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ORUIGAKUSHA DAKARATTE,
TORIGA SUKIDATO OMOUNAYO
by Kazuto KAWAKAMI
© Kazuto KAWAKAMI 2017, Printed in Japan
Korean translation copyright © 2018 by Bakha publishers
First published in Japan by SHINCHOSHA PUBLISHING CO.
Korean translation rights arranged with SHINCHOSHA PUBLISHING CO.
through Imprima Korea Agency.
이 책의 한국어판 저작권은 Imprima Korea Agency를 통한
SHINCHOSHA Publishing CO.와의 독점계약으로 박하에 있습니다.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무단복제를 금합니다
일러두기
본문 중 〔 〕 안 설명과 주석은 모든 옮긴이 주이다.
차례
들어가는 말, 혹은 조류학자를 친구로 둘 수 있을까
1장 조류학자에게는 절해의 고도가 잘 어울린다
#1굳이 날아야 할 이유를 못 찾다
#2불을 내뿜어 땅을 만들다
#3최근 휘파람새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4밤의 장막과 종다리 사이에서
2장 조류학자, 절해의 고도에서 죽을 뻔하다
#1미나미이오토, 열혈 준비편
#2미나미이오토, 사투의 등정편
3장 조류학자는 편애한다
#1도리를 따르면 인과율은 사라진다
#2그건 먹어서는 안 된다
#3빨간 머리의 비밀
#4복족류의 대모험
4장 조류학자, 이렇게 생각하다
#1코페르니쿠스의 함정
#22차원 망상 조류학의 시작
#3모험자들, 너무 모험하다
#4원더풀 라이프
5장 조류학자,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1열대림에서 걷는 방법
#2에이리언 신드롬
#3나 여기 있어요
#4공포! 어두운 빛깔의 흡혈 생물
6장 조류학자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은 밤이 있다
#1멋진 이름을 붙여주자
#2비국제파 선언
#3사과 실망 사건
#4다이너소어 인 블루
마치는 말, 혹은 행운은 누워서 기다려라
들어가는 말,
혹은 조류학자를
친구로 둘 수 있을까
주먹밥을 먹다 보면 자주 경악하게 된다. 걸핏하면 매실장아찌가 들어 있는 것이다. 매실은 살구와 복숭아의 친구, 틀림없는 과일이다. 과일을 소금에 절여 밥 위에 얹어 먹다니, 비상식에도 정도가 있는 법. 내가 총리가 되면 과일불가침법을 가결하여 매실장아찌를 금지, 과일의 기본적 권리를 지키겠다고 약속한다. 이왕 하는 김에 탕수육에서 파인애플도 제거하자.
이런 식으로 주먹밥과 대화를 나누며 24시간 동안 배를 타고 오가사와라 제도諸島로 향한다. 이것이 나의 일이다.
물론 나는 주먹밥 가게의 후계자는 아니다. 조류학자다.
당신에게는 혹시 조류학자 친구가 있을까? 많은 분들의 경우, 대답은 ‘아니요’일 것이다. 그 이유의 절반쯤은, 조류학자는 부끄러움이 많고 친구를 만드는 데 서툴기 때문이다. 나머지 절반은 수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조류학회의 회원 수는 약 1,200명. <일본 탤런트 명부>에 실린 탤런트 또는 모델의 수가 1만 1,000명. 조류학회 회원이 전부 조류학자라 해도 탤런트보다 희소한 것이다. 일본의 인구를 1억 2,000만 명이라고 하면 10만 명 가운데 1명. 즉 10만 명의 친구를 만들지 않으면 조류학자와 친해질 수 없다는 뜻이다.
생물학 중에서도 조류학은 비교적 인간과 동물에게 무해한 분야다. 곤충은 해충으로 농림업에 큰 경제적 피해를 초래한다. 포유동물은 사슴의 농림업 피해, 곰의 인명 피해, 쥐의 위생 피해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다. 거꾸로 어류는 식량 자원으로서의 가치가 탁월하다.
한편 같은 동물이라고는 해도 조류의 경우에는 까마귀의 쓰레기통 뒤지기나 민물가마우지의 어업 피해가 있지만, 그 규모가 미세하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옳든 그르든 실리實利와 관련된 대상은 사회적 수요가 큰 응용적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수요가 적으면 일자리도 적다. 조류학회 회원 중에서 직업적인 연구자는 10~20퍼센트 정도쯤 될 것이다. 이렇게 조류학자의 희소성이 심화되고 있다.
