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가의 일
스타트업,
유니톤이거나 혹은
바퀴벌레이거나
2017년 7월 12일 초판 1쇄 발행
2020년 9월 7일 초판 6쇄 발행
2020년 10월 26일 전자책 발행
지은이 임정민
펴낸이 권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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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등록 2015년 1월 2일 제2018-000078호
ⓒ 임정민
(저작권자와 맺은 특약에 따라 검인을 생략합니다)
ISBN 979-11-9121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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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스탠퍼드 대학에 등교한 첫날은 내 인생이 바뀐 날이다. 인류가 겪어본 가장 큰 테크 버블이 정점에 달해 있었고, 학교 주변 실리콘밸리의 공기에는 스타트업 바이러스가 가득했다. 야후와 구글처럼 엄청나게 성공한 스타트업이 이때 생겼고, 웹밴Webvan과 같은 드라마틱한 실패도 있었다.
나는 공학 석사를 마치자마자 나스닥 상장을 앞둔 잘나가는 스타트업에 올라탔다. 실리콘밸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느 스타트업처럼, 학교에서 같이 공부한 친구들과 오라클이나 선마이크로시스템스에서 온 엄청난 경력의 천재들이 섞여 일하는 곳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스닥에 상장한 그 스타트업은 계속 성장할 것 같았고, 나는 곧 스톡옵션으로 큰 돈을 벌 것만 같았다.
하지만 불과 1년도 지나지 않아 닷컴버블이 꺼지면서 실리콘밸리의 테크 회사들에 혹독한 시련이 닥쳤다. 연이어 터진 9・11 테러는 어둡고 긴 경제불황을 확실하게 알리는 사건이 되었다.
내게도 시련이 닥쳤다. 나는 첫 직장에서 정리해고를 당하고 여러 달 동안 백수로 지내며 앞으로 내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지 고민했다. 내가 내린 결론은 간단했다. 회사가 내 인생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회사의 인생을 결정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것이었다. 멋진 은퇴를 꿈꾸며 하기 싫은 일을 수십 년씩 하기보다는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하고 수십 년 동안 그렇게 일하기를 원했다. 나는 주저 없이 다시 스타트업에 들어갔다. 이번에는 직원이 10여 명에 불과한 작은 스타트업을 골랐다. 운이 좋았던지, 그곳에서 나는 존경할 만한 훌륭한 보스이자 멘토를 만났고, 그 회사는 2006년 HP에 1억 6000만 달러에 매각되었다.
스탠퍼드에서의 첫날 이후 나는 정리해고된 말단직원에서 성공한 벤처기업의 초기 멤버로, 벤처캐피털리스트에서 창업가로, 그리고 또 구글에서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일을 맡으면서 거의 20년째 스타트업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지만, 여전히 스탠퍼드 대학에서 맞은 첫날의 열정과 에너지를 잊을 수 없다.
나는 창업가들을 많이 만난다. 창업가들과 나누는 대화는 즐겁다. 내 주변에는 깜짝 놀랄 만한 아이디어와 실행력, 유머와 긍정의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이 있고, 그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즐겁다. 그런데 그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대부분 창업가들이 같은 것을 묻거나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신의 아이디어가 좋은지, 제품개발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갑자기 매출과 회사규모가 성장하기 시작하는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공동창업자 혹은 직원과의 갈등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어디서 투자를 받아야 하는지, 어떤 투자자에게서 투자받아야 하는지, 심지어 회사가 어려워 정리해고를 해야겠는데 어떻게 하는지 등.
내가 창업가들에게 답을 해줄 수 있는 이유는 이런 어려움의 대부분을 직접 겪었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은 어지러움 그 자체다. 지난 20년 동안 스타트업을 경험하면서 얻은 결론은, 창업이란 잘 정리된 이론이나 경영학 교과서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많은 사람이 성공한 스타트업은 남다른 아이디어에서 시작되었고, 밤낮없이 고생하며 일한 창업자 한 명이 일궈낸 결과물이라 소개하지만 현실의 스타트업 스토리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오히려 처음에는 훌륭해 보였던 아이디어가 수십 번 실패하고, 여러 번 피보팅pivoting하고, 투자유치에 실패하고, 공동창업자들이 싸우고, 그러면서 어려움들을 이겨내고 성공을 만들어내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었다. 진지하게 연구실에서 나온 기술로 성실하게 일해서 성공한 벤처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학교를 중퇴한 문제아들이 게임이나 해킹에 빠져서 우연히 발견한 것들을 큰 사업으로 발전시킨 경우도 많이 봤다. 내가 만난 창업가 중에는 밤 9시에 출근해서 아침 7시에 퇴근하는 팀도 있었고, 이렇다 할 사무실은 없지만 전 세계 멋진 해변과 도시를 찾아다니며 일하는 팀도 있었다. 푸스볼 테이블과 미끄럼틀, 킥보드와 온갖 장난감들로 가득한 사무실에서 일하는 건지 노는 건지 알 수 없는 애매한 경계 속에서 세상을 바꾸는 아이디어가 나오기도 했다.
