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그리고리예브나 도스토옙스카야*에게 바친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요한복음서 12 : 24)
표도르 파블로비치 카라마조프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중년의 지주
아젤라이다 이바노브나 미우소바 표도르의 첫 번째 아내이자 드미트리의 어머니
소피야 이바노브나 표도르의 두 번째 아내이자 이반과 알렉세이의 어머니
드미트리(미챠, 미첸카, 미치카, 미트리) 표도르의 장남
이반(바냐, 바네치카, 반카) 표도르의 차남
알렉세이(알료샤, 료샤, 알료셰치카, 알료셴카, 알료쉬카) 표도르의 삼남
파벨 표도로비치 스메르쟈코프 표도르의 사생아로서 하인 겸 요리사
리자베타 스메르쟈쉬야 마을의 백치 여인으로 스메르쟈코프의 어머니
그리고리 바실리예비치 표도르의 하인
마르파 이그나치예브나 그리고리의 아내
카체리나(카챠, 카첸카, 카치카) 이바노브나 베르호프체바 드미트리의 약혼녀
그루셴카(그루샤, 아그라페나 알렉산드로브나 스베틀로바) 과거 삼소노프의 정부(情婦)이자 사업가
조시마(지노비이) 이 도시 수도원의 장로
미하일(미샤) 라키친(라키트카, 라키투쉬카) 알렉세이의 동료 신학생
카체리나 오시포브나 호흘라코바 젊고 부유한 미망인
리자(리즈) 호흘라코바의 딸
쿠지마 쿠지미치 삼소노프 이 도시의 거상(巨商)
이폴리트 키릴로비치 이 도시의 검사
페츄코비치 페테르부르크에서 초빙된 변호사
니콜라이 일리치 스네기료프 퇴역한 2등 대위
일류샤(일류셰치카) 스네기료프의 아들
니콜라이(콜랴) 크라소트킨 일류샤의 친구
1. 번역 대본은 나우카 판(아카데미 판) 도스토옙스키 전집(1972~1990. 전 30권) 14, 15권에 수록된 Братья Карамазовы이며, 영역본 The Brothers Karamazov(C. Garnett 번역, Penguin Books, 1980: D. McDuff 번역, Penguin Putnam Inc. 2003), 불역본 Les Frères Karamazov(H. Mongault 번역, Gallimard, 1994), 기존의 국역본 『카라마조프의 형제』(김학수 번역, 범우사, 1989) 등을 참조했다.
2. 러시아어 고유 명사의 한글 표기는 국립국어원 외래어표기법을 따르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발음상의 편의를 위해 구개음화 적용(미챠, 카체리나, 스메르쟈코프 등)을 비롯한 몇몇 예외를 두었다. .
3. 작품 속에서 인용, 변주되는 성경 텍스트는 『성경』(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2006, 2쇄) 및 러시아어판 『성경』(모스크바, 러시아 성경 공동체, 2001)을 토대로 하여 옮겼다.
11월이 시작됐다. 영하 11도의 추위가 닥치면서 곳곳에 살얼음이 끼기 시작했다. 얼어붙은 땅으로 밤이면 메마른 눈이 조금씩 내리고, ‘건조하고 날카로운’ 칼바람에 눈가루가 날려 우리 소도시의 지루한 거리들, 특히 시장의 광장을 휩쓴다. 아침부터 날씨는 궂었지만, 그래도 눈은 그쳤다. 광장에서 멀지 않은 곳, 플로트니코프 상점 근처에 안팎이 모두 아주 깨끗하고 아담한 집 한 채가 서 있는데, 관리의 미망인 크라소트키나의 집이다. 현청(縣廳) 서기관이었던 크라소트킨은 이미 오래전, 거의 십사 년 전에 죽었지만, 살아남은 그의 미망인은 지금까지도 몹시 예쁘장한 서른 살의 부인으로 자신의 깨끗하고 아담한 집에서 ‘자기 재산으로’ 살고 있다. 그녀는 성실하고 조심스럽게 살고 있으며 상냥하고도 상당히 명랑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일 년 남짓한 결혼 생활에서 아들을 하나 낳자마자 남편이 죽었는데, 그때 그녀의 나이는 열여덟 살이었다. 그때 이후, 그러니까 남편이 죽은 직후부터 그녀는 이 보물과 같은 아들 콜랴를 키우는 데 전력을 기울였으며, 십사 년간 내내 정신없이 사랑을 바쳤건만 물론 기쁨보다는 고통을 훨씬 더 많이 감내해야 했다. 행여 녀석이 아프지나 않을까, 감기라도 걸리지 않을까, 못된 장난질을 치지나 않을까, 의자에 올라갔다가 떨어지지나 않을까 등등 거의 날마다 너무 무섭고 불안해서 미칠 지경이었던 것이다. 콜랴가 초등학교에, 나중에는 우리 도시의 예비 김나지움에 다니기 시작하자 어머니는 아들의 학과 공부를 돕기 위해 아들과 함께 모든 과목을 배우기 시작했고, 또 선생님들 및 그들의 부인들과 안면을 트고 자기 콜랴를 집적거리거나 놀리거나 때리지 못하게 하려고 콜랴의 학교 친구들한테까지도 잘해 주고 그 아이들을 구슬리곤 했다. 결국, 아이들은 이 극성맞은 엄마 덕분에 콜랴를 마마보이라고 놀려 대고 약을 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소년은 꿋꿋하게 굴 줄 알았다. 그는, 학급 안에서 급속도로 퍼져 굳어진 소문에 의하면, ‘엄청나게 힘이 센’ 용감한 소년이었고 또 날렵하고 고집스러운 성격에 대범하고 진취적인 기상을 지니고 있었다. 공부도 잘했는데, 수학과 세계사에 있어서는 다르다넬로프 선생님을 쩔쩔매게 할 정도라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하지만 소년은 콧대를 높이 세우고 모든 아이들을 눈 아래로 내려다보긴 했어도, 그래도 좋은 친구였고 지나치게 오만을 떨지는 않았다. 같은 학생들이 자기를 존경해 주는 건 당연하게 받아들였지만, 그래도 우정 어린 태도를 취했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는 매사에 한계를 알았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 자제력을 발휘할 줄 알았고, 교사들과의 관계에서도 모종의 최후의 신성한 선은 절대로 넘지 않았으니, 행동이란 그 도가 지나치면 이미 용납될 수 없는, 소란이나 반란, 혹은 불법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기회만 주어지면 늘 망나니 골통과 같은 장난질을 아주 즐겼는데, 그건 사실 장난질이라기보다는 뭔가 난해한 일을 꾸미고 기발한 행각을 벌이고 ‘돌출 행동’을 해서 멋을 부리고 괜히 폼을 잡는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자존심이 몹시 강한 아이였다. 