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영향력
추천의 글
예수 좀 제대로 믿어 보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관심 중 하나는 아마 ‘선교적 삶과 비즈니스 선교’일 것이다. 그런데 막상 시도해 보려고 하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알기 어렵다. 모델이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김진수 장로님의 삶은 ‘선교적 삶과 비즈니스 선교’에 있어서 가장 완벽한 롤모델이다. 김 장로님의 삶과 사역을 읽으면 누구나 다 ‘선교적 삶과 비즈니스 선교’에 대하여 정확하게, 그리고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해가 쉽다고 실천이 쉬운 건 아니다. 이 책을 읽고 한 번 도전해 보시기를 강권한다.
김동호 목사 (사단법인 피피엘, 전 높은뜻연합선교회 대표)
서사(narrative)의 힘은 참으로 크다. 자기도 모르게 형성되어 온 내 인생의 서사를 돌아볼 기회를 얻는 일, 그 서사가 지향하는 곳을 얼핏 알아차리는 일, 이 작은 서사가 하나님 나라의 큰 서사와 만나는 지점을 포착하는 일, 살면서 그보다 더 큰 복은 어디 있고 그보다 더 전율하는 순간은 또 언제이랴. 인디언들을 위한 비즈니스 선교, 김진수 장로님에게는 살아온 삶의 자연스런 귀결이고 하나님의 작품이다. 그것을 안 이상 그에게 그 일은 희생과 헌신이 아니라 가장 의미 있고 힘이 나는 일이요, 사역이 아니라 일상이 되었다. 나는 긱섬이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장로님의 하루하루를 엿보는 특권을 누려왔다. 그래서 여기 있는 모든 글들이 얼마나 진실한지, 그 속에 어떤 눈물과 웃음과 자책과 감동이 스며 있는지를 안다. 이것이 얼마나 자신을 버리고 비우고 깨어지면서 얻은 지혜인지를 안다. 그래서 한 마디도 버릴 것 없다는 것도 안다. 나는 장로님을 비즈니스 선교의 모델로서가 아니라 선교사의 한 모델로서 추천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하나님께, 이웃에게 자신을 내어놓는 과정이 선교임을 이보다 더 잘 보여줄 수는 없다. 기쁘고 벅차게 추천한다.
박대영 목사 (묵상과 설교 편집장, 광주소명교회 책임목사)
이 책은 감동적인 신앙서면서 현장감 있는 비즈니스 선교서이다. 또한 탁월한 경영서이기도 하다. 이 책은 현대 경영학에서 중요한 가치의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고 있고, 경영 현장에서의 생생한 실천 경험을 보여주고 있다. 긱섬은 원주민 공동체의 회복과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면서도 지속 가능성을 확보한 비즈니스이다. 이런 점에서 훌륭한 사회적 기업이자 선교기업이다. 비즈니스 선교는 삶으로 산 제사를 드려야 하는 어려운 일이다. 그 현장을 생동감 있게 전한 이 책을 비즈니스 선교를 꿈꾸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이 땅의 모든 크리스천들에게 추천한다.
박 철 원장 (기독경영연구원, 고려대학교 교수)
이 책은 한마디로 BAMer들의 교과서다. BAMer와 BAM 기업의 조건으로 말하는 지속 가능성, 선한 영향력, 선교적 의도성 3가지를 모두 이 책에서 배울 수 있다. 성공적인 창업자요 경영자였던 그가 BAM 비즈니스는 결코 쉽지 않다고 고백하며 현장 일기처럼 기록한 진솔한 경험들이 우리에게 많은 통찰과 빛을 가져다 줄 것이다. 김진수 대표는 BAMer들의 좋은 롤모델이다. 인생의 후반전을 누구보다 누리며 살 수 있었으나 다 내려놓고 라디컬한 삶을 선택했으니 하향적 삶의 전형이다. 지난 8년, 원주민들 속에서 살며, 일하며, 사랑하며, 성육신적 결속을 통해 드러난 선한 영향력은 함께하는 사람들과 지역 공동체의 변화로 열매 맺고 있다. 그가 늘 사람들 앞에 서서 고백하는 ‘나는 장사꾼, 일하는 게 가장 행복한 예수쟁이,’ 그의 이야기가 세상에 빛을 보게 된 것을 누구보다 기뻐한다. 이제 그의 삶은 긱섬 공동체에서만 아니라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기게 될 독자들의 삶에도 진하게 묻어나게 될 것을 확신하며, 자신의 자리에서 예수쟁이의 삶을 꿈꾸는 모든 이들에게 강추한다.