하지만 실리와 흥미는 별개 문제다. 조류가 많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것은 틀림없다. 어린이를 위한 도감 시리즈에는 반드시 ‘조류’가 있다. 설령 〈요괴워치〉나 〈도라에몽〉이 큰 인기를 끌고 있더라도 ‘요괴’나 ‘고양이 로봇’ 카테고리는 없다. 조류의 승리다.
자연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는 빛깔이 아름다운 조류가 인기를 모으고, 신문 사회면에서는 고니의 방문을 기사화한다. 게다가 고니는 흑백이어도 상관없는데 굳이 컬러 사진을 게재한다.
돈이 되는 일이 아니어도 많은 사람이 조류를 미워하지는 않는 것이다. 아마 독자 여러분 중에도 새를 소름 끼치게 싫어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는 송충이나 민달팽이, 벌거숭이두더지쥐 등보다 신분이 상당히 높다고 조류를 대신하여 자부한다.
조류의 특징은 날개다. 날개는 자유의 상징이며, 동경과 외경의 대상이 되어왔다. 대천사 미카엘의 등에 돋아 있는 것이 불길하기 짝이 없는 박쥐의 날개가 아닌 것도 당연하다. 가릉빈가1에게도, 페가수스2에게도, 괴조 시레느3에게도 새의 날개가 장착되어 있다. 이것이 만약 풍뎅이의 날개이거나 날치의 지느러미였다면 폼이 나지 않았을 것이다.
◈◈◈◈
1 극락에 산다는, 사람 머리에 목소리가 고운 상상의 새
2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날개 있는 천마天馬
3 일본의 나가이 고 원작의 만화 및 애니메이션 <데빌맨>에 등장하는 가공의 악마
설령 경제학자를 깜짝 놀라게 하지는 못했더라도 인류 문화에 영향을 주고 늘 동경의 대상이 되어온 것이 조류이다. 일본에는 화조도花鳥圖라고 불리는, 자연을 대상으로 한 회화가 옛날부터 많았다. 우타가와 히로시게歌川広重, 가쓰시카 호쿠사이葛飾北斎, 이토 자쿠주伊藤若冲등 에도 시대 말기 민화가가 그린 수많은 명화가 지금도 남아 있다.
포유류나 곤충도 화조도의 모티프가 된다. 하지만 화수도花獸圖도, 화충도花蟲圖도 아니다. 일본인이 사랑한 자연의 대표는 새인 것이다. 그리고 신사숙녀 여러분에게도 같은 피가 흐르고 있다. 틀림없이 당신도 새를 미워하지 않을 것이다.
대상이 이성이든 조류든, 동경의 마음은 지식욕을 불러일으킨다. 이성을 지나치게 연구하는 자는 스토커라는 오명 아래 체포되지만, 새에 대한 흥미는 학문에 이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저서에서 조류의 생태를 고찰했고, 이자나기와 이자나미4는 할미새에게서 나라 만드는 법을 배웠다. 참으로 유서 깊은 동물인 것이다.
◈◈◈◈
4 일본 신화에서 일본 열도를 만든 부부 신의 이름. 이자나기가 남신, 이자나미가 여신
그럼에도 조류학의 성과는 세상에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다. 이래서는 인류가 새겨온 문화에 대해 체면이 안 선다. 아마도 일반인에게 이름이 알려진 조류학자는 제임스 본드 정도일 것이다. 영국 비밀정보부에서 근무하는 동명의 인물이 있지만, 그의 이름은 실제 존재하는 조류학자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비밀리에 활동하는 스파이에게 지명도에서 뒤진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사태일 테지만 스파이의 이름이 유명하다는 것도 영국 비밀정보부로서는 꺼림칙한 사태일 테지만.
실리가 적은 학문의 존재 이유는 인류의 지적 호기심이다. 구석기인의 토우土偶 제작도, 화성인의 파괴 공작도 다우지수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래도 사람들은 토우나 화성인의 동향을 몹시 알고 싶어 한다.