심지어 자기 엄마한테도 거의 독재자처럼 영향력을 행사하여 자기들 관계에서 엄마를 자기 부하처럼 만들 줄 알았다. 엄마는 정말 부하처럼 굽실거렸고, 오, 그렇게 굽실거린 지 정말 이미 오래였지만, 이 엄마가 참을 수 없었던 건 단 하나, 즉 자기 아이가 자기를 ‘거의 사랑하지 않는다.’라는 그 생각뿐이었다. 콜랴가 자기에게 너무 ‘무정하다.’라는 끊임없는 생각에 그녀는 히스테릭한 눈물을 쏟으며 아들의 냉담함을 나무라는 일도 있었다. 아이는 엄마가 이러는 것이 싫었기 때문에 애틋한 애정 표현을 요구하면 할수록, 꼭 일부러 그러는 양 더 고집불통이 되었다. 하지만 이건 그가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니라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된 거였는데 ─ 원래 성격이 그랬던 것이다. 그러니까 어머니가 오해를 한 셈이었다. 아이는 자기 엄마를 아주 사랑했지만, 그저 그가 초등학생다운 언어로 표현했듯, ‘송아지 같은 어리광’이 싫었던 것이다. 아버지의 유품으로 다소간의 책이 보관된 책장이 남아 있었다. 콜랴는 책 읽는 걸 좋아해서 그중 몇 권은 이미 혼자 다 읽은 터였다. 어머니는 이 일로 당혹스러워하지는 않았지만, 어떻게 저 어린 꼬마가 놀러 나가는 대신 책장 옆에 붙어 몇 시간씩이고 무슨 책을 들여다보고 있는 걸까 싶어 그저 이따금씩 놀라울 따름이었다. 이런 식으로, 콜랴는 그 나이에는 아직 읽지 말아야 할 것까지도 다 읽게 됐다. 하지만, 소년은 원래 장난질에 있어서 모종의 수위를 넘어서는 걸 좋아하지 않았지만 최근 들어 어머니를 그야말로 깜짝 놀라게 한 장난질을 벌이기 시작했으니 ─ 사실, 무슨 부도덕한 짓은 아니었지만 대신 절망적일 정도로 흉악무도한 짓을 저지르곤 했다. 때마침 올여름 7월에, 여름 방학 기간 동안 모자가 일주일 예정으로 70베르스타 떨어진 다른 군에 사는 어느 먼 여자 친척 집을 방문하러 떠난 일이 있었는데, 이 친척의 남편은 철도역(우리 도시에서 가장 가까운 역으로서 이반 표도로비치 카라마조프는 한 달 뒤 바로 이 역에서 모스크바로 떠났다.)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거기서 콜랴는 당장 철로를 자세히 둘러보며 여러 장치를 익히는 일에 착수했는데, 집에 돌아가면 예비 김나지움 친구들 앞에서 자신의 새로운 지식을 뽐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때 마침 그곳에는 소년들이 몇 명 더 있었기 때문에 콜랴는 그들과 어울리게 되었다. 그들 중 어떤 이들은 역관에, 다른 아이들도 그 근처에 살았는데 ─ 다들 열두 살에서 열다섯 살에 이르는 어린 청소년들로서 예닐곱 명이 함께 어울렸으며 그중 두 명은 우리 도시에서 온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은 함께 장난을 치며 놀았는데, 역관에 머문 지 나흘째인가 닷새째 되는 어느 날 이 어리석은 청소년들 사이에서 참으로 불가능할 법한, 2루블을 건 내기가 있었으니, 바로 이런 것이었다. 이 중 거의 나이가 가장 어렸기 때문에 나이 많은 아이들한테 다소 멸시를 받아 온 콜랴가 자존심이 상해서였는지 아니면 용감무쌍한 만용을 부리느라 그랬는지 여하튼 밤 11시 기차가 도착할 때 선로 사이에 엎드려 기차가 자기 위를 완전히 지나갈 때까지 꼼짝도 않고 있어 보겠다고 제안했던 것이다. 사실, 사전에 꼼꼼히 연구를 해 본바, 선로를 따라서 그 사이에 몸을 쫙 뻗고 납작하게 엎드려 있어도 물론 기차가 질주하면서 누워 있는 사람을 칠 리야 없겠지만, 그럼에도 아니, 어떻게 그렇게 누워 있겠단 말인가! 콜랴는 그렇게 하겠노라고 완강히 고집을 부렸다. 처음에는 다들 그를 조롱하고 거짓말쟁이, 허풍쟁이라고 놀렸지만, 이로써 그를 더욱더 부채질한 셈이었다. 무엇보다도, 이 열다섯 먹은 소년들이 콜랴 앞에서 너무나 콧대를 세우고 맨 처음부터 그를 ‘꼬맹이’ 취급 하면서 친구로 인정해 주려 하지 않았다는 것, 이것 자체가 이미 참을 수 없는 모욕이었던 것이다. 자, 그리하여, 기차가 역을 출발하여 완전한 속력을 내며 달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저녁 무렵에 역사에서 1베르스타 떨어진 곳으로 출발하기로 결정했다. 소년들이 다 모였다. 달도 보이지 않는 밤이 찾아왔으니, 어두운 정도가 아니라 거의 칠흑처럼 캄캄했다. 정해진 시각에 콜랴는 선로 사이에 누웠다. 내기에 동참한 나머지 아이들 다섯 명은 가슴을 졸이다가, 결국에는 제방 아래, 길가의 관목 숲으로 가서 기다렸는데 두려움과 후회가 밀려왔다. 마침내 역을 출발한 기차가 멀리서 우렁찬 소리를 내며 달려왔다. 암흑 사이로 두 개의 붉은 불빛이 번득이기 시작했고, 어느새 가까워진 괴물은 괴성을 질렀다. “뛰어내려, 선로에서 멀리 뛰어내리란 말이야!” 무서워서 죽을 것만 같은 소년들이 관목 숲에서 콜랴를 향해 소리쳤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기차는 사정없이 들이닥쳐 쏜살같이 지나가 버렸다. 소년들은 콜랴에게로 달려갔다. 그는 꼼짝도 않고 누워 있었다. 그들은 그를 잡아당겨서 일으켜 세우기 시작했다. 콜랴는 갑자기 몸을 일으키더니 말없이 철둑에서 내려갔다. 아래로 내려가면서 그는 그들을 놀래 주려고 일부러 정신을 잃은 척 누워 있었다고 선언했지만, 실은, 훗날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제 입으로 직접 엄마에게 고백한 대로, 정말로 기절한 거였다. 이런 식으로, 그의 뒤에 붙은 ‘독한 놈’이라는 영광의 딱지는 영원토록 공고해졌다. 집으로, 역관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려 있었다. 다음 날, 가벼운 신경성 열병을 앓긴 했지만 기분은 날 듯이 좋고 기뻤으며 또 만족스러웠다. 이 사건은 그 자리에서 곧 알려진 것이 아니라, 뒤에 우리 도시의 예비 김나지움으로 소문이 퍼졌고 그렇게 교사들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됐다. 하지만 콜랴의 엄마가 부디 자기 아이를 좀 봐 달라고 교사들에게 애걸복걸하고 또 제법 영향력 있고 추앙받는 다르다넬로프 선생이 그를 옹호하여 선처를 부탁하는 바람에, 이 일은 아예 없었던 걸로 유야무야되었다. 