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운(水雲) 최제우의
종교 체험과 신비주의
초판 1쇄 발행 2017년 4월 28일
전자책 발행 2021년 12월 30일
전자책 최종 업데이트 2021년 12월 30일
지은이 성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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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등록 제15-3호
ISBN 978-89-521-3084-6 95250
전자책 정가 24,000원
ⓒ 성해영∙2017
이 책은 저작권법에 의해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 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이 저서는 2007년 정부(교육과학기술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NRF-2007-361-AL0016).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에게 예기치 않게 찾아왔던 경신년(1860) 종교 체험이 동학의 결정적인 출발점이 되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오랫동안 수행을 거듭했지만 자신이 원하던 종교 체험을 얻지 못해 고민하던 수운에게 그해 상제(上帝)가 갑작스럽게 나타났던 것이다. 상제로부터 영부(靈符)와 주문(呪文)을 받은 수운은 동학이라는 새로운 종교 사상을 정립하지만, 포덕(布德)에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아 혹세무민의 혐의로 체포되어 목숨을 잃고 만다.
창시자의 비범한 종교 체험이 종교의 출발점이 되는 사례는 종교사에서 낯설지 않다. 붓다의 깨달음 체험에서 비롯된 불교의 창시가 대표적이다. 창시자의 개인적인 종교 체험이 제도화된 종교로 발전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과정이 마치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리라 믿는다. 개인이 자신의 종교 체험을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별다른 회의나 의심 없이 그 체험이 준 비범한 통찰을 제도화된 종교로 발전시킨다는 식으로 말이다.
수운의 종교 체험을 다루었던 대부분의 연구도 역시 크게 보아 이런 입장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수운이 상제와의 만남을 저항 없이 수용했고, 그 결과 상제가 준 영부와 주문으로 동학이라는 종교 사상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물론 수운이 이 과정에서 유·불·선과 서학 등 당대의 종교 사상이 제시하는 중요한 개념을 잘 활용했다는 견해도 덧붙여진다.
이처럼 개인적인 체험이 종교 사상으로 발전한다는 관점에 설 때, 우리는 한 가지 중대한 의문에 봉착한다. 왜 초기 경전에는 수운이 상제를 의심하며 두려워했다는 기록이 빠짐없이 등장할까? 심지어 일부 초기 자료에는 수운이 자신을 시험한 상제에게 절식(絶食)으로 불만을 표시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상제의 계시를 동학이라는 종교 사상으로 자연스럽게 발전시켰다는 관점과 상충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런 사실들은 수운이 무극대도(無極大道)를 전해 받는 과정을 극적으로 만드는 장치였던 것일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첫 만남에서 수운이 토로했던 의심과 두려움, 그리고 당혹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한편 수운 종교 체험의 중요성을 강조한 기존 연구들은 그의 종교 체험을 신비 체험(mystical experience)으로 파악하여 접근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수운이 정확하게 어떤 유형의 체험을 가졌는지, 신비주의(神秘主義, mysticism)라는 개념을 활용해 그 체험들을 분석할 수 있는지 여부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또 수운의 종교 체험이 갖는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그의 종교 체험이 동학이라는 종교 사상을 어떻게 형성했는지 그 과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거나 체험의 내용과 영향에 초점을 맞춘 연구는 의외로 드물었다. 이 책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수운 종교 체험은 어떤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고, 동학의 창시에 어떻게 연결되었으며, 그것이 신비주의 개념을 활용해 적절하게 분석될 수 있는지를 살핀다.
수운 종교 체험과 동학의 형성 과정을 규명하는 일은 여러 차원에서 흥미로운 작업이 될 수 있다. 동학의 창시는 그리 오래지 않은 근대적인 사건이다. 수운은 포덕을 시작한 지 몇 년이 지나지 않아 목숨을 잃었고, 동학이 초기에 겪었던 극심한 탄압은 매끄러운 제도화 과정을 어렵게 만들었다. 그러한 이유로 여타 신종교와 달리 동학의 성립 과정에는 창시자의 삶과 가르침이 신화화(神話化)되는 경향도 비교적 적게 나타난다. 이 점은 수운의 삶과 가르침이 있는 그대로 그려졌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즉, 동학의 초기 자료는 여타 종교에 비해 후대의 의도적인 편집도 적고, 있었던 사실 그대로를 기록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초기 문헌에는 수운의 종교 체험이 제도화되는 역동적인 과정이 생생하게 드러나 있다. 특히 개인의 종교 체험이 체험자에게 갈등과 내적 긴장 없이 매끄럽게 수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과, 이 과정에서 체험자의 치열한 통합 노력이 또 다른 긴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잘 보여 준다. 또 동학은 그러한 내적 긴장이 개인의 세계관으로 승화되는 과정에서 사상적 창조성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증언한다.