하지만 호기심이 있어도 계기가 없으면 흥미의 문을 열기는커녕 그 문의 존재조차 모르는 법. 조류학자를 친구로 두지 않은 것은 독자 여러분에게는 정말 큰 손실이다. 그래서 본드를 대신하여 조류학자 대표로 그 손실을 내 멋대로 보충하기로 결심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부터 내가 당신의 친구이다. 알지도 못하는 중년 신사의 이야기를 들어야 할 이유는 없겠지만, 친구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신사숙녀로서의 예의다.
잠깐 동안 새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시고, 함께 조류학의 세계를 즐겨주신다면 행복하겠다.
#1
굳이 날아야 할
이유를 못 찾다
할 수 있으면 해봐
고타쓰1에 쏙 들어가는 것도, 산책 도중 기둥에 부딪히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밥을 먹고 눕는 것도 식은 죽 먹기다. 아니, 밥을 먹었으니 죽을 먹는 건 아니지만 어쨌거나 잘할 수 있는 일이다. 즉 포유류 흉내는 어떻게든 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박쥐나 고래는 이단이므로 지금부터 할 이야기에서는 무시하겠다. 그런 한편으로 새의 흉내는 쉽지가 않다. 인간은 날 수 없기 때문에 조류의 행동은 실제 체험의 범주를 넘어선 미지의 영역에 있다. 비상飛翔이라는 특이한 행동이야말로 새의 최대 특징이자 매력이다.
◈◈◈◈
1 숯불이나 전기 등의 열원熱源 위에 틀을 놓고 그 위에 이불을 덮어 쓰는 난방 기구
할머니에게 혀를 잘린 허약한 참새2조차 때로는 500킬로미터 이상을 이동한다. 이것도 비상 능력 때문이다. 신칸센으로 치면 두 시간 반짜리 당일치기 거리라고 우습게 보면 안 된다. 무엇보다 참새의 몸무게는 고작 20그램이다. 약 3,000배의 몸무게를 가진 나로 환산하면 150만 킬로미터의 대이동이다. 달까지 두 번 왕복, 도시락 값만으로도 파산할 수 있는 거리다. 바닷새인 극제비갈매기로 말하자면 매년 북극권에서 번식하여 남극권에서 월동하는 그 무모한 짓을 해치워버린다. 우여곡절의 경로는 왕복 8만 킬로미터에 이른다. 이쪽은 몸무게가 약 100그램이므로 나로 환산하면 연간 4,800만 킬로미터. 지구에 가장 접근했을 때의 화성이라면 1년 2개월 만에 도달할 수 있는 거리다.
◈◈◈◈
2 심술쟁이 할머니에게 혀를 잘린 참새가 착한 할아버지에게 보은한다는 내용의 일본 옛날이야기
새는 너무나 쉽게 비행하기 때문에 그 유능함을 실감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들도 인류와 마찬가지로 중력의 지배를 받는다. 그 중력을 거스르는 비행은 틀림없이 부담이 큰 행동이다. 실제로 이카로스3부터 라퓨타4까지, 인류는 중력에 대해 수많은 패배를 맛보아왔다. 그에 비해 조류는 연전연승, 감동의 극치다. 다만 이것은 하루아침에 거둔 성과가 아니다. 약 1억 5,000만 년에 걸쳐 비상에 적합한 형태와 행동을 진화시켜온 것이다. 비상 효율이 좋지 않은 개체는 먹이를 얻지 못하거나 포식자의 사냥감이 되고, 또 이성으로부터 외면당한다. 보다 우월한 형질을 가진 개체만이 살아남아 비상 행동을 더욱 세련되게 발전시켜온 것이다.
◈◈◈◈
3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발명가 다이달로스의 아들. 아버지와 함께 깃털과 밀랍으로 만든 날개를 달고 미궁을 탈출했으나, 너무 높이 밀랍이 태양열에 날개가 녹아 바다에 떨어져 죽음
4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천공의 섬 라퓨타>에 나오는 하늘에 떠 있는 섬
그래서 나의 주요 조사 지역은 도쿄 도에서도 멀리 떨어진 오가사와라 제도이다. 일본 열도 중심인 혼슈까지 약 1,000킬로미터의 바다가 가로막고 있는 틀림없는 절해의 고도이다. 오가사와라에는 박쥐를 제외한 포유류는 자연분포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 섬이 해양도이기 때문이다. 해양도란 바다 밑바닥을 이루는 해양 플레이트 위에 불쑥 생겨난 외로운 섬을 말한다. 바다 안에서 생겨난 섬이라 바다를 건널 수 없는 동물은 올 수 없는 환상의 땅이다. 하와이나 갈라파고스도 해양도이다. 이와 반대로 대륙붕 위에 있어서 대륙과 연결되기 쉬운 섬은 대륙도라고 부른다. 혼슈와 오키나와 등은 대륙도이다.
