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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크는
아이들
ⓒ 백화현, 2010
2010년 4월 10일 처음펴냄
지은 이 백화현
펴낸 곳 (주)우리교육
펴낸 이 신명철
기획편집 전유미, 이진주, 이은주
디자 인 DNC 정인영
등 록 제313-2001-52호
주 소 (121-841)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449-6
전 화 02-3142-6770
전 송 02-3142-6772
홈페이지 www.uriedu.co.kr
ISBN 978-89-8040-664-7 03370
이 도서의 국립중앙도서관 출판시도서목록(CIP)은 e-CIP 홈페이지(http://www.nl.go.kr/cip.php)에서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CIP제어번호:CIP2010001161)
[제작 (주)한국이퍼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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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백화현
1959년 전북 부안 구암리 백씨 집성촌에서 태어나 여섯 살 때 바닷가 마을인 줄포로 옮겨와 어린 시절을 보내며 책을 통해 울타리 밖 세상을 넘겨보고 꿈꾸는 법을 배웠다.
1984년 교사 생활을 시작하여 198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해직이 되었다가 1994년 복직되어 현재 서울 봉원중학교에 근무하고 있다.
2001년부터, 일그러진 우리의 교육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학교도서관이 학교의 심장’이 되어야 하고 책 읽는 가정, 책 읽는 학교, 책 읽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우리 삶의 질을 높이는 일이요 우리 모두가 함께 잘살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하여, ‘전국학교도서관담당교사모임’과 ‘학교도서관문화운동네트워크’ 운영진, ‘학교도서관저널’ 기획위원으로 활동하면서 학교도서관의 활성화와 독서교육 운동에 힘을 쏟고 있다. 함께 지은 책으로는 《학교 도서관에서 책 읽기》(2005)와 《유럽 도서관에서 길을 묻다》(2009)가 있다.
이책은, ‘독서의 가치와 힘’을 잘 알고 있는 엄마가 자신의 아이에게도 그러한 힘을 얻게 해 주고 싶어 시작한 가정독서모임이 아이의 친구들과 함께 하는 독서모임으로 전환이 되며 오히려 어떻게 더 큰 배움과 나눔과 만남이 이루어지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담아 놓은 것이다. 이 가정독서모임은 2003년~2006년까지 활동한 1기 가정독서모임과 2007년~2010년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는 2기 가정독서모임으로 나뉘는데, 대체로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2학년때까지 활동했거나 활동하고 있다.
<1기 가정독서모임 회원>
장벼리원광대 문예창작학과 2학년을 마치고 현재 군복무 중이다.
장한솔남강고 2학년. 형과 누나들 틈에 끼어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활동했다.
조은선건국대 경제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이다.
박유미연세대 국어국문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이다.
박재현호서대 경제학과 2학년 1학기를 마친 후 현재 군복무 중이다.
김송요한국종합예술학교 미술이론과 1학년에 재학 중이다.
<2기 가정독서모임 회원>
장한솔서울 남강고 2학년. 1기에 이어 2기에도 활동하고 있다.
송하민서울 남강고 2학년에 재학 중이다.
이동근서울 상문고 2학년에 재학 중이다.
권기경서울 서초고 2학년에 재학 중이다.
김동한서울 남강고 2학년에 재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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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나를 책의 세계로 이끌어 준 오빠와
우리를 길러 주신 부모님께
이 책을 바칩니다.
프롤로그
친구들과함께 한 책 여행,
배움과나눔과 만남의 이야기
이 책은 나와 우리 두 아이, 그리고 그 친구들이 함께 모여 책을 읽고 글을 쓰고 토론을 하고 여행을 하며, 마음을 나누고 만남을 이루고 배움의 기쁨을 몸으로 체득해 나간 7년 동안의 독서모임 이야기이다.
이 모임은 2003년에서 2006년까지 활동한 1기 모임과 2007년부터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는 2기 모임으로 이루어져 있다. 1기 모임은 대학교 2학년을 마친 후 현재 군복무 중인 우리 큰아이와 그 친구들이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모여 활동했고, 2기 모임은 현재 고등학교 2학년인 작은아이와 그 친구들이 역시 중학교 2학년 때 시작하여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아이들은 시험이나 방학 기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매주 일요일 저녁 우리 집에 모여 활동했는데, 1기 모임은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여행하는 일이 중심을 이루고, 2기 모임은 책을 읽고 글을 쓰고 토론하고 탐구하는 활동이 주를 이루었다.
어찌 보면 지극히 사적이고 사소한 이야기일 수도 있고, 또 자칫 이러한 독서모임 활동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이들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는 이야기를 굳이 출간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망설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갈수록 ‘성적’과 ‘경쟁’만을 앞세우는 가정과 학교와 이 사회의 틈바구니 속에서 점점 더 메마르고 거칠어져 가는 우리 청소년들을 보며, 그 길이 아닌 다른 길도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다.
많은 사람들이 현대는 인문학이 죽은 시대라고 말한다. 인간은 이제 돈과 경쟁의 노예가 되어 더는 진실이니 선이니 정의니 하는 정신적인 가치들을 추구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아이들은 이제 사춘기가 되어도 ‘나는 누구인가’와 같은 질문으로 고민하지도 않고 그럴 시간도 없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와 이 사회로부터 강요당한 경쟁에 내몰리고 교사가 던져 주는 파편적인 지식들을 외우고 또 외우느라 협력과 나눔의 소중함을 체험할 기회도 배움의 기쁨을 체득할 기회도 가질 수 없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우리 사회는 지나치게 긴장하고 불안해하고 있다. 아니 우리뿐 아니라 세계가 신자유주의의 광풍 속에서 소수의 권력과 자본에 휘둘리며 몹시 불안해하고 초조해한다. 차분히 앉아 자신을 돌아보고 진실을 논하기에는 시간이 너무도 빨리 달리고 하루하루의 삶이 위태롭다.