이 다르다넬로프라는 선생은 아직 별로 늙지 않은 독신자였는데, 벌써 수년 동안 크라소트키나 부인을 열렬히 사랑해 왔으며 일 년쯤 전, 한번은 너무 무섭고 조심스러운 마음에 가슴을 졸이면서도 아주 점잖게 그녀에게 청혼을 하는 모험마저 감행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결혼을 승낙하면 자기 아이를 배반하는 것이 된다고 생각하여 딱 잘라 거절했는데, 그런데도 다르다넬로프 쪽에서는 몇몇 은밀한 징후로 보건대 자신이 이 매력적이면서도 지나치게 순결하고 우아한 미망인에게 영 볼품없는 존재는 아니라는 꿈을 키울 권리 정도는 있었던 모양이다. 콜랴의 미친 장난질은 이 얼음을 깨뜨린 것 같았다. 즉, 다르다넬로프는 그를 옹호해 줌으로써 모종의 희망적인 암시를 받았는데, 사실 참으로 애매한 암시이긴 했지만 보기 드물 만큼 순결하고 민감한 성격의 소유자였던 다르다넬로프는 당분간은 이것만으로 충분히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소년을 좋아했지만, 그런 티를 너무 많이 내는 건 굴욕적인 일이라고 생각되어 교실에서는 그에게 엄격하고 까다로운 태도를 취했다. 한편 콜랴도 그를 공손하게 대하고 학과 공부도 잘해서 자기 학급에서 2등을 유지했으며 다르다넬로프에게 건조한 태도를 취하기도 했는데, 학급 전체가 콜랴의 세계사 지식이 너무 뛰어나기 때문에 다르다넬로프마저도 ‘쩔쩔매게’ 만들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정말로 한번은 콜랴가 그에게 “트로이를 세운 자는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진 적이 있었으니 ─ 이에 대해 다르다넬로프는 그저 이 민족들이 어떻고 이들이 어디로 이동 및 이주하게 됐고 그 시대가 얼마나 까마득한 옛날이었고 그 신화 내용이 어떻고 등등에 대해 일반적인 이야기만 할 뿐, 정확히 누가 트로이를 세웠는가, 다시 말해서 정확히 어떤 인물이었는가에 대해서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고 심지어 이 질문 자체를 어쩐지 쓸모없고 부질없는 것으로 치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소년들은 다르다넬로프가 누가 트로이를 세웠는지를 모르는 거라고 확신하게 됐다. 콜랴는 아버지의 유품으로 남겨진 책장에 있던 스마라그도프의 책에서 트로이의 건국자들에 대해 읽은 적이 있었다. 결국, 모든 학생들이 트로이를 세운 것이 도대체 누구인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지만, 콜랴는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지 않았으며 그러면서도 박식가로서의 그의 명성은 확고부동한 것으로 남았다.
철로 사건 이후 콜랴가 어머니를 대하는 태도가 다소 바뀌었다. 안나 표도로브나(미망인 크라소트키나)는 아들의 무용담을 듣고 너무 끔찍해서 거의 정신이 나갈 지경이었다. 그녀에게는 너무도 끔찍한 히스테리 발작이 며칠씩이나 간헐적으로 이어졌기 때문에 콜랴도 이제는 정말로 경악해 버린 나머지 이런 장난질은 앞으로 절대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라고 진정 고결한 마음으로 맹세했다. 크라소트키나 부인의 요구대로 그는 성상 앞에 무릎을 꿇고 맹세했고 또 아버지의 이름을 걸고 맹세했는데, 그러다가 ‘씩씩한’ 콜랴도 ‘감동’에 북받쳐 여섯 살배기 꼬마처럼 엉엉 울었고 숫제 이 모자는 그날 하루 종일 서로 부둥켜안고 전율하면서 흐느껴 울었던 것이다. 다음 날 잠에서 깬 콜랴는 여전히 ‘무정’한 아이였지만, 전보다 말수는 더 적고 더 겸손하고 더 엄숙하고 더 사려 깊어졌다. 사실, 한 달 반쯤 지나 그가 또다시 한 가지 장난질을 쳐서 그 이름이 우리 마을의 치안판사에게까지 알려졌지만, 이 장난질은 전과는 성질이 전혀 다른 것으로 심지어 우습고 어리석기까지 한 것이었으며, 게다가 밝혀진 바에 따르면 콜랴는 주동자도 아니고 그저 어쩌다 거기에 휘말려 든 것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얘기는 어떻든 나중에 하도록 하자. 어머니는 여전히 불안에 떨며 괴로워했고 다르다넬로프는 그녀의 불안이 커질수록 더 큰 희망을 품게 되었다. 여기서 한 가지 지적해 두어야 할 것은, 콜랴가 이 측면에서 다르다넬로프의 속내를 이해하고 또 헤아렸으며 응당, 그의 이런 ‘감정들’을 깊이 경멸했다는 점이다. 전에는 심지어 어머니 앞에서 이 경멸감을 표시하는 무례를 범하기도 하면서 다르다넬로프가 어떤 속셈을 품고 있는지 자기도 다 안다는 식으로 넌지시 암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철로 사건 이후엔 이 점에 대해서도 자신의 태도를 바꾸었다. 더 이상 이런 암시를 하는 일이, 심지어 아주 넌지시 던지는 일도 없었고 어머니 앞에서 다르다넬로프 얘기를 할 때는 더 공손해졌기 때문에 예민한 안나 표도로브나는 이것을 곧 알아채곤 내심 무한한 고마움을 느꼈지만, 대신 콜랴가 있는 데서 아무나 자기들과 상관없는 손님이 우연찮게 다르다넬로프 얘기를 조금이라도 꺼내면 갑자기 부끄러움을 느껴 장미처럼 얼굴을 붉히곤 했다. 이런 순간이면 콜랴는 인상을 팍 쓴 채 창문을 바라보거나 자기 장화에 구멍이 난 건 아닌지 살펴보거나, 한 달쯤 전 갑자기 어디선가 얻어 집으로 들인 뒤 무엇 때문인지 친구들 아무에게도 보여 주지 않고 방 안에서 몰래 키우고 있는 상당히 커다란 옴투성이의 털북숭이 개 페레즈본을 맹렬하게 부르곤 했다. 그런데 그는 이 개에게 무척이나 난폭하게 굴며 온갖 재주와 묘기를 다 가르쳤는데, 결국 이 불쌍한 개는 그가 학교에 가서 집에 없을 때는 끙끙대며 울다가, 그가 돌아오면 좋다고 멍멍 짖어 대고 반쯤 미친 듯 펄펄 뛰면서 주인을 섬기는가 하면 땅바닥에 나동그라져 죽은 척을 하는가 하면, 한마디로 자기가 배운 재주를 죄다 보여 주었으니, 이건 주인이 무슨 요구를 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저 혼자 기뻐 죽겠고 너무 고마운 나머지 진심으로 그랬던 것이다.
