내 일을 하러 방으로 돌아가는 삶을 살 수 있다. 어디에 사느냐에 따라 나라는 한 사람의 특징이 결정된다. 집이 삶의 방식을 가르쳐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미래에 우리가 필요로 하는 집이란 단순한 주거 공간이 아니라 나와 타인에 대해 가르쳐주는 인생 학교라고 재정의하기로 했다. 이 책에서 보여주는 사례가 이 시대의 우리가 마주한 보편적 문제, 즉 더불어 살면서도 건강하게 자신의 고독과 마주할 수 있는 방법에 해답을 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지금부터 나는 이 책의 독자들을 집 구경에 초대하려고 한다. 혼자 살지만 이웃과 의미 있는 교류를 하고 싶은 사람, 집에 사는 경험을 통해 성장하고 싶은 사람, 그리고 주거가 ‘문제’가 된 이 시대에 주거가 사회를 발전시키는 해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여러분들이 초대의 대상이다. 그리고 여러분들에게 그 해법은 주거 정책이나 산업을 바꾸는 거대한 무언가가 아니라, 당장 우리의 주거를 바꿔나가는 일상의 실천에 있음을 실제 사례를 통해 보여주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