그러나 급할수록 돌아가야 한다. 돈과 경쟁만을 내세우는 소수의 권력과 자본에 휘둘려 자신을 잃고 이웃을 잃고 인간이 추구해야 할 소중한 가치들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이런 때일수록 가던 길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며 나는 누구이며 삶이란 무엇인지 곰곰이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남들이 내모는 대로 아무런 생각 없이 앞만 보고 달리다가는 우리 모두 스프링 벅한번뛰기 시작하면 무조건 앞만 보며 달리다 벼랑에서 떨어져 죽고 만다는 아프리카의 양 꼴을 면할 수 없다.
독서모임 아이들은 내 이런 생각들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림책과 동화책으로부터 시작하여 동서양의 고전문학과 철학, 종교, 신화, 역사, 정치, 경제, 과학, 환경 등 여러 영역의 책들을 함께 읽고 글을 쓰며, 나는 누구이고 삶이란 무엇이며 무엇이 진실이고 선이며 정의인지를 토론하는 동안, 아이들은 놀랄 만큼 자아가 튼튼해지고 친구들에게 너그러워졌으며 정신이 확장되어 나아갔다. 또한 책을 읽고 함께 여행을 하며 아이들은 자신의 마음을 여는 법을 배우고 만남의 소중함을 익히며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랑을 배워 나갔다.
이 책은 그 성장의 과정을 담아 놓은 것이다. 1장에서는 독서모임의 배경이라고 할 수 있는,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에 대한 엄마로서의 고민과 바람을 풀어 놓았고, 2장에서는 2003~2004년에 이루어진 1기 독서모임의 활동 내용, 3장에서는 책을 읽고 떠난 여행을 소개하였다. 그리고 4장에서는 2007~2009년까지 2기 독서모임의 활동을 담았다.
나는 독자들이 이 책에 실린 아이들의 글을 한 편 한 편 섬세히 읽어 주기를 바란다. 글이 빼어나서가 아니라, 아이들이 이러한 독서활동을 하며 무엇을 느끼고 생각하고 배워 나갔는지 그 마음과 정신에서 일어난 일들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고서는 아이들의 변화를 알 수 없고 이 독서모임에서 배울 수 있는 것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가정독서모임에서 진행한 프로그램을 일반 가정에서 그대로 실행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책을 좋아하고 이러한 모임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부모라면 적절히 변형하여 적용하거나 새롭게 만들어 운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나는 이러한 독서모임이 한 가정에서 운영되기보다는 공공도서관이나 독서운동 시민단체, 그리고 학교에서 더욱 다양한 형태로 활발하게 운영되었으면 한다. 특히 2기 독서모임의 주된 프로그램인 독서토론이나 탐구활동과 같은 것은 학교의 모든 교과목 시간에 늘 이루어지길 바란다. 우리의 교육이 지금처럼 아이들의 손과 발을 묶어 둔 채 파편적인 지식만을 강조한다면 아이들은 배움의 기쁨을 잃은 채 시들어 가고 그만큼 우리의 미래도 암울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데에는 우리 독서모임에서 유난히 자료 정리를 잘하는 은선이와 유미, 그리고 우리 작은아이 한솔이의 힘이 컸다. 이 아이들은 활동하며 썼던 글과 여러 자료들을 공책과 클리어 파일에 잘 정리해 두었는데 만일 이러한 자료들이 없었더라면 아예 책 출간은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아이들에게 무척 고맙다.
또한 책 출간을 결심하고 책의 목적과 방향, 내용의 틀을 구상하고자 집을 떠나 혼자 있고 싶었을 때, 선뜻 자기가 살고 있던 집을 통째로 내주며 보름 넘게 기거할 수 있도록 도와 준 춘천의 김용대 선생님과 이를 적극적으로 독려해 준 우리 남편이 없었더라면 이 작업은 훨씬 더디게 진행이 되었을 것이다. 이 자리를 빌려 진심으로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또 우리의 독서여행을 더욱 풍성하게 해 주고 아이들의 성장에 큰 힘이 되어 준 고무신 학교의 고무신과 김유정 문학촌의 전상국 선생님, 산국농장의 김희목 선생님, 남원의 최병우 선생님께도 깊은 감사를 드린다. 이분들은 우리 아이들과 나에게 늘 그리움으로 존재한다.
또한 무척이나 바쁘신 와중에도 선뜻 추천사를 써 주신 책읽는사회문화재단 도정일 선생님과 문화연대 김명신 선생님, 학교도서관문화운동네트워크 김경숙 선생님과 인천여자상업고등학교 권효진 선생님께 마음 깊이 감사드린다. 특히 도정일 선생님은 늘 먼발치에서 마음으로만 흠모하던 분이고, 김명신 선생님은 명성만 들었을 뿐 한 번도 만나 뵌 적이 없는 분이기에 그 고마움을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끝으로 거친 원고를 다듬고 멋진 책으로 만들어 준 우리교육 식구들과 김유정 문학촌의 멋진 사진을 제공해 준 호경환 님, 또 든든한 후배이자 우리 독서모임의 특별회원인 송경영 선생과 딸 송요, 7년 동안 나를 배우고 가르칠 수 있도록 해 주었을 뿐 아니라 무한한 기쁨을 얻게 해 준 우리 가정독서모임 아이들에게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2010년 4월
백화현
추천사
아이들은어떻게 자라는가
아이들을 어떻게 키울까? 이 문제는 세상 모든 부모들의 관심사이고 사회의 큰 화두이며 우리가 ‘교육’이라 부르는 것의 책임과 과제를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는 질문입니다. 그런데 ‘아이’란 누구입니까? 그가 누구이기에 우리는 그를 ‘잘 키워야’ 한다고 말하는 것일까요? 고사리손 시절의 아이는 부모에게 기쁨이고 희망입니다. 그는 천사의 어린 사촌, 하늘이 내린 선물, 행복의 배달자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그가 조금씩 자라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제법 몸이 커지면서 중학교, 고등학교를 지나는 동안 부모들은 아이가 기쁨과 행복은커녕 어느 순간부터 고통과 좌절과 불안을 가져다주기도 하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리고 깜짝 놀랍니다. 그때부터, 마치 믿었던 약속을 배반 당한 사람의 경우처럼 번민과 자책의 괴로운 밤이 시작되지요. 이 아이가 왜 이렇지? 뭐가 잘못 되었을까? 내가 잘못 키웠나? 학교와 사회, 우리 모두가 잘못 가르쳤기 때문인가? 나쁜 친구들 탓일까?