2000년 숀 패닝Shawn Fanning과 숀 파커Sean Parker가 만든 냅스터Napster는 디지털음원을 온라인으로 누구나 교환할 수 있게 만들어서 인터넷 시대에 음악을 소비하는 방법을 바꿔놓았다. 하지만 곧이은 소송에 패하면서 2001년 서비스를 접어야 했다. 이제 냅스터를 기억하는 이는 별로 없지만, 모든 사람들이 간편하게 스마트폰을 통해 손쉽게 음악을 즐기는 세상이 되었다. 2005년 온라인데이팅 서비스로 시작했던 유튜브는 동영상 서비스로 대박이 났고, 창업한 지 불과 18개월 만에 약 2조 원 가치로 구글에 인수되었다. 전 세계 여행자를 대상으로 숙박중개를 하는 에어비앤비Airbnb는 호텔방 하나 없지만, 힐튼과 하얏트 호텔그룹을 합친 것보다 더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고 있다.1 우버Uber 역시 택시 한 대 없이 전 세계 주요 도시에서 많은 사람들이 편리하게 이동하는 교통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엘론 머스크Elon Musk처럼 화성으로 가는 로켓을 개발하는 곳도 있고, 친구와 재미있는 동영상을 주고받을 수 있는 (그리고 저절로 영상이 사라져버리는!) 스냅챗Snapchat과 같은 ‘카메라 회사’도 있다.2 스타트업은 이처럼 떠들썩하고 정신없이 빠르게 바뀌며 드라마틱하게 성공(혹은 실패)하기도 한다.
이 책에서 나는 창업가들의 성공 스토리나 성공으로 가기 위한 방법을 말하기보다는, 그들이 가진 생각과 고민, 놀이와 문화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창업가들뿐 아니라 그들의 가족과 친구들, 학교 교수와 정부의 정책입안자들이 창업가들을 좀 더 이해하게 함으로써 스타트업하기 더 좋은 사회를 만드는 데 도움을 주고 싶었다. 무엇보다 창업가들이 문득 궁금해질 때, 답답할 때, 아니면 잠시 쉴 때 펼쳐서 읽어보고 영감을 받는 책으로 만들고 싶었다.
창업가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이루지 못할 꿈은 없어. 네가 작다고 꿈까지 작지는 않은 거야.”
- 가이 가네, 영화 <터보> 중
“No dream is too big. No dreamer is too small.”
- Guy Gagne, from the movie <Turbo>
누구나 한 번쯤은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고는 자신만의 창업을 꿈꾼다. 정말 좋아하는 것이 생겼을 때, 불편한 것을 더 편하게 만들고 싶을 때, 또는 더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사명감이 있을 때 당장이라도 창업을 해서 그 일에 몰두하고 싶을 것이다. (미안하지만, 단지 큰 돈을 벌고 싶어서 창업하고 싶다면 이 책이 그리 도움이 되지 않을 테니 당장 덮고 돈 벌러 나가시면 되겠다.)
하지만 정작 창업을 실행에 옮기기란 쉽지 않다. 지금 다니던 학교나 직장을 그만두고 창업하는 사람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당장 월급이 나오지 않으면 어떻게 살지, 부모님이나 애인에게는 어떻게 말해야 할지, 내 아이디어가 시장에서 통할지, 여러 가지 걱정들에 가로막혀 결국 머릿속 생각으로만 끝나기 마련이다. 그러고는 나중에 신문이나 광고에서 비슷한 아이디어로 성공한 사람을 보았을 때, ‘아! 저거 내가 먼저 생각한 건데!’라며 아쉬운 소리만 한다.