송동호 목사 (IBA사무총장, 로잔 BAM Global Think Tank 한국대표)
저자는 비즈니스 선교의 이론을 넘어 실체로 보여준 주인공이다. 지난 8년간 캐나다 현지에서 원주민들과 함께 생활하며 비즈니스를 통해 지속 가능한 선교적 삶을 살 수 있을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뇌한 흔적들이 이 책에 집약되어 있다. 특별히 비즈니스와 선교의 관계, 그리고 그 경계선에서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을 우선순위에 두고 선교적 삶을 실천하고자 노력해 온 실제 사례들을 이 책에 담아냈다. 실질적으로 창업 전후에 살펴야 할 세부적인 지침도 안내하고 있어 비즈니스 선교를 꿈꾸는 교회와 개인에게 꼭 필요한 교과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캐나다 원주민 마을로 인도하시기까지 저자의 삶에 깊숙이 개입하셨던 하나님의 정확하고 완벽한 계획하심과 우리의 잘못을 잘못으로 끝맺지 않으시고 새로운 출발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는 저자의 신앙고백이 독자들에게도 선교적 삶에 대한 도전으로 다가올 수 있기를 기대한다.
임성빈 총장 (장로회신학대학교)
이 책은 내가 아는 한 ‘Business as Mission’ 의 총체적인 원리를 가장 알기 쉽고 풍성하게 제시하는 책이다. 또한 이 책은 평신도들의 선교 시대가 이미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하다. 내게 가장 놀라운 것은 지난 20년 간 김진수 장로님을 빚어오신 하나님의 놀라운 손길이다. 바울은 에베소서 2장 10절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태초부터 선택하셔서 선한 일을 위해서 준비하신다고 고백하고 있다. 모든 이들이 살아가는 동안 이 축복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 온유하고 정직하게 주님 앞에 서는 겸손한 자들만이 하나님이 주시는 유업을 누릴 수 있다. 이 놀라운 비밀, 이 책을 통해서 많은 이들에게 나눠지길 소망한다.
조 샘 선교사 (인터서브 코리아 대표, International BAM Alliance 공동대표)
우리 마을에 찾아온 ‘진수’를 만난 지 벌써 8년이 되어간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때 송이버섯 가격 폭락을 막아 달라고 요청했다. 어려운 요청이었고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지난 8년간 우리와 더불어 이곳에서 살고 있다. 지난 시간 나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에게 진수는 큰 행운이었다. 우리는 가끔씩 농담처럼 그를 ‘목사님’이라고 부른다. 그가 얼마나 크리스천의 삶을 잘 살아가고 있는지 두 눈으로 확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삶을 보며 나와 우리 마을 사람들도 제대로 된 크리스천의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하나님을 멀리했던 이들도 그를 보며 크리스천의 삶으로 돌아오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그가 우리와 함께 보낸 시간을 담은 책을 썼다고 들었다. 우리가 ‘진수’를 보며 선교적 삶을 배우듯 이 책을 읽으며 많은 독자들이 선교적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토니 몰간 (캐나다 원주민 마을 추장)
프롤로그
일을 하면서 틈이 날 때마다 글을 썼다. 글은 내게 많은 것을 생각나게 해 주었다. 특히 실수나 실패를 경험했을 때 그 상황과 감정을 잊지 않기 위해 글로 옮겼다. 글은 과거의 실수로 인한 아픔에서 나를 해방시켜 주었고, 현재에 더욱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캐나다 원주민들을 위한 비즈니스 선교 기업인 긱섬(GITXM)을 시작한 지 7년째 접어들었다. 이 사업을 시작할 때에는 비즈니스 선교(BAM; Business As Mission)에 대해 지금처럼 깊은 생각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캐나다 원주민들을 위한 비즈니스를 하면서 많은 시행착오를 경험했고, 또 많은 실패를 경험하면서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실패를 겪으면서도 한 걸음씩 걸어온 과정을 통해 내가 경험한 비즈니스 선교에 대해 나누고 싶었다.
사업가로서 나는 두 번의 창업을 경험했다. 첫 번째는 나 자신을 위한 IT 기업인 이미지솔루션스를 창업해 18년간 운영했다. 두 번째는 캐나다 원주민을 위한 임산물 취급 회사인 긱섬이다. 그런데 전혀 다를 것만 같은 두 기업에서 많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첫 번째 회사를 운영할 때는 별다른 생각 없이 그저 열심히 돈을 벌기 위해 일했던 반면, 두 번째 회사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었고, 선교 기업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안고 운영해왔다.