그래요, 아이는 모순의 존재입니다. 그는 엄마 아빠에게 기쁨을 주면서 동시에 고통을 안기고, 희망을 갖게 하면서 동시에 좌절을 맛보게 합니다. 반짝이면서 어둡고, 단맛과 쓴맛을 번갈아 안기는 모순적 존재, 꽃인가 하면 동시에 가시이기도 한 복잡성의 한 모델이 아이입니다. 그런데 아이들만 그럴까요? 아닙니다. 인간이 모두 그렇습니다. 부모들은 그들 자신이 한때는 모두 아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어른이 되고나서는 그들도 그런 모순과 복잡성을 지닌 존재였다는 사실을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아이를 낳고 키운다는 것은 부모들에게도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아이가 태어나 한 인간으로 자란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크나큰 배움과 깨침을 얻게 되는 일이기도 합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우리가 무엇보다 먼저 배우게 되는 것은, 아니, 배워야 할 것은 아이들이 늘 한 가지 모습으로만 자라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다른 모습으로, 여러 다른 가능성을 암시하는 존재로 자란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내 아이가 왜 이렇지?”라며 안달하기 전에 먼저 이 사실부터 겸손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이 자라는 모습이니까요.
또 배우고 깨칠 일이 있습니다. 아이들에게도 그들 나름의 괴로움, 그들 나름의 아픔이 있고 그 아픔과 괴로움은 대부분 “나는 엄마 아빠의 기대를 채워 주지 못한다.”는 자책감에 연유한다는 사실을 부모들이 아는 일입니다. 공부를 잘 못한다는 소리를 듣는 아이들은 그 ‘공부’라는 것이 뭔지 깨달을 겨를도 없이 엄마 아빠가 느낄 실망감 때문에 움츠러들고 성적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심할 경우 옥상에서 뛰어내립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실망감보다는 부모들의 좌절감을 처리할 마땅한 방법이 아이들에게는 없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에 대한 부모님들의 기대 그 자체가 잘못된 방향의 것일 때는 어찌할까요? 그 잘못된 기대 때문에 아이들이 고통을 겪어야 한다면 누가 어떻게 그 고통의 낭비를 보상할 수 있을까요?
부모들이 이 문제를 성찰하고 아이들의 입장에서 아이들이 겪는 괴로움을 이해하기만 한다면 부모들이 어떤 길을 취해야 할지, 그 길이 열립니다. 내가 보기에 그 길은 간단하다면 아주 간단합니다. 첫째, 어떤 경우에도 아이들에게 공부 못한다고 윽박지르거나 짜증 내거나 낭패하는 기색을 보여 주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 아이들이 잘 하는 일, 웃고 즐기면서 하는 일, 자신감을 갖게 하는 일을 부모가 함께 찾아 주고 북돋아 주어야 합니다. 셋째, 공부라는 것은 아이들이 무엇엔가 궁금한 것이 있을 때,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해답을 찾아나갈 때 비로소 시작되고 성공한다는 것이 교육에 관한 인간 경험의 오랜 진실입니다. 그러니까 부모들이 할 일은 아이들이 즐겁게 발견의 길에 나서도록 옆에서 도와주는 일입니다.
백화현 선생이 쓴 이 책은 내가 간단하다고 말한, 그러나 사실은 그리 간단하지 않을 그 길들을 찾아 실행에 옮겨 온 한 엄마와 아이들의 이야기입니다. 백화현 선생은 책 읽기 교육과 학교 도서관 살리기 운동에서 이미 많은 일들을 빛나게 해 온, 그 분야의 ‘베테랑’ 교사입니다. 나는 우리 사회에도 이런 선생님이 있다는 사실에 늘 놀라고 고마워하는 사람입니다. 이 책에서 그는 그 자신이 선생님이면서도 정작 자기 아이들을 키우는 문제 앞에서는 다른 많은 부모들처럼 실망과 아픔을 경험했다고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엄마와 아이들이 함께 어려움을 풀어나갈 어떤 방법을 찾아내고 실행해 옮깁니다. 그것이 ‘책으로 아이들 키우기’, 혹은 ‘가정독서운동’입니다. 그는 첫째 아이와 그 친구들을 모아 집에서 시작했던 그 방법을 벌써 여러 해째 계속해 오고 있습니다. 둘째 아이 키우는 데도 적용한 거지요. 공부가 싫었던 아이가 공부하겠다고 나서고, 아이들이 나날이 달라지고, 행복한 성장의 길로 들어서는 모습을 백 선생은 이 책에서 진솔하게, 꾸밈없이, 감동적으로 그려 내고 있습니다. 나는 백 선생의 길이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길을 찾아내어 실행한 백 선생의 기록이 이 땅의 부모님들과 학교 선생님들에게 널리 읽히기를 기대합니다. 아이들은 책으로 큽니다.