나는 왜 창업을 하기 힘들까? 내가 창업하면 성공할까?
다행히 내가 창업가로 가능성이 있는지 간단하게 알아보는 방법이 있다. 아래 질문에 답해보자. ‘그렇다’는 1점, ‘아니다’는 0점이다.
창업가 자질평가Entrepreneurship Quantification
─ 나는 사업하고 싶은 아이디어가 있다.
─ 나는 월급을 못 받아도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 그동안 모은 저축을 모두 사업자금으로 쓸 용의가 있다.
─ 나는 늘 하던 일보다는 새로운 일을 하는 것이 즐겁다.
─ 나는 계획하는 것보다 실행하는 게 좋다.
─ 나와 함께 창업할 친구나 동료가 한 명 이상 있다.
─ 학교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아도 그리 좌절하지 않는다.
─ 나는 남들에게 무시당해도 별로 실망하지 않는다.
─ 나는 다른 사람들을 잘 관찰하고 의미를 찾는 편이다.
─ 나는 남의 말을 귀담아 듣는 편이다.
자, 위 항목들에 답변했다면 점수를 합산해서 다음 결과를 보자.
9점 이상 : 지금 당장 창업하세요!
당신은 현실에 만족하지 않고, 당장의 안정적인 삶보다는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사람이다. 리스크를 즐기며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을 관찰하고, 조언을 귀담아 들으며, 현재 가진 자원만으로도 바로 창업을 실행에 옮기는 사람이다. 아이디어와 팀이 있다면 지금 당장 창업하기를 바란다.
5~8점 : 창업동아리, 사내벤처, 또는 다른 스타트업에서 먼저 경험해보고 시작해도 늦지 않을 듯
창업에 관심이 많고, 이미 많은 것을 공부한 사람이다. 다만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맹신하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을 관찰하고, 주변의 성공사례와 실패사례를 통해 좀 더 경험해볼 필요가 있다. 어쩌면 리스크가 불안하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쉽게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혼자 다 짊어지고 어렵게 가기보다는 주변의 뛰어난 창업가와 함께하거나 사내벤처나 스타트업의 초기 직원으로 시작해보길 권한다.
5점 미만 : 창업은 다음 생에
아쉽지만 스스로 창업하는 것보다는 회사에 취직하거나, 학교에 가거나 혹은 공무원이 더 적성에 맞겠다. 스타트업은 다음 생에 하는 걸로. 하지만 실망할 필요는 없다. 창업가정신은 당신이 무슨 일을 하건 모든 일에 적용될 수 있고, 굉장히 중요하다. 대기업에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고, 다음 세대를 가르치거나 나라의 일을 하는 것도 매우 가치 있는 일이다. 다만, 과거를 답습하거나 현실에 안주하기보다는 항상 ‘창업가정신’이 무엇인지 관심을 갖고 지금 하는 일을 10배 더 개선한다면 성공적인 커리어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자. 의사, 교수, 운동선수, 공무원 등 다양한 일을 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창업가정신으로 자신의 분야에서 큰 성과를 낸 사람들이 많다.
어떤 사람은 실망했을지도 모르겠다. 이 평가는 객관적인 근거가 있거나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말자. 하지만, 이제부터 내가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들어보기 바란다.
“가난은 혁신을 부른다.”
- 제프 베조스, 아마존 창업자
“Frugality drives innovation.”
- Jeff Bezos, Founder of Amazon
창업을 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하지만 돈이 없어서 창업을 못 했다는 말은 변명거리도 안 된다. 스티브 잡스는 열두 살 때 주파수 계수기를 만들기 위해 HP 창업자인 빌 휴렛에게 전화해서 남는 부품을 달라고 요청했다. 잡스와 워즈니악이 처음 만든 애플1은 엄청난 투자를 받아 큰 공장에서 만든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발품을 팔아 어렵게 구한 부품들로 허름한 차고에서 손수 납땜질해서 만든 제품이었다. 배달의민족 창업자 김봉진은 골목 음식점들의 정보를 얻기 위해 웹에 있는 정보를 일일이 모바일에 옮겨 담았고, 역삼동 골목길을 다니며 버려진 전단지를 줍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스타트업 A는 투자자들에게 피칭할 때 10억 원을 투자받으면 인재를 채용하고 마케팅비를 더 쓰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지 않아, 다른 경쟁사가 20억 원을 투자받아 더 적극적으로 마케팅 캠페인을 벌이는 것을 보게 된다. 이 스타트업 A는 곧 투자자에게 달려가 추가로 20억 원을 더 투자해주면 더욱 공격적인 마케팅을 해서 시장 1위를 지킬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하지만 얼마 후 대기업이 새로 시작한 100억 원짜리 마케팅 캠페인에 처참히 당하고 만다.