지상성地上性의 포유류는 헤엄을 잘 치지 못하기 때문에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는 해양도에 분포할 수 없다. 여름이라고 해서 해수욕장에 가는 것은 인간 정도이다. 야생 포유류는 평소 발가벗고 다니기 때문에 일부러 수영복 입은 여자를 보러 갈 필요가 없는 것이다. 오키나와에는 긴털쥐나 가시쥐 같은 포유류가 자연분포하지만 이들은 바다를 건너온 것이 아니라 과거 대륙과 연결되어 있던 시기에 육지를 통해 온 것으로 추정된다.
포유류와는 인연이 없는 해양도에서도 조류는 여유 있게 분포를 넓힌다. 하와이, 갈라파고스, 오가사와라, 이런 바다 한복판에 있는 고도라 해도 반드시 조류가 생식하고 있다. 비상이라는 특수 능력을 사용하면 바다는 건널 수 없는 벽이 아닌 것이다.
빈자리 있으면 편히 쉬어
다시 돌아와, 이번 주인공은 오가사와라의 메구로〔참새 목 동박새 과 메구로 속〕이다. 물론 가와사키5에 흡수 병합된 메구로제작소의 왕년의 명차名車가 아닌, 동박새과의 작은 새를 말한다. 오가사와라에는 고유의 새가 4종 기록되어 있다. 오가사와라흑비둘기, 오가사와라화미조, 오가사와라되새 그리고 메구로이다. 이 가운데 앞의 3종은 이미 멸종되었고, 메구로만이 살아남았다. 오가사와라 제도는 도쿄 도에 속해 있어서 메구로는 도쿄의 고유종이기도 하다. 일본인이라면 수도에 고유의 새가 있다는 것을 알아두어도 손해는 없을 것이다.
◈◈◈◈
5 일본의 중공업 회사로, 항공기와 이륜차 등을 제조함
메구로는 동박새보다 한층 크고 몸이 노란 새다. 귀여운 빨간 눈의 토끼가 아닌 한, 눈이 검은 것은 당연. 왠지 개성 없는 이름인 것 같지만6 그 이름의 유래는 안구에 있지 않다. 메구로는 눈 주위에 검은 문양이 있다. 손바닥만 한 크기로, 날개와 부리가 있는 노란 판다를 연상해보면 거의 일치한다.
◈◈◈◈
6 메구로’의 한자 표기는 目黑, ‘검은 눈’이라는 뜻
비상이 조류의 특징이라고는 하지만 장거리를 날 수 없는 새도 있다. 이를테면 꿩이나 딱따구리의 동료는 장거리 이동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그들은 대륙과 그 주변 섬에만 분포하고, 절해의 고도에는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은 종이 있기 때문에 섬의 새 종수는 한정되어 있다. 도쿄의 다카오 산에는 약 50종의 육지 새가 번식하고 있는 데 비해, 오가사와라 제도에는 예부터 있어온 육지 새가 15종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장소까지 도달하는 동박새 과의 새는 늘 해양도에 분포를 넓히는 장거리 선수이다.
오가사와라에는 여우도, 꿩도, 딱따구리도 없다. 메구로는 지상에 포식자가 없기 때문에 자주 땅 위를 걸어 다닌다. 경쟁 상대가 없으므로 나무줄기에 수직으로 붙어 벌레를 먹는다. 땅 위든 나무 위든 다양한 장소를 이용하여, 곤충이나 과일, 꿀이며 도마뱀붙이도 먹는다.
공간이나 먹이는 생물에게 있어서 중요한 자원이다. 섬에서는 자원 이용의 폭을 확대해나갈 수 있다. 다양한 자원을 폭넓게 이용하는 메구로의 행동은 포식자나 경쟁 상대가 적은 섬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의 진화 증거인 것이다.