도 정 일
경희대 명예교수, 책읽는사회문화재단 대표
차례
프롤로그 친구들과 함께 한 책 여행, 배움과 나눔과 만남의 이야기
추 천 사 아이들은 어떻게 자라는가 | 도정일
1장가정독서모임꾸리기
어떻게 아이를 키울까 아이가 잘하는 것을 찾아 진심으로 칭찬해 주자|아이에게 책을 주자
가정독서모임 만들기 가정독서모임을 시작하다|친구들과 함께 하는 가정독서모임|가정독서모임에도 원칙이 필요하다
2장 1기 가정독서모임|2003~2004년 이야기
첫해, 오래도록 지속가능한 독서모임을 꿈꾸다 책과 친해지기, 스스로 생각하는 힘 기르기|2003년 활동 내용과 대상 도서|질문하고 답하기|박정희 다시보기|활용한 책 들여다보기
둘째 해, 한 걸음 깊이 들어가 활동의 틀을 잡다 1년 활동의 틀 잡기|2004년 활동 내용과 대상 도서|주제별 책 읽기, 탐구 능력 기르기|인간 본성에 관한 책을 읽고|《마당을 나온 암탉》과 《갈매기의 꿈》을 읽고|2004년의 책 이야기
셋째 해, 점점 바빠지는 아이들의 짧은 활동 이야기
3장 읽고 떠나는 여행|2005~2006년 이야기
책·만남·여행
다산을 만나러 가는 길, 강진·해남 여행
아이들 여행기 조각 모음 다산과 영랑, 고산의 숨결이 배어 있는 곳
퇴계와 유학의 향기를 찾아서, 안동권 여행
아이들 여행기 조각 모음 북부 경북 유학과 전통문화의 향기를 찾아 떠난 여행
김유정 문학촌에서의 하루
춘천 실레마을 ‘김유정 문학촌’|김유정 다시 읽기|김유정 생가 마당 평상에 둘러앉아 김유정을 얘기하는 아이들|산국농장과 산지기 김희목 선생님|실레마을을 뒤로 하고
《토지》와 《혼불》의 숨결을 따라, 하동·남원 여행
아이들 여행기 조각 모음 하동·남원, 그리고 사람으로의 여행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군산·김제·부여 여행 경외의 작가 조정래|귀신사 주지스님
아이들 여행기 조각 모음 대단원의 마지막장, 《탁류》와 《아리랑》 줄기를 찾아서
4장 2기 가정독서모임|2007~2009년 이야기
2007년, 새로운 아이들과 배움의 세계에 빠지다 2007년 활동 내용과 대상 도서|전쟁 찬반 논술문|고전 읽기 찬반 논술문|작가 탐구 후기
2008년, 탐구의 기쁨이 차오르다 2008년 활동 내용과 대상 도서|‘언론의 진실성’ 관련 논술문|역사 인물 탐구 보고서|역사 인물 탐구 후기|‘조선 건국’ 찬반 논술문
2009년, 아이들의 성장이 눈에 띄다 2009년 활동 내용과 대상 도서|도덕이 먼저냐 경제가 먼저냐|아이들이 창조한 신 이야기|서양 고전문학 읽기|우리 고전 읽기|아이들이 쓴 진로 탐색 보고서
에필로그 7년간의 배움의 여정을 마치며
1
나는7년째 우리 집에서
가정독서모임을운영하고 있다.
우리큰아이가 중학교 2학년이던 2003년에
아이친구들과 시작하여 2006년까지 활동한 1기 모임과
그 바통을 이어받아 2007년, 작은아이가 똑같이
중학교2학년이던 때에 친구들과 시작하여
현재까지활동을 하고 있는 2기 모임.
처음시작할 때는 과연 1년이나 버틸 수 있을까
의심스럽더니만벌써 7년의 세월이 쌓였다.
나도아이들도 욕심 부리지 않고 천천히, 자기 좋은 대로,
하고싶은 만큼씩 즐기면서, 읽고 쓰고 나누고
어울렸기때문에 가능한 일이지 않았을까 싶다.
가정독서모임을어떻게 시작하고 꾸렸는지 소개한다.
가정독서모임꾸리기
아이를어떻게 키울까
가정독서모임의 내용을 풀어 놓기 전에, 엄마로서 아이를 키우며 깨닫고 배우고 간절히 소망한 것들에 대한 얘기부터 풀어 놓아야겠다. 나무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까지는 그 뿌리의 역할이 컸을 테니 말이다.
나는 우리 아이들을 사랑한다. 두 아이를 낳아 키운 일이 세상에 태어나 내가 한 일들 중 가장 행복하고 의미 있는 일이었다고 생각할 만큼 소중하게 여기고 아낀다. 그러나 큰아이가 스물두 살, 작은아이가 열여덟 살이 되도록 키우며 아픔도 많고 갈등도 많고 사연도 많았다. 특히 큰아이가 열 살이 될 무렵까지는 마음에서 근심이 가시지 않을 만큼 아이에 대해 걱정이 많았다.
우리 큰아이는 병치레도 잦고 공부도 잘하지 못했다. 아기였을 때는 태열이 심해 온종일 엄마의 등을 떠날 줄 몰랐고 세 살부터 열 살 때까지는 병원을 제집 드나들 듯했다. 그러나 이런 병치레로 인한 근심은 아이가 공부를 못해서 생긴 근심과 고통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 학교 아이들에게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 공부 못한다고 기죽지 말아라.”라는 격려를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건만 우리 아이가 공부를 못하니 잠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아이의 미래를 걱정할 만큼 근심이 가득 찼다. ‘학교 아이들에게 했던 말이 빈말은 아니었는데 우리 아이에 대해 이렇게 근심하고 있는 것은 대체 무슨 까닭이란 말인가.’하며 자꾸 되묻다 보니 더욱 갈팡질팡하여 혼란스럽기 짝이 없었다. 엄마가 이런 상황이었으니 아이는 어떠했을까. 점점 엄마 말을 신뢰할 수 없는데다 잔뜩 공부에 주눅이 들 수밖에 없는, 자신감 없고 이리저리 눈치나 살피는 아이가 되어야 했다. 이건 아닌데 싶으면서도, 어느 날 아이 외삼촌과의 일로 큰 깨달음을 얻을 때까지 나는 이러한 고통과 근심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아이가잘하는 것을 찾아 진심으로 칭찬해 주자
어느 날 참으로 우연한 일이 벌어졌다. 작은외삼촌이 집에 놀러와 아이가 끄적거린 시를 보다 생긴 일이다.
“야, 우리 조카가 시인이구나. 시가 기가 막힌데? 이거 진짜 네가 쓴 거 맞아?”라며 아이가 쓴 시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아이는 얼굴을 발갛게 물들이며 “내가 쓴 거 맞아요. 정말 그 시 잘 쓴 거예요?” 하며 어쩔 줄을 몰랐다.
꽃씨와달
꽃씨와달은 / 얘기를 하지요 / 조용히 말하지요
우리마음속에 있지요 / 어떻게 우리 속에 있는지 / 알 수 없어요
우리는/ 듣기만 해야죠
비
주룩주룩비 / 시원하게 내리는 비 / 흔들흔들 비
비비비/ 정말 잘 춘다 / 흔들흔들 웃는다
“너 언어감각이 정말 뛰어나구나. 사물을 보는 눈도 순수하고. 대단해! 시인이 되어도 좋을 것 같구나. 삼촌 꿈이 시인이었는데, 너 알아?”