무엇이 잘못된 걸까? 스타트업의 경쟁력은 누가 돈을 더 많이 쓰느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스타트업이 가질 수 있는 경쟁력은 더 많은 투자금, 더 많은 인원, 더 많은 마케팅 예산이 아니다. 만약 이런 요소들이 직접적으로 성공의 요인이 된다면 돈과 인력에서 앞서는 대기업이 무조건 시장에서 이겨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스타트업의 경쟁력은 오히려 돈을 적게 쓰는 데에서 나온다. 경쟁사가 더 많은 인원과 더 많은 마케팅비로 당신 회사를 이기는 것은 쉽다. 하지만 당신 회사가 제조원가를 경쟁사의 1/10로 유지하고, 마케팅비로 0원을 쓰면서도 고객 획득에 성공한다면 경쟁사는 당신을 이길 방법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스타트업이 가져야 할 경쟁우위다.
2017년 가을, 울산에서 창업한 대학생 스타트업 ‘페달링’의 창업가 공대선은 공동창업가 3명과 함께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입시준비생과 대학생 과외선생님을 연결해주는 서비스였는데 운영이 어려워졌다. 회사에는 겨우 한두 달 버틸 돈만 남아 있었고, 스스로의 미션이 무엇인지도 혼란에 빠졌다. 그들은 회사 문을 닫기 전 마지막으로 새로운 사업을 찾아 나섰다. 그들이 잘하고 있는 것과 시장의 요구사항을 분석해 대략 10가지가 넘는 실험을 설계했다. 그중에는 아이돌봄 서비스도 있었고, 마스터클래스처럼 일반인들이 전문가로부터 배울 수 있는 서비스도 있었다. 촉박한 시간, 그리고 바닥이 드러나기 시작하는 통장 잔고 때문에 제대로 된 MVP도 만들 시간이 없었다. 대신 서비스 내용을 설명하는 페이스북 광고를 돌리고, 이를 통해 들어온 사용자들이 서비스 신청을 하는 간단한 랜딩페이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광고를 보고 온 사람들이 사이트에 신청할 때마다 자동으로 휴대폰에 알람이 오도록 설정했다. 얼마 후, 바로 그 알람이 오기 시작했다. 창업자들이 배고픔을 채우려 잠시 밥 먹는 동안 알람이 오는 빈도가 더 잦아졌고, 무슨 일인지 궁금해진 창업가들은 서둘러 일어나 사무실로 들어왔다. 데이터를 자세히 들여다본 창업가들은 사람들이 사진 찍기, 그림 그리기 같은 소소한 기술들을 배우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았다.
페달링 창업가들은 재빨리 베타테스트 앱을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콘텐츠가 문제였다. 아직 제대로 된 클래스를 만들지 못해서 우선 유튜브에 있는 커피 내리기 콘텐츠를 앱에 넣었다. 원두 고르기, 원두 갈기, 필터 세팅하는 법, 물 내리기 등을 골라 초보자도 쉽게 커피 내리는 법을 배울 수 있도록 배열했다. 이즈음 앱 이름도 페달링이 아니라 클래스101로 바꿨다.
이렇게 만든 베타테스트 앱은 꽤 인기를 끌었다. 다운로드도 늘어났고, 클래스를 더 개설해달라는 요구도 늘었다.
사용자들의 반응을 확인한 창업자들은 정식 서비스를 론칭하기로 했다. 그러려면 진짜 콘텐츠가 필요했다. 창업가들은 온갖 지인들을 동원해, 뭔가를 가르칠 수 있는 전문가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곧 독특한 여권사진으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사진작가 시현을 알게 되었고,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나 고양이의 증명사진 찍는 법 수업을 만들었다.