다시 혼슈의 새로 돌아가면, 그들은 공간을 분할하여 이용한다. 나무 위에는 박새, 줄기에는 딱따구리, 지상에는 개똥지빠귀, 덤불에는 휘파람새, 이런 식이다. 만원 전철에서는 각자가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 한정되어 있다. 경계를 침범해봤자 별다른 이득도 없고, 싫은 내색에 어색해지기만 할 뿐이다. 하지만 텅 빈 전철에서는 신발까지 벗고 자리에 누워도 아무도 나무라지 않는다. 이것이 혼슈와 오가사와라 생태계의 차이인 것이다.
필요 없으면 그만둬
메구로는 현재 오가사와라 제도의 하하지마母島 열도에만 생식하고 있다. 하하지마 열도는 하하지마를 중심으로 아네지마姉島, 이모토지마妹島, 메이지마姪島, 무코지마向島, 히라지마平島 등이 주위에 배치되어 있다. 여자 쪽 가족관계를 뜻하는 이름의 섬들과 맞은편에 있다고 해서 무코지마, 평지가 많다고 해서 이름 붙은 히라지마인데, 섬 사이 거리는 저마다 고작 6킬로미터 정도이다. 다만 메구로가 있는 곳은 하하지마와 무코지마, 이모토지마, 이 세 개 섬뿐이다. 어느 섬이나 새가 살 수 있는 환경인데, 새가 있는 섬과 없는 섬이 있는 것이다. 이 세상에 인기 있는 남자와 인기 없는 남자가 있는 것처럼 신기하다. 그래서 이 분포의 수수께끼를 조사해보기로 했다.
나는 채혈당하는 것은 싫어하지만 새의 채혈은 싫어하지 않는다. 타자의 아픔은 얼마든지 참을 수 있으므로 메구로의 혈액을 채취하고 DNA를 분석하기로 했다. 작은 새의 혈관은 가늘어서 피부 밖에서 주삿바늘로 정맥에 살짝 상처를 낸 다음 새어 나온 혈액을 가는 유리관에 넣는다. 겁먹은 메구로 132개체에서 혈액을 모은 후 악역배우가 된 기분이 되어 분석에 임한다. 아니, 실제로 분석한 이는 유능하고 마음 넓은 공동연구자였지만, 그의 공적은 내 공적이다. 공동연구란 힘든 작업을 다른 사람에게 떠맡기는 것이다.
연구의 치부를 드러내는 일은 이쯤에서 끝내자. DNA 분석 결과, 메구로는 각 섬마다 독자獨自의 유전적 패턴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만약 개체가 섬과 섬을 이동했다면 각 섬의 독자성은 없고, 어느 섬이나 비슷했을 것이다. 즉 메구로는 고작 5킬로미터밖에 안 되는 바다도 건너지 않은 것이다. 5킬로미터는, 상어를 속여 줄 세운다면 토끼도 건널 수 있는 거리다.7 그뿐 아니라 육지에서도 약 3킬로미터 떨어져 있을 뿐인데 개체의 교류가 몹시 제한된 곳이 있었다. 메구로는 육지에서조차 이동을 싫어했던 것이다.
◈◈◈◈
7 상어를 줄지어 세운 후 바다를 건넜다는 일본 이즈모 지방의 설화를 빗댄 말
한편 그들이 바다를 사이에 둔 세 개 섬에 분포한 것도 사실이다. 그 이유는 빙하기와 관계가 있을 것 같다. 약 1만 8,000년 전뷔름 빙기Wurm氷期〔제4기 빙하 시대에 있었던 4회의 빙기 중에서 4번째 빙기를 말함. 세계적으로 한랭 기후였으며 인류문화상으로 따져봤을 때 구석기 시대 후기에 해당〕에 가장 추운 시기를 맞이했다. 지구의 얼음 총량이 많으면 해수는 줄어들고 수면은 내려간다. 당시는 지금보다 100미터 이상 수면이 낮았고, 하하지마 열도의 섬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 후의 기온 상승으로 해수면이 올라가 여러 작은 섬으로 나뉜 것이다. 이 시점에는 모든 섬에 메구로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작은 섬에서는 중복된 우연과 일시적인 기상의 영향 등으로도 멸종이 발생한다. 한번 멸종이 발생한 섬에서는 새로운 개체가 생겨나지 않아 결과적으로 불연속적인 분포가 되었을 것이다. 바다를 사이에 둔 섬은 환경의 좋고 나쁨 이전에 다른 메구로와의 근본적인 접점을 잃은 것이다. 인기 없는 남자도 아무 의욕이 없어서 생긴 결과이다. 일단 만남의 장소를 찾는 게 선결 과제다.