그러더니 둘이 주거니 받거니 얘기가 길었다. 우리 아이가 그토록 오랫동안 얼굴을 발갛게 물들이고 눈을 반짝이는 모습을 그날 처음 보았다.
그날 본 아이의 표정은 오래도록 나를 뒤흔들었다. 아이는 그날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기쁨에 떨며 어쩔 줄을 몰랐다. 나도 그 시들을 본 적이 있었는데 왜 나는 삼촌 같을 수 없었을까?
이 우연한 사건은 엄마로 살아온 지난 10년을 처음부터 되돌려 몇 번이고 다시 생각하게 할 만큼 내게는 두고두고 커다란 사건으로 남았다. 나는 분명 우리 아이를 사랑하고 우리 아이의 행복을 간절히 바라는데, 왜 아이는 자꾸 내 눈치를 살피고 나는 아이를 윽박지르며 기쁨이 사라져 가는 것일까?
이것은 내 지나친 욕심 탓이었다. 또 공부 못하는 것에 대해 지나치게 근심하고 있는 탓이었다. 아이의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였고 내가 변해야만 할 일이었다. 내가 마음을 비우고 근심을 내려놓지 않는 한 우리 아이는 행복해지기는커녕 자꾸만 움츠러들 수밖에 없고 공부를 잘하지도, 자신의 다른 재능을 발휘하지도 못할 터였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맞았다. 우리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못하는 것에 대한 질책이 아니라 잘하는 것에 대한 칭찬이었다.
한순간에 나를 온전히 바꿀 수는 없었지만, 이후로 나는 아이가 잘하지 못하는 것들에 집착하기보다는 아이가 조금이라도 잘하는 것들을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그런 눈으로 아이를 보니 우리 아이에게도 장점이 많았다. 똑같은 아이가 이처럼 달리 보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만큼, 아이는 심성이 곱고 감성이 풍부하며 노래도 잘 부르고 시도 잘 썼다. 물론 여전히 공부를 잘하지는 못했지만, 그건 내가 근심하고 윽박지른다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님을 충분히 경험했기에 아이 스스로 자존감을 키우고 공부에 대한 필요성을 느낄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끝까지 공부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잘하지 못하더라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세상에는 공부가 아닌 다른 것으로 살아갈 길도 많고 공부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많은데, 공부 때문에 그 모든 것들을 다 잃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이는 눈에 띄게 밝아지고 내 마음도 편안했다. 영어와 수학과 과학은 싫어했지만 국어와 역사를 좋아하고 피아노를 치고 시를 썼다. 특히 시는 삼촌이 칭찬해 준 이후 일기장을 온통 채울 만큼 즐겨 쓰곤 했다.
이슬
이슬이반짝반짝 빛나네 / 사람들의 기분 좋은 말들을 / 모은 이슬
하늘높이 올라라 / 붕 떠라
월요일
봄같은 월요일 / 새싹 깨워 아름다움 피워 내고
사랑, 사랑 하도록 / 힘을 준다
아카시아
아카시아야~ / 하고 부르면 / 바람이 불어요
하늘아래 / 우리 어깨 사이로 / 피어나는 아카시아
날아라/ 날아라
하루
하루가뭔지 알 수가 없다. 하얀 먼지 같기도 하다. 하루가 다 가는 이 시간, 누군가 의지를 갖고 사는 하루일지 그건 아무도 모른다. 우리 나무 하루 나무 울타리 넘어 간다.
나는 지금도 아이가 쓴 이 시들을 가끔씩 꺼내 보며 아이를 믿어 주지 못하고 칭찬해 주지 못했던 지난날의 어리석음을 반성하곤 한다. 그리고 못하는 것에 대한 질책보다 잘하는 것에 대한 칭찬이야말로 아이의 성장에 훨씬 큰 힘이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몇 번이고 다짐한다.
아이에게책을 주자
지금도 그렇지만 엄마가 되었을 때 내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아이의 책 문제였다. 나는 아이들을 책과 함께 키우고 싶었다. 그때는 경제 사정도 좋지 않아 마음껏 책을 살 수도 없고 도서관도 멀어 책을 빌려 보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래도 형제와 친구들로부터 아이의 책을 얻기도 하고 조금씩 돈도 마련하여 집에 책들을 꽤나 장만하곤 했었다.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했기에 나는 책이 우리의 삶을 얼마나 풍성하게 해 주고 자신의 존재를 튼튼하게 해 줄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면 단위 자그마한 시골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자랐다. 길을 걷다 버스라도 지나갈라치면 종종 길게 연기를 내뿜으며 사라져 가는 버스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저 버스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저 길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저 길 너머에도 사람이 살고 있을까? 어린아이답게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마냥 즐겁고 가슴이 설레었다.
그러다 초등학교에 들어가 글자를 깨치고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나는 내 울타리 너머의 세상을 좀 더 생생하게 꿈꿀 수 있었고 마음에 큰 위로와 감동도 얻을 수 있었으며 내 정신에 날개를 달 수 있었다. 어린 시절 오래도록 내 안에서 함께 살았던 알프스 소녀 하이디, 그린 게이블즈의 엉뚱하고 씩씩한 빨강머리 앤, 이름만으로도 깊은 감동과 상상력을 불러일으켜 주던 네로, 파트라슈, 늑대왕 로보, 로오리, 조우, 메그, 달타냥, 장발장, 돈키호테……. 그들은 내게 세계로 난 창이었고 황홀한 꿈이었다.
더 자라 존재와 삶에 대한 방황으로 휘청거릴 때, 나는 누구이고 어찌 살아야 하는지 회의하고 불안해할 때, 역시 늘 곁에서 위로해 주고 길을 열어 준 것은 책이었다. 나의 분신처럼 생각이 되던 제인 에어, 나보다 더한 성장통을 겪고 있어 읽는 내내 가슴이 저릿하던 한스와 싱클레어, 비슷한 나이임에도 몹시도 우러러보이던 데미안, 삶은 먹는 일 그 이상일 수 있음을 깨닫게 해 준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과 노랑나비 애벌레, 내가 길을 잃고 헤맬 때마다 하늘 높이 총총 떠 내 영혼을 이끌어 준 치셤 신부님과 윤동주. 그들이 없었더라면 길고 어둡고 외로웠던 사춘기 시절을 어떻게 견뎌 낼 수 있었을까.