2018년 이른 봄, 창업가들은 시현 작가의 커리큘럼과 영상을 만들고 정식서비스를 론칭했다. 첫 번째 수업을 올린 후 불과 한 달도 되지 않아, 곧 클래스101 수업의 입소문이 퍼졌다. 매출이 나기 시작했고, 뒤이어 오픈한 그림 그리기, 손뜨개질, 케이크 만들기 수업들도 인기를 얻었다. 이렇게 시작한 클래스101은 불과 1년여 만에 누적매출액 100억 원을 넘기고, 유명 벤처캐피털로부터 100억 원이 넘는 투자를 유치했다.
자본이 없다는 것은 스타트업이 가진 가장 큰 축복이다. 한정된 자원은 창업가를 천재로 만든다.
린 스타트업
제품이나 비즈니스 모델을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 빨리 개발하는 개발방법론을 말한다. 시장에 대한 가정을 정의하고 최소기능제품MVP, Minimum Viable Product을 만들어 테스트를 반복하는 과정을 포함한다. 에릭 리스Eric Ries의 책 《린 스타트업Lean Startup》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모든 게 문제없다는 말은 조금 더 빨리 달릴 수 있다는 뜻이다.”
- 마리오 앙드레띠, 카레이서
“If you have everything under control, you’re not moving fast enough.”
- Mario Andretti, Car racer
“안정적인 직장을 버리고 왜 위험한 창업을 하나요?”
내가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다. 나는 이 질문이 틀렸다고 생각한다. 첫째, 이 세상에 ‘안정적’인 직장이 존재하던가? 매일 접하는 뉴스에서 경제위기, 정리해고, 명예퇴직, 치솟는 실업률 이야기가 들리지 않는 날이 없다. 어느 날 정리해고를 당하거나, 설령 그렇지 않다 해도 지난 몇 년간 공들인 프로젝트가 외부 환경의 변화로 느닷없이 취소되고 다른 부서로 발령나는 일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또한 국가의 중요한 정책이나 규제가 바뀌어서 영향 받는 경우를 보았다면, 리스크는 사방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아무리 대기업이라 하더라도 안정적인 직장이란 없다. 결코 망하지 않을 것 같던 노키아Nokia와 코닥Kodak의 사례를 보라. 한때 휴대폰 시장점유율 50%를 넘긴 노키아는 불과 몇 년 만에 애플의 아이폰과 구글의 안드로이드 OS에 시장을 내주고 휴대폰 사업을 저가에 매각하고 말았다.3 130년이 넘도록 카메라필름 시장에서 1위를 고수하던 코닥은 디지털로 변하는 시장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2012년 파산신청을 하고 말았다.4 세상은 점점 더 빨리 변하고,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리스크다.
앞의 질문에서 두 번째 잘못된 점은 ‘창업이 위험하다’는 전제다.
물론 스타트업의 성공확률은 낮다. 스타트업이 공개시장 상장이나 성공적인 M&A를 경험하는 확률은 3%에도 못 미친다. 나머지 스타트업들은 아주 미약한 성장을 하거나, 실패한다.
하지만 성공확률이 낮다는 것이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더 크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대기업을 다니거나 안정적인 공무원이라 해도, 전문직인 의사나 변호사라 하더라도 많은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리스크란 ‘미래의 불확실성’이지, 암울한 미래 자체를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몇 달 뒤에 우리 회사 은행잔고가 바닥난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리스크가 아니다. 당장 내일 망할 수도 있다는 걸 모르는 것이 리스크다. 오히려 여섯 달 뒤에 은행잔고가 바닥을 보이고 우리 회사가 망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다면 복 받은 것이다. 최소한 그렇게 망하지 않기 위해 지금 당장 대처방안을 세우고 뭐라도 할 수 있으니까. 진정한 리스크란 가까운 미래에 내가 속한 조직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고, 내가 하는 일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스타트업이 반드시 대기업에 비해 리스크가 크다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더 투명한 정보와 의사결정, 빠른 실행력이 큰 경쟁력으로 작용한다. 스타트업은 다가오는 리스크(불확실한 미래)에 더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덜 위험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현명하게 리스크를 감수하는 것과 무모한 투자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공동창업자들이 견딜 수 있는 만큼 시간과 자원을 투자하며, 최소한의 자원으로 최대한의 실험을 해서 제품시장적합성Product-market fit을 찾아가는 것, 그리고 이 결과를 통해 투자자를 설득하거나 매출로 연결하는 전략을 세우는 것은 현명한 리스크 대처법이다. 반면 무모한 창업가는 자신의 근거 없는 믿음만을 맹신하며 집 담보대출과 사채까지 동원해 극도로 낮은 성공확률에 베팅한다.