이러한 메구로와 가장 가까운 새는 사이판에 있는 골든화이트아이다. 즉 그 선조는 약 1,300킬로미터 바다를 건너 남쪽에서 날아온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은 완전한 히키코모리다. 장거리 이동 끝에 도착한 생물이 이동 능력을 낮춘 것도 섬에 사는 생물의 특징 중 하나이다. 거꾸로 이동을 중단했기 때문에 더욱 고유종이 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주위에 육지가 없는 고도의 경우 어중간한 이동의 결과는 수몰이다. 열대나 아열대의 습한 기후에서는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않아도 지리적 이점이 있는 고향 생활에 불만은 없다. 바다 저편의 낯선 토지에 생활하기 적합한 환경이 반드시 있다고도 할 수 없으므로, 이동은 목숨을 건 도박이 된다. 애당초 비상은 중력에 저항하는 고비용의 행동이다. 적극적으로 날 필요가 없으니 날지 못하는 성질이 진화한 것이다.
새는 자유롭게 하늘을 날 수 있다. 하지만 이 능력의 행사는 어디까지나 그들의 선택에 맡긴다. 섬에 가면 그 섬에 있어서의 비상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도쿄 관광을 한다면 내친 김에 메구로를 보러 오가사와라까지 가보시길 바란다. 거기에서 진화의 역사를 고스란히 볼 수 있을 것이다.
슬슬 교체해봐
다시 말하지만 메구로는 일본 수도 도쿄의 고유종이다. 그리고 무엇을 숨기랴, 도쿄 고유의 새는 메구로가 유일하다. 즉 메구로는 도쿄를 대표하는 새인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어인 일인지 도쿄 도를 대표하는 ‘도민의 새’는 메구로가 아닌 것이다. 1965년 투표를 통해 동박새나 종다리 같은 10종의 후보를 제치고 붉은부리갈매기가 1위로 선정되었다. 이 결과는 도쿄 도 심의회를 거쳐 정식으로 인정되었다. 붉은부리갈매기는 《이세 이야기伊勢物語》8 같은 고전문학에 ‘미야코도리都鳥’라는 이름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적합한 새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
8 일본 헤이안 시대 초기, 즉 9세기 초의 귀족이자 시인 아리와라노 나리히라를 연상케 하는 남자의 일대기를 그린 작자 미상의 시가집
다만 총 투표수는 3,242표, 붉은부리갈매기의 득표는 고작 579표였다. 1,000만 도시인 도쿄에서 고작 0.01퍼센트 이하 도민의 지지가 대표 선정의 근거인 것이다. 게다가 붉은부리갈매기는 대륙의 북부에서 번식하고 도쿄에서는 월동만 하는 손님에 불과하다. 번식지가 춥다고 겨울방학 때만 놀러오는 유약한 타관 사람에게 도쿄 대표를 맡기는 게 과연 타당할까? 인류 대표로 크립톤 행성에서 온 슈퍼맨 클라크 켄트를 선택한 꼴이다.
메구로가 선택되지 못한 배경에는 역사적인 사정도 있다. 오가사와라 제도는 제2차 세계대전 후 오키나와와 함께 미국 통치하에 놓여 있었다. 일본에 반환된 것은 1968년, 투표 3년 후이다. 도민의 새는 주인공이 없을 때 행해진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이제 투표를 한 지 50년 이상이 지났다. 도지사도 임기가 4년이다. 슬슬 퇴위식을 가질 시기다. 도민을 대표하여 도지사에게 한마디 해두겠다. 도리가 아니다. 즉시 메구로를 도민의 새로 지정하는 게 도리이리라.
나? 이바라키 현 사람인데, 그게 왜?