대학생이 되고 어른이 되어서도 그랬다. 개인과 사회, 존재와 무, 자유와 평등, 경제발전과 인권, 환경과 평화 등 궁금하고, 혼란스럽고, 행동해야 할 수많은 문제들에 대해 깊고 예리한 답들을 준 것 역시 책이었다. 소크라테스, 칸트, 사르트르, 프레이리, 김수영, 조정래, 홍세화, 하워드 진, 촘스키, 스콧 니어링……. 이들은 늘 곁에서 나를 깨어 있게 하고 배울 수 있게 해 주었다.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도 이러한 책을 주고 싶었다. 부모로서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고 학교에 보내 주고 믿음과 사랑도 줄 테지만, 내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는 자라는 동안 어쩔 수 없이 외롭고 불안하고 혼란스러울 것이다. 그때마다 누가 아이의 곁을 지켜 주고 위로해 주고 붙잡아 줄 수 있을까? 또 배워도 배워도 그 궁금증을 다 풀어 낼 수 없을 만큼 신비한 존재의 비밀과 드넓은 우주 공간, 태고로부터 축적되어 온 찬란한 지식의 세계,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수만큼이나 다 다른 인간의 얼굴, 그 끝을 알 수 없는 철학과 예술의 세계……. 책이 아니면 누가 아이에게 이러한 신비의 세계를 끝없이 펼쳐 보여 주고 조곤조곤 설명해 줄 것인가?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도 이러한 책을 꼭 주고 싶었다. 이러한 책과 친해지는 일은 학교 공부를 잘하느냐 못하느냐의 문제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그만큼 포기할 수 없는 문제였다. 우리 큰아이가 시 쓰기를 따로 배운 적이 없었음에도 그 같은 시를 쓸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어려서부터 많은 책들 속에서 자랐기 때문일 것이다. 가정독서모임을 운영하기 전까지는 특별한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없지만, 아이들이 어렸을 때 동화와 동시들을 틈나는 대로 읽어 주고 들려주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책을 장남감처럼 가지고 놀 수 있도록 집안 곳곳에 책을 쌓아 두었고 가끔씩 주말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서점에 가서 한나절씩 놀다 오곤 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많이 혼란스럽고 스스로 상처 받고 아이들에게 상처 주는 일도 많았지만 두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이들도 그 사랑을 알고 있었기에 엄마가 저지른 많은 잘못들을 용서할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엄마로서 사랑만이 아니라 지혜도 함께 가질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은 지금도 마음 한구석에 남아 늘 나를 성찰케 하고 배우게 한다.
가정독서모임만들기
가정독서모임을시작하다
큰아이가 중학생이 될 때까지 책 읽히는 일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아이는 스스로 두루두루 책을 읽고 시도 쓰며 발랄하게 지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중학생이 되면서 점점 동화와 소설, 시집들을 손에서 놓으며 만화책에만 빠져들었다. 또한 지나치게 ‘성적’을 비관하며 스스로 움츠러들었다. 어렸을 때 엄마로부터 받은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중학교에서 선생님들마다 ‘공부’를 강조하니 그리 되는 것 같았다. 초등학교 때와는 달리 아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기 쓰기’와 ‘시 쓰기’가 없어져 제 능력을 발휘할 기회도 없고 위로 받기도 힘들었다. 힘이 되어 주고 싶은데 행여 잔소리로 생각하지나 않을까, 오히려 부담으로 다가가지나 않을까, 상처만 더 깊게 하지나 않을까, 이래저래 눈치를 보느라 선뜻 손을 내밀지도 못한 채 오래도록 애만 태웠다.
1기 가정독서모임. 아이들은 2년 동안을 꼬박 특별한 경우를 빼고는 매주 일요일 저녁 7시 30분부터 9시 30분까지
우리집에 모여 활동했다.
아이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위로와 자존감이었다. 아이에게는 “너도 잘하는 것이 많아. 너는 너대로 아름다운 사람이야. 배움은 지겨운 일이 아니라 즐겁고 경이로운 일이란다.”라며 마음 깊이 울림을 주고 스스로 그러함을 믿을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그 길을 이끌어 줄, 가슴 따뜻한 친구와 지혜로운 스승이 필요했다.
나는 책이 그 일을 잘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내 어릴 적 경험과 교사가 되어 제자들을 대상으로 전개했던 독서운동의 결과가 그것을 확신케 해 주었다. 졸저 《학교 도서관에서 책 읽기》 백화현외 지음, 우리교육, 2005에서도 밝힌 바 있듯이 내가 독서운동과 도서관 살리기 운동에 뛰어들게 된 것은 달동네 학교에서의 경험 때문이었다.
많은 아이들이 무기력하고 학습에 흥미가 없고 턱없이 지식이 부족했다. 아이들 대부분이 열등감 속에서 자신을 믿지 못하고 꿈도 꾸지 않았다. 그러나 여러 선생님들과 힘을 모아 도서관을 살리고 독서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하자, 1년 만에 교과서를 내팽개치던 아이들이 교과서를 펼치고, 글에는 살이 붙고, 자신의 진로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2년째에는 토론과 탐구 수업이 가능해졌고 독서시간을 확보하느라 교과서 수업을 줄였음에도 오히려 성적이 올랐다.
그때 나는 책을 통해 아이들이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기를 원했고 상처 받은 마음에 위안을 얻기 바랐으며 세상에는 숱하게 많은 사람들이 숱하게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다. 그들 속에서 친구를 만나고 스승을 만나고 역할 모델을 만나길 바랐고,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이 매우 소중한 존재이며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스스로 깨달아 갈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럴 수 있다면 아이들은 공부가 필요하면 스스로 열심히 공부하게 될 것이고 공부가 아니어도 된다면 다른 방식으로 열심히 살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나는 그만큼 책의 힘을 믿었고 책은 아낌없이 자신의 힘을 아이들에게 발휘해 주었다.