그나저나 내가 그만 깜박 잊고 언급하지 않은 것이 있다. 즉, 독자 여러분도 이미 알고 있는 소년, 그러니까 퇴역 2등 대위 스네기료프의 아들인 일류샤가 학교 친구들이 자기 아버지를 ‘수세미’라고 부르며 약을 올리자 아버지를 변호하기 위해 펜촉으로 어떤 소년의 허벅지를 찌른 일이 있었는데, 이 봉변을 당한 소년이 바로 콜랴 크라소트킨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는 혹한의 11월 아침, 소년 콜랴 크라소트킨은 집에 앉아 있었다. 일요일이어서 수업은 없었다. 하지만 시계가 벌써 11시를 친 지금, 그는 ‘극히 중차대한 어떤 일’ 때문에 반드시 외출을 해야 했건만, 집안 어른들이 모두 다소 기괴하고 이례적인 사정이 있어서 집을 비운 탓에 자기 혼자 남아 수호신처럼 집을 지키고 있었다. 미망인 크라소트키나의 집에는 그녀 자신이 쓰고 있는 본채 말고도 그곳 현관 너머에 유일무이한 곁채가 하나 있었는데, 방 두 칸이 딸린 이 곁채를 어린애 두 명이 딸린 의사 부인에게 빌려 주고 있었다. 이 의사 부인은 안나 표도로브나와 동갑으로서 막역한 친구 사이였다. 의사가 벌써 일 년 전에 처음엔 오렌부르크 어디론가, 그다음엔 타슈켄트로 떠난 뒤로 벌써 반년째 아무 소식도 없었기 때문에 버림받은 이 의사 부인은 크라소트키나 부인과 친하게 지내면서 어느 정도라도 괴로움을 덜 수 있었던 셈인데, 안 그랬다면 너무 괴로운 나머지 연일 눈물 속에서 허덕였을 것이다. 그러던 차, 하필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바로 이날 밤, 토요일과 일요일 사이에 의사 부인의 유일한 하녀인 카체리나가 갑자기 아침 녘에 아이를 낳을 예정이라고 알려 왔으니 부인 입장에서는 정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아무도 전혀 눈치도 못 채고 있었던 터라, 모두에게 거의 기적처럼 여겨졌던 것이다. 충격을 받은 의사 부인은 아직은 시간이 있으니까 이와 같은 일에 적합한 우리 도시의 한 시설의 산파 할머니에게로 데려가야겠다고 판단했다. 그녀는 이 하녀를 몹시 아꼈기 때문에 자신의 계획을 즉시 실행에 옮겼는데, 비단 그녀를 데려갔을 뿐만 아니라 그녀 자신도 하녀와 함께 거기에 남아 버렸다. 이어, 벌써 아침이 오고 왠지 크라소트키나 부인의 한결같은 우정 어린 관심과 도움이 필요해졌는데, 이 부인이라면 이런 경우에 누군가에게 뭘 부탁할 수도 있고 또 어떻게 뒤를 봐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런 식으로, 두 부인은 출타한 상태였고, 크라소트키나 부인의 하녀인 아가피야 아줌마도 장을 보러 나갔기 때문에, 콜랴는 잠깐 동안 ‘뚱땡이들’,1) 즉 저희들끼리 남겨진, 의사 부인의 사내애와 계집애를 봐 주는 수호자 겸 파수꾼이 된 것이다. 집 지키는 일이라면 콜랴는 조금도 무섭지 않았고, 페레즈본까지 있으니 더더욱 그랬다. 녀석은 현관의 의자 밑에 ‘꼼짝 말고’ 엎드려 있으라는 명령을 받은 터라, 콜랴가 이 방 저 방을 왔다 갔다 하다가 현관으로 들어설라치면 매번 머리를 흔들고 어리광 부리듯 꼬리로 마룻바닥을 두 번씩 탁탁 쳤지만, 안타깝게도 자기를 부르는 주인의 휘파람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도리어 콜랴는 이 불행한 수캐를 위협적으로 바라보았고, 녀석은 또다시 쥐 죽은 듯 복종하며 꼼짝 않고 있었다. 그런데 콜랴를 곤혹스럽게 만든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오로지 ‘뚱땡이들’뿐이었다. 카체리나에게 일어난 뜻밖의 사태를 응당 그는 몹시 혐오스러워했지만, 졸지에 고아가 돼 버린 이 뚱땡이들에 관한 한, 그는 얘들을 아주 사랑하여 이미 무슨 어린이용 책을 가져다준 적도 있을 정도였다. 누나인 계집애 나스챠는 여덟 살로 글을 읽을 줄 알았고, 남동생 뚱땡이인 일곱 살짜리 꼬마 코스챠는 나스챠가 자기에게 책 읽어 주는 걸 듣길 좋아했다. 물론 크라소트킨은 이 꼬맹이들을 좀 더 즐겁게 해 줄 수 있었다. 즉, 두 꼬맹이를 나란히 세워 두고 그들과 함께 병정놀이를 하거나 집 전체를 돌면서 숨바꼭질을 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전에도 이런 일을 한 적이 몇 번이나 됐고 또 이걸 꺼려 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심지어 한번은 크라소트킨이 자기네 옆방 꼬마들과 말타기 놀이를 하느라 말을 잡으러 뛰어다니고 말처럼 머리를 구부리곤 한다는 소문이 그의 반에 쫙 퍼지기도 했다. 크라소트킨은 이런 비난을 되받아치면서 ‘요즘 같은 시대에는’ 열세 살짜리 동갑내기들과 말타기 놀이를 하는 것이 정말로 치욕스러운 일이지만, 자기는 ‘뚱땡이들’을 위해 이러는 것이고, 고로 자신의 감정에 관해선 아무도 감히 왈가왈부할 수 없다고 대놓고 말했다. 그 대신 두 ‘뚱땡이들’은 그를 숭배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장난감을 갖고 놀 여가가 없었다. 그에게는 아주 중차대한 자기만의 일이, 얼핏 보기엔 거의 비밀스럽기까지 한 어떤 일이 임박했고 시간은 흘러가고 있건만, 아이들을 맡겨 놓을 아가피야는 여전히 시장에서 돌아올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는 벌써 몇 번씩이나 현관을 건너가서 의사 부인 집의 문을 열고서 근심에 찬 표정으로 ‘뚱땡이들’을 살펴보았는데, 그들은 그의 명령에 따라 책을 보고 앉아 있었지만 그가 문을 열 때마다 이제 곧 그가 들어와서 뭔가 재미있고 근사한 걸 보여 줄 거라는 기대감에 입을 활짝 벌린 채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콜랴는 마음이 영 불안했기 때문에 그쪽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마침내 시계가 11시를 알리자, 십 분 뒤에도 ‘망할 놈의’ 아가피야가 돌아오지 않더라도 더 기다리지 않고 나가 봐야겠다고 최종적으로 단호한 결정을 내렸는데, 물론 ‘뚱땡이들’한테서 자기가 없어도 겁을 먹거나 무슨 장난을 치거나 무서워서 울거나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고서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그는 무슨 고양이 털로 만든 깃이 달린 겨울용 솜 코트를 입고 어깨에는 가방을 멨으며, 전에도 어머니가 ‘이렇게 추운 날’ 밖에 나갈 때는 항상 덧신을 신으라고 몇 번이나 애원했건만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덧신을 힐끔 바라보고는 장화 하나만 신고 현관으로 나갔다. 페레즈본은 그가 옷을 입은 것을 보고서 온몸을 파르르 떨고 꼬리로 마룻바닥을 힘껏 때리고 애처롭게 낑낑거리기까지 했지만, 콜랴는 자신의 수캐가 이렇게 열정적으로 덤비는 걸 보고서 이것이 규율을 해칠 수 있다는 생각에 잠깐만이라도 녀석을 의자 밑에 좀 더 있게 한 뒤, 현관문을 열어젖힌 후에야 갑자기 녀석을 향해 휘파람을 불었다. 수캐는 미친 듯 벌떡 일어나 콜랴 앞에서 기뻐 날뛰기 시작했다. 현관을 건넌 뒤 콜랴는 ‘뚱땡이들’ 방의 문을 열었다. 두 아이는 아까처럼 책상 앞에 앉아 있었지만 이미 책은 읽지 않고 뭔가 열띤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이 꼬마들은 종종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다양한 일상사에 대해 논쟁을 벌이곤 했는데, 나스챠가 누나인 만큼 언제나 우위를 점했다. 코스챠는 누나의 의견에 동의하지 못할 때면 거의 늘 콜랴 크라소트킨한테 달려와 매달렸고, 그의 결정이 곧 쌍방 모두에게 절대적인 선고가 되었다. ‘뚱땡이들’의 이번 논쟁은 크라소트킨에게도 약간은 흥미진진했기 때문에 그는 문간에서 걸음을 멈추고 좀 들어 보았다. 꼬마들은 그가 듣고 있는 것을 보자, 더욱더 열을 올리며 말다툼을 계속했다.