#2
불을 내뿜어
땅을 만들다
1Q73
1973년 오일 쇼크 때 배우 겸 가수 야마구치 모모에 씨 데뷔, 이해는 잊을 수 없는 일들이 많았다. 그리고 이해는 내가 태어난 해이기도 하다. 갓 태어난 내가 당시의 일을 알고 있을 리 없다. 알 리가 없으니 잊은 것도 아니다.
1973년은 제2차 베이비붐의 절정기로, 209만 명의 아기가 태어났다. 같은 해 그 합계 체중을 훨씬 능가하는 것이 생겨났다. 니시노시마의 새섬新鳥이다. 니시노시마는 최근에도 분화하여 화제가 되었지만 이해에도 분화했던 것이다.
섬은 해저 화산의 분화나 산호초의 융기, 혹은 아메노누보코에 의한 교반9 등 다양한 과정으로 생겨난다. 하지만 그 양상을 눈으로 볼 기회는 거의 없다. 그 기회가 눈앞에 펼쳐진 것은 천운이었다.
◈◈◈◈
9 일본 신화를 기록한 《고지키古事記》에 따르면 일본 국토를 만든 두 남녀 신 이자나기와 이자나미가 대지를 성스러운 창, 즉 아메노누보코天沼矛로 휘저어 오노고로지마라는 섬을 만들었다고 함. 이 내용을 빗대어 저자가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것
니시노시마는 혼슈에서 약 1,000킬로미터 남쪽에 있는 오가사와라 제도의 무인도이다. 1702년에 스페인 선박 로사리오호에 의해 발견되어 로사리오 섬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로사리오는 가톨릭교도가 기도할 때 쓰는 묵주를 말한다. 망막한 바다 한복판에서 생명이 깃든 섬을 보고 기도를 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1801년 영국 군함 노틸러스호는 이 섬을 디스어포인트먼트disappointment 섬이라고 명명했다. ‘실망의 섬’이라는 뜻이다. 삼림도, 담수도 없는 섬은 희망보다 실망을 주었을 것이다. 19세기 서양의 배들은 인비저블 섬invisible, 즉 ‘보이지 않는 섬’이라고 불렀던 것 같다. 표고 25미터의 평탄한 섬은 발견하기조차 힘들었던 것이다. 모두가 상상력을 자극하는 의미심장한 이름들뿐이다.
그런데도 일본 이름은 ‘니시노시마西之島.’10
◈◈◈◈
10 서쪽의 섬이라는 의미
중학교 작문 시간이었다면 미녀 선생님으로부터 작문 센스와 관련하여 심각한 설교를 들었을지도 모를 만큼 수준이 낮다. 미인의 설교가 싫은 것은 아니지만 조금 더 공부를 했어야 한다. 기도, 실망, 소실 다음에 서쪽 섬이라니. 차라리 열반섬이나 윤회섬을 추천했으면 어땠을까.
개성 없는 이름 때문에 니시노시마는 오랜 세월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1973년 6월, 이 섬이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섬으로부터 약 500미터 지점에서 해저 화산이 분화하여 새로운 섬이 탄생한 것이다. 이 섬은 같은 해 12월 니시노시마 ‘새섬新島’이라는 어이없을 만큼 뻔한 이름이 붙었다.
하지만 이름을 너무 일찍 붙여주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새로운 섬은 이듬해 6월에 소멸해버렸던 것이다. 다만 무너져 바닷속에 묻힌 것은 아니다. 섬이 너무 성장하여 니시노시마와 합체한 것이다. 하나의 섬에 두 이름은 필요 없다. 새섬이라는 이름은 어쩔 수 없이 밀려나 니시노시마로 흡수되어버렸다.
니시노시마는 옛섬과 분화로 생긴 새섬, 그 사이를 잇는 자갈 섞인 모래사장으로 구성된다. 이미 독립된 섬은 아니지만 1973년 분화 때의 용암으로 생겨난 부분을 편의상 새섬이라고 부른다.
이제부터 생물학자가 나설 차례다.