“왓슨, 하늘을 보고 뭐가 보이는지 말해주게.”
- 셜록 홈즈
“Watson, look up at the sky and tell me what you see.”
- Sherlock Holmes
회사company라는 말 자체가 ‘여러 사람이 모인다’는 뜻이다. 아이디어는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시작되지만, 그것이 영향력 있는 비즈니스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아이디어에 공감해야 한다. 한 명의 공동창업자부터 시작해 첫 번째 직원, 첫 번째 투자자, 그리고 마침내 돈을 지불할 첫 번째 고객까지, 당신의 아이디어에 공감하는 사람을 늘려가야 한다. 당신의 아이디어에 공감하는 사람이 1억 명쯤 되면 당신의 스타트업은 다음 번 구글, 애플, 페이스북이 될 가능성이 높다.
HP, 내셔널세미컨덕터National Semiconductor, 구글, 애플, 페이팔Paypal, 유튜브, 페이스북 모두 두 명 이상의 공동창업자가 있었다. 서로 같은 아이디어와 비전을 가지고 회사를 설립했지만, 또 각자 다른 능력으로 회사의 발전에 기여했다. 정말 스타트업을 하고 싶다면, 책상에 앉아 수십 페이지짜리 프레젠테이션 슬라이드를 만드는 것보다 지금 당장 내 아이디어에 공감하고 더 발전적인 의견을 내줄 공동창업자를 찾으러 다니는 편이 훨씬 낫다.
“달링, 운은 준비된 사람에게만 오는 거야.”
- 에드나, 영화 <인크레더블> 중에서
“Darling, Luck favors the prepared.”
- Edna ‘E’ Mode, from the movie <The Incredibles>
흔히 운이 중요하다는 말을 할 때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 한다.
스타트업은 ‘운칠복삼運七福三’이다. 그만큼 행운과 타고난 복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열심히 하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다. 스타트업은 누구나 열심히 한다. 밤낮 없이, 때로는 주말과 휴가도 반납하고 성공을 위해 일한다. 나는 열심히 하지 않는 스타트업을 본 적이 없다. 그렇기에 정말 때가 되어 운과 복이 왔을 때 올라탈 수 있도록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찰나의 차이로 누구는 그 ‘운’과 ‘때’를 타서 성공하고, 누구는 그렇지 못한다.
2012년 여름, 가수 싸이가 부른 ‘강남스타일’은 느닷없이 전 세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노래가 되었다. 싸이의 뮤직비디오는 유튜브에 올린 지 6개월이 지나지 않아 10억 명 넘는 사람이 시청했다. 어린아이, 할머니, 뉴욕의 셀러브리티부터 남미 어느 골목길에 있는 상인까지, ‘강남스타일’은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따라 부르는 노래가 되었다. 하지만 과연 싸이가 정말 느닷없이 세계적인 팝스타가 된 것일까? 싸이는 ‘강남스타일’ 발표 당시 이미 데뷔 12년차에 공식앨범만 18개를 넘게 발표한 중견가수였다. 만약 싸이가 식어가는 인기에 좌절하고 앨범을 낼 때마다 줄어드는 판매량5에 실망해서 작곡과 노래연습을 게을리했다면 어땠을까? 어떻게 하면 자신의 팬들과 더 많이 소통할 수 있을지 10여 년 동안 고민해오지 않았다면 유튜브라는 새로운 기회를 잡을 수 있었을까?