선교 기업을 운영한다고 해서 갑자기 거룩해지는 것은 아니다. 선교 기업은 일반 기업의 연장선 상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이 말은 곧 선교적인 삶(missional life)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비즈니스 선교를 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선교적인 삶은 비즈니스 선교의 전제 조건이다.
간절히 바라기는 나의 경험이 선교적인 삶을 지향하는 독자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특히 비즈니스 선교를 꿈꾸는 사람들이나 그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에게 디딤돌이 되기를 기대한다. 나아가 나의 실패를 들어 쓰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독자들의 삶 가운데 동일하게 누리게 되기를 축복하며 소망한다.
2018년 6월 고사리를 수확하고
김진수
부르심
우리는 오래 전 이곳 미국에 와서 운 좋게 성공한 사람들 아닌가? 이 땅은 우리에게 성공의 기회를 제공했지. 그러니 이제 우리가 이 땅에 무언가를 되돌려 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2008년 어느 날이었다. 신시내티의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친구 안종혁 교수로부터 강력한 도전을 받았다. 친구는 내게 계속 도전했다.
미국인들은 할 수 없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네. 바로 북미 인디언 선교지! 백인들이 오래 전 인디언들에게 준 상처는 매우 깊고 오래 되어 그들에 의해 치료되기 어려운 게 사실이지. 우리가 그 치유 사역을 담당해야 한다고 생각하네.
캐나다 원주민들을 만나다
캐나다 원주민들을 위한 나의 사역은 이렇게 친구의 도전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친구는 내게 캐나다의 원주민 선교단체인 ‘사랑의 군대(Love Corps)’를 소개시켜 주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나는 ‘미국 사랑의 군대(Love Corps USA)’의 후원이사가 되었고, 내가 섬기고 있던 세빛교회에서는 첫 번째 단기선교 지역을 캐나다 원주민 마을로 결정했다. 우리는 2010년 7월말 약 2주 동안 캐나다 원주민 단기선교를 떠나게 되었다. 단기선교팀은 중고등부 담당 전도사님을 단장으로 하여 대학생 3명과 고등학생 8명 등 총 13명으로 구성되었다.
캐나다 밴쿠버에 도착해 다른 교회의 단기선교팀들과 합류하여 3일간 단기선교 교육을 받은 후에 원주민 마을로 향했다. 4개 마을로 흩어지게 될 단기선교팀들은 함께 50인승 버스를 타고 꼬박 이틀을 걸려 선교지 기탄야우(Gitanyow)에 도착할 수 있었다. 원주민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마을 앞에 세워진 장승들이 우리를 맞아 주었다. 이어서 원주민 아이들과 개들이 반겨 주었다. 단기선교팀은 곧장 작은 교회에 짐을 풀었다. 그 교회에는 의자와 탁자 서너 개, 세면대 하나, 변기 하나 달린 화장실, 그리고 교회 물품을 보관하는 작은 창고가 전부였다. 바로 옆에 큰 교회가 있었지만 비가 새는 천장을 오랫동안 수리하지 않고 방치해 둔 탓에 사용할 수 없었다.
우리는 교회의 한쪽 구석에서 잠을 자고, 식사도 준비하고, 심지어 여름성경학교까지 진행했다. 모든 선교 활동이 작은 교회의 좁은 공간에서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단기선교의 모든 일정은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감사하게도 첫날 교회를 찾아온 원주민 학생들은 20명 정도였지만, 마지막 날에는 40명으로 늘어나 있었다. 사랑에 굶주린 원주민 학생들은 우리 선교팀을 좋아해 주었다. 그다지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우리는 정이 많이 들었고, 헤어지는 날에는 단교선교팀 모두가 울었고 원주민 학생들도 울었다.