분화하기 전, 섬에는 식물이 3종밖에 확인되지 않았다. 상당히 단순한 생태계였다. 거기에 새로운 육지가 추가된 것이다. 이 섬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섬의 모델이다. 이곳의 변화를 조사하면 섬의 생물이 어떻게 성립되는지 이해할 수 있다. 이는 수많은 생물학자들이 주목하는 보편적인 주제 가운데 하나이며 좀처럼 보기 힘든 기회인 것이다.
내가 처음 니시노시마에 간 것은 1995년이었다. 사람이 사는 섬에서 어선을 타고 흔들린 지 여덟 시간, 다시 어선에서 내려 5분 동안 헤엄쳐야 하는 온통 울퉁불퉁 바위투성이인 섬이었다. 식생植生도 빈약하여, 가본 적은 없지만 마치 화성 같은 곳이었다. 아열대의 햇살에 노출된 섬은 그야말로 뜨겁게 달구어진 중국식 프라이팬 속에서 춤추는 고추잡채를 방불케 했다. 변변한 그늘도 없어서 자칫하면 하늘나라로 직행할 것 같았다. 그야말로 실망의 섬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섬은 파라다이스였다. 무수히 많은 바닷새가 하늘을 날며 환영해주었다. 사실은 환영이 아니라 경계하여 날고 있는 것뿐이었지만. 아무튼 일본 내에서 몇 안 되는 바닷새의 번식지였던 것이다. 바닷새는 바다에서 먹이를 얻기 때문에 지상에는 둥지를 틀 공간만 있으면 된다. 가혹한 환경에는 포식자도 없다. 몇천 마리가 모여들어, 지금까지 11종의 바닷새 번식 기록이 있는 바닷새의 낙원인 것이다.
섬 곳곳에 있는 바닷새 둥지를 살펴보는데 신기한 집짓기 재료가 눈에 띄었다. 보통은 식물의 줄기나 가지로 집을 짓는데 그것은 새하얀 작대기였다. 자세히 보니 어떤 새의 뼈였다. 식생이 빈약하여 둥지 재료가 부족한 섬에서만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죽음이 삶을 키우는, 역시 윤회섬이라고 이름을 고쳐야 한다.
새섬 부분에는 아직 식물도, 새도 없었다. 하지만 옛섬 기슭에서는 식물이 넓게 분포하고 있었다. 바닷새의 둥지도 식물과 함께 폭넓게, 신천지를 향해 서서히 진출하고 있었다.
처음 상륙하고 나서 대략 10년쯤 지난 2004년에 다시 방문하자 식물은 새섬 발치까지 도달하여 식물 종수는 6종을 기록하고 있었다. 아직 빈약한 생물상生物相〔같은 환경이나 일정한 지역 안에 분포하는 생물의 모든 종류. 주로 동물상과 식물상을 합쳐서 이름〕이었지만 착실히 변화하고 있었다.
내 생일은 1973년 4월 11일, 새섬의 화산 활동은 다음 날인 12일 처음으로 기록되어 있다. 같은 나이일 뿐만 아니라 범우주적인 쌍둥이일지도 모른다. 그런 내가 새섬을 조사하게 되었으니 우연 이상의 무언가를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불길한 예감
2004년의 조사로부터 대략 10년, 슬슬 다시 조사해야겠다고 생각하던 때였다. 2013년 11월, 섬 근처에서 해저 화산이 분화하여 섬이 생겼다는 뉴스가 세상에 전해졌다.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니시노시마의 동남쪽에 생겼으므로 동남니시노시마라는 전위적인 이름이 붙으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넘치는 용암에 의해 섬의 성장은 멈추지 않았고, 12월에는 또다시 니시노시마에 접속했다. 나의 운명적인 친구인 새섬 부분은 2014년 9월까지 용암에 먹혀 41년의 생애를 마감했다. 바카본11의 아버지와 같은 나이였다. 나는 남몰래 친구의 죽음을 애도했다.
◈◈◈◈
11 일본의 만화가인 아카쓰카 후지오의 개그 만화 〈천재 바카본〉의 주인공
연구를 하다 보면 이따금 조사 지역이 소멸하는 일이 있다. 내 조사지가 화전火田 때문에 잿더미로 변해버린 적도 있다. 친구의 조사지가 산사태로 파묻혀버린 적도 있었다. 그리고 이번, 섬 생물상의 수수께끼를 풀 연구 계획은 서서히 용암에 잠식되어갔다. 일본 내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