“절대, 절대 믿을 수 없어.” 나스챠가 열을 올리며 종알거렸다. “산파 할머니가 어린 아기를 텃밭에서, 양배추 밭고랑 사이에서 주워 온다니, 말이 안 돼. 지금은 이미 겨울이니까 밭고랑은 하나도 없단 말이야, 그러니까 할머니가 카체리나한테 딸을 갖다줄 수도 없어.”
“휘이!” 콜랴가 혼자 휘파람을 불었다.
“아니면 바로 이런 거야. 그러니까 산파 할머니는 어딘가에서 아기를 갖다주긴 하는데, 오직 시집간 여자한테만 갖다주는 거야.”
코스챠는 나스챠를 주의 깊게 바라보며 곰곰 머리를 굴리고 들으면서 다시 생각을 정리했다.
“나스챠, 누나는 정말 바보야.” 마침내, 그가 열은 올리지 않아도 확고한 어조로 말했다. “카체리나한테 어떻게 아기가 생길 수 있어, 결혼도 안 했는데?”
나스챠는 끔찍할 정도로 발끈했다.
“너는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그녀가 짜증스럽게 동생의 말을 끊었다. “카체리나한테는 남편이 있었는데, 그냥 감옥에 있을 수도 있는 거고, 카체리나는 지금 아이를 낳은 거야.”
“정말, 카체리나 남편이 감옥에 있는 거야?” 남의 말을 곧이곧대로 잘 믿는 코스챠가 근엄하게 물었다.
“아니면 이럴 수도 있지.” 나스챠가 자신의 첫 번째 가정을 싹 까먹은 양 내팽개치고서 냉큼 동생의 말을 가로막았다. “카체리나한테는 남편이 없어, 이건 네 말이 맞지만, 너무 시집을 가고 싶어서 자꾸 시집갈 생각만 하다 보니까, 계속 그렇게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 보니까, 결국에 가서는 이렇게 남편이 아니라 아기가 생긴 거야.”
“응, 정말 그런가 보네.” 완전히 패배한 코스챠가 마침내 수긍했다. “하지만 누나가 전에는 그런 얘기를 안 해 주었으니까, 난 알 턱이 없잖아.”
“자, 꼬맹이들아.” 하고 콜랴가 방 안으로 성큼 들어서면서 말했다. “지금 보니 너희들은 위험한 녀석들이구나!”
“페레즈본도 같이 왔어요?” 코스챠가 이를 드러내며 웃더니 손가락을 튕기면서 페레즈본을 부르기 시작했다.
“뚱땡이들, 이 몸은 지금 곤경에 처해 있다.” 크라소트킨이 근엄하게 말을 시작했다. “그래서 너희들이 나를 좀 도와줘야겠어. 아가피야는 지금까지 오지 않는 걸 보면 어디 다리라도 하나 부러진 게 분명해, 이건 의심의 여지 없이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 몸은 밖에 나가 봐야 될 일이 있단 말이다. 어때, 나를 놓아줄 테냐, 엉?”
아이들은 근심에 찬 듯 서로 눈짓을 주고받았으며, 이를 드러내며 웃던 그들의 얼굴에는 금세 불안의 빛이 어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하지만, 자기들에게서 원하는 것이 뭔지를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내가 없어도 장난을 치지는 않겠지? 장롱에 올라갔다가 다리를 부러뜨리는 일도 없겠지? 아무도 없다고 무서워 울지도 않을 테지?”
아이들의 얼굴에는 무서운 고뇌의 기운이 감돌았다.
“대신 너희들에게 보여 줄 게 있다, 진짜 화약을 넣어서 쏠 수 있는 청동 대포다.”
아이들의 얼굴이 금세 환해졌다.
“그럼, 대포를 보여 주세요!” 코스챠가 환하게 밝아진 얼굴로 말했다.
크라소트킨은 가방 안에 손을 집어넣더니 조그만 청동 대포를 꺼내서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래, 보여 달란 말이지! 자 봐, 바퀴가 달려 있어.” 그가 책상 위에서 장난감을 굴려 보았다. “쏠 수도 있어. 산탄을 장전하면 쏠 수 있는 거야.”
“그럼, 죽일 수도 있어요?”
“아무나 죽일 수 있어, 다만 조준은 해야겠지.” 하고 크라소트킨은 어디다 화약을 넣고 어디다 산탄을 굴려 넣는가를 설명했고 화문(火門)처럼 생긴 구멍도 보여 주었고 반동이 일어나곤 한다는 것도 이야기해 주었다. 아이들은 엄청난 호기심을 갖고서 귀를 기울였다. 특히, 반동이 일어나곤 한다는 것이 아이들의 상상력에 충격을 주었던 것이다.
“화약도 있어요?” 나스챠가 물었다.
“있고말고.”
“화약도 보여 주세요.” 그녀가 부탁한다는 듯 미소를 지으면서 말을 길게 뺐다.
크라소트킨은 다시 가방 속에 손을 넣어 작은 유리병을 꺼냈는데, 그 안에는 정말로 진짜 화약이 조금 뒹굴고 있었고, 둘둘 만 종이에는 산탄도 몇 알 있었다. 그는 심지어 유리병의 뚜껑을 열어 화약 몇 개를 손바닥 위에 쏟아 보기까지 했다.
“자, 어디든 불이 있으면 안 된다. 잘못했다간 지금 당장 터져서 우리 모두 획 날아가 버릴 테니까.” 그는 강렬한 효과를 내기 위해 이렇게 경고했다.