여러 학자들이 지적하듯 그간의 연구는 갑오년 동학 농민 운동의 영향 때문에 역사적 관점 내지 사상을 다루는 철학적 관점을 취했던 경향이 크다. 이 과정에서 동학은 종교임에도 불구하고 종교적 측면이 상대적으로 적게 다루어졌다. 그리고 종교적 연구라 할지라도 수운 종교 체험 그 자체에 주목한 연구는 많지 않았다. 수운의 종교 체험이 동학의 출발점이었다는 사실은 널리 받아들여졌지만, 체험의 유형을 포함하여 체험이 제도로 연결되는 과정에 대한 연구는 뜻밖에도 적었던 것이다.
이 책은 이런 문제의식을 반영해서 수운의 종교 체험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자 했다. 특히 분석 과정에서는 종교심리학과 신비주의의 비교 연구(comparative study of religion)가 발전시켜 온 종교 체험의 연구 방법론과 성과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모든 학술적 연구가 그러하듯 이 책 역시 선행 연구에 힘입은 바 크다. 동학을 심도 있게 연구한 선학(先學)들을 포함해서, 종교학을 시작한 이후로 많은 가르침을 주셨던 선생님들께 감사를 드리고 싶다. 그중에서도 동학에 큰 애정을 가지고 연구에 매진하고 계신 김용휘 박사님과 정혜정 박사님에게 각별한 고마움을 전한다. 열정적인 연구는 물론이거니와 두 연구자의 개인적인 격려 역시 큰 도움이 되었음을 본 지면을 통해 밝히고 싶다. 종교심리학과 신비주의의 깊은 매력에 눈을 뜨게 해 주고, 종교 체험의 중요성과 연구 방법을 지도해 준 크리팔(J. J. Kripal) 선생님과 파슨스(W. B. Parsons) 선생님께도 거듭 감사드린다.
모쪼록 이 책을 통해 수운 종교 체험의 역동성과 다차원성이 더 선명하게 드러나기를 기대한다. 내용의 부족함은 전적으로 필자의 탓이다. 여전히 배우는 중이라는 점을 넓게 해량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 이 책이 수운 종교 체험과 동학의 상호 관계에 주목하게 만드는 작은 디딤돌이 되기를 희망한다.
2017년 4월
성해영
❁ 차례
머리말 | 수운 최제우의 종교 체험과 동학, 그리고 신비주의
I. 서론: 수운의 종교 체험과 신비주의의 비교 연구
II. 종교 체험과 신비주의
1. 신비주의란 무엇인가?
2. 종교 체험과 신비주의
3. 동학은 신비주의인가?
III. 수운 종교 체험의 유형과 해석
1. 문제 제기
2. 수운 종교 체험의 유형과 전개 과정
1) 이원성의 체험: 상제와의 첫 만남
2) 천사문답의 전개와 상제의 권위 수용
3) 오심즉여심 체험
4) 수운 종교 체험의 전개 과정
3. 비교종교학과 수운 종교 체험의 해석
1) 종교학의 종교 체험 연구와 수운의 체험 유형
2) 체험과 해석 틀의 상호 관계에서 바라본 수운의 종교 체험
IV. 수운 종교 체험의 의미
1) 독특한 지고 존재 개념
2) 이원적 관계에 대한 예민성
3) 자연스러운 드러남의 수행
4) 적극적인 사회 참여적 윤리관
5) 불연기연(不然其然)과 소진되지 않는 존재의 경이로움
V. 결론: 신비주의와 경계 가로지르기
참고문헌
문명총서 발간사
유교를 통치 철학으로 삼았던 조선 왕조는 19세기 후반 삼정(三政)의 문란으로 그 근간이 흔들렸다. 주변 상황 역시 대처하기 어려울 정도로 급격하게 변했다. 세계관의 중심으로 기능했던 중국은 우월적인 위치를 상실했고, 적극적으로 서양 문화를 흡수해 강국으로 떠오른 일본은 큰 위협으로 다가왔다. 시장과 식민지를 찾아 동양 진출을 꾀하던 서양 열강들은 ‘서학(西學)’으로 일컬어지던 기독교와 우수한 군사력을 앞세워 아시아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던 중이었다.