돌아보면 이 모든 일이 그 마을을 섬기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이었지만, 그때는 전혀 알지 못했다. 사랑의 군대의 단장인 홍성득 목사님은 내게 한 곳에 머물기보다 여러 원주민 마을을 함께 방문해 보자고 했다. 목사님의 제안에 동의하긴 했지만 우리 교회의 첫 단기선교 여행이기에 단기선교팀이 원주민 마을에 들어가 이틀 정도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이후 목사님이 이끄는 문화사역팀이 도착하면 그때 남은 일정을 함께 보내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원주민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마음이 바뀌고 말았다. 원주민 마을에 도착해 이틀 쯤 보냈을 때 문화사역팀이 도착했다. 계획대로라면 그들과 함께 다른 마을로 떠나야 했다. 그러나 나는 우리 팀이 머물고 있는 마을에 그대로 머물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마음이 바뀐 이유는 모르겠지만 여러 동네를 방문해 여러 가지 상황을 정탐하는 것보다 한 마을에서 보다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현실을 깊이 있게 이해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판단이 앞섰던 것 같다. 토요일에는 여름성경학교를 시작했고, 일요일 저녁에는 문화선교팀이 도착하여 한국의 전통 춤과 문화를 소개했다. 홍 목사님을 비롯한 문화선교팀은 예정대로 월요일 아침에 다음 마을로 떠났다.
문화선교팀이 떠나던 월요일 아침, 나는 그 마을의 추장(chief councilor)인 토니(Tony Morgan)와 인상 깊은 대화의 자리를 가졌다. 추장에게 내가 살아온 배경이 원주민들과 공통점이 많다는 이야기를 했고, 그런 내가 원주민들을 도울 만한 게 무엇인지 조심스레 물었다. 추장 토니는 그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자연에서 채취하는 자연산 송이버섯을 팔아도 제값을 받지 못해 어렵다고 했다. 중간 도매상들이 원주민들의 미숙함을 이용해 송이버섯의 매입가격을 낮춰버려서 많은 원주민들이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는 것이다. 토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사업가로서 내가 그들을 위해 무언가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때마침 지금까지 키워온 IT 회사를 매각하고 새로운 일을 하기 위해 준비하던 차였다. 그래서 회사 매각이 완료되면 이곳 원주민 동네에 와서 이들과 함께 살면서 봉사하는 것도 보람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보았다. 그러나 결단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하나님의 초대
6일간 원주민 단기선교를 마치고 돌아오는 버스를 타자마자 고민이 시작되었다. 무엇보다 원주민 마을은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었다. 비행기로 약 14시간 거리였다. 내가 살고 있는 미국 뉴저지에서 북부로 가면 차로도 갈 수 있는 캐나다 원주민 마을이 있을 텐데 굳이 이렇게 멀리 떨어진 마을이어야만 할까?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복잡한 생각들이 오갔다. 그렇게 고민하던 중 옆자리에 캐나다 토론토에서 온 한인 2세 대학생이 앉게 되었고, 간단히 통성명을 나눴다. 돌아오는 길도 이틀이나 걸렸기 때문에 중간 지점인 프린스 조지(Prince George)에 위치한 한 교회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다음 날 아침 버스에서 잠시 인사를 나눴던 그 학생이 내게 찾아왔다. 그리고 하나님이 자신을 통해 나에게 말씀을 해주셨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전했다.
장로님은 지금 무언가를 결정하기 위해서 망설이고 계십니다. 저는 그것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시작하라고 하십니다.
정말로 황당한 일이었다. 내 평생에 그 어느 누구도 이런 방식으로 말한 사람은 없었다. 게다가 내 신앙의 여정을 돌아보아도 그러한 형태의 말은 나에게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나는 그 청년의 말을 흘려들을 수 없었다. 마음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내가 추장 토니와 이야기할 때 그들과 함께하기로 마음먹었다가 돌아오는 길에 고민하고 있는 내 모습을 하나님께 들킨 기분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하나님께 물었다.
하나님 제가 왜 이 마을로 들어가야 하나요? 저희 집에서 가까운 미국 동부에도 원주민들이 있고, 그들을 도와주면 되지 않나요? 이곳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놀랍게도 하나님의 음성이 내 마음속에 들렸다.
그러면 이 동네 사람들은 누가 돌보니?
그리고 구약성경 에스더서의 한 말씀이 떠올랐다.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이 말씀은 곧 나에게 적용되어 다시 가슴속 깊이 들어왔다.
내가 너를 성공하게 한 것이 이 백성을 위함이니라.
짧지만 강력한 하나님의 도전이었다. 내가 과연 이 일에 적합한 사람인지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이 일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원주민들을 진정으로 이해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했다. 또한 원주민들과 비슷한 환경을 경험해 본 사람만이 그들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나의 큰형은 알코올 중독자였는데, 그로 인해 일찍 세상을 떠났다. 둘째 형은 군대 복무 중 자살했고, 누나는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했다. 그런데 알코올 중독, 높은 자살률, 저학력 이 세 가지는 원주민들이 실제 겪고 있는 가장 큰 문제들이었다. 나는 내가 만난 원주민들과 비슷한 환경에서 자랐고, 원주민들도 나를 자신들의 고통을 이해해 주는 사람으로 받아들였다.