아이들은 화약을 살펴보면서 경건한 두려움을 느꼈는데, 덕택에 달콤함은 더 컸다. 하지만 코스챠는 산탄 쪽에 더 마음이 끌렸다.
“산탄에는 불이 붙지 않나요?” 그가 물었다.
“그래, 붙지 않아.”
“나한테 산탄 조금만 주세요.” 그는 애원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산탄을 조금 줄 테니까, 자, 받아. 다만 내가 올 때까지는 엄마한테 보여 주면 안 된다. 안 그러면, 너희 엄마가 이걸 화약이라고 생각하곤 무서워서 죽을 거야, 그리고 너희들을 혼내 줄 테니까.”
“엄마는 절대로 우리한테 매를 대지 않아요.” 나스챠가 대번에 응수했다.
“알고 있어, 그냥 말을 그럴듯하게 하려고 그런 거야. 너희들도 엄마를 속이면 절대 안 되지만, 이번만은 내가 올 때까지만 가만히 있어야 한다. 자 그럼, 뚱땡이들, 이제 난 가 봐도 되겠지, 엉? 내가 없어도 무섭다고 울진 않겠지?”
“울 ─ 거 ─ 예요.” 코스챠는 벌써부터 울 준비를 하면서 말을 길게 뺐다.
“울 거예요, 틀림없이 울 거예요!” 나스챠도 겁먹은 듯 빠른 말투로 말을 받았다.
“아, 꼬맹이들아, 요 꼬맹이들, 너희들 또래는 정말로 위험하구나. 어쩔 수가 없지, 요 햇병아리들아,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같이 있어 줄 수밖에. 하지만 시간이, 시간이 간단 말이다, 아이고!”
“페레즈본한테 죽은 척해 보라고 명령해 주세요.” 코스챠가 부탁했다.
“그래, 할 수 없지, 페레즈본이라도 써먹어야겠다, 헤이, 페레즈본!” 그러면서 콜랴는 개에게 명령하기 시작했고, 녀석은 자기가 할 줄 아는 모든 것을 선보였다. 이 녀석은 몸집이 보통 마당 개만 했고 북슬북슬한 털은 어쩐지 연보라색이 섞인 회색빛이 감돌았다. 녀석은 오른쪽 눈이 망가져 애꾸눈이었고 왼쪽 귀는 무엇 때문인지 찢어져 있었다. 녀석은 낑낑거리기도 하고 폴짝폴짝 뛰기도 했고, 심부름을 하기도 하고 뒷발로 서서 걷기도 했고, 네 발을 전부 반듯이 위로 들어 올린 채 죽은 듯 꼼짝 않고 나자빠져 있기도 했다. 이 마지막 재주를 보여 주고 있을 때 문이 열렸고 크라소트키나 부인의 하녀인 마흔 살쯤 된 뚱뚱한 곰보 아줌마 아가피야가 문지방에 모습을 드러냈는데, 장을 보고 오는 길이라 식료품이 가득 든 바구니를 한 손에 들고 있었다. 그렇게 그녀는 왼손에 바구니를 축 늘어뜨린 채로 서서 개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콜랴는 아가피야를 그렇게 애타게 기다려 왔음에도 이 공연을 중단시키지 않고 페레즈본이 정해진 시간 동안 죽은 시늉을 하고 있도록 했다가 마침내 녀석을 향해 휘파람을 불었다. 개는 벌떡 일어나 자신의 임무를 다한 기쁨에 젖어 폴짝폴짝 뛰기 시작했다.
“아이고, 요놈의 수캐 좀 보게!” 아가피야가 훈계조로 어르듯 말했다.
“아니, 여성, 왜 늦었어?” 크라소트킨이 위협하듯 물었다.
“여성이라니, 이놈의 뚱땡이가!”
“뚱땡이라니?”
“뚱땡이지, 그럼. 내가 늦었건 말았건 네가 무슨 상관이야, 다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 늦은 거지.” 아가피야는 페치카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하면서 이렇게 투덜거렸지만, 불만스럽다거나 화가 난 목소리는 아니었고 오히려 명랑한 도련님과 희롱하며 놀 건수가 생겨 기쁜지 아주 만족스러운 목소리였다.
“들어 봐, 생각이 짧은 할멈 같으니.” 하고 소파에서 일어나면서 크라소트킨이 말을 시작했다. “이 세상의 모든 성스러운 것과 그에 덧붙여 모든 걸 다 걸고서, 내가 없는 동안 한눈팔지 않고 이 뚱땡이들을 열심히 돌봐 주겠다고 나한테 맹세할 수 있겠어? 나는 좀 나가 봐야 할 일이 있거든.”
“아니, 내가 왜 너한테 맹세를 해야 되지?” 아가피야가 웃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돌봐 줄 거야.”
“안 돼, 할멈 영혼의 영원한 구원을 걸고 맹세하지 않으면 안 돼. 안 그러면 안 갈 테니까.”
“그럼, 가지 말지 그러냐.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바깥은 엄청나게 추우니까 그냥 집에 있어.”
“뚱땡이들아.” 하고 콜랴는 꼬맹이들을 불렀다. “내가 돌아오거나 너희 엄마도 벌써 돌아올 시간이 됐으니까 너희 엄마가 돌아올 때까지, 이 여자가 너희와 함께 있어 줄 거다. 그뿐인가, 너희들에게 아침밥도 줄 거야. 요 꼬맹이들한테 뭘 좀 줄 거지, 아가피야?”
“그런 것쯤이야 뭐.”
“잘들 있어라, 햇병아리들아, 그럼 이 몸은 안심하고 떠나련다. 그리고, 할멈.” 하고 아가피야 곁을 지나면서 반쯤은 속삭이듯 근엄하게 그가 말했다. “저 꼬맹이들한테 카체리나를 두고 아줌마들이 흔히 지껄이는 멍청한 소리를 늘어놓지 말아 줘, 좀 봐주란 말이야, 아직 어린 나이잖아. 헤이, 페레즈본!”
“아이고, 귀신은 네놈 좀 안 잡아가냐.” 아가피야는 이미 정말로 화가 나서 툴툴거렸다. “에잇, 싱거운 놈 같으니! 정말로 네놈부터 매질을 해야 돼, 그딴 소리를 지껄이다니.”