안팎의 혼란 속에서 민초들은 정체성의 감각을 잃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기독교와 우월한 과학 기술을 앞세운 서양 문명과의 만남은 정체성의 균열을 더욱 부채질했다. 당대인들은 서양 문명의 전적인 수용이냐 거부냐 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강요받았다. 수구파와 개화파의 극단적인 대립이 그 단적인 사례이다.
이러한 위기는 새로운 정체성 모색이라는 과제와 함께 공동체의 존립마저도 되묻게 만들었다. 수운 최제우는 이 시기에 조선이 처한 극심한 위기의 해답을 종교에서 찾으려 했던 인물이다.1 수운은 당대의 정황을 다음과 같이 이해했다.
이러하므로 우리나라는 악질(惡疾)이 세상에 가득 차서 백성들이 언제나 편안할 때가 없으니 이 또한 상해(傷害)의 운수요, 서양은 싸우면 이기고 치면 빼앗아 이루지 못하는 일이 없으니 천하가 다 멸망하면 또한 순망지탄(脣亡之歎)이 없지 않을 것이라. 보국안민(輔國安民)의 계책이 장차 어디에서 나올 것인가.2
‘악질’이 가득하며, 특히 무력으로 동양을 침탈하는 서양 문명이 커다란 위협이라는 진단이다. 이런 위기를 맞아 보국안민의 계책을 모색했던 수운은 종교에서 그 돌파구를 찾으려 했다. 혼란의 근본 원인이 개인과 집단의 이기심이며, 이를 해결하는 결정적인 방법은 ‘천명(天命)’을 듣고 실천하는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또 이 근래에 오면서 온 세상 사람이 각자위심(各自爲心)하여 천리를 순종치 아니하고 천명(天命)을 돌아보지 아니하므로 마음이 항상 두려워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였더라.3
수운은 천명을 직접 듣기 위해 젊은 시절부터 치열한 종교적 수행을 전개했다. 그러나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하고 낙담만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드디어 경신년에 상제와 만나는 종교 체험을 하게 된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수운이 구도 끝에 얻은 해답은 ‘내 마음이 곧 네 마음’이라는 ‘오심즉여심(吾心卽汝心)’의 선언이었다. 인간과 상제가 존재론적으로 동일하다는 앎에 기초해서, 사회 구성원들의 평등과 존귀함을 강조한 그의 가르침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갑오년의 동학 농민 운동이라는 거대한 흐름으로 구현되었다. 갑오년의 거사는 비록 실패했지만 이 사건은 개인의 종교적 열망이 어떻게 역사에 울림을 만들어 내는지를 분명하게 보여 주었다.
동학의 거대한 울림을 반영해서일까, 수운 최제우와 동학에 대한 연구는 그간 많은 학자들에 의해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무엇보다 동학의 종교 사상적 독창성과 치열한 사회 변혁 정신이 높이 평가되었다. 이는 동학이 우리 고유의 사상이라는 점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었다. 동학의 가치는 여러 차원에서 평가되었지만, 이론적 측면과 실천적 차원으로 크게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동학은 종교 사상이라는 차원에서 동서양 종교의 장점을 아우른 높은 통합성을 보여 준다. 동학은 ‘한울님’으로 표현되는 초월자와 인간이 맺는 역동적인 관계는 물론이거니와 양자의 궁극적 동일성을 대단히 절묘하게 포착하고 있다. 또한 실천적 측면의 장점도 뚜렷하다. 동학은 시대를 앞선 인본주의적 정신을 현실에서 구현하고자 했다. 수운이 비범한 종교적 통찰을 얻은 후에 자신의 집에 돌아오자마자 자신이 거느리고 있던 노비들을 면천시켜 각각 수양딸과 며느리로 삼은 사례는 동학의 경이로운 인본주의 정신을 보여 준다.