다음 조건은 나의 비즈니스 경험이었다. 이곳은 큰 회사를 운영해 본 경험자가 필요한 곳이 아니라 혼자 또는 소수의 사람이 모여 사업을 성공적으로 키워낼 수 있는 창업정신을 가진 사람을 필요로 하는 곳이었다. 나 또한 혼자 회사를 시작해 성공적으로 키워낸 창업 경험자였다. 또 다른 조건이라면 경제적으로 충분한 여유가 있어서 이곳에 회사를 설립하더라도 설립자 개인 소유의 회사가 아니라 최종적으로 원주민 그들의 회사가 되도록 돌려줄 수 있을 만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필요했다. 내가 지금까지 키워온 회사를 매각하게 된다면 이 문제 또한 어렵지 않게 해결되는 상황이었다.
누가 이 일에 적합한 사람인지 나 자신에게 물었다. 그리고 응답했다.
하나님, 그 사람은 바로 ‘저’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저를 은혜로 이곳까지 인도해 오셨습니다. 그 모든 은혜가 바로 이 일을 하기 위해 섭리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저를 보내 주소서.
Missional Life
1
돌 제거하는 자
원주민 마을에 들어가던 초창기에는 몇 차례 원주민들에게 복음 전하는 일을 시도해 보았다. 그런데 결과가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은 것은 내가 돌밭 위에 씨를 뿌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돌이 가득한 밭에서 돌을 제거하지 않고 씨만 뿌리고 있었다. 그리고는 싹이 나지 않는데도 계속 열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제야 돌을 제거하는 작업부터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에 의해 옥토 위에 씨를 뿌릴 수 있도록 준비해 놓는 것이 나의 부르심임을 알게 되었다. 나의 부르심은 씨 뿌리는 자가 아니었다. 나의 부르심은 돌 제거하는 자였다.
만약 우리가 큰돈을 주고 밭을 산 후 그 밭에 뿌릴 씨앗을 샀다고 생각해 보자. 그런데 새로 산 밭에 가 보았더니 돌밭이었다. 이 돌밭 위에 먼저 씨앗을 뿌리기만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씨앗을 뿌리기 전에 먼저 돌을 제거하고 밭을 잘 간 다음 씨앗을 뿌릴 것이다. 그런데 만약 그 돌밭 위에 씨를 뿌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아마도 누군가로부터 무료로 씨앗을 받은 사람일 것이다. 나는 누구나 알고 있는 일반적인 모습의 선교사가 아니다. 나의 부르심은 세례 요한의 역할이다. 말씀의 씨앗이 떨어졌을 때 잘 자랄 수 있도록 돌을 제거해서 돌밭을 옥토로 만드는 것이 나의 일이다. 그러면 열매를 거두는 선교는 누가 언제 하게 될까? 그 일은 주일이 되면 말씀을 전하고 싶어 가슴 뛰는 사람이 할 것이다. 나는 돌 제거하는 일이 재미있고, 그는 말씀 전하는 일이 재미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선교는 그렇게 당신의 계획표대로 진행된다.
인도하심
나는 강원도 삼척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때는 모두가 가난한 시절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우리 집은 유독 힘들었다. 알코올 중독자였던 큰형은 40대에 세상을 떠났고, 둘째 형은 군대에서 자살했고, 누나는 초등학교도 다니지 못했다. 내가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아버지는 가정 형편상 대학에 진학할 수 없으니 삼척공업고등전문학교로 가라고 하셨다. 이 학교는 공업고등학교와 전문대학을 합친 5년제 전문 직업학교였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서 아버지의 말씀대로 했다.
하나님의 개입
그렇게 입학한 전문학교 2학년 때 내 인생에 큰 변화가 찾아왔다. 복음을 듣게 되었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받아들이면서 그리스도인이 된 것이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 스스로 한계를 정하고 대학은 꿈조차 꾸지 못했다. 그러던 내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기 시작하면서부터 시도조차 해보지 않고 포기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불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대학 편입 준비를 했고, 인하대학교 3학년으로 편입할 수 있었다. 게다가 입학과 동시에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