하지만 콜랴는 이미 듣고 있지도 않았다. 드디어 떠날 수 있게 됐으니 말이다. 대문을 나오면서 그는 주위를 둘러보고 어깨를 으쓱 움츠리며 “추운걸!”이라고 말한 뒤 곧장 큰길을 따라 걷다가 그다음엔 오른쪽 골목길로 접어들어 시장의 광장으로 향했다. 광장까지 못 미쳐 어느 집 앞에 이르자, 그는 대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호주머니에서 호루라기를 꺼내서는 꼭 약속된 신호를 보내는 양 있는 힘껏 불었다. 일 분도 채 안 돼서 그의 앞으로 갑자기 얼굴이 발그스름한, 열한 살쯤 된 소년이 쪽문에서 튀어나왔는데, 따뜻하고 깨끗하고 멋스럽기까지 한 외투를 입고 있었다. 이 아이는 예비반에 재학 중인 소년 스무로프로(콜랴 크라소트킨은 이미 두 학년이나 위였다.) 부유한 관리의 아들이었는데, 부모가 크라소트킨을 아주 유명한 구제 불능의 장난꾸러기라 생각하여 자기 아들과 어울리는 걸 허락하지 않았던 까닭에 스무로프는 지금 분명히 몰래 빠져나온 것 같았다. 이 스무로프는 독자가 잊지 않았다면 두 달 전 개천을 사이에 두고 일류샤에게 돌팔매질을 한 소년들 중 하나였고 또 그때 알료샤 카라마조프에게 일류샤 얘기를 해 준 소년이기도 하다.
“꼬박 한 시간이나 기다렸어요, 크라소트킨.” 스무로프는 단호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고, 소년들은 광장으로 큰 걸음을 내딛었다.
“늦었어.” 하고 크라소트킨이 대답했다. “그럴 사정이 좀 있었어. 나랑 어울린다고 너를 때리지는 않을까?”
“그런 소리는 그만해요, 왜 나를 때린대요? 페레즈본도 같이 가나요?”
“응, 페레즈본도!”
“형이 이 녀석을 그리로 데려갈 건가요?”
“응, 데려갈 거야.”
“아, 쥬치카가 있다면!”
“쥬치카를 데려갈 순 없잖아. 쥬치카는 존재하지 않는걸. 쥬치카는 미지의 암흑 속으로 사라졌어.”
“아, 이렇게 하면 안 될까요.” 하고 갑자기 스무로프가 걸음을 멈추었다. “일류사가 말로는 쥬치카도 페레즈본처럼 털북숭이였고 털이 회색이 감도는 연기 같은 색깔이었다던데 ─ 이 녀석이 바로 쥬치카라고 말하면 안 될까요, 일류샤가 믿을지도 모르잖아요?”
“이봐, 초등학생, 거짓말을 싫어할 줄 알라고, 이게 첫째야. 심지어 좋은 일을 위해서도 거짓말은 안 된다, 이게 둘째.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쪽에다가 내가 간다는 걸 누구한테도 알리지 않았길 바란다.”
“맙소사, 나도 그 정도는 알고 있어. 하지만 페레즈본으론 걔의 마음을 달랠 수 없을 텐데.”2) 스무로프가 한숨을 내쉬었다. “너도 알 거야, 이 아버지, 그러니까 수세미 대위가 우리에게 말하길, 오늘 걔에게 코끝이 새까만 진짜 마스티프 종 강아지를 갖다줄 거래. 그 아저씨는 이걸로 일류사의 마음을 달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좀 힘들지 않을까?”
“그 애는 어때, 일류샤 말이야?”
“아, 나빠, 나빠! 내 생각으론 폐병인 것 같아. 정신은 말짱한데, 다만 숨 쉬는 게 말이야, 숨 쉬는 게 별로 좋지 않아. 얼마 전엔 자기를 좀 걷게 해 달라고 부탁해서 장화를 신겼는데 발을 내딛다가 그만 고꾸라지고 말았어. ‘아, 아빠, 아빠한테 말했잖아, 내 장화가 옛날부터 너무 고약해서 이걸 신으면 전에도 걷는 것이 불편했단 말이야.’라고 했어. 그러니까 걔는 자기가 장화 때문에 몸을 지탱하지 못해 고꾸라졌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그저 힘이 너무 없어서 그런 거야. 일주일도 못 넘길걸. 게르첸슈투베가 왕진을 오곤 해. 이제 그 집은 다시 부자가 됐어, 돈이 많거든.”
“악랄한 놈들 같으니.”
“누가 악랄하다는 거야?”
“의사들과 의술을 팔아먹는 날강도들 말이야, 이건 일반적으로 하는 말이지만 부분적으로도 물론 그렇지. 나는 의학을 부정하고 있어. 무용한 제도거든. 어쨌거나 나는 이 모든 걸 연구할 거야. 그건 그렇고, 너희들은 저기서 무슨 감상 놀음을 그리하는 거야? 반 학생들이 전부 다 그 집에 다니는 거야?”
“전부는 아니고 우리 반 애들 열 명 정도가 항상, 매일 그 집을 오가는 거야. 이건 뭐 괜찮아.”
“이 모든 일에서 내가 놀라울 따름인 건 알렉세이 카라마조프의 역할이야. 자기 형이 내일이나 모레 그런 범행으로 재판을 받을 텐데, 정작 자신은 아이들과 어울려 감상이나 떨고 있다니, 시간이 철철 남아도나 봐!”
“감상을 떨고 그러는 건 전혀 아니야. 너도 지금 이렇게 일류샤와 화해를 하러 가는 거잖아.”
“화해라고? 표현 한번 웃긴다. 난 말이야, 이렇든 저렇든 누가 내 행동을 분석하는 건 용납하지 않아.”
“일류샤가 너를 보면 얼마나 기뻐할까! 녀석은 네가 올 줄은 상상도 못 하고 있는데. 왜, 그런데 왜 너는 그토록 오랫동안 가기 싫어했던 거야?” 스무로프는 갑자기 열을 올리면서 소리쳤다.
“친애하는 소년 양반, 그건 내 일이지, 네 일이 아니야. 나는 나의 자유 의지에 따라 나 스스로 가는 것이지만, 너희들은 모두 알렉세이 표도로비치한테 끌려간 셈이야, 바로 여기에 차이가 있는 거지. 그리고 네가 어떻게 안다는 거야, 내가 화해를 하러 가는지, 아님 전혀 아닌지? 표현 한번 바보 같다니까.”
“카라마조프는 무슨, 그 아저씨 때문에 끌려간 건 절대 아니야. 우리 반 애들은 자기들이 알아서 그 집을 찾기 시작한 거야, 물론 처음에는 카라마조프와 함께였지만. 게다가 그렇고 그런 건, 그러니까 바보 같은 짓은 전혀 없었어. 처음에는 얘가 가고, 나중엔 쟤가 가고 이런 식으로 된 거라고. 걔 아버지는 우리가 가면 너무 기뻐 어쩔 줄을 몰라 했어. 너도 알겠지만, 일류샤가 죽으면 걔 아버지는 그냥 미쳐 버릴 거야. 그 아저씨는 일류샤가 죽을 거라는 거, 알고 있어. 우리가 일류샤와 화해했을 때는 기뻐서 어쩔 줄 모르더군. 일류샤는 네 얘기도 물어봤어, 별달리 덧붙인 건 없고. 좀 물어보더니 입을 다물어 버리더군. 그나저나 걔 아버지는 미쳐 버리든지 목을 매든지 할 거야. 전에도 정신 나간 사람처럼 굴긴 했잖아. 있잖아, 원래 그 아저씨는 고결한 사람인데, 그때는 오해가 있었던 거야. 이 모든 것이 자기 아버지를 죽인 그 사람 잘못이야, 그때 걔 아버지를 쥐어팼잖아.”