1996년 닷컴 광풍이 한참일 때 웹밴Webvan이라는 스타트업이 나타났다. 온라인으로 신선한 식료품을 주문하면 집까지 배달해주는 서비스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세콰이어캐피털, 벤치마크캐피털, 소프트뱅크 등 유명한 실리콘밸리의 투자자들이 4억 달러가 넘는 액수를 투자했고, 1999년에는 무려 5조 원이 넘는 가치로 상장까지 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의 기대와 달리 웹밴은 2001년 파산신청을 하며 실리콘밸리 닷컴버블의 상징으로 남게 되었다. 웹밴이 성장하기에는 아직 인터넷이 보편화되지 않았던 것이 파산의 주된 이유였다. 미국에서는 회사의 예상보다 훨씬 늦은 2005년 즈음에야 인터넷 보급률이 50%를 넘어섰으므로, 1999년은 인터넷으로 신선한 식료품을 주문 배달해주는 서비스를 하기에는 너무 이른 때였다.6
그 후로도 수많은 온라인 식료품 배달 서비스가 나왔다 사라지곤 했다. (일부는 아직까지 서비스를 하고 있긴 하다.) 2007년 아마존은 아마존프레시AmazonFresh라는 온라인 식료품 배달 서비스를 시애틀 일부 지역 등에 제한적으로 시작했다. 이후 천천히 서비스 가능지역을 늘려 2016년까지 미국 내 9개 주요 도시와 런던에서 서비스하고 있다.7
그러다 아마존의 직원이었던 아푸바 메타Apoorva Mehta가 2012년 인스타카트Instacart라는 모바일 기반 식료품 배달앱을 만들어서 크게 인기를 끌었다. 인스타카트의 성공은 스마트폰 보급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추정해볼 수 있다. 이즈음에야 스마트폰 보급률과 공유경제, 전자상거래를 위한 데이터 및 편리한 모바일 결제 등 필요한 기술과 시장환경이 무르익었던 것이다. 인스타카트는 창업한 지 3년 만에 미국 내 15개 도시에서 서비스하며 기업가치 2조 원이 넘는 유니콘으로 성장했다.8
스타트업의 성공에는 운과 때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하지만 때를 잘 맞추는 것도 실력이다. 단순히 기다리는 것을 넘어 그 타이밍이 언제 올지 예측하고, 때가 왔을 때 올라탈 수 있도록 항상 주위를 살피고, 스스로 통찰력을 기르도록 노력해야 한다. 계속된 실패에도 다시 시도할 수 있어야 하며, 마침내 모든 운이 내 주위로 모여들 때 남들보다 10배 더 전진할 수 있어야 한다.
“저항군은 희망을 딛고 일어선다.”
- 영화 <스타워즈 로그 원> 중에서
“Rebellions are built on hope.”
- <Star Wars Rogue One>
스티브 잡스가 사무실에서 맨발로 다닌다거나 애플 컴퓨터 개발 당시 폰트는 큰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 직원을 즉각 해고해버린 일화는 유명하다. 스티브 잡스의 기행과 편집증은 함께 일하는 많은 이들을 힘들게 했다.
스티브 잡스처럼 완벽함과 디테일에 대한 편집증을 겪는 창업가뿐 아니라, 다른 종류의 질병을 앓는 창업가들도 많다. 버진 그룹의 리처드 브랜슨Richard Branson, 이케아IKEA 창업자 잉바르 캄프라드Ingvar Kamprad, 제트블루JetBlue 창업자 데이비드 닐먼David Neeleman 등 많은 창업가들이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를 겪고 있다.
이런 것들은 창업가로 성공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일부에서는 ADHD의 특성이 창업가의 성공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9 더 큰 리스크에 집착한다든지, 특정 주제에 놀랄 만큼 몰입해 집중한다든지, 특유의 창의력 덕분에 여타 사람들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의 성과를 달성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창업가는 세상이 정해놓은 규칙을 새롭게 해석하고 재정의한다. ‘9시 출근, 6시 퇴근’과 같은 기본적인 규칙에도 “왜?”라고 반문하며 다른 방법은 없는지 생각한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화학에 몰두해서 하루 종일 실험실에서 시간을 보냈다. 다른 수업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화학실험실에 널려 있는 온갖 약품과 실험기구들만이 내가 관심을 갖는 세상이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폭발물을 만드는 데 미쳐 있었다. 책에서 배운 공식대로 여러 종류의 폭발물을 만들어 제대로 성공했을 때의 희열은 십대 소년이 감당하기 벅찬 수준이었다. 몇 번은 폭발 때문에 화재가 나 소화기를 터뜨려야 했고, 그 후부터 소화기는 항상 손 닿는 곳에 준비해두었다. 언젠가는 작정하고 만든 고체폭탄이 생각보다 더 크게 폭발해서 학교 건물이 지진이 난 것처럼 떨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