우리 아이에게도 책은 똑같이 해 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아이가 좋아하는 ‘만화’만으로는 부족할 거라고 생각했다. 만화 역시 얼마만큼은 아이를 위로하고 꿈을 꾸게 해 주겠지만, 그것은 휘발성이 강하고 부서지기 쉬워 진정으로 아이를 위로하거나 변화시키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라 생각했다. 설혹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편독이란 편식만큼이나 아이의 성장을 왜곡시킬 수 있기에 좀 더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폭넓게 읽었으면 했다. 그러나 아이에게만 맡겨 두었을 때 이 일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흥미 위주의 책 읽기가 아닌, 사람의 마음에 깊은 감동과 위안을 주고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랑의 마음을 깊게 해 주며 폭넓은 지식과 정신을 고양시켜 줄 책들을 꾸준히 읽어 나가는 일이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극소수의 타고난 독서가들을 제외하고는 잘 갖춰진 독서환경과 학교에서 그런 책들을 읽어 나갈 기회를 적극적으로 마련해 주지 않는 한 흥미 위주의 책 읽기를 벗어나기가 힘들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때까지는 다양한 책들을 읽다가도 우리 아이처럼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곧바로 만화책에만 빠져들게 되는 까닭은, 중학교부터는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는 많고 폭넓게 독서할 기회와 필요성은 오히려 줄어드는, 단편적인 지식 위주의 수업 내용과 평가 방법 때문일 것이다. 선진국의 여러 나라들처럼 학교가 나서서 아이들을 자연스럽게 책의 세계로 이끌어 주고 폭넓게 책을 읽고 탐구할 기회를 준다면 좋겠지만 아직 우리는 그러한 형편이 안 되니 어떡해야 할까? 달리 맡길 데가 없으니 내가 우리 아이와 함께 그 길을 직접 찾아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가정독서모임’을 시작하게 된 것은 이런 이유들 때문이다. 큰아이를 드넓은 책의 세계로 이끌고 싶고 책의 힘을 얻게 하고 싶은 엄마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본래 엄마는 아이에게 그다지 위엄 있는 존재도 아니고 서로가 긴장해야 할 관계도 아니다 보니 약속도 쉽사리 잊어버리고 학교에서처럼 다양한 활동들을 해 볼 수도 없었다. 단둘이 하려니 재미도 없었다. 그래서 아직 초등학교 3학년밖에 안된 작은아이도 함께 하자 하여 셋이서 해 보기도 했지만 역시 탄력이 붙지 않고 재미도 없었다.
그렇게 6개월을 흐지부지 보내다가 큰아이가 1학년을 마칠 무렵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친구들을 불러 모아 독서동아리 형태로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소그룹 형태의 독서동아리 운영 경험은 내게 풍부하니 어렵지 않게 이끌 수 있을 테고, 제자들이 그랬듯이 우리 아이들에게나 친구들에게나 책 읽기만이 아닌, 정신적으로 힘든 청소년 시절에 서로 마음을 나누고 생각을 교류하며 아름다운 추억거리도 풍성하게 만들어 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우리 아이들도 대찬성이었다. 친구들 또한 어렵지 않게 모았다. 우리 아이들만 대상으로 하여 재미도 없고 내용도 없이 비실거리던 ‘가정독서모임’이 친구들과의 즐거운 만남의 장으로 변신하며 힘차게 새 출발을 하게 된 것이다.
친구들과함께 하는 가정독서모임
우리 독서모임에 제일 먼저 온 친구는 윗집에 사는 큰아이의 친구였다. 이 아이는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단짝이 되었는데 아빠가 무척이나 책을 좋아하고 성적보다 인간성을 더 중요하게 여기며 의식이 깨어 있는 분이었다. 이런 집 아이라면 나도 마음 편히 모임을 꾸려 갈 수 있겠다 싶어 대환영했다. 그러나 한 명으로는 좀 심심했다. 함께 할 아이들이 더 있었으면 했다.
마침 떠오르는 아이들이 있었다. 우리 집 가까이 사는 아이들로 세 자매가 모두 지난 학교 제자들이었다. 내가 직접 가르친 아이는 둘째였는데 무척이나 착하고 지혜로운 아이였다. 그러나 우리 큰아이보다 두 학년이나 위여서 혼자 참여하면 어색해 할 것 같아 내가 가르친 적은 없지만 큰아이와 학년이 같은 셋째와 함께 참여하면 좋겠다 싶었다. 그런데 둘째는 동생들과 함께 모임을 하는 것이 어색할 것 같다며 동생이 하고 싶어 하니 동생만 참여하게 해달라고 했다. 이렇게 하여 모임원은 셋이 되었다.
그런데 어떻게 빠질 수 있겠나. 취미란에 ‘독서’ 말고는 달리 쓸 게 없고 형 친구들을 제 친구들보다 더 좋아하고 따르는 우리 작은아이. 이미 형과 함께 독서모임을 시작했고 동아리 말이 나오자 작은아이가 더 흥분하고 좋아했는데. 이렇게 하여 모임원은 넷. 처음은 그렇게 시작했다.
그러나 한 달여가 지나자 우리 큰아이와 삼총사로 지내던 친구 중 모임에서 빠진 아이가 씩씩대며 항의를 해 왔다. 어떻게 자기만 뺄 수 있느냐면서. 우리 큰아이 말로는 그 친구는 책과는 담을 쌓고 살기 때문에 책모임에 끼고 싶어 할 줄은 생각지도 못해 그랬다는데, 불러서 이야기해 보았더니 책 읽는 것은 좋아하지도 않고 잘 읽지도 못하지만 이번 기회에 자기를 바꿔 볼 테니 꼭 넣어달라고 했다. 그래서 다섯.
그런데 남자아이 넷에 여자아이가 하나다 보니 여자아이가 혼자서 잘 버텨 낼 수 있을까 걱정도 되고 쓸쓸해 보여 여자아이가 한 명만 더 있었으면 싶었다. 그때 마침 학교에서 한 여자아이가 ‘다른 과목 공부는 혼자서 할 수 있겠는데 국어만큼은 좀체 방법을 모르겠다.’면서 상담을 청해 왔기에 모임을 권하여 여섯. 이렇게 1기 ‘가정독서모임’은 중학교 2학년 남자아이가 셋, 여자아이가 둘, 초등학교 4학년 남자아이 하나, 총 여섯 명의 아이들로 구성이 되어 기나긴 책 여행을 함께 떠나게 되었다.