“어쨌거나 카라마조프는 나한테 수수께끼야. 나는 오래전에 그 사람과 사귈 기회가 있었지만, 경우에 따라서 오만하게 구는 걸 좋아하는 편이거든. 게다가 내 나름대로 그 사람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갖게 됐는데, 아직은 좀 더 점검을 해 보고 밝힐 필요가 있지.”
콜랴는 근엄하게 입을 다물었다. 스무로프도 그랬다. 스무로프는 응당 콜랴 크라소트킨 앞에서 경건한 마음을 가졌으며 그와 맞먹는다는 것은 감히 생각도 못했다. 한데 지금은 몹시 호기심이 발동했는데, 콜랴가 ‘자기 스스로’ 가는 거라고 설명한 걸 보면, 즉 콜랴가 갑자기 지금, 정확히 오늘 가야겠다는 생각을 한 걸 보면 여기엔 어떤 수수께끼가 들어 있음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장터 광장을 걷고 있었는데, 거기에는 오늘따라 다른 곳에서 온 짐마차들이 많이 서 있었고 한 무더기로 몰아 놓은 조류들도 많았다. 도시의 아낙네들은 자기들만의 가건물 같은 걸 만들어 놓고 그 밑에서 롤빵이나 실 따위를 팔았다. 이렇게 일요일에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을 우리 도시에서는 그냥 순박하게 정기시(定期市)라고 부르는데, 이런 정기시는 한 해에도 여러 번씩 섰다. 페레즈본은 아주 신이 나서는 연신 좌우로 고개를 기울여 어디 무슨 냄새라도 맡는지 킁킁대며 뛰어다녔다. 다른 개들과 마주칠 때면 자기들 나름의 규칙에 따라 예사롭지 않을 정도로 기꺼이 서로 몸 냄새를 맡았다.
“나는 리얼리즘을 관찰하는 게 좋아, 스무로프.” 갑자기 콜랴가 말했다. “개들이 만나면 서로 냄새 맡는다는 거, 눈여겨봤니? 그러니까 그들에겐 어떤 공통적인 자연법칙이 있는 거야.”
“그래, 뭐 좀 웃긴 법칙이겠지.”
“다시 말해서 웃긴 게 아니란 말이야, 이건 네가 틀렸어. 자연 속에는, 인간이 자기만의 편견 때문에 무슨 생각을 할지는 몰라도, 여하간 우스꽝스러운 건 전혀 없어. 만약 개들이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비판할 수 있다면, 분명히 자기들의 지배자들인 인간들의 사회적 관계에서 웃기는 점들을 그들보다 더 많이는 아닐지라도 최소한 그 못지않게 많이 발견했을 거야, 뭐 그들보다 더 많이는 아니겠지만. 내가 이 말을 반복하는 이유는 우리 인간 쪽에 멍청한 점들이 훨씬 더 많다고 확신하기 때문이야. 이것은 라키친의 사상이야, 훌륭한 사상이지. 나는 사회주의자야, 스무로프.”
“사회주의자가 뭐야?” 스무로프가 물었다.
“이건 말이야,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고 모든 재산도 공통된 하나의 재산이고 결혼 같은 것도 없고 종교며 법칙들이며 나머지 모든 것들도 다 그렇고 그렇다는 거야. 너는 아직 덜 커서 이런 걸 이해할 수 없어, 너한텐 아직 이르거든. 그나저나 춥다.”
“그래. 영하 12도래. 아까 아버지가 온도계를 봤거든.”
“그런데 너 눈여겨본 적 있냐, 스무로프, 한겨울에는 영하 15도, 심지어 18도가 되어도 예를 들면 지금처럼 이렇게 춥게 느껴지지 않아. 하지만 지금과 같은 초겨울에는 갑자기 영하 12도의 혹한이 닥치는 거니까 춥게 느껴지는 거야, 눈이 거의 없는데도 말이야. 이건 다시 말해 사람들이 아직 익숙해지지 않아서 그렇다는 거야. 인간 만사는 모두 습관이야, 국가적 일이나 정치적 일에서도 모든 것이 습관이지. 어디나 습관이 주된 동력이란 거야. 그건 그렇고 저 농군, 정말 웃긴다.”
콜랴가 털가죽 외투를 입은, 사람 좋아 보이는 키 큰 농군을 가리켰는데, 그는 자기 짐수레 곁에서 너무 추워서 벙어리장갑을 낀 손바닥을 탁탁 마주 치고 있었다. 아마빛의 기다란 턱수염은 날씨가 어찌나 추운지 하얀 성에로 덮여 있었다.
“저 농군은 턱수염이 얼어붙었군!” 그의 곁을 지나가면서 콜랴가 시비를 걸듯 큰 소리로 외쳤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단다.” 농군이 대답 삼아 평온하게 교훈조로 말했다.
“저 아저씨한테 괜히 시비 걸지 마.” 스무로프가 한마디 했다.
“괜찮아, 화내지 않을 거야, 좋은 사람이거든. 안녕히 계세요, 마트베이.”
“그래, 잘 가렴.”
“아저씨가 정말 마트베인가요?”
“그래, 마트베이야. 아니, 몰랐단 말이냐?”
“몰랐어요. 그냥 되는대로 불러본 거예요.”
“참 별난 애로구나. 아마 초등학생일 테지?”
“예, 초등학생이에요.”
“그래, 더러 맞아 봤겠네?”
“딱히 그렇진 않지만, 뭐 그냥 그렇죠.”
“아프냐?”
“안 아플 리가 없잖아요!”
“아휴, 짠하기도 해라!” 농군은 진심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안녕히 계세요, 마트베이.”
“그래, 잘 가거라. 참 귀여운 녀석이로구나, 정말로.”
소년들은 계속 자기 길을 갔다.
“좋은 농군이야.” 콜랴가 스무로프에게 말을 걸었다. “나는 민중과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고, 또 민중의 가치를 언제나 기꺼이 인정해 주지.”
“왜 저 아저씨한테 우리가 학교에서 매를 맞는다고 거짓말을 한 거야?” 스무로프가 물었다.
“위로를 좀 해 줄 필요가 있지 않겠어?”
“위로는 무슨?”
“이봐, 스무로프, 첫마디에 못 알아듣고 자꾸 되묻는 걸 나는 좋아하지 않아. 어떤 것은 아예 설명을 할 수도 없단 말이다. 농군의 생각에 따르면 학생은 매를 맞고 있고 맞아야 돼. 맞지 않는다면 그게 학생인가? 이런 식이지. 그런데 내가 갑자기 그에게 우리는 매를 맞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그는 정말로 실망할걸. 그래 봤자, 너는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르잖아. 민중과 얘기를 나누려면 요령이 있어야 되거든.”
“그래도 제발 시비를 걸지는 마, 잘못했다간 그때 거위 사건 같은 일이 또 일어날 테니까.”
“겁나냐?”
“비웃지 마, 콜랴, 겁이 나다뿐이겠어. 아버지가 정말 노발대발하실 거야. 너하곤 절대로 어울리지 말라고 단단히 금지시켰어.”
“걱정하지 마, 이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