그런데 동학의 사상적 독창성과 시대를 앞선 실천적인 윤리는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그 해답은 수운의 종교 체험에서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4 수운의 종교 체험을 종교심리학과 ‘신비주의의 비교 연구(the comparative study of mysticism)’라는 관점에서 접근해 보면 동학의 특징적 모습을 더욱 명료하게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5
종교학적 관점의 접근이란 수운의 종교 체험과 동학을 ‘비교’의 관점에서 살펴보겠다는 의미로, 분석의 키워드는 ‘종교 체험’과 ‘신비주의’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동학을 수운의 종교 체험, 더 구체적으로는 ‘신비적 합일 체험’에서 촉발된 종교 사상으로 파악하고, 그 특징을 신비주의의 비교 연구라는 관점에서 고찰한다. 그러나 수운 종교 체험의 진실성 여부, 즉 수운이 경신년에 만난 상제가 실제로 지고 존재인지 혹은 그의 주관적 망상이나 기대의 산물에 불과한 것인지의 여부는 판단하지 않는다. 이는 실증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초기 문헌 자료에 기초하여 수운의 종교 체험을 재구성하고, 체험의 유형과 의미를 고찰함으로써 수운 종교 체험과 동학의 연관성을 입체적으로 이해하자는 것이 이 책의 주된 주장이다. 이를 통해 다루고자 하는 물음은 다음과 같다.
수운은 어떤 유형의 종교 체험을 가졌을까? 그 체험은 신비주의의 비교 연구라는 관점에서 어떤 유형에 해당할까? 수운 종교 체험의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이었는가? 수운은 자신의 종교 체험을 어떻게 이해하고 수용했을까? 그리고 수운의 종교 체험은 어떤 과정을 거쳐 동학이라는 종교 사상으로 발전했을까? 달리 말해, 수운의 종교 체험은 동학 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끝으로 수운 종교 체험과 동학의 상호 관계를 고찰하는 작업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통찰을 줄 수 있을까?
필자는 수운과 동학의 사례가 종교 체험과 종교 사상 간의 역동적인 상호 관계를 파악하게 해 주는 귀중한 자료라고 믿는다. 수운 종교 체험과 사상의 상호 관계를 신비주의의 비교 연구라는 관점에서 고찰하는 작업은 동학의 종교 사상적 독특성뿐만 아니라, 종교 체험과 종교 사상의 연관 고리를 더욱 분명하게 이해하도록 도울 수 있다.
이 책은 서론과 결론을 제외하고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① 종교 체험과 신비주의, ② 수운 종교 체험의 유형과 해석, ③ 수운 종교 체험의 의미’가 그것이다. 각각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다룬다.
첫 번째 부분인 ‘종교 체험과 신비주의’는 수운의 종교 체험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위한 사전 작업으로, 주제와 관련된 이론적 측면을 살핀다. 가장 먼저 이 연구에서 중요하게 활용될 핵심 용어인 ‘신비주의’, ‘종교’, ‘종교 체험’ 등의 의미를 정리한다. 작업 가설적 개념 정의를 시도한 후에는 ‘동학이 신비주의인가?’라는 질문을 다룬다. 동학은 ‘체험, 수행, 사상’이라는 신비주의의 구성 요소에 입각한 정의를 활용할 경우, 전형적인 신비주의적 종교 전통이라 볼 수 있다. 신비주의, 종교 체험, 신비 체험과 같은 개념이 정의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를 둘러싼 국내 학계의 오해도 적지 않다는 점에서 본격적인 분석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사전 작업이다.
두 번째 부분은 ‘수운 종교 체험의 유형과 해석’이다. 여기에서는 수운 종교 체험을 ‘유형론(typology)’과 ‘체험과 해석 틀의 상호 관계’라는 두 가지 차원에서 분석한다. ‘유형론’의 채택은 종교심리학의 종교 체험 연구 방법론과 그 성과를 활용해서 수운 종교 체험의 특성을 살펴보겠다는 의미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수운의 종교 체험이 경신년 상제와의 만남이라는 한 가지 유형에 그친 것이 아니라 그와는 다른 유형으로도 발전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더하여 ‘유형론’에 입각해 파악된 수운의 종교 체험을 ‘체험과 해석 틀의 상호 관계’라는 관점에서 재구성한다. 이를 통해 개인의 종교 체험이 종교적 교리를 포함한 문화적 맥락이라는 해석 틀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 묻는다. 수운의 사례는 종교 체험이 특정한 해석 틀에 완벽하게 포섭되거나, 수행과 교리 체계와 같은 해석 틀이 특정 유형의 종교 체험을 필연적으로 만들어 내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수운 종교 체험은 그가 지녔던 세계관과 같은 해석 틀과 전적으로 부합한 것은 아니었으며, 양자 사이에는 간과하기 어려운 내적 긴장이 발견된다. 