가정독서모임에도원칙이 필요하다
학교처럼 정해진 틀이나 내용이 없다 보니 막막하기는 했다. 지난 학교에서 근무할 때 개발하여 나름대로 좋은 성과를 얻은 36차시 단계별 독서지도 프로그램《학교도서관에서 책 읽기》 참조이 있긴 했지만 정규 수업도 아닌데다 정해진 기간도 없고 저희끼리 어울려 놀고 읽으며 자연스럽게 책과 친해지고 추억을 만들어 가는 것이 더 중요했기에 프로그램은 아이들을 지켜보면서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그러나 간곡히 당부한 것들은 몇 가지 있었다. 우리 모임 운영에 필요한 원칙 같은 것이었다.
성실하게참여하자
•함께만들어 간다는 생각 잊지 않기
•못오게 될 경우에 연락하기
•숙제잘해 오기
•시간잘 지키기
자기 속도대로 한 걸음씩 꾸준히 걷자
•잘하는친구 시샘하지 않기
•못한다고무시하거나 구박하지 않기
•즐기면서꾸준히 노력하기
손가락 새로 빠져 달아나는 것들을 소중히 여기자
•독후활동에연연하지 말고 읽는 일 자체를 즐기기
•함께만들어 가는 추억거리 소중히 여기기
나도 아이들도 이 모임의 목적을 뚜렷이 했으면 싶었다. 이 모임을 생각하게 된 것은 앞서 말한 바처럼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편독’을 벗어나 다양한 책들을 넓고 깊게 읽어 보는 것이고, 또 하나는 모임 활동을 통해 아름다운 추억거리들을 풍성하게 만들어 가는 것. 그러나 어떤 모임이든 구성원끼리 서로 배려해 주고 아끼며 책임감 있게 활동할 때 아름답게 성장할 수 있듯이 이 모임 역시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처음 이 모임을 생각했을 때 큰아이에게 한 것처럼 다른 아이들에게도 이 모임을 구상하게 된 동기며 내 경험들을 이야기해 주고, 서로를 풍성하게 성장시켜 나갈 수 있는 좋은 모임이 될 수 있도록 책임감 있게 활동하되 지나친 욕심을 부리지 않도록 당부했다. 또, 이 모임은 다른 친목 모임들과는 달리 ‘책’이라는 매개물을 사이에 놓고 활동을 하는 것인 만큼 한 걸음 한 걸음이 그리 쉽지는 않을 것 같아 금세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당부하고, 지나치게 친구들 눈을 의식하거나 눈앞의 성과에 연연하다 정작 책이 주는 즐거움과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없는 더 많은 느낌과 감동들을 놓치지 않도록 조언한 것이다.
아이들은 무척 좋아했다. 책 읽기가 서툴러 다른 아이들이 100쪽을 읽는 동안 채 30쪽도 못 읽어 내는 아이마저도 자기가 책을 읽게 된 게 기적 같다며 좋아했다. 이 아이들은 이때부터 2년 동안을 특별한 경우(시험 때나 방학 때 등)를 빼고는 매주 일요일 저녁 7시 30분부터 9시 30분까지 우리 집에 모여 활동했다. 또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탈퇴한 한 아이를 빼고는 2년을 더 만나며 책을 읽고 함께 여행을 떠나는 등 체험 중심의 책 읽기 활동을 계속 했다. 티끌 하나하나가 모여 태산을 이루고 물방울 하나하나가 모여 장강을 이룬다더니 이 독서모임이 꼭 그랬다.
2
‘가정독서모임’은 정해진 틀도 없고
친구들과어울려 친목 모임처럼 활동한 탓인지
아이들이매우 좋아했다.
이모임을 통해 아이들은 혼자라면 엄두가 나지 않을
책들도꽤 많이 읽을 수 있었고,
힘든사춘기 시절을 친구들과 책으로부터 위안을 얻으며
지낼수 있었으며, 배움은 매우 즐겁고
경이로운일이며 그 길은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깊고광활함을 체험적으로 깨달아 갈 수 있었다.
1기 가정독서모임
2003~2004년 이야기
첫해,
오래도록지속가능한 독서모임을 꿈꾸다
아이들은 매주 일요일 저녁 7시 30분만 되면 우리 집으로 모였다. 각자 집에서 저녁을 먹고 모이는 것이어서 나는 간단한 차와 간식거리만 준비하면 되었다. 때때로 아이들이 간식거리를 가져오기도 했지만 행여 부담이 될까 싶어 차츰 가져오지 못하게 했다. 이 모임은 나와 아이들의 특별한 만남이고 오래도록 편안하고 즐거워야 할 모임이기에 그런 일로 아이들을 신경 쓰게 하고 싶지 않았다. 아이들의 엄마로부터 여러 제의를 받기도 했지만 역시 같은 이유로 일체의 것을 거절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준비하여 아이들을 대접하고(?) 아이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고 즐겁게 모임을 할 수 있도록 도왔다.
2003년 첫해에는 쉽고 재미있으면서 생각할 거리가 많은 책들 중에서 아이들이 원하거나 내가 권하고 싶은 책들을 중심으로 함께 읽으며 다양한 독후활동과 토론을 하였는데 점차 스스로 생각하는 힘 기르는 데에 초점을 맞춰 가게 되었다. 하지만 미리 계획된 프로그램이 아니라 그때그때 아이들과 상의하며 함께 만들어 간 것이라서 체계도 없고 치밀하지도 않다. 그러나 미리 염두에 둔 것은 모여서 함께 활동할 때와 집에서 각자 책을 읽을 때를 구분하고자 했는데, 모여서 활동할 때는 ‘책의 맛’보다는 ‘읽기의 방법’을 익히며 함께 토론하며 생각을 나누고 키워 갈 수 있는 데에 초점을 맞췄고, 집에서 혼자 읽을 때는 읽고 싶은 책들을 자유롭게 읽으며 충분히 ‘맛’을 음미하며 읽어 보도록 권유했다. 따라서 텍스트...