달리 말해, 수운 종교 체험은 수운의 해석 틀과 불일치한 까닭에 그에게 새로운 해석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특히 수운 종교 체험과 그가 당대의 문화적 맥락 속에서 형성했던 해석 틀 사이에서 드러나는 부정합이 ‘역동적인 긴장’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에 주목한다. 수운에게 뜻하지 않게 주어졌던 체험이 기존 해석 틀과 불일치를 만들어 냈고, 양자의 부정합은 역동적인 긴장으로 이어졌으며, 이를 해소하려는 과정에서 동학의 종교 사상적 독특성과 창조성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세 번째 부분인 ‘수운 종교 체험의 의미’는 종교 사상으로서 동학이 지닌 창조적 측면에 주목한다. 수운 종교 체험 과정에서 드러나는 체험과 해석 틀 사이의 역동적인 긴장은 결과적으로 동학의 종교 사상적 독특성으로 연결되며, 그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첫째, 동서양 종교의 특성을 통합한 독특한 지고 존재 개념, 둘째, 시천주(侍天主)로 상징되는 이원적 관계에 대한 예민성, 셋째, 주문으로 대표되는 자연스러운 드러남의 수행, 넷째, 적극적인 사회 참여적 윤리관, 다섯째, 불연기연(不然其然)과 소진되지 않는 존재의 경이로움이 그것이다. 이 다섯 가지 특성은 수운의 비범한 종교 체험에서 출발하여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수운 종교 체험의 독특성과 이를 해석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은 동학만의 독특한 신(神) 관념을 만들어 냈고, 이는 신이 인간과 세상과 맺는 관계에 초점을 맞추는 시천주라는 개념으로 연결된다. 그리고 시천주 개념은 개인적 차원에서는 주문을 포함한 동학의 간결한 수행법으로, 집단적 차원에서는 평등을 강조하는 사회 참여적 윤리관으로 이어진다. 끝으로, 수운의 오심즉여심 체험은 존재가 기연과 불연으로 촘촘하게 얽혀 있다는 인식론적 통찰을 주게 된다.
이런 특성들 때문에 동학이 유·불·선 삼교와 서양 기독교의 기계적인 차용이나 통합에 불과한, 일종의 사상적 습합(習合, syncretism)으로 간주되어서는 곤란하다.6 수운 종교 체험과 종교 사상의 형성 과정에 주목해 보면, 동학은 수운 종교 체험이 자신의 문제의식을 반영하여 재해석되고 삶에 통합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형성된 독자적인 종교 사상이다.7 즉, 동학은 수운이 자신의 개인적인 종교 체험이 준 통찰을 핵심으로 삼아, 각고의 헤아림을 거쳐 동시대인들에게 제안한 종교적 해답 체계이다. 따라서 동학은 개인의 종교 체험이 사적(私的)인 차원에서 벗어나 공동체의 차원으로 어떻게 확대되는지 보여 주는 좋은 사례이다.
요컨대 이 연구는 수운 종교 체험의 유형과 의미에 초점을 맞춘다. 수운 종교 체험이 어떻게 동학이라는 종교 사상으로 구체화되었는가에 주목하면서 수운 종교 체험을 매개로 동학의 창조성과 울림에 접근하겠다는 의미이다. 비교종교학, 특히 종교심리학과 신비주의의 비교 연구는 수운 종교 체험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입체적으로 파악하게 해 주며, 수운과 동학의 사례는 거꾸로 비교종교학의 연구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이러한 접근은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이 장에서는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개념 정의를 포함한 이론적인 차원의 작업을 수행한다. 즉, 신비주의의 비교 연구 및 종교심리학의 종교 체험 연구 결과와 방법론을 정리함으로써 수운 종교 체험의 유형과 의미를 살피는 사전 작업을 시도할 것이다. 이 장은 다음의 세 절로 구성된다.
‘1. 신비주의란 무엇인가?’는 수운 종교 체험의 분석에 ‘신비주의’를 활용하기 위해 개념 정의를 시도한다. 신비주의는 여러 오해에도 불구하고 종교 체험을 이해하는 데 매우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는 개념이다. 그러나 그 효용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개념의 공유 가능성을 확보해야 한다. 필자는 신비주의의 구성 요소인 ‘체험, 수행, 사상’의 세 측면에 주목한 정의를 제안한다.
‘2. 종교 체험과 신비주의’는 ‘종교’와 ‘종교 체험’의 의미를 다룬다. 이 과정에서 ‘변형 의식 상태(ASC: Altered States of Consciousness)’가 두 개념의 정의에 유용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인간의 의식이 고정 불변의 단일한 실체가 아니라 구분할 수 있는 다양한 상태들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종교사에서 오래전부터 알려져 왔다. 변형 의식 상태 개념을 활용할 경우 ‘종교 체험’이 갖는 모호성을 줄이면서도 종교 체험에 주목하는 ‘종교’ 개념의 정의를 얻을 수 있다.
개인이 변형 의식 상태에서 보이지 않는 차원과 관계를 맺는 것을 종교 체험이라 정의한다면, 보이지 않는 차원과의 관계를 강조하는 종교 개념으로 자연스럽게 확장될 수 있다. 이 경우 종교 체험은 종교의 성립과 이해에 불가결한 요소가 된다. 개인의 종교 체험을 핵심으로 하여 종교를 정의하려는 태도는 슐라이어마허(F. Schleiermacher, 1768-1834)에서 시작해 제임스(W. James, 1842-1910)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유지된 흐름이다.
아울러 이 절에서는 신비주의의 비교 연구를 둘러싸고 제기된 일반적인 문제들도 다룬다. 신비주의는 종교학이 시작되면서 종교의 보편성을 드러내는 중요한 개념으로 각광받았다. 그러나 동일성과 보편성에 경도되어 종교 전통의 현실적인 차이점을 간과한다는 비판도 강하게 제기되었다. 신비주의의 비교 연구가 가능한가의 여부는 ‘수운 종교 체험과 동학의 분석에 신비주의 개념을 활용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과 직결되므로 정리가 필요하다. 비교 작업의 한계와 효용성을 인식한다면 신비주의 개념을 활용한 비교 분석 작업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믿는다.
‘3. 동학은 신비주의인가?’는 ‘동학이 신비주의 전통으로 간주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다룬다. ‘체험, 수행, 사상’이라는 신비주의의 세부 구성 요소 관점에서 볼 때 동학은 신비주의적인 종교 전통이다. 주문과 부적 등 수행자의 변형 의식 상태를 유도하는 구체적인 ‘수행법’을 제시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한울님과 존재론적 동일성을 확인하는 오심즉여심(吾心卽汝心)의 ‘체험’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또 체험으로 확인되는 통찰을 구현하라는 윤리적 권고와 함께 존재론과 인식론을 포괄하는 ‘사상적 체계’ 역시 명확하게 갖추고 있다.
또 이 절에서는 종교 체험의 연구 가능성과 한계라는 문제를 되짚어 본다. 수운의 종교 체험이 초기 자료에 입각해 재구성될 수 있고, 이를 통해 개인의 종교 체험이 어떻게 종교 사상으로 제도화되는지 분석할 수 있지만, 비교 연구의 근본적인 한계는 여전히 존재한다. 즉, 수운 종교 체험 역시 개인적인 사건이라는 점, 체험 자체가 기술(記述)된 문헌을 통해 간접적으로 연구될 수밖에 없다는 점과 같은 한계에서 완전하게 벗어나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어떤 조건에서 연구가 가능한지 살펴보는 일은 분석의 타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꼭 필요하다.
종교사에는 예외적인 인간 체험을 묘사하는 대목이 자주 등장한다. 첫 번째로 인용할 사례는 중세 가톨릭의 저명한 신비가로 손꼽혔던 에크하르트(Eckhart, 1260-1327)가 남긴 기록이다.
어떤 것도 시간과 공간처럼 하느님에 대한 영혼의 지식을 방해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하나이신 반면, 시간과 공간은 단편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혼이 하느님을 알고자 한다면, 그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알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이들 다양한 사물들처럼 하느님께서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시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는 하나이시다! … 우리가 신성한 진리를 보고 있을지라도 완전히 축복받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계속 보고 있을 때 우리는 그 안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대상을 생각하고 있는 한, 우리는 그것과 하나가 되지 못한다. 일자(一者)밖에 없는 곳에서는 일자 이외의 어떤 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도 눈멀지 않고서는 하느님을 볼 수 없으며, 무지를 통하지 않고서는 하느님을 이해할 수 없다.2
다양하고 비범한 종교 체험으로 가톨릭 종교사에서 명성이 드높았던 아빌라의 테레사(Teresa of Ávila, 1515-1582)는 자신의 저서인 『내면의 성』에서 신과의 합일 체험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그대가 봤듯이 하나님께서는 영혼에게서 모든 감각을 빼앗아 버린다. 그 영혼 안에 참된 지혜를 각인시키기 위해서다. 이 짧은 시간에 영혼은 보지도 듣지도 못하고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시간이 짧기 때문에 영혼은 그 시간을 실제보다 훨씬 더 짧은 시간으로 인식한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의심을 막는 방식으로 그 영혼을 찾아간다. 그때 그 영혼은 이 상태에서 돌아온다. 그 영혼은 그 영혼이 하나님 안에 있으며, 하나님은 그 영혼 안에 있다는 것을 안다. 비록 오랜 세월이 흐르고 나서 그 영혼이 이 선물을 다시 경험할지라도 그 영혼은 그때의 경험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며, 그 경험을 의심하지도 않을 것이다. 합일을 위한 기도는 그것을 경험하는 사람에게 확실한 결과를 남긴다. 그 결과는 나중에 언급할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 영혼이 확신을 느끼는 것이다. 그대는 이렇게 물을지도 모른다.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사람이 이런 것들을 어떻게 알 수 있나요? 나는 그 일이 일어났을 때 그들이 그것을 보았거나 들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나중에 그것을 분명하게 인지한다. 환상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속에 주시는 분명한 확신에 의해서이다. … 하나님께서 그 영혼을 이처럼 확실하게 찾아가신 것을 육체적 임재와 관계있다고 오해하거나 상상하지 말라. 보지 못하는데 어떻게 확실하게 느낄 수 있겠는가? 나는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 그것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라고 말하는 것 외에는. 나는 이것을 확신한다. 나는 이 확신을 느끼지 못하는 영혼은 하나님과 전적으로 합일되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 이 선물을 받기 위해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또한 우리는 그것을 충분히 이해하지도 못한다. 그것이 사랑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왔다는 것만 알아도 충분하다.3
테레사가 남긴 묘사는 합일 체험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한다. 우선 신과의 합일 체험은 일시적인 사건이며, 그 상태에서 시공의 개념을 초월한 궁극적 상태를 ‘확신’하게 만드는 앎이 있음을 선언한다. 신과의 합일 체험은 인간의 의식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테레사는 이 사건이 어떻게 이루어지며, 체험적인 앎에도 불구하고 그 앎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우리가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다고 역설한다. 앞선 인용에서 에크하르트도 하느님과의 합일 상태가 시공을 초월한 절대적 일원성임을 체험적으로 알게 해 준다고 주장하는 점, 그리고 이 의식 상태에서는 오감을 초월한 형태의 앎이 전개된다고 주장하는 점에서 테레사와 대동소이하다.4
한편 이런 묘사가 서양 종교사에서만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시공의 맥락을 훌쩍 뛰어넘어, 기원전에 쓰인 힌두교 경전인 『우파니샤드(Upanisads)』에 나온 묘사를 살펴보자.
내적인 것을 구별하는 지혜도 아니고, 외부의 물질 세계를 구별하는 지혜도 아니고, 그 둘을 구별하는 것도 아니며, 의식의 덩어리도 아니고, 의식도 아니고, 의식이 아닌 것도 아니며, 말로 설명할 수도 없으며, 잡을 수도 없고, 특징 지울 수도 없으며, 상상해 볼 수도 없고, 어떤 이름으로 부를 수도 없고, 오직 하나의 핵심인 진리이며, 세상을 복되게 하는 어떤 것이며, 둘이 아닌 그 아트만을 성인들은 네 번째 ‘투리야’라고 말했나니 그가 바로 아트만, 그가 바로 우리가 알아야 할 존재로다.5
이 인용문 역시 초월적 상태를 인식하는 것이 인간 영혼이 알아야 할 최종 지향점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밝힌다. “의식도 아니고, 의식이 아닌 것도 아니다.”라는 표현은 ‘투리야’라고 하는 네 번째 상태가 일반적인 의식 상태는 아니지만, 궁극적인 존재 상태에 대한 앎이자 인간 의식과 분리할 수 없는 심리적 사건임을 선언한다.
체험의 기록들이 근대 이전의 자료들에서만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캐나다 출신의 의사였던 버크(R. M. Bucke, 1837-1902)는 영국 런던 근교에서 일어났던 자신의 신비적 합일 체험을 다음과 같이 생생하게 기록했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갑작스럽게 불꽃처럼 붉은 구름에 휩싸여 있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불을 생각했다. 어딘가 가까이에 있는 커다란 도시에서 일어난 엄청난 화재가 떠올랐다. 다음 순간, 나는 그 불이 내 자신 안에 있음을 알았다. 그런 후 곧바로 묘사할 수 없는 지혜의 각성과 함께 거대한 환희의 감각이 나를 덮쳐 왔다. 나는 단순히 믿게끔 된 것이 아니었다. 우주가 죽은 물질로 이루어져 있지 않고, 살아 움직이는 존재로 이루어져 있음을 똑똑히 본 것이다. 나는 내면에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의식하게 되었다. 그것은 내가 영원한 생명을 갖게 되리라는 확신이 아니라, 내가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고 있다는 의식이었다. 모든 사람은 결코 죽지 않고, 우주의 질서는 확실히 모든 것이 각자와 전체의 선을 위해서 함께 협력하도록 되어 있으며, 이 세상을 떠받치는 원리는 사랑이고, 따라서 각자와 전체의 행복은 궁극적으로 확실하다는 것을 나는 보았던 것이다. 그 비전은 수 초 동안 지속되다가 사라졌다. 하지만 그 기억과 생생한 느낌은 그 후로도 사반세기 동안 남아 있었다.6
버크는 예기치 않았던 이 사건을 ‘우주 의식(cosmic consciousness)’의 체험이라 명명했고, 이 기록은 종교심리학자이자 신비주의의 비교 연구로 유명했던 제임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위 인용문은 제임스의 저서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에 그대로 재인용되기도 했다.
비범한 체험은 종교적인 맥락 속, 즉 종교인이나 종교 수행자들에게만 또는 종교 집회나 종교 시설에서만 발생하지 않는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공산당원으로 스페인 내전 당시 프랑코 정권에 맞서 싸웠던 케스틀러(A. Koestler)가 남긴 기록이 한 예이다.
케스틀러는 내전 중에 체포되어 독방에 감금되었다. 그는 동료들이 잔인한 고문을 받고 처형당하는 것을 목도하면서 극도의 공포에 휩싸였다. 케스틀러는 극단적인 스트레스 상황에서 예기치 않게 의식이 확장되는 경험을 수차례 가졌고, 석방 후에 그의 삶을 송두리째 뒤바꾼 체험을 기록으로 남겼다. 이 체험을 계기로 그는 유물론자에서 종교인으로 회심하게 된다. 케스틀러의 묘사는 주로 일상적인 언어를 활용한 탓에 ‘종교적’인 기록으로 보이지 않는다.
‘내가 존재하기를 멈추었다’고 내가 말할 때, 나는 피아노 협주곡을 듣고 난 뒤의 느낌처럼 언어적으로 전달할 수 없는 어떤 구체적인 체험을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훨씬 더 실제적인 것이다. 사실상 그 체험의 일차적인 특징은 이 상태가 다른 사람이 예전에 경험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실제적인 감각이라는 점이다. 그 감각은 베일이 벗겨지고 난 뒤 ‘진실한 실재’와 접하는 것이다. 그것은 사물들의 숨겨진 질서이며, 일상적으로는 무관심의 층들에 가려진 세계의 X선적인 본질이다.
음악이나 전원 풍경 또는 사랑과 같이 정서적으로 황홀하게 하는 것과 이러한 유형의 체험을 구별하는 것은 그 체험이 분명히 지성적인, 아니 오히려 실체적인 내용을 갖고 있다는 점에 있다. 그것은 언어로 표현되어 있지 않을지라도 의미가 있다. 그 체험에 가장 근접한 언어적 표현은 ‘존재하는 모든 것의 통일과 연관이요, 중력장이나 의사소통 기구의 그것과 같은 상호 의존이다.’ 나는 정신적인 삼투성과 같은 것에 의해 우주의 연못과 소통하고 그것에 융해되어 버렸으므로, ‘나’라는 것은 존재하지 못한다. 그것은 모든 긴장의 해소, 절대적 카타르시스, 모든 이해력을 넘어선 평화와 같이 ‘대양적(大洋的)인 느낌’으로 지각된 융해의 과정과 무한한 확장이다.7
케스틀러 역시 이 체험이 의식 변형 상태에서 일어나는 일시적인 경험이며, 사물의 이면에 숨겨진 모든 것이 하나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사건이라고 주장한다. 또 비록 앎의 내용을 언어로 표현하기 힘들지만, 그 체험은 여타의 경험보다 훨씬 더 실제적인 것이라 강조한다.
종교사에 등장하는 체험의 기록들은 예술적 창조에도 영향을 미쳤다. 미국의 소설가 비달(G. Vidal)은 자신의 소설 『율리아누스』에서 로마 황제 율리아누스(Julian the Apostate, 